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공 쓰는 외과 의사-265화 (264/424)

265화

제50장 선 넘네(5)

‘아…… 아니!’

준후의 마사지에 규식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마사지라고 해봐야 어깨를 주무르는 것밖에 더하겠어? 어차피 잠깐 시원하고 끝이겠지?

……라고 생각했던 상식이 산산조각 났던 것이다.

준후의 마사지는 생각보다 전문적이었다.

마사지 범위는 어깨와 목, 머리였는데, 준후가 주무르고 손가락으로 문지른 자리가 사르르 녹아내렸다.

뭉친 근육은 풀리고.

뜨끈뜨끈한 것이 꼭 막혀 있던 혈관까지 뚫린 기분이었다.

의구심은 확신으로, 확신은 즐거움으로 변해갔다.

규식은 어느새 웃고 있었다.

딱히 웃고 싶은 생각은 없었건만.

웃음이 나는 상황도 아니었건만,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참을 수 없었다.

황홀함.

지금 기분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단어는 바로 황홀함이었다.

“교수님. 엄청 행복해 보이시는데요?”

“어. 그래?”

혜선의 지적을 받고서야, 규식은 간신히 체통을 지켰다.

헤실헤실거리던 표정을 거둬들였다.

“어떠세요, 교수님? 그나마 몸이 좀 괜찮으시죠?”

“준후 너, 마사지 솜씨가 대박이구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예전에 우연치 않게 전문가한테 배운 적이 있어서요.”

준후가 멋쩍게 웃었다.

“사실 수술방에서 해드렸으면 좋았겠지만 오염과 감염 문제 때문에 못 해드렸습니다.”

“잘 생각했다. 수술방에서 해도 되는 일이 있고 하면 안 되는 일이 있으니까.”

“혜선 쌤도 원하면 마사지해드릴까요?”

“무조건요!”

혜선이 수락했다.

준후가 규식의 등 뒤에서 혜선의 등 뒤로 자리를 옮겼다.

준후의 마사지를 10분만 더 받으면 소원이 없을 텐데…….

문득 피어오르는 아쉬움을 규식은 간신히 물리쳤다.

혜선의 반응도 규식과 다를 바 없었다. 마사지가 시원해서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수술이 끝난 후 펼쳐진 준후의 갈라쇼(?)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종업원이 음식을 내왔다.

짜장면과 짬뽕, 탕수육이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요리가 뿜어내는 자극적인 냄새에 침샘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꿀꺽, 목젖이 출렁거렸다.

규식은 허겁지겁 식사를 했다. 그릇을 싹 비우고 차도 한 잔 마셨다.

지이이잉.

때마침 진동하는 휴대폰.

규식은 가운에서 휴대폰 꺼내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휴대폰에 저장된 PACS(의료영상정보시스템)앱에 접속했다.

휴대폰 액정에 필리핀 환자의 MRI 영상이 떠올랐다.

요즘은 휴대폰으로도 환자의 방사선 검사 촬영 결과를 다 확인할 수 있었다.

“교수님. 또 볼 일이 생기셨습니까?”

준후가 걱정하듯 말했다.

“걱정 마. 응급 수술 스케줄이 잡힌 건 아니니까. 오히려 좋은 소식이 있어.”

“좋은 소식이라 하심은…….”

“방금 손가락 접합 수술했던 필리핀 환자 말이야. MRI 촬영 결과가 나왔대. 그래서 확인 중이지.”

“그렇군요. 별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불안한 눈치의 준후였다.

준후는 정맥봉합술로 수술의 마침표를 찍었었다.

혹시 자신의 봉합술이 미완성이라서 수술에 뒤탈이 있는 건 아닐까 염려하는 모습이었다.

“수술은…… 굉장히 아름답게 잘 끝났어. 뼈, 인대, 힘줄, 동맥, 신경, 혈관이 접착제처럼 딱 붙었단 말이지.”

“…….”

“다 준후 네 덕분이다.”

“아닙니다. 고생은 교수님이 다하셨죠.”

“녀석, 그 솜씨를 가지고도 겸손해. 그 정도면 웬만한 펠로우는 다 쌈 싸 먹을 것 같은데 말이야.”

규식은 진심으로 준후를 찬양했다.

준후의 솜씨는 결코 2년 차라고 볼 수 없었다.

신경외과 전공임에도.

손가락 접합수술의 과정을 다 꿰고 있어 빈틈없이 어시스트를 해냈다.

무엇보다 경이로웠던 건…….

보석보다 빛나는 손이었다.

준후의 손은 기계처럼 떨림이 없었다.

또한 양손이 자유자재였다.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두 마리의 새였다.

