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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252화 (252/424)

252화

제48장 이삭(2)

신경외과 당직실.

고요한 새벽의 한복판에서 준후는 무공을 수련하고 있었다.

허공을 향해 강맹하게 손바닥을 뻗었다.

후우우웅.

공기가 갈라지면서 날카로운 파공성이 터졌다. 정면에 있던 창가 커튼이 강풍에 휩쓸린 깃발처럼 정신없이 나부꼈다.

만월장법을 거두면서.

준후는 곧장 다음 무공을 펼쳤다.

해월지(海月指).

준후의 왼손이 물결치듯 곡선을 그렸다.

팔의 궤도가 권투선수의 훅과 꼭 닮았다.

푹!

내공이 담긴 손가락이 허공의 한 지점을 꿰뚫었다.

해월지는 적의 측두부를 기습하는 무공이었다.

만약 해월지가 끝난 지점에 사람이 있었다면…….

그 사람은 머리가 뚫렸으리라.

손과 팔로 펼치는 무공의 종합세트, 호월십이수는 계속되었다.

가벼우면서.

때로는 절도가 넘치는.

가지각색의 무공들이 당직실에서 끝없이 샘솟았고 그 중심에 준후가 있었다.

준후는 이미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무아경에 빠져 있었다.

반짝이는 두 눈동자는 독수리처럼 매서웠지만 한편으로는 몽환적이었다.

준후는 무언가를 보고 있었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기도 했다.

화려하고 압도적이었던 무공 수련은 1시간이 지난 후에야 끝났다.

“휴우.”

준후는 그 자리에서 숨을 골랐다.

단전에서 내공을 끌어올렸다.

내공으로 전신을 감싼 후 피부에 끈적하게 들러붙은 식은땀을 증발시켰다.

파앗!

땀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피부는 햇빛에 잘 말린 빨래처럼 뽀송뽀송해졌다.

준후는 책상 앞 의자에 앉았다.

책상 등받이에 편하게 등을 기댔다.

입가에 서서히 피어나는 미소.

방금 수련으로 호월십이수의 성취가 한 단계 상승했다.

4개월 전 4성이었던 호월십이수는 오늘부로 7성이 되었다.

무공의 성취를 10점 만점이라고 하면 7점대가 된 것이다.

상위 30퍼센트가 된 것이다.

호월십이수의 수련 기간이 채 1년이 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적 같은 성취였다.

주변에 무림인이 있었다면…….

준후의 성취에 감탄과 축하를 아끼지 않았으리라.

‘뭐, 조화경은 거저 얻은 경지가 아니니까. 작년에 벌모세수를 마친 영향도 클 테고.’

준후는 혼잣말을 하고 양손에 내공을 불어넣었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달빛처럼 은은한 빛이 손 전체를 휘어 감았다. 호월십이수를 7성까지 익혔다는 증표였다.

손에서 내공을 거두고.

준후는 뉴튜브에 접속해 자신의 채널을 확인했다.

구독자는 120만.

이틀 전에 올린 게임 동영상의 조회수가 무려 70만이었다.

매니지먼트와 계약한 후.

뉴튜브는 그야말로 승승장구였다.

눈길을 사로잡는 자극적인 섬네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편집.

같은 매니지먼트에 소속된 다양한 스트리머 및 뉴튜버와 합동 방송 등등.

준후의 주가는 하루가 다르게 급상승하고 있었다.

가파른 상승세가 몇 년 전 비트코인의 상승세를 뺨 때릴 정도였다.

뉴튜브 수익 또한 미쳐 돌아갔다.

한 달에 ‘2,000만 원’은 우습게 찍었다.

매니지먼트에서 물어다 주는 유료 광고 수익을 빼고도 그랬다.

송곳처럼 뾰족해진 수익을 확인하고.

준후는 제일 먼저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일을 그만두시라고.

부모님은 미안해했다.

벌써부터 준후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고 부담스러워했다.

하지만 준후는 대쪽같이 본인 생각을 밀어붙였다.

그동안 일은 충분히 하셨다.

그러니 취미나 소일거리를 알아보시라고 했다.

준후의 무쇠 고집에 결국 부모님이 백기 투항했다.

금액의 일부는 준후의 깐깐한 검증을 통과한 자선 단체에 기부되었으며.

또 다른 일부는 준후가 맡은, 가정 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에게 후원금으로 사용되었다.

-야, 진짜 개 부럽다. 100만 뉴튜버면 이제 인생 끝난 거 아니야? 의사 관둬도 되지 않아?

