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공 쓰는 외과 의사-262화 (261/424)

262화

제50장 선 넘네(2)

준후의 변연절제술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식염수에 담가두었던 손가락이 아닌 손과 연결된 손가락이 그 목표였다.

서걱!

서걱!

무공 초식의 이치를 담은 메스가 수술 부위를 용감하게 누비고 다녔다.

말 그대로 종횡무진 쾌도난마.

메스가 지나간 자리에 있던 오염된 조직들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손놀림이 정교했으므로.

정상 신경이나 혈관의 손상은 티끌만큼도 없었다.

메스를 사용하면서 준후는 잠시나마 무림 세계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느꼈다.

무림에서는 그랬다.

검 한 자루.

날카로운 쇠붙이 그 하나에 생과 사가 달려 있었다.

전투는 치열했으며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을 만큼 위태롭고 긴장되었다.

준후는 메스를 내려놓고 양손에 포셉을 쥐었다.

손과 연결된 손가락을 응시했다.

생리식염수로 미처 씻겨내지 못한 힘줄과 골편들이 손가락 안쪽에 알알이 박혀 있었다.

내버려 두면 안 돼.

접합이 끝나면 저것들이 염증 반응을 일으킬 거야.

가슴 깊숙한 곳에서 완벽에 대한 욕망이 들끓었다.

타지에서 손가락이 잘려 버린.

한 청년의 손가락을 온전하게 되찾아주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턱. 턱. 턱.

준후는 포셉으로 손과 연결된 손가락에 붙어 있던 절단 조직들을 일일이 떼어냈다.

모래 알갱이 같은 미세 조직들이 곡반으로 옮겨졌다.

무영등 환한 빛으로.

제거한 조직들이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준후는 단순해 보이지만 고도의 처치를 하고 있었다.

포셉 끝에 달린 뾰족한 이가 잘못하면 신경이나 혈관을 찌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해당 사항이 준후에겐 없었다.

검이 상대에게 닿고

검이 상대에게 닿지 않고.

고작 1mm의 간격으로 생과 갈리는 무림에서 준후는 20년 동안 살아남았다.

거리 조절이라면 압도적이었다.

고작 3분 만에 준후는 변연절제술을 마쳤다.

그제야 몰입이 깨졌다.

수술방의 풍경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살갗에 닿는 차가운 공기를 느꼈고 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를 맡았다.

몰입의 세계에서.

현실의 세계로 돌아오는 감각을 준후는 사랑했다.

“교수님. 변연절제술은 이 정도면 될까요?”

“어? 어. 그래. 기대보다 훨씬 잘해줬구나.”

규식의 대답이 한 박자 늦었다.

만족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신경외과에서 변연절제술을 할 일은 별로 없을 텐데. 솜씨가 제법이구나.”

“과찬이십니다. 교수님을 따라가라면 아직 멀었습니다.”

“서 선생님은 메스를 기가 막히게 잘 쓰는 것 같아요.”

잠자코 있던 소독 간호사가 한마디 했다.

“저희 어머니가 무협 드라마를 좋아하셔서 종종 같이 보는데 꼭 무협 드라마 주인공 같았어요.”

“그 정도였나요?”

준후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사람들이 무림 세상을 허구로라도 알고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잘해주긴 했다만 진짜 수술은 지금부터야. 절대 방심하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려. 알았어?”

“네. 교수님.”

“일단 뼈 고정술부터 해보자꾸나. K-wire 0.9mm.”

규식이 허공에 손을 내밀었다.

소독 간호사가 규식의 손바닥에 길고 얇은 철사를 올려놓았다.

* * *

손가락 접합 수술은 무난하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수술의 첫 단추는 뼈 고정술을 성공시키는 일이었다.

잘려 나간 손가락.

손과 붙어 있는 손가락.

이 두 손가락을 연결하는 뼈를 붙여주고 고정시키는 작업이었다.

변연절제술이 지반을 다지는 작업이었다면, 뼈 고정술은 기둥과 뼈대를 세우는 작업이었던 것이다.

절단된 뼈를 맞추는 일을, 준후가 맞췄다.

준후는 양 손가락의 뼈가 어긋나지 않도록 매의 눈으로 뼈의 평형을 맞췄다.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듯.

화려한 손기술 뒤에 감춰져 있었지만.

사실 준후의 섬세한 시력 또한 엄청난 무기였다.

숲을 보면 나무가 안 보이고 나무를 보면 숲이 안 보이기 마련인데.

준후는 숲과 나무를 동시에 볼 줄 아는 안공을 터득했다.

백운안(白雲眼)이 그것이었다.

“교수님. 뼈 다 맞췄습니다.”

“그래? 어디 보자.”

규식이 미세 현미경으로 환자의 손가락뼈를 살폈다.