고난이도의 락킹 수쳐로 정맥을 봉합한 것이 가장 큰 증거였다.

만약 준후의 어시스트가 없었다면?

다른 레지던트가 어시스트를 했다면?

환자의 경과는 결코 장담할 수 없었다.

준후가 있었기에.

규식은 비로소 자신의 능력을 백 퍼센트 발휘할 수 있었다.

“살다 살다 너 같은 아이는 처음 보는구나. 그런데 그 실력은 재능의 영역이니? 아니면 노력의 영역이니?”

“재능과 노력, 둘 다 있는 것 같습니다.”

“재능을 가진 사람이 노력하는 것만큼 무서운 것도 없지. 암, 그렇고말고.”

규식의 시선이 혜선에게 옮겨졌다.

“혜선 선생도 고생 많았어요. 막판에 퍼스트 어시스트도 훌륭했고요.”

“제가 뭘…….”

혜선이 고개를 숙이며 쑥스러워했다.

“그나저나 준후야.”

“네. 교수님.”

“이제야 기억났는데 말이다. 우리 예전에 인연이 있었지?”

“제가 교수님과 인연이요?”

준후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반면 규식은 준후와의 에피소드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설명에 나섰다.

자신의 친동생이 서울 신원대학교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고.

검진 도중 심정지가 와서 CPR을 받았음을.

그 당시 친동생을 소생시키고 친동생에게 프로포폴 아나필락시스가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낸 사람이 바로 준후였음을.

“아. 저도 이제 기억납니다.”

“준후 네 이름을 계속 부르다 보니 어느 순간 그때 기억이 확 떠오르더구나.”

규식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예전에는 내 동생을 살려주고 오늘은 나를 구원해 주고. 우리 인연이 생각보다 깊구나.”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두 번이나 신세를 졌으니 어떻게든 보답을 하고 싶은데…… 뭐가 좋겠니?”

“말씀은 감사하지만 저는 교수님께 바라는 게 없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제 위치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인 걸요.”

준후의 대답에 망설임이 없었다.

보통 원하는 게 있냐는 질문을 받으면 잠깐이라도 고민하는 게 당연하거늘…….

아무래도 준후는 주기만 하고 받는 일에는 서툰 부류 같았다.

그런 자세가 몸에 배어 있는 듯했다.

알면 알수록 진국이었다.

“너는 괜찮을지 몰라도 나는 안 괜찮단다.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은혜를 갚아야겠는걸?”

차분한 목소리로 규식이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떻겠니?”

* * *

터벅. 터벅.

준후는 혼자서 신경외과 병동으로 복귀하고 있었다.

하루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버렸다.

눈부신 아침 햇살을 받으며 복도를 걸었던 게 좀 전 일 같은데, 날은 벌써 어두커니 저물었다.

햇빛은 달빛이 되어버렸다.

태양은 퇴근했지만 준후는 퇴근을 하지 못했다.

준후에겐 낮과 밤의 차이가 없었다.

식사를 마친 후 휴게실에 들러 영양제를 먹고 운기조식을 한 덕분에 준후의 체력은 쌩쌩했다.

100퍼센트 완충된 배터리였다.

그리고 운기조식과 영양제는 이를테면 초고속 충전기였다.

다른 사람은 갖지 못하는.

오직 준후만 사기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병동으로 향하는 복도를 가로지르면서, 준후는 지난 하루를 돌이켜보았다.

무려 반나절 동안.

손가락 접합 수술만 해서 그럴까.

준후의 생각 대부분은 손가락 접합 수술에 관한 영역에 머물렀다.

오늘 수술은 여러모로 준후에게 의미가 깊었다.

첫째로 그동안 갈고닦은 솜씨를 마음껏 뽐낼 수 있는 자리였다는데 큰 의미가 있었고.

둘째로 규식과의 돈독한 인연이 되었다는 데에 의미가 있었다.

규식은 수부외과에서 평판과 명성이 자자한 서전이었다.

오는 길에 검색해서 알아보니.

한국 수부외과 협회의 부회장까지 맡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규식이 준후를 눈여겨보았다.

어떻게 해서든 은혜를 갚고 싶다며 통 사정을 해왔다.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떻겠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예전에 통화했을 때 말이야. 네가 수부외과 파트에 욕심이 있다고 들었다. 내 말 맞니?

-네. 맞습니다.

준후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경외과와 관련이 있는 파트라면 하나부터 열까지 모조리 섭렵한다.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최강의 신경외과의가 되겠다.

그것이 준후의 욕망 중 하나였다.

-나중에 네가 수부외과 파트를 공부하겠다고 하면 내가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마.

