250화
제47장 벌써 일 년(5)
그 날 오후 4시.
준후는 거실에서 태용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본래 태용의 방송을 시청만 할 생각이었건만 본의 아니게 게스트로 출연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성공적인 게임방송 데뷔전(?)을 치르게 되었다.
준후의 업적은 열거하자면 끝이 없었다.
1번째로 4분 18초의 ‘점프 퀸’ 세계 기록을 10초나 앞당겼다.
점프 퀸 고인물이 아닌 초심자가 세운 기록이라는 점에서 기적과 같은 결과였다.
-와 이게 맞나? 딱 두 번 만에 점프 퀸 세계 기록을 박살 낸다고?
-꾸벅꾸벅. 고개 숙여 사죄합니다. 제 두 눈을 의심해야 하는데 괜히 서 쌤을 의심했네요.
-피지컬 쩐다. 외과 의사 말고 롤 프로게이머 해도 될 듯. 훼이커랑도 비비겠어요. ㅋㅋㅋㅋ
‘점프 퀸’을 끝낸 후.
준후는 악명 높은 슈팅 게임에도 도전했다.
슈팅 게임이란…….
쉽게 말해서 과거 오락실에서 유행하던 비행기 게임이었다.
적이 쏟아붓는 미사일이나 발사체를 피해서 적의 기체를 파괴하는 게임이었다.
준후에게 슈팅 게임은 앞선 ‘점프 퀸’만큼이나 쉬었다.
준후의 동체 시력이 이미 인간을 초월했다.
얼마 전 미세 현미경 없이 맨눈으로 수술을 성공시킨 전적이 있지 않았던가.
모니터 화면을 꽉 채운.
빈틈없이 사악하게 날아오는 미사일들을 준후는 어렵지 않게 읽어냈다.
비 사이를 막 가듯이.
탄막 사이를 막 지나갔다.
준후가 가는 길이 곧 길이었다.
단 한 번도 죽지 않고, 단 한 번도 폭탄을 쓰지 않고, 준후는 1회차에 슈팅 게임의 올 클리어 했다.
채팅창은 다시 한번 뒤집어졌다.
준후를 존경하다 못해 숭배한다는 채팅도 자주 눈에 띄었다.
어디서 소문을 듣고 왔을까.
그때쯤에는 70명이었던 시청자가 10배까지 상승해 700명으로 솟구쳤다.
게임을 하는 와중에도.
준후는 채팅창을 꼬박꼬박 확인했다.
질문이 괜찮으면 대답을 해주는 여유를 선보였다.
처음 해보는 게임방송이 준후는 꽤 재미있었다.
병원 업무에서는 내공과 무공.
또는 피지컬을 피치 못하게 숨겨야 하는 답답함이 있었다.
하지만 게임방송에서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전력을 다해도 괜찮았다.
누구도 준후를 의심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준후가 활약하면 할수록 시청자들은 뜨거운 응원과 감탄으로 보답했다.
시청자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것도 꽤 즐거웠고 말이다.
다음 일정이 있었으므로.
준후는 방송을 3시간 정도 하다가 중단했다.
태용도 저녁 방송을 따로 하겠다며 방송을 종료했다.
“게임방송 스트리머는 내가 아니라 형이 해야겠던데?”
태용이 감탄한 목소리로 말했다.
“게임 다 잘하고, 얼굴도 되고, 말도 잘하고, 채팅창도 일일이 다 보고. 거의 완전체던데?”
“뭐, 쉬는 날에 가끔 하면 괜찮을 것 같더라.”
“어쨌거나 형 덕분에 짭짤하게 땡겼어.”
“뭘 땡겨?”
“뭐긴 뭐야. 당연히 유료 후원이지. 한 20만 원 정도 번 것 같던데? 새로운 기록이야. 나 혼자서 하루 종일 방송해서 번 금액은 10만 원이 최고였거든.”
태용의 설명이 이어졌다.
본인의 방송 구독자가 100명에서 800명으로 늘었다는 소식이었다.
“이렇게라도 도움이 돼서 다행이다.”
준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뉴튜브 촬영 및 편집 비법.
기발한 콘텐츠 짜는 요령 등등.
도와주겠다고 찾아와서 제대로 된 조언은 하나도 못했던 준후였다.
그래도 게스트로 참여해서.
태용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서 안심이었다.
“앞으로도 시간 맞으면 종종 도와줄게.”
