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공 쓰는 외과 의사-260화 (259/424)

260화

제49장 태풍(5)

응급실 A 구역.

당장 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머무는 구역이다.

A-32 구역의 한 침상 앞에 서서, 수부외과의 도재희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의 초조한 시선은 환자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조슈아.

나이는 27세.

까무잡잡한 피부에 소처럼 순박한 눈망울을 가진 청년은 저 멀리 필리핀에서 왔다.

한국에서 공장 노동자로 일하던 중 고압 프레스기에 오른쪽 검지가 잘리는 대참사를 겪었다.

잘려 나간 손가락이 테이블에 놓여 있었다.

손가락은 이중 봉인되어 있었다.

생리식염수가 가득 찬 봉투 안에 손가락이 잠겨 있었고 그 봉투를 얼음이 들어간 봉투가 감싸고 있었다.

조슈아의 눈빛은 복잡했다.

자신의 손가락이 절단됐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상상하며 공포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였다.

“괜찮아, 조슈아. 다 잘 될 거야.”

조슈아 곁에 서 있던 한 중년이 조슈아를 다독였다.

중년 사내는 공장 동료인 듯했다.

급하게 병원까지 동행한 탓일까.

새까만 때가 덕지덕지 묻은 작업복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보호자의 위로에도.

조슈아는 쉽사리 진정하지 못하고 여전히 불안해 보였다.

본인의 손가락이 든 봉투와 재희를 번갈아 응시할 뿐이었다.

“웨…… 웬 디드 유 허트?”

재희가 어색한 영어로 조슈아에게 물었다.

응급 처치를 하느라 문진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투 아워.”

“하, X발 돌겠네. 진짜.”

반사적으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시간이 촉박했다.

손가락 접합수술이 1초라도 급했다.

보통 사람들의 인식과 달리 수지 접합 수술이 반드시 응급수술인 건 아니었다.

손가락이 잘린 형태나 보관 방식에 따라서 절단 후 6-12시간 뒤에 수술에 들어가도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조슈아는 해당 케이스가 아니었다.

당장 수술이 필요한 케이스였다.

“선생님. 수술은 못 받는 건가요?”

잠자코 있던 보호자가 물었다. 목소리가 퉁명스러웠다.

“간단한 처치만 받고 대기한 지 벌써 30분이 지났습니다. 이대로 시간만 끌 수는 없잖아요?”

“…….”

“수술이 안 되면 차라리 다른 병원으로 보내주세요.”

“스태프가 부족해서 알아보는 중입니다. 죄송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대학 병원인데 일손이 부족해요? 여기만 해도 의사 선생님, 간호사 선생님 엄청 많은데요?”

보호자가 주변을 훑고서 눈살을 찌푸렸다.

재희의 대답을 핑계라 생각하는 듯했다.

보호자 본인 눈에는 병원에 스태프들이 넘쳐나는 것처럼 보이리라.

하지만 병원에도 빈익빈 부익부가 있다는 걸 보호자는 알지 못했다.

수부외과는 외과 중에서도 초 마이너 과였다.

교수는 단 3명뿐이고.

의료진도 4명밖에 되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의료진의 수준이 다른 외과보다 꽤 높다는 점이었다.

수부외과 전공을 하려면.

신경외과, 정형외과의 전문의 자격증을 이미 취득해야 하니까 말이다.

“금방 호출이 올 겁니다.”

울분 섞인 대답을 10분도 넘게 할 자신이 있었지만, 정작 재희의 대답은 짧았다.

그 어떤 말이라도.

자신과 환자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건 불가능했다.

마음 같아서야 자신이 직접 수술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잠시 후 정규 수술 스케줄이 잡혀 있었다.

“선생님. 이 친구가 공장에서 엄청 성실한 친구예요. 자기 나라에 처자식도 있고요. 말도 안 통하는 먼 나라에서 손가락이 잘렸으니 얼마나 고통스럽고 두렵겠습니까?”

“…….”

“어쨌든 잘 부탁드립니다.”

보호자가 애절한 사연을 설명하곤 재희에게 고개를 숙였다.

조슈아도 영문은 모르지만 보호자를 따랐고.

재희도 고개를 숙였다.

매번 되풀이되는 이런 비극이 재희는 지긋지긋했다.