준후가 기고만장할 수도 있다는 걱정에, 억지로 까 내릴 요소를 찾아봤지만 이번에도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준후는 빈틈이 없는 녀석이었다.

어떻게 보면 로봇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크으으으윽.

빌어먹을.

하필 이런 때에.

몰려오는 현기증과 두통에 규식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지병이 있어서 아픈 건 아니었다.

평일에 수술을 10시간 넘게 들어가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휴일에는 논문 작성에 영혼을 불태운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피로가 산더미처럼 누적되면서.

규식은 요즘 들어 종종 극심한 현기증과 두통을 느꼈다.

“교수님. 뼈 위치를 수정할까요?”

준후가 물었다.

자신의 대답이 없으니 무언가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다행이었다.

약한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환자에게도, 소독 간호사에게도, 가장 중요한 환자에게도.

“아니. 아주 잘했어. 양쪽 손가락을 고정하고 있으렴. 내가 철사로 뼈와 관절을 고정할 테니까.”

“네. 교수님.”

규식은 얇은 철사로 양쪽 손가락뼈의 테두리를 감쌌다.

손가락뼈 상단부에 철사 매듭을 짓고.

손가락뼈 하단부에 철사 매듭을 짓고서 철사를 좌우로 잡아당겼다.

딱!

뼈가 부딪쳤다.

손끝으로 둔탁한 촉감이 퍼져 나갔다. 뼈는 어긋난 곳 없이 정확히 고정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뼈는 알아서 붙으리라.

“다음 접합 부위는 어디지?”

규식은 다 알면서도 일부러 물었다.

적당한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해.

“인대입니다. 뼈를 고정했으니 이제 뼈와 뼈를 연결하는 인대를 접합해 줘야 합니다.”

“잘 알고 있군. 정신머리가 가출했을까 걱정했는데 말이야.”

“교수님, 인대 봉합 전에 처치 하나만 해도 되겠습니까?”

“처치? 무슨 처치?”

“혈관이 수축된 것 같아서 2퍼센트 리도카인을 점적주사 하려고 합니다.”

“뭐야? 그런 것도 알고 있다고?”

규식의 눈동자가 부엉이처럼 휘둥그레졌다.

방금 준후가 한 말은……,

수부외과 전공자가 접합 수술을 따로 공부해야만 알 수 있는 지식이었다.

그런데 고작 신경외과 2년 차가 어떻게 그런 디테일한 스킬을 알고 있을까?

“인턴 시절, 우연치 않게 손가락 접합 수술 어시스트에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기억이 나서요.”

“허…… 놀랍군. 주의 깊게 보기도 힘든 처치인 데다가 오래전 일이라 기억도 쉽지 않았을 텐데.”

“기억력이 남들보다 조금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으음…… 그래? 점적주사가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뜻대로 하거라. 어차피 해야 할 일이니까.”

“네. 교수님.”

준후가 잠시 자리를 벗어나 물품실 쪽으로 이동했다.

규식은 그 뒷모습을 쳐다보면서 곁에 있는 소독 간호사에게 슬쩍 물었다.

“저 녀석. 의외로 물건인데?”

“그러게요. 레지던트 2년 차라고는 절대 믿기지 않아요. 차라리 펠로우라고 해야 이질감이 안 들 것 같아요.”

소독 간호사 동의한다는 듯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왜 서 선생님이 없을 때 이런 이야기를 하세요? 교수님이 직접 칭찬해 주시면 서 선생님이 더 좋아할 것 같은데.”

“너무 우쭐하면 그것 나름대로 곤란하니까.”

“그렇군요. 역시 교수님이세요.”

“그걸 이제 알았어?”

규식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가 다가오는 준후를 발견하고 웃음을 거두었다.

규식은 은근히 츤데레였다.

* * *

뼈 고정술에 이어 인대 봉합술, 건 봉합술이 차례대로 이어졌다.

끔찍하게 잘려나갔던 손가락은 차차 본래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이산가족 같았던 두 손가락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다시는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 서로를 꼭 붙잡고 있었다.

동맥문합술까지 성공적으로 끝나면서 마침내 손가락에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백지처럼 창백했던 피부가 따스한, 불그스름한 빛을 띠어갔다.

그동안 준후는 물심양면으로 규식을 도왔다.

내공 해마 신경 자극술로.

수술 과정을 모조리 꿰뚫고 있었으며.

양수 호박 기술.

벌모세수.

7성에 달한 호월십이수로 성장한 피지컬은 물이 오를 대로 올라 있었다.

준후는 혼자서 2인분의 어시스트를 소화했다.

능력이 모자라서 허덕이는 어시스트가 아닌, 사람을 2명 쓰는 것 같은 진짜배기 어시스트였다.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준후는 규식의 수술방법을 초식화해서 머릿속에 저장해두기도 했다.