“나야 땡큐지.”
“근데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진다?”
준후는 놓치지 않았다.
찰나의 순간, 태용의 입가를 스쳐 지나간 씁쓸한 웃음을.
그리고 준후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씁쓸한 웃음이 담고 있는 진정한 의미를.
“왜? 오늘 하루만 반짝 한 것 같아서 마음에 걸려?”
“와! 게임만 귀신이 아니라 심리도 귀신이네.”
태용이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솔직히 오늘 방송은 형이 다했지 내가 한 건 없잖아. 가만 생각해 보면 그렇게 좋아할 일은 아닌 것 같더라고.”
“꼭 그렇지만도 않아.”
“어떤 면에서?”
태용의 눈동자가 놀란 부엉이처럼 휘둥그레졌다.
준후는 차분하게 그 이유를 설명했다.
준후가 지켜본 바에 따르면…….
태용은 입담이 좋은 편이었다.
첫째로 오디오가 비지 않았다.
방송을 보고 있으면 수다스러운 친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친근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태용은 같은 말을 좀 더 자극적으로 하는 재능을 가졌다.
과장을 잘한다고 해야 할까.
예를 들자면 이랬다.
게임을 하다가 어려운 구간에서 헤매게 될 때.
-여기 깨려면 조금 오래 걸리겠네요. 너무 어렵다.
보통 스트리머라면 이 정도로만 말할 텐데.
-와. 이딴 걸 깨라고 만들어놨어? 개발사가 게이머들 학대하는 성향인가 봐요? 미친! 유료로 학대하는 게임이라니…….
다행히도 태용은 말을 자극적으로 했지만 선은 넘지 않았다.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어?”
“어. 대충은.”
“시청자가 좀만 더 늘어나면 티키타카 되면서 방송도 더 재미있어질 거야. 그러니까 지금처럼만 꾸준히 하면 돼.”
“고마워. 형. 뭔가 없었던 용기가 생긴 느낌이다.”
“알면 됐고. 고생해라.”
준후는 태용을 격려한 후 집을 나왔다.
쏟아지는 햇살을 마주한 채 지하철역으로 이동했다.
태용은 몰랐겠지만.
태용을 도와주면서 준후도 뜻밖의 수확을 얻었다. 게임방송 스트리머로서의 자신의 가능성이었다.
수익을 챙기고.
뉴튜브 구독자를 늘리고.
병원 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고 등등.
게임방송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장점이 많았다. 그래서 다음 쉬는 날에는 게임방송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40분쯤 지났을까.
준후는 푸근하고 친숙한 동네로 돌아왔다.
하도 오랜만에 집에 돌아오는 것이라서 ‘귀향’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집으로 가는 길에 있던 공원을 통과할 때.
또르르~
준후 앞으로 농구공이 굴러왔다.
준후는 허리를 숙여 농구공을 손에 쥐었다.
“형. 공 좀 던져주세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녀석들이 3 대 3 농구 중이었다.
준후는 씨익 웃으며 슛 자세를 취했다.
“형! 거기서 못 넣어요! 3점 라인 한참 바깥이에요!”
“그냥 던져주세요.”
“개 오버네. 지가 무슨 스테픈 커리인 줄 아나?
학생들이 준후를 만류하고 무시했지만 귀담아들을 준후가 아니었다.
준후는 자신이 없었다.
슈팅에 실패할 자신이.
준후의 무릎이 살짝 구부러졌다가 펴졌다.
깃털처럼 가볍게 몸이 떠올랐다.
팔 힘과 손목의 스냅이 어우러지면서 농구공이 손을 떠났다.
학생들은 농구공이 만들어낸 무지개처럼 우아한 곡선에 시선을 빼앗겼다.
학생들의 고개도 무지개 곡선을 그렸다.
철썩!
농구공이 깔끔하게 림을 통과했다.
“미…… 미친. 드…… 들어갔어?”
“형, 혹시 농구 선수예요? 슛 폼이 너무 멋있는데요?”
학생들의 180도 달라진 태도를 만끽하며 준후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서둘렀다.
오늘의 메인 이벤트가 준후를 기다리고 있었다.
* * *
그 날 오후.
집에 돌아온 준후는 똘똘이(애완견)가 지칠 때까지 놀아주고서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부모님이 일 끝나고 돌아오는 시간이 오후 7시인데.
그 전까지 처리할 일이 있었다.
