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화
제50장 선 넘네(1)
“자네가 신경외과에서 온 레지던트인가?”
수술대 앞에 서 있던 교수가 준후를 응시했다.
목소리와 눈빛이 깐깐했다.
체구는 작았지만 풍기는 분위기가 무시무시했다.
“네. 교수님. 서준후라고 합니다.”
“난 수부외과 성규식 교수라고 하네. 도와주러 온 건 고마운데 실력이 영 아니다 싶으면 쫓아낼 거야. 그렇게 알고 있어.”
성규식이 단호하게 못을 박았다.
인원이 부족해서 지원 요청을 했음에도 성에 차지 않으면 자신을 쫓아내겠다니…….
규식의 기백은 남달랐다.
평소 성격을 엿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럼 실력이 괜찮으면 교수님을 끝까지 도울 수 있겠네요?”
“물론. 의사가 아니라 고양이라도 상관없어.”
규식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손가락 접합 수술의 가장 기초적인 지식만 하나 묻겠네. 수술 과정이 어떻게 되지?”
“과정이라면 봉합 순서를 말씀하시는 걸 텐데. 뼈, 건, 동맥, 신경, 정맥, 피부 순으로 봉합합니다.”
“이유는?”
“비교적 큰 구조물에서 작은 구조물로. 혈액과 신경의 순환 시스템 흐름대로 봉합해야 효과가 좋기 때문입니다.”
준후의 대답이 똑 부러졌다.
스크럽 도중.
과거 어시스트를 했던 손가락 접합술의 과정을 완벽하게 복기하지 않았던가.
지금의 준후는 척척박사였다.
“다행히 기본은 아는군. 신 교수가 추천했다더니 완전 맹탕은 아닌가 봐?”
규식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규식에게 점수를 딸 수 있어서 준후는 기뻤다.
집도의가 스태프를 신뢰할 때.
또는 집도의가 스태프를 불신할 때.
스태프 간의 신뢰도가 수술 결과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가벼운 대화가 끝나고 준후는 규식의 맞은편에 자리 잡았다.
환자의 손가락이 담긴 비닐 봉투가 드레싱 카트 위에 올려져 있었다.
공장 노동자라서 그럴까.
손가락 절단면에 새까만 기름때가 묻어 있었다. 오염되어 있어서 수술을 서두른 것 같았다.
또한 손가락은 준후를 가리키고 있었다.
마치 너만 어시스트를 잘하면 된다는 듯.
준후의 시선이 환자에게 옮겨졌다.
차트를 보아서 알았다.
환자가 필리핀에서 온 20대 후반의 남자라는 것을.
환자는 파르르 몸을 떨고 있었다.
그의 두려움이 공기를 타고 전해져 준후에게 닿을 정도였다.
“많이 두렵고 긴장되시죠?”
준후는 환자에게 영어로 물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친구에게 영어 회화 공부를 따로 받은 적이 있는 준후였다.
왜냐고?
나중에 해외 병원에 연수 갈 때를 대비해서!
준후의 영어 말하기와 듣기 솜씨는 아직 녹슬지 않았다.
“영어를 잘하시나요?”
“의사소통될 만큼은 합니다.”
“제 감정을 물어봐 주신 분은 처음이에요. 감동했습니다.”
준후를 쳐다보는 환자의 표정이 한결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졌다.
“일하는 도중 잠깐 다른 생각을 하다가 손가락이 잘렸습니다. 너무 무서워요. 앞으로 손을 제대로 못 쓸까 봐.”
“제가 환자분이라도 그럴 것 같습니다.”
준후는 환자에게 깊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에서 활동하던 당시.
사파인들과의 처절한 사투 끝에 손가락이나 팔 또는 다리를 잘린 동료 무인들은 수도 없이 목격했다.
물감처럼 허공에 번져나가는 핏방울.
종잇장처럼 잘려나가는 팔다리.
강물처럼 쏟아지는 핏물.
닭살이 돋을 만큼 끔찍한 비명과 절규.
신체 절단 후 좌절과 실망으로 폐인이 되어버린 동료들.
그때 느꼈던 트라우마는 준후의 가슴 깊숙한 곳에 숨어 있었다.
언제, 어디서든 튀어나와 준후를 괴롭힐 태세였다.
준후가 ‘수부외과’의 접합 수술을 마스터하고 싶었던 건 어쩌면 옛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싶어서인지도 몰랐다.
예전의 내가 아니야.
난 더 이상 무력하지 않아.
지금의 나는 무인(武人)이 아니라 서전이니까.
준후는 환자의 절단된 우측 검지를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너무 염려 마세요. 환자분을 위해 교수님이나 저나 최선을 다할 테니까요.”
“감사합니다. 선생님만 믿을게요.”