외과의들은 도대체 왜?

항상 만성 스태프 부족에 시달리며 고통받아야 한단 말인가.

외과의들은 뭐, 전생에 단체로 죄라도 지었단 말인가.

신이 있다면 따져 묻고 싶었다.

지이이잉!

때마침 울리는 콜폰.

기다리던 연락임에도 통화를 연결하는 재희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이 전화가 희망이 될지.

아니면 절망이 될지는 아직 알 수가 없었다.

“어. 성철아. 어떻게 됐냐?”

-선생님. 신경외과에서 스태프를 보내준다고 합니다.

“신경외과? 크으! 역시 내 고향은 인심이 후하다니까. 신경외과는 좀 다를 줄 알았지.”

재희는 신경외과 출신 수부외과의였다.

-근데 선생님. 죄송한데 안 좋은 소식도 같이 있어요.

“뭔데?”

-어시스트가 레지던트 2년 차라고 하는데요?

행복의 정점을 찍었던 기분이 땅바닥까지 처박히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재희는 경악하며 입술을 바보처럼 쩍 벌렸다.

눈동자에 흰자위가 늘어났다.

그러다가 눈썹을 치켜세우고.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놀람의 감정이 분노의 감정으로 발전했다.

“뭐야?!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손가락 접합 수술에 2년 차를 보내면 어떻게 써먹으라는 거야?”

재희의 언성이 높아졌다.

목울대에 굵고 선명한 핏줄이 도드라졌다.

“펠로우급 어시스트 보내달라고 한 거 확실해?”

-네. 확실하죠. 설마 제가 그런 실수를 했겠어요?”

“그럼…… 통화를 받은 신경외과 쪽에 문제가 있었나? 퍼스트 어시스트 보내달라는 말을 이해 못 한 거 아니야?”

-그것도 아니에요. 신동훈 교수님이 ‘직접’ 2년 차를 추천하셨대요.”

“하…… 오늘 일진 왜 이러냐? 정말.”

동훈 같은 교수가 왜 손가락 접합 수술에 2년 차를 꽂아 넣었는지.

재희는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수부외과랑 한 판 싸우자는 건가?

-안 내키시면 퇴짜 놓을까요? 저도 2년 차는 아닌 것 같은데.

“됐어. 그냥 보내달라고 해.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다.”

-먹다가 체할 바엔, 차라리 한 끼 굶는 게 낫지 않을까요?

“신 교수님도 다 생각이 있으셨겠지. 우리 같은 송사리가 어찌 고래의 마음을 헤아리겠냐?”

-일단 알겠습니다, 컨펌할게요.

통화를 마친 후.

재희는 수술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호자에게 알렸다.

보호자가 뛸 듯이 기뻐했다.

수술 동의서 서명을 일사천리로 받아내고 재희는 곧장 수술실로 이동했다.

드르륵.

드르륵.

침상이 응급실을 빠져나와 전차처럼 전진했다. 병원 복도에 있던 사람들이 좌우로 갈라졌다.

침상이 움직일 때마다 환자 머리맡에 놓인 비닐 봉투 속 손가락이 달달달 떨렸다.

공교롭게도 손가락은 정면을 가리키고 있었다.

꼭 손가락이 수술실로 향하는 길을 진두지휘하는 것 같았다.

* * *

이제 수술실이 코앞이었다.

준후는 보법을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쿵. 쿵. 쿵. 쿵.

흥분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달려온 탓에 심장이 두근거리는 건 아니었다. 성큼 다가온 손가락 접합 수술이 기대됐을 뿐이었다.

양수 호박 기술.

벌모세수.

7성까지 도달한 호월십이수 등등.

손가락 접합 수술은 그동안 준후가 이룬 성취를 증명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시험대였다.

수지 접합 수술은 고난이도로 유명했다.

절단된 손가락의 신경, 근육, 혈관 등을 이어주는 과정에서 극도의 섬세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물론 인턴으로 정형외과에서 수련 당시.

준후는 우연치 않게 손가락 접합 수술 어시스트를 선 적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때의 역할은 미미했다.

셰프라기보다는 음식을 주방에 나르는 종업원에 더 가까웠다.

그리고 오늘의 준후가 맡을 역할은…….

셰프에 더 가까웠다.

