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화
제51장 덤벼(5)
오전 10시.
시호는 숙직실을 나와 신경외과 병동 복도를 걷고 있었다.
취침 시간이라 병동은 고요했다.
좌우로 늘어선 병실들은 어둠에 잠겼고, 천장에 달린 조명등이 달빛처럼 은은했다.
시호의 발소리가 어슴푸레 번져나가고 있었다.
“선배, 안 주무시고 어디 가세요?”
화장실에서 민경이 튀어나와 물었다.
“잠깐 바람 좀 쐬고 싶어서.”
“이 밤에요? 전문의 공부 때문에 바쁘실 텐데 그냥 쉬시지.”
“바람 쐬는 것도 쉬는 거야.”
“옥상 가시는 거면 저랑 같이 가실래요?”
“마음만 받을게. 오늘은 혼자 있고 싶어.”
시호가 씽긋 웃었고, 민경은 아쉬워하면서 컨퍼런스 룸 쪽으로 이동했다.
훼방꾼과 이별한 후.
시호의 발걸음은 한결 경쾌해졌다.
이제 누구도 시호를 막을 수 없었다.
병동을 떠나 도착한 중환자실 앞.
시호는 의사 가운 주머니에 넣어둔 물품을 만지작거렸다.
핵심은 펜타닐을 재어 둔 주사기였다.
오늘이 바로 D-day였다.
빌어먹을 준후 때문에 억눌렸던 살인 충동을 속 시원하게 해결하는 날이.
거사를 앞둔 시호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긴장의 떨림이 아니었다.
흥분의 떨림이었다.
환자를 살려야 할 의사가 환자를 살해한다는 배덕감.
보호자를 향한 기만감.
환자를 제 손으로 죽이는 우월감.
살인으로 얻을 수 있는 감정은 짜릿하고 경이로웠다. 한 번 맛보면 누구나 중독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리에 멈춰 서서.
시호는 중환자실 앞에 늘어서 앉은 보호자들을 훑었다.
보호자들은 하나같이 눈 밑이 새까맸다. 피부는 푸석푸석하고 눈동자에 총기가 없었다.
패배자처럼 어깨가 축 늘어졌다.
그들도 환자와 다름없어 보였다.
수많은 보호자 중, 시호는 정확히 오늘 살해 대상인 강용휘 환자의 보호자를 응시했다.
보호자는 60대의 노인이었다.
두 눈을 감고 두 손을 깍지 끼고 있었다.
보호자의 목에 걸린 십자가 목걸이가 좌우로 흔들거리고 있었다.
어리석기는 짝이 없군.
신이 정말 존재하는 것 같아?
나를 봐. 내가 신의 아들인 것 같냐고? 크크크큭.
강용휘 환자의 보호자를 비웃고.
시호는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눈을 마주친 스테이션 간호사와 목례를 주고받은 후, 강용휘 환자의 침상 앞에 섰다.
침상 좌우로 하얀 커튼이 쳐져 있었다.
환자는 인공호흡기에 호흡을 빚지고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위태롭게 오르락내리락했다.
중환자실 천장 조명에 환자의 숱 없는 머리는 번들번들 빛났다.
너무 쉽잖아.
준후 녀석 눈치를 너무 봤나?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일찍 작업했을 건데.
시호는 아쉬움을 삼키고 가운 주머니에서 주사기를 꺼냈다.
주사기에 펜타닐이 용액이 들어 있었다.
삶은 고통이고.
펜타닐은 진통제이니.
자신은 환자에게 안식을 선사하는 것뿐이라고 시호는 생각했다.
‘진짜’ 의사는 환자에게 죽음을 선물하는 법이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반대편 침상에서 세팅된 카메라가 붉은빛을 점멸하고 있다는 사실을.
본인을 촬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호는 알지 못했다.
시호가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주사기가 차차 수액줄을 향했다.
환자의 덧없는 목숨이 끊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 떨림과 긴장과 흥분을 뭐라 설명하면 좋을까.
참 좋은데 말로 설명할 길이 없어 아쉬웠다.
다시 보자고 환자 양반.
곧 살인자가 아니라 의사로 복귀할 테니까.
그런데 펜타닐 주사기가 수액줄 커넥터에 닿기 직전이었다.
촤라라락!
요란한 소리를 내며 침상 커튼이 걷혔다.
시호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악마라도 본 것처럼 일그러지는 시호의 얼굴.