바로 손꼽아 기다리던 벌모세수!
벌모세수는 이른바 최적화의 무공이었다.
휴대폰을 다크 모드로 설정하면.
전력 소모가 줄고 눈의 피로 또한 줄지 않는가.
벌모세수도 비슷한 느낌으로 볼 수 있었다.
벌모세수에 성공하면…….
혈도, 혈맥, 신경, 근골격계를 재구성해 무공을 익히기 좋은 몸을 얻을 수 있었다.
뚜두둑.
뚜두둑.
준후는 좌우로 목을 가볍게 꺾고 창가 아래에 가부좌를 틀었다.
곱게 포갠 두 손을 단전 아래에 올려놓았다.
현대에서 무공과 내공을 운용할 수 있는 사람은 준후뿐이었다.
그래서 만약 벌모세수 중 문제가 생긴다면 도움받을 길이 없었다.
최악의 경우…….
혈맥이 꽈배기처럼 배배 꼬이고.
내상으로 새까만 피를 토하다가 즉사할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준후는 두렵지 않았다.
두려움이란 그저 깃발을 흔드는 바람에 불과했다. 바람에 흔들린다고 해서 깃발의 본질이 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슬슬 시작해 볼까?’
바위 같은 결심과 함께 마침내 벌모세수의 막이 올랐다.
준후는 우선 단전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내공의 양부터 확인했다.
청운심법이라는 희대의 심법 덕분에.
천산환을 꾸준히 복용한 덕분에.
내공이 꽤 많았다.
가히 0.7갑자(1갑자, 60년)에 육박했다.
벌모세수에 충분한 양이었다.
괜히 시간 질질 끌 필요 없겠지.
속성법으로 한 번에 간다.
지금의 나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
준후는 단전에 똬리를 튼 내공에 폭(爆, 터질 폭)자결을 운용했다.
콰과과광!
몸 안에서 폭탄이 터진 것처럼.
준후의 몸이 심각할 정도로 요동쳤다.
폭자 결이 운용되면서 높은 압력의 내공이 순식간에 준후의 근골격, 신경계, 혈맥, 혈도 등으로 퍼져 나갔다.
그 위세가 쓰나미와 같았다.
마치 준후를 덮치고, 파묻고, 산산조각 낼 것처럼 사나웠다.
준후의 피부는 어느새 잘 익은 딸기처럼 빨갛게 익어버렸다.
전신의 핏줄과 힘줄은 선명하게 도드라졌다.
상상을 초월하는 통증이었으나 준후는 견뎌냈다.
아니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무림에서 당소윤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냈을 때.
그리고 현대에서 성호를 허망하게 잃었을 때.
자신의 무기력함을 뼈저리게 느꼈을 때가 준후는 오히려 10배는 더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이런 육체의 아픔 따위는 얼마든지, 몇 번이고 인내할 수 있었다.
‘크으으읍.’
터져 나오려는 신음을 준후는 간신히 삼켰다.
입을 벌리는 순간.
몸 안에서 폭발한 내공의 압력이 줄어들 테고.
이는 벌모세수를 반쪽짜리로 만들 테니까.
쓰지 않던 근육을 갑자기 무리해서 사용하면 고통스러운 것과 마찬가지로.
준후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고통을 끊임없이 맛봐야 했다.
그것도 정수리부터 머리끝까지.
벌모세수가 진행되면서.
준후의 피부에서 찐득하고 누런 액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육체에 쌓인 노폐물이었다.
노폐물이 배출된 자리에는 새로운 혈맥과 내공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지옥과도 같은 시간.
지옥과도 같은 고통도 영원하지는 않았다.
세상의 고뇌란 고뇌는 다 짊어진 것 같았던 준후의 표정이 밝아졌다.
준후는 가부좌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만히 벽시계를 응시했다.
1시간 전, 그러니까 벌모세수를 하기 전의 자신과 벌모세수를 마친 지금의 자신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걸 준후는 금방 알아차렸다.
전신에 활력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체내에 마르지 않는 샘이 생겨난 느낌이었다.
모처럼 느껴지는 충만함에 준후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벌모세수를 성공한 것만으로도.
준후의 각종 외과 처치 능력은 이미 1.5배나 상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컴퓨터로 비유하자면…….
램과 그래픽 카드 같은 장치 등이 무지막지하게 업그레이드된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말이다.
구체적인 건 시험해 보면 알겠지.
벌컥!
준후는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