-내가 너 같으면 당장 해외여행부터 갔다. 이제 좀 쉬엄쉬엄 살아.

-의사 노릇하고 싶으면 그냥 의원이나 차리는 게 어때? 신경외과에서 생고생하지 말고.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준후를 부러워했다.

동시에 준후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100만 뉴튜버로 고수익을 올리고 있는데 굳이 왜 신경외과에서 고통받느냐는 것이었다.

-돈은 정말 중요하지만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닙니다.

준후의 대답은 항상 한결같았다.

재수 없게 들릴지 몰라도.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돈은 어디까지나 수단이지 목적은 아니었다.

돈이 목적이 되는 순간.

인간은 추해지고 이기적으로 변한다고 준후는 믿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준후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었다.

무림에서 허무하게, 또 무기력하게 소중한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봐야만 하지 않았던가.

그런 비극의 되풀이가 준후는 지긋지긋했다.

눈앞에서 사라지길 바랐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준후는 지구에서 유일무이한 펜타보드 서전이 되어야 했다.

뇌종양 파트.

뇌혈관 파트.

정위신경 파트.

외상외과 파트.

수부외과 파트를 모두 아우르는, 전무후무한 최고의 서전이 되어야 했다.

‘스승님도 한번 뵈어야 하는데.’

준후는 문득 스승 재현을 떠올렸다. 통화는 종종 했지만 얼굴을 안 본 지가 벌써 6개월째였다.

슬슬 다음 가르침을 청하고 싶었다.

-교수님. 저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만…….

-뭐니?

-얼마 전, 건강 정보 프로그램에 교수님 나오신 것을 봤습니다. 유익한 정보를 전달하는 척하면서 영양제나 팔아먹는 방송에 대체 왜 나가셨습니까?

몇 달 전, 재현과 연락이 닿은 준후는 따지듯 물었다.

평소답지 않게 목소리가 퉁명스러웠다.

-녀석, 나한테 실망한 모양이구나.

-교수님의 평소 사고방식과는 정반대인 방송이었으니까요.

-방송 출연을 꼭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단다. 사람들에게 얼굴을 알려두는 것도 꽤 중요하거든.

-교수님은 평판보다 환자가 더 중요한 거 아니셨습니까?

-물론 환자가 더 중요하지. 하지만 나중에 병원 밖에서 일하려면, 의료제도를 개혁하려면, 지금부터 인지도를 높이는 편이 좋겠지.

재현은 준후보다 먼 곳을 보고 있었다.

환자 한 명이 아니라 환자 수십만 명을.

의사 한 명이 아니라 의사 수십만 명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원대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실리적인 관점을 취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적극성을 보였다.

그러니까 준후는 재현을 오해하고 있었다.

재현은 평판에 목을 매단 사람이 아니었다.

평판을 디딤돌 삼아 의료계의 더 나은 미래를 구상하고 있는 선구자였던 것이다.

-정말 죄송합니다. 교수님.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오히려 속 시원하게 말해줘서 고맙구나. 덕분에 오해가 생길 일이 없어졌으니까 말이야.

꾸르르륵~

스승과의 통화를 회상하던 준후는 피식 웃었다.

배 속에 있던 개방 거지가 밥을 적산해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준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냉장고에 있던 만두를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따끈따끈한 만두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김치만두의 매콤한 감칠맛이 입안을 사로잡았다.

만두를 먹고 있는데도 만두가 더 먹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준후는 김치만두를 하나 더 입에 넣었다.

그러면서 만두 포장지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재은이네 대박 만두.]

* * *

오전 5시 30분.

드르르륵.

당직실 문이 열리고 한 청년이 안으로 들어왔다.

청년은 지독한 곱슬머리의 소유자였다.

자르지 않아 긴 머리카락이 꼭 까치집처럼 산만했다.

청년의 이름은 박인철.

준후의 학교 후배이자 의국 후배가 된 레지던트 1년 차였다.

‘누추한’ 신경외과에 ‘고귀한’ 레지던트님께서 방문해 주신 것이다.

인철 덕분에 준후는 막내 생활을 벗어났다.

“자고 일어나니까 피곤하지?”

“제가 피곤해 봤자죠. 선배는 밤새 당직 근무까지 서셨는데. 믹스 커피 드실래요?”

“나야 땡큐지.”

커피포트기에 물 받는 인철을 준후는 빤히 쳐다보았다.

한 달 남짓 지켜본 결과 인철은 퍽 괜찮은 후배였다.

착하고 눈치가 빨랐다.