커튼 뒤에 준후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분명 오전에 파견 나갔던 녀석이 왜 중환자실 병동에 있지?
순간 머리가 하얗게 비어버렸다.
너무 놀란 나머지 뇌세포와 뉴런이 파업을 선언해 버렸다.
뉴런을 이어주는 시냅스가 딱딱한 돌로 굳은 느낌이었다.
도저히 상황 파악을 할 수 없었다.
“네…… 네가 대체…… 어떻게 여기에…….”
“당연한 걸 왜 묻습니까? 선배가 여기서 음흉한 짓을 할 걸 알았으니까 왔겠죠?”
“내 계획을 알아차렸다고?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어! 난 항상 완벽했다고!”
“그럼 제가 더 완벽했나 보죠.”
턱!
준후가 한 손으로 시호의 손목을 붙들었다.
다른 손으로는 금나수의 수법을 써서 시호 손에 들린 주사기를 빼앗듯이 낚아챘다.
“어? 어? 어?”
시호는 얼빠진 소리밖에 내지 못했다.
통제권이 넘어간 주사기를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눈 뜨고 코 베인 느낌이랄까.
준후의 손속은 마치 마법사와 같았다.
“당장 내놔. 환자한테 투여해야 할 항생제야.”
“이게 항생제라고요?”
준후의 입가에 조롱과 멸시가 깃들었다.
“그럼 선배 몸에 놔도 됩니까?”
“그…… 그건…….”
“당연히 죽을까 봐 못하겠죠? 주사기에 재어놓은 건 항생제가 아니라 치사량의 펜타닐이니까.”
준후가 얄밉게 주사기를 흔들었다.
시호는 복잡한 표정으로 준후를 응시했다.
자신의 살해 대상과 살해 방법을 준후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 경악스러웠다.
이 상황이 비현실 같았고 자신을 경멸하듯 바라보는 스테이션 간호사의 눈빛에 모멸감을 느꼈다.
당장 이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은 것뿐만 아니라 환자 대신 죽후를 죽이고 싶었다.
하나로 딱 꼬집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그래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머리 굴려도 소용없어요. 빠져나갈 구멍은 다 막아놨으니까. 저쪽 보고 윙크 좀 해주실래요?”
“윙크?”
“네. 윙크요.”
준후의 검지를 따라 시호가 고개를 돌렸다. 반대편 침상에 놓인 소형 카메라가 이쪽을 남김없이 촬영 중이었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 * *
신경외과 병동 컨퍼런스 룸에서 삼자대면이 이뤄지고 있었다.
그 주인공은 뇌종양 파트 교수 신동훈, 시호, 준후였다.
상황은 사실상 종료되는 수순이었다.
시호가 펜타닐을 투여하려는 장면이 촬영되었고, 살해 도구인 펜타닐 주사기를 준후가 확보했다.
이 정도면 살인 미수가 확실했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의 범죄 사실을 증명하는 수첩이 가장 강력한 증거였다.
살해 일자.
살해 방법.
살해를 한 후 적은 흉악한 감상들은 이제 시호를 옭아매는 두꺼운 포승줄이 되었다.
“허…… 난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구나. 시호 네가 이 정도로 형편없는 인간이었다는걸.”
준후의 부탁을 받아 저녁까지 병원에 남아 있던 동훈이 혀를 차며 시호를 응시했다.
시호는 아까부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모든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정말 할 말이 없는지.
할 말을 일부러 억누르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넌 그동안 감촉같이 동료와 상사들을 속여 왔어. 세상 착한 척을 하면서 남몰래 환자들을 살해했단 말이지. 네 죄는 지옥에 가기에 충분하다.”
“……죄송합니다.”
시호가 코딱지만 한 소리로 대답했다.
“증거가 이만하면 너도 오리발을 내밀 순 없겠지?”
“……네.”
테이블에는 시호의 수첩 내용을 복사한 복사본과 숙직실의 이중 서랍을 찍은 사진.
방금 촬영했던 중환자실 살인 미수 현장의 녹화 영상이 담긴 휴대폰이 놓여 있었다.
하나하나가 다 강력한 증거였다.
이제 시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경찰서에 끌려가는 일밖에 없어 보였다.
“준후야, 고생 많았다. 네 덕에 희대의 살인마를 잡아낼 수 있었어.”
“아닙니다. 운이 좋았을 뿐인 걸요.”
“항상 운이 좋은 걸 실력이라고 한단다. 제아무리 겸손을 떨어도 넌 대단한 녀석이야.”