환자의 대화는 짧게 마무리되었다. 이에 준후를 빤히 바라보고 있던 규식이 질문을 던졌다.
“영어를 좀 하나 보지?”
“네. 어느 정도는…….”
“잘 됐군. 대충 들어보니까 환자를 안심시키는 것 같던데. 수술 도중에도 종종 환자를 대화를 나누도록 해.”
“…….”
“아, 참 그리고 또 중요한 할 말이 있는데.”
“무슨 말씀을…….”
“화장실은 다녀왔나? 아랫배가 묵직하면 귀찮더라도 화장실에 다녀와.”
규식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오늘 접합 수술은 최소 8시간은 걸릴 테니까.”
* * *
외과의의 삶은 고달팠다.
가장 핵심이 되는 수술은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수술 시간은 최소 1시간에서 최대 12시간까지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수술 중 소변을 참다 방광염에 걸리고 끼니를 거르기도 예삿일이었다.
구부정한 허리와 목.
손목에서 전해지는 근골격계 또는 신경계 통증을 운명처럼 달고 살았다.
수술 도중에는 단 한 순간의 실수나 방심도 용납되지 않았다.
단 한 순간의 실수나 방심이 대참사로 이어졌다. 환자가 큰 후유증을 앓게 되거나 세상을 떠났다.
수술에 성공하면 본전이고.
만약 실패한다면 보호자에게 욕을 먹거나 최악의 경우 의료 소송을 당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험난한 삶에도.
준후는 신경외과 서전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적어도 준후는 그랬다.
다른 사람이 아프고 고생하는 것을 지켜보느니 차라리 자신이 힘든 게 낫다고 생각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가치관의 변화는 손톱만큼도 없었다.
펄럭!
준후는 파란 수술포를 펼쳐 환자의 손가락 주변을 덮었다.
수술포 중앙에 위치한 동그란 구멍에 환자의 손이 쏙 들어갔다.
“선생님. 환자 손가락 주실래요?”
“네. 선생님.”
소독 간호사가 손가락이 담긴 비닐 봉투를 건넸다.
준후는 손가락을 이중으로 감싸고 있던 비닐을 풀었다.
콸콸콸콸!
얼음과 생리식염수를 곡반에 쏟아버리고 손가락을 수술대 위에 올려놓았다.
손가락은 차갑고 매끈했다.
무영등 불빛 때문인지 밀랍처럼 창백해 보였다.
“자네, 제법 담력이 있군. 잘린 손가락을 다루면서도 아주 평온해 보여.”
규식이 의외라는 목소리로 물었다.
“더 끔찍한 광경도 많이 봤습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 그리고…….”
“그리고?”
“의사인 제가 겁을 먹으면 환자는 얼마나 더 불안하겠습니까?”
“그래. 맞는 말이야. 무릇 서전이 되려면 보통 사람보다 간이 2배는 커야지.”
“…….”
“오염된 부분을 정리하고 변연절제술을 펼칠 건데 직접 해보겠나?”
규식의 날카로운 눈동자가 준후를 향했다.
준후는 알았다.
변연절제술이 준후의 실력을 확인하는 일종의 테스트라는 것을.
점수가 미달이라면.
점수가 형편없다면 준후는 당장 쫓겨날 것이다.
“네. 자신 있습니다.”
“일단 혼자서 해봐. 도움이 필요하면 그때 이야기하고.”
“알겠습니다. 선생님, 손가락 아래를 받치게 곡반 좀 주세요.”
“네. 선생님.”
준후는 일단 500cc 주사기에 생리식염수를 가득 채웠다.
쏴아아아!
주사기에서 강력한 물줄기가 뿜어졌다.
물줄기는 잘린 손가락의 신경과 혈관, 근육, 뼈에 묻어 있던 새까만 기름때를 씻어냈다.
곡반에 흘러내린 식염수가 땟국물 같았다.
파도처럼 찰랑거렸다.
같은 방식의 처치가 환자의 손에도 반복되었다.
고압 식염수 세척이 끝나자 환자의 손과 손가락이 한결 청결해졌다. 기름때는 완전히 제거할 수 있었다.
‘다음은 가장 중요한 변연절제술인데…….’
준후는 눈을 크게 뜨고 환자의 손가락을 유심히 살폈다.
변연절제술이란…….
염증이나 괴사가 우려되는 조직을 제거하는 시술이었다.
정상적인 조직은 훼손하지 않고 비정상적인 조직만 깔끔하게 제거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준후가 보기에는.
손가락의 건초(힘줄을 감싸고 있는 막)와 동맥 인근에 미세 혈관만 제거해주면 될 것처럼 보였다.
건초에 까맣게 괴사가 일어났고.