-…….

-미리 말해주자면 수부외과는 ‘해외’보다 ‘국내’에서 수련하는 편이 더 좋단다. 심지어 미국 의사들도 우리나라에 와서 수술을 참관하고 갈 정도니까.

-우리나라, 수부외과가 그렇게 대단합니까? 까맣게 몰랐습니다.

준후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면 다들 너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지.

규식이 씁쓸하게 웃었다.

-우리나라 서전의 접합 수술 성공률은 독보적이야. 자랑을 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지.

-…….

-어쨌거나 수련하겠다는 마음이 들면 반드시 나를 찾아 오거라. 비록 내가 세계 최고의 수부외과 서전은 아니지만, 너를 세계 최고의 수부외과 서전으로 만들어줄 자신은 있으니까.

규식의 확언은 천군만마였다.

그래서일까.

전문의 자격증을 따면 바로 수부외과 전공에 도전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경외과 또는 정형외과에서 전문의 자격증을 따야만.

수부외과 전공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의외로 재미있는 분이셨지.

이래서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는구나.

준후는 규식과 나눈 잡담 중 하나를 떠올리며 키득거렸다.

교수님은 왜 수부외과 전공을 택하셨습니까?

……라고 준후는 규식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돌아온 규식의 답변이 기상천외했다.

규식은 무려 이렇게 말했다.

남들이 못하고 힘들어하는 수술을 하면 내가 더 멋져 보일 것 같아서라고…….

대단한 목적의식이나 소명 의식이 있었던 게 아니라.

단지 허세가 작렬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규식이 허세 부리는 장면을 상상하면 웃음을 참기 힘든 준후였다.

드르르륵.

준후는 신경외과 당직실로 들어갔다.

출입문을 닫으면서 수부외과에 관한 상념들도 같이 닫았다. 준후의 본분은 어디까지나 신경외과에 있었다.

“야, 오늘은 얼굴 한 번 보기 힘들다?”

책상 앞에서 작업 중이던 경수가 준후를 힐끔 쳐다보았다.

“말도 마. 난데없이 손가락 접합 수술에 끌려가서 개고생했다니까.”

“나도 들어서 알아. 근데 너 그런 거 좋아하는 변태잖아. 왜 힘든 척하고 난리야?”

경수가 정곡을 찔렀다.

힘든 척을 했지만 사실 준후는 손가락 접합 수술을 즐겼다.

1년 가까이 붙어 지내다 보니.

경수는 어느새 준후의 속내를 손금 보듯이 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 좋은데 변태라는 단어는 빼줄래? 어감이 좀 그렇다? 그리고 서전이 수술을 좋아한다는데 그게 무슨 문제인가?”

“좋아해도 적당히 좋아해야지. 너 정도면 중독이야. 수술 중독.”

경수가 질렸다는 듯 도리질을 했다.

준후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도 지었다.

“수술은 잘 끝났고?”

“다행히 잘 끝났지. 교수님이 수술 후 촬영한 MRI 보고 만족하시더라.”

“근데 너도 어지간하다. 손가락 접합 수술 들어갈 생각을 다 하고. 나 같으면 때려 죽어도 못 들어가.”

“못 들어가는 게 아니라 안 들어가는 거겠지.”

“내가? 난 절대 너처럼은 못 해.”

“지금은 못 해도 배우면 할 수 있어.”

준후가 경수를 치켜세웠다.

준후의 기준으로 신경외과 레지던트들의 재능을 살폈을 때.

1등은 시호, 2등은 경수였다.

사이코패스 시호를 제외한다면.

경수는 노력 여부에 따라 본인이 선택한 전공에서 이름을 세울 만한 재능을 갖췄다.

한 때 무림맹 교관이었던 준후에겐 그 재능이 보였다.

스승님이 의료계의 시스템을 개혁하는 동안.

나는 평판과 명성을 순식간에 쌓아서 후학들을 양성하면 좋지 않을까.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꽤나 매력적인 발상이었다.

드르르륵.

때마침 열리는 당직실 문.

반쯤 열린 문틈으로 민경이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준후야. 과장님이 너 찾아. 과장실로 가 봐.”

“과장님이요? 퇴근하고도 남았을 시간 아니에요?”

“나도 별일이다 싶더라.”

“혹시 무슨 일 때문인지 아세요?”

“알면, 하여간 빨리 가. 과장님 성격…… 알지?”

“네. 바로 갈게요.”

준후는 당직실을 벗어나 병동 복도 끝에 위치한 과장실로 이동했다.

발걸음이 불편하고 무거웠다.

과장과 엮여서 좋은 일이 생겼던 적은…….

단언컨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