동훈의 칭찬에 준후가 몸 둘 바를 몰랐다.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저는 경찰서에 연락 좀 하고 오겠습니다.”
“그래. 좀 쉬다가 와도 되고.”
준후가 떠나면서 동훈은 시호를 독대하게 되었다.
사건의 충격이 서서히 옅어지고 있었다. 수많은 물음표가 뒤늦게 머릿속을 뒤따랐다.
“왜 그랬니?”
“…….”
“대체 왜 그랬어? 네가 어디가 모자라서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지 이해할 수 없구나.”
“제 안에 악마가 살고 있습니다.”
“악마?”
“네. 자꾸 사람을 죽이라고 명령하는 악마가 있어요. 그 악마의 말을 듣고 싶지 않은데 도저히 물리칠 수가 없어요.”
시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두 손으로 귀를 막고 고개를 난폭하게 좌우로 흔들었다.
꼭 귀신을 본 공포 영화 속 인물 같은 섬뜩한 모습이었다.
“교수님은 이런 제 마음…… 이해 못 하실 겁니다. 악마와 살아 본 적이 없을 테니까요.”
“언제부터 그랬지?”
“초등학교 때부터일 겁니다……. 아버지가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를 떼려 죽었을 때부터요. 해피가 울부짖던 소리가 지금도 선명해요.”
“…….”
“깨애앵, 깨애앵……. 저는 해피처럼 되고 싶지 않아요. 저는 그저 해피해지고 싶을 뿐이에요.”
시호의 고백에 동훈은 입술을 깨물었다.
시호가 처벌받아 마땅한 악인이라는 점과는 별개로 시호에겐 가슴 아픈 과거가 있었다.
난폭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다 보니 정신분열증 증상을 겪게 된 듯했다.
시호의 실감 나는 표정과 목소리가 그 증거였다.
“그럼 왜 정신과 치료는 안 받았니?”
“정확히 말씀드리면 받다가 말았습니다. 약을 먹으면 너무 나른하고 졸려서요.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더군요.”
시호가 계속 고개를 숙인 채 말을 이었다.
“이제 와서 감성팔이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으음…… 진심이냐?”
“네. 악마가 시켰더라도 결국 사람들을 죽인 건 제 피 묻은 손이니까요.”
“…….”
“이제라도 저를 악마의 삶에서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호의 고백이 자못 비장했다.
그 때문일까.
시호를 증오하고 경멸하기만 했던 동훈은 시호에게 희미하게나마 연민을 품게 되었다.
시호는 자신의 죄를 인식하고.
이를 사과할 줄도 알았다.
정말 나쁜 놈이지만 그렇다고 최악의 나쁜 놈은 아닌 듯했다.
“교수님. 죄송하지만 화장실 좀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왜지?”
“찬물로 세수를 하고 싶습니다.”
“도망칠 생각은 아니고?”
“평생을 도망자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차라리 감옥에 갇혀 있는 게 속 편하죠.”
시호가 테이블에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 의미를 읽고 동훈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시호는 조용히 컨퍼런스 룸을 나왔다.
쉽네. 쉬워.
하여간 동정심만 살짝 건드리면 성인군자처럼 마음이 넓어진단 말이지.
시호가 잔혹하게 웃었다.
악마?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한 강아지?
그따위 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시호가 즉흥적으로 꾸며낸 이야기였다.
오히려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는 시호의 손에 잔인하게 죽었다.
타다다닥.
시호의 걸음이 빨라졌다.
신중하게 주변을 살피며 준후의 등장을 경계했다.
“선생님. 무슨 일이세요? 아까 준후 쌤하고 서 교수님하고 같이 무거운 얼굴로 컨퍼런스 룸 가시던데.”
스테이션에 도착하자 간호사가 물었다.
“별일 아닙니다.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
“보통 일이 아닌 것 같던데. 정말 괜찮으세요?”
“아. 진짜 신경 쓰지 말라고!”
시호가 평소답지 않게 신경질을 내자 간호사의 낯이 창백해졌다.
하지만 평소와 다른 시호는 그러거나 말거나 물품실로 들어갔다.
수술 도구함에서 스칼펠(칼대)를 챙긴 후 블레이드의 포장을 벗겼다.
찰칵!
칼날이 칼대에 꽂히는 소리가 경쾌했다.
메스를 가운 주머니에 넣은 채 시호는 분주하게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목적지는 흉부외과였다.
지상 최고의 이벤트가 시호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