단점이라면 각종 처치나 어시스트 능력이 조금 떨어지는 정도?

하지만 준후가 교육해 주고 있으니 인철의 처치 실력은 차차 물이 오를 것이다.

준후는 타인을 가리키는 데도 재능이 출중했다.

명색이 무림맹 무공 교관이었으니까.

무림맹 출신의 최상급 후기지수는 전부 준후의 손을 거쳤었다.

“여기 받으세요.”

“고맙다. 후배가 타주는 커피도 마셔보고 세월 참 빠르네. 1년 차였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인철이 내민 커피를 받아들며 준후가 중얼거렸다.

“저도 후배가 타주는 커피를 마실 수 있을까요?”

“잘 모르겠지만 그랬으면 좋겠네. 기왕이면 의국이 북적거리는 게 좋겠지?”

“그래도 저희 정도면 인원이 많은 거죠?”

“그럼. 2년 차만 해도 나랑 경수 두 명이 있잖아. 인철이 너도 새로 들어왔고.”

준후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말을 이었다.

“2년 연속으로 레지던트 못 뽑았다는 신경외과도 있다더라.”

“그런 병원은 3년 차가 막내인 건가요? 으…… 끔찍하네요.”

“암, 웬만한 공포 영화는 저리 가라고 할 수준이지.”

농담조로 이야기했지만 준후는 진심으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몇십 년간 지속된다면 외과의는 정말 씨가 말라 공룡처럼 멸종해 버릴 테니까.

그리고 그 짐과 책임은 자연스럽게 환자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다.

환자가 제아무리 수술을 받고 싶어도 수술해 줄 사람이 없게 될 것이다.

먼 미래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걷다 보면 길은 반드시 나타나겠지!

준후는 각오를 다지며 믹스 커피를 싹 비웠다.

인철에게 당직실을 맡기고 숙직실로 이동했다. 다른 레지던트들은 아직 꿈나라에 빠져 있었다.

피로에 찌들어 죽은 사람처럼 자고 있었다.

준후는 사다리를 타고 2층 침대에 2층으로 올라갔다. 가부좌를 틀고 운기조식을 펼쳤다.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마치 몸의 최상단과 최 하단이 전부 폐인 것처럼.

준후는 온몸으로 호흡했다.

무려 들숨이 1분, 날숨이 1분 동안 지속되었다.

무림에서 혹독하게 심법을 수련한 성과였다.

그렇게 10분쯤 지났을까.

준후는 상쾌한 표정으로 두 눈을 떴다.

밤을 새웠던 당직의 피로.

무공 수련으로 쌓였던 피곤의 70퍼센트가 훨훨 날아갔다.

고작 10분간의 운기조식으로 말이다.

준후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어처구니없는 회복력이었다.

무림에는 괴물이 꽤 많았는데.

현대에 괴물은 오직 준후 한 명뿐이었다.

준후는 침대에서 내려와 당직실로 돌아왔다.

인턴과 인철을 도와 컨퍼런스 준비를 했다.

컨퍼런스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레지던트와 교수들이 속속들이 자리를 채워 나갔다.

“준후야, 너 오늘 긴장 좀 해야겠다?”

곁에 앉은 민경이 팔짱을 낀 채 준후를 응시했다.

“왜요?”

“오늘 너한테 뇌혈관 조영술 교육할 계획이거든. 환자도 미리 정해놨어.”

“잘됐네요. 안 그래도 배워보고 싶었는데.”

준후가 씽긋 웃었다.

뇌혈관 조영술은 카테터 시술에 기초였는데 과정은 다음과 같았다.

사타구니 동맥에 도관을 넣는다.

도관을 뇌까지 이동시킨다.

도관에 조영제를 투입하여 연속 방사선 촬영을 한다.

뇌혈관 조영술도 아직 배우지 않았건만.

준후는 벌써부터 심화 과정인 뇌동맥류 코일 색전술과 뇌혈관 확장술까지 배워보고 싶었다.

의술에 관해서라면 악마처럼 탐욕스러웠다.

“또 또 변태 같이 웃네.”

“오늘따라 말씀이 심하네요. 변태 같이 웃는다니.”

“뇌혈관 조영술 가르쳐주겠다는데 웃는 레지던트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냐?”

“…….”

“뇌혈관 조영술이 얼마나 빡센데.”

준후를 보고 말하던 민경의 시선이 살짝 옆으로 돌아갔다.

준후의 시선도 같이 돌아갔다.

그곳에는 어느덧 치프가 된 4년 차 시호가 걸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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