미세 혈관에는 출혈성 반점이 퍼져 있었다.
혈관염이 발생했다는 증거였다.
“교수님. 이쪽 부위의 건초와 미세 혈관을 절제하려고 합니다.”
준후는 포셉으로 절제할 부위를 미리 규식에게 노티했다.
“괜찮은 선택이군. 한번 해봐.”
“네. 교수님.”
딸칵!
준후는 스칼펠(칼대)에 15번 블레이드를 끼웠다.
15번 블레이드는 미세 부위를 절제할 때 자주 사용하는 블레이드였다.
성형외과에서 주로 썼다.
“10번이 아니라 15번을 쓰겠다고? 괜찮겠어?”
규식이 눈살을 찌푸렸다.
목소리에 은근한 불만이 섞여 있었다.
“15번이면 날카로워서 힘 조절을 잘해야 할 텐데?”
“선생님. 안정적으로 10번을 쓰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잠자코 있던 소독 간호사까지 15번 사용을 만류했다.
하지만 준후는 자신이 넘쳤다.
한때 무림에서 만천하에 명성을 떨쳤던 검객이지 않던가.
10번과 15번을 다룰 때 발생하는 미세한 컨트롤의 차이를 준후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메스를 사용하는 처치라면, 준후는 스승 박재현에게도 꿀리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준후는 검생검사.
말 그대로 검에 살고 검에 죽어왔다.
“자네가 만용을 부리고 있는 게 아니길 빌지.”
“맡겨주십시오.”
“하여간 대답은 잘해요.”
규식은 미세 현미경에 눈을 가까이했다. 준후의 변연절제술을 똑똑히 봐두기 위해서였다.
준후가 15번 블레이드를 선택한 게 두고두고 걱정됐다.
어린아이에게 장난감 칼이 아니라 진짜 칼을 맡겨 놓은 느낌이랄까.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마음 같아서야 당장 15번 블레이드를 빼앗고 싶었지만, 규식은 참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만약 준후가 15번 블레이드를 다룰 수 있다면?
변연절제술에 성공한다면?
그만큼 준후를 믿고 손가락 접합수술을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긴 15번 블레이드 정도는 능숙하게 써줘야, 접합 수술 보조라고 할 수 있지.
설령 준후가 실수하더라도 내가 충분히 수습할 수 있는 범위고.
기대 반, 걱정 반인 가운데.
준후의 메스가 당차게 절단된 손가락으로 향했다.
손에 떨림은 없었고.
메스의 칼끝이 안정적으로 손가락의 좌측면을 겨누었다.
첫 번째 절제 부위는 힘줄을 감싸고 있는 막인 건초인 듯했다.
휘리리릭.
준후의 손목이 360도로 움직이면서 매끄러운 원을 그렸다.
실로 경이로운 절제술이었다.
본래 건초 절제술은 건초의 바깥 면에 메스를 대고 그림을 따라 그리듯이 천천히 절제해야 하거늘.
준후는 손목 스냅만을 사용해서 단번에 절제에 성공했다.
텅!
까맣게 죽은 건초 조직이 메스에 잘려 곡반으로 떨어져 내렸다.
놀랍군.
정확히 건초만 잘랐어.
건초 안에 있는 힘줄은 먼지만큼도 손상이 없잖아?
2년 차가 어떻게 이런 절제를…….
미세 현미경으로 절제 부위를 확인한 후 규식은 기겁했다.
준후의 절제술에.
청풍검법의 제10초식인 풍마우세(風磨雨洗)의 이치가 깃들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서걱!
두 번째 절제도 충격적인 건 마찬가지였다.
메스가 뫼비우스의(∞)띠를 그렸다.
주요 신경과 혈관을 피해 정확하게 염증이 발생한 미세 혈관만을 잘라냈다.
그 섬세함과 상상도 하지 못한 메스의 궤적에 규식은 혀를 찼다.
역시 준후의 절제술에.
청풍검법의 제6초식인 송풍파랑(乘風破浪)의 이치가 담긴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다만 규식도 어렴풋이 느끼기는 했다.
준후의 메스가 바람처럼 실로 자유 분방하다는 것을.
적어도 메스에 관해서는.
자신조차 준후에게 한 수 접어줘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신 선생님.”
“아. 네 교수님.”
규식의 부름에 소독 간호사가 화들짝 놀랐다.
소독 간호사도 준후의 신들린 메스 실력에 넋을 잃었던 모양이었다.
“서 선생 도와서 출혈 부위 좀 지혈 좀 해줘요.”
“알겠습니다.”
규식은 눈을 가늘게 뜨고 다시 미세 현미경에 눈을 가까이했다.
준후의 변연절제술에서.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헛수고였다.
괜히 눈만 건조하고 따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