손가락과 손목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떤 수술 도구를.

어떤 타이밍에 사용하는지 등등.

준후에게는 수술방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경험치였다.

그 누구도 달성하지 못한 헥사(숫자, 6) 전공 신경외과의가 되기 위한 경험치 말이다.

슬슬 한계가 온 것 같아.

어쩐다?

준후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규식을 힐끔거렸다.

규식은 두 동강 난 신경을 봉합하는 중이었다.

규식의 봉합 솜씨는 단연코 준후를 초월했다.

준후는 아직 다루지 못하는 10-0 nylon으로, 규식은 실오라기 같은 신경들을 야무지게 꿰매고 있었다.

진정한 의미의 인간 재봉사랄까.

(준후가 제아무리 무림 출신이라고 해도 규식의 봉합 경험과 숙련도는 ‘아직은’ 따라갈 수 없었다.)

하지만 규식의 빼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규식을 보고 있으면 불안감이 치밀어 오르는 준후였다.

바로 규식의 상태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규식의 얼굴에 식은땀이 송송 맺혔다.

팔과 손가락은 희미하게 떨렸다.

호흡을 고른다며 문합술을 쉬는 시간도 늘어났다.

몸에 이상이 있을 때.

전형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이었다.

“교수님.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신경 문합술이 막 끝났을 때, 준후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느낌이 딱 왔다.

규식이 수술을 감당할 수 있는 한계가 찾아왔음을.

파르르 떨리는.

떨림을 쉽사리 멈추지 못하는 눈썹이 그 증거였다.

“응? 뭐가?”

“몸이 안 좋으신 것 같아서 여쭤봤습니다.”

“교수님. 아까 컨디션 좋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소독 간호사와 대화에 껴들었다.

그녀는 규식의 처치가 차차 둔해지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저는 아직 교수님을 잘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지켜본 바에 따르면…….”

“지켜본 바에 따르면?”

“힘들면 힘들다고 티 내시는 분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준후의 지적에 규식이 혀를 찼다.

“허…… 거기까지 꿰뚫어 보고 있었을 줄이야.”

“교수님 진짜 컨디션 안 좋으셨어요? 전 까맣게 몰랐는데…….”

“말을 안 했으니까 모르지. 서 선생은 눈치가 남달랐던 거고.”

“이제 정맥 문합만 남았는데 수술 가능한 다른 교수님을 알아볼까요?”

준후가 화제를 돌렸다.

동맥과 신경 문합만큼 정맥 봉합술은 난이도가 높았다.

정맥 혈관에 locking suture(잠금 봉합)을 펼쳐야 했던 것이다

locking suture는 외과의라도 좀처럼 사용할 일이 적은 어려우면서도 번거로운 봉합술이었다.

준후도 연습만 몇 번 했을 뿐.

실전에서 펼친 적이 없었다.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구나. 나도 더 이상은 무리야.”

“고생하셨습니다. 교수님.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수술대를 벗어난 준후가 수술방 입구로 향했다.

입구에 설치된 전화기로 수부외과에 연락을 취했다.

통화를 끝내고 돌아오는 준후의 낯빛이 어두웠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

“교수님. 양 교수님도 2시간 전 응급 수술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하늘도 무심하군. 김 교수는 세미나 가서 저녁에나 복귀할 텐데.”

“교수님께는 죄송하지만…….”

소독 간호사가 운을 뗐다.

“차라리 1시간 정도 푹 쉬셨다가 정맥을 문합하시는 건 안 될까요?”

“안 돼!”

규식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개를 휘휘 저었다.

“동맥 순환만큼이나 정맥 순환도 중요해. 정맥 문합까지 제대로 끝마쳐야 손가락 회복이 빨라져.”

“…….”

“어쩔 수 없지. 남은 힘을 쥐어짜서 어떻게든 해보는 수밖…… 으으으으…….”

규식이 오른손으로 니들홀더를 쥐다가 놓쳐 버렸다.

현기증 때문에 손에 힘이 빠졌다.

쨍그랑!

니들홀더가 바닥에 떨어졌다.

울리는 쇳소리가 맑으면서 위태로웠다.

수술방 분위기가 나락으로 처박히는 순간이었다.

한편 그사이 준후는 두 눈을 감고 있었다.

어둠 속에 자신이 상상으로 만들어낸 환자와 수술 도구들을 대면하고 있었다.

locking suture를 하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세밀화로 그리고 있었다.

번쩍!

감겼던 두 눈이 떠졌다.

준후의 안광은 태양처럼 강렬했다. 이를 마주한 규식과 소독 간호사는 위압감마저 느꼈다.

“교수님. 정맥 봉합····· 제가 할 수 있습니다.”

준후의 목소리가 메아리로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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