그만큼 책임이 막중한 것이다.

그나저나 수부외과도 사람이 어지간히 부족했나 보네. 레지던트 2년 차를 덥석 받을 정도면.

준후의 입가에 쓰디쓴 미소가 떠올랐다.

수부외과 역시 신경외과 및 흉부외과와 마찬가지로 스태프가 부족하기로 정평이 난 과목이었다.

일이 중 노동에 가까운데.

봉급은 소금보다 짜니 지원자가 없었다.

그리고 이는 준후가 만능 신경외과의를 꿈꾸는 이유기도 했다.

뇌종양 파트.

뇌혈관 파트.

경추·요추 파트.

정위신경파트.

외상외과 파트.

마지막으로 수부외과 파트.

신경외과의로서 뻗어 나아갈 수 있는 모든 세부 전공을 마스터한다면 준후는 그 어떤 응급 수술에도 필요한 만능 조각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응급 환자가 수술을 못 받아 목숨을 잃거나 후유증을 앓는 비극을 막을 수 있으리라.

준후는 제2의 성호를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손에 찬 건강 팔찌.

성호가 남긴 유품을 한 손으로 쓸어내린 후.

준후는 팔찌를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수술실에서는 액세서리 착용이 금지니까.

곧 수술실에 도착했다.

준후는 곧바로 세면대로 이동해 스크럽(수술 전 소독)을 실시했다.

벅. 벅. 벅.

빨간 소독액이 묻은 솔로 손가락과 손등, 손바닥, 팔뚝을 힘차게 문질렀다.

피부에서 뻘건 거품이 일어났다.

습진이 생긴 살갗이 불에 닿은 것처럼 쓰라렸다.

고통을 음미하면서.

준후는 예전에 어시스트했던 손가락 접합 수술의 기억을 불러왔다.

오래된 기억은 안개와 같았다.

흐릿했고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알고 싶은데 알 수 없어서 답답했다.

그래서 준후는 오른손 검지에 내공을 불어넣은 후 관자놀이를 점혈했다.

파아아앗!

두피와 두개골을 통과한 내공이 기억 저장소인 해마에 닿았다.

해마를 자극했다.

뇌 속 해마가 바닷속의 해마처럼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내공 해마 신경 자극술!

내공이 해마를 자극하면서.

해마와 연결된 뇌세포와 신경들이 순식간에 활성화되었다.

머릿속에 존재하는 수천 개의 전구로 동시에 불이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그 찬란한 불빛에.

기억을 가리고 있던 흐릿함이 일제히 사라졌다.

고작 1분 전에 있었던 일처럼.

준후는 과거의 손가락 접합 수술장면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환자 감시 장치의 규칙적인 기계음.

코를 찌르는 독한 소독약 냄새.

집도의의 진지했던 눈빛과 손짓.

당시 사용했던 다양한 수술 도구들의 종류.

얼어붙었던 환자의 표정까지!

좋았어.

이런 느낌이었단 말이지?

지금 내 수준이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겠어.

아는 것이 힘이라면.

지금의 준후는 천하장사와 다를 바 없었다.

환자를 괴롭히고 있는 질병을 능히 쓰러뜨릴 자신이 있었다.

머리에 묻은 소독액을 닦아낸 후 준후는 스크럽을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세면대를 벗어나 소독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수술모, 수술 마스크, 수술 장갑, 가운 등을 챙겨 입었다.

지이이잉.

마침내 입장한 2번 수술방.

수술복을 입은 환자는 수술대 중앙에 앉아 있었다.

손가락 접합 수술의 특성상 전신 마취를 하지 않았기에, 환자는 일반인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환자 감시 장치는 이미 환자와 연결되어 있었다.

바이탈은 전부 정상.

심전도 리듬 또한 안정적이었다.

메스, 봉합사, 포셉, 겸자, 곡반, 알콜솜을 비롯한 소모성 물품 등등.

드레싱 카트 위로 각종 수술 도구들이 펼쳐져 있었다.

눈부신 무영등 불빛 아래에선 집도의로 보이는 사내가 곁에 있는 소독 간호사와 대화 중이었다.

어시스트가 빨리 오지 않는다며 성토하는 내용이었는데.

순간 준후는 깨달았다.

수술에 필요한 마지막 조각이 바로 자신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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