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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272화 (271/424)

272화

제52장 박멸(2)

상황은 마무리되었다.

시호는 수갑을 찬 채 홀쭉이 경찰에게 순순히 끌려갔다.

난폭하게 저항하거나 욕설과 저주를 쏟아낼 거라 예상했지만 시호의 태도는 의외로 얌전했다.

좀 전까지 칼부림 소동을 벌였던 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황당하겠지. 아직도 꿈인지 생시인지 싶겠지.’

준후는 멀어지는 시호를 지켜보며 피식 웃었다.

경찰이 난입하고 시호가 준후에게 달려들던 최후의 순간.

준후는 일부러 허공섭물을 펼쳤다.

그 이유는 2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무공을 펼쳐도 경찰이 못 본다는 확신이 있어서였고.

다른 하나는 시호를 약 올리기 위해서였다.

시호의 머릿속은 아직까지 뒤죽박죽일 것이다. 준후가 일종의 염력 같은 초능력으로 본인을 제압했으니까 말이다.

“가해자와 아는 사이 같던데 누구십니까?”

안경 쓴 경찰이 준후 맞은편에 서서 물었다.

그는 손에 쥐었던 총을 보호대에 집어넣으며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었다.

“같은 과 후배 의사입니다. 끔찍한 일을 저지를 것 같아서 쫓아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메스로 난동을 부리더군요.”

준후가 시호에게 빼앗은 메스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칼날이 조명을 반사하며 빛을 흩뿌렸다.

“너무 위험한 행동 아니었습니까? 흉기를 든 사람을 맨손으로 쫓다니요.”

“애인이 이곳 흉부외과에서 근무 중입니다. 제 애인을 해코지할 것 같아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더군요.”

“으음…… 그 마음은 십분 이해합니다만, 앞으로는 주의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준후가 여유롭게 대답했다.

펜타닐 살인이 현장에서 발각되면 시호가 아영을 찾아갈 거라고, 준후는 이미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래서 얼마 전 아영에게 부탁했다.

함정을 파둔 오늘 집에서 푹 쉬어달라고.

즉, 시호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목표를 쫓았던 것이다.

“가해자와 원한 관계가 있습니까?”

“평소 사이가 안 좋긴 했습니다. 오늘은 평소 쌓인 원한을 폭발시킬 계기도 있었고요.”

준후의 설명이 이어졌다.

시호는 사이코패스 살인마로 지금까지 수많은 환자를 남몰래 죽여왔고, 특히 오늘은 살인을 저지르다가 덜미가 잡혀서 심리가 지극히 불안정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설마 아까 신고하신 분이 그쪽 분이십니까?”

경찰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네. 본의 아니게 두 번 신고를 드렸네요. 한 건은 환자 살인 미수 건이고 다른 한 건은 지금 난동을 부린 건이고요.”

“허…… 안 좋은 일에 여러 번 휘말리셨군요. 놀라셨겠습니다.”

놀랐다기보다는 홀가분하죠.

앓던 이를 속 시원하게 뽑아냈으니까요.

……라고 대답하고 싶은 것을 준후는 간신히 참았다.

입에서는 나오는 대로 말했으면 오히려 자신이 사이코패스 취급을 당할 수도 있었다.

준후는 경찰과 30분가량 더 대화를 나눴다.

시호의 여죄에 관한 대화였다.

대화하면서 준후는 미리 챙겨놓은 자료들을 경찰에게 건넸다.

살인 일기.

펜타닐을 투여하려고 했던 현장의 동영상.

비밀 서랍장에 숨겨진 펜타닐과 프로포폴 등등.

산더미처럼 쌓인 증거에 경찰은 경악했다.

그리고 두 눈을 의심했다.

타인의 범죄를 꿰뚫어 본 것도 모자라서.

이렇게 완벽한 증거를.

이리도 수두룩하게 확보해 놓았을 줄이야.

준후는 의사가 아니라 꼭 형사 같았다.

그것도 현장 생활에 이골이 난 잔뼈 굵은 형사.

“하…….”

경찰은 자료를 다 훑고 감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훌륭하군요. 증거를 못 갖추고 신고부터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인데…… 이 정도면 저 친구 감옥행은 기정사실이군요.”

“혹시 형량은 어느 정도 나올까요?”

준후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시호의 형량이 준후에겐 무엇보다 중요했다.

“과거에 저지른 죄들이 어떻게 처벌될지는 모르겠네요. 하지만 오늘만 해도 살인미수가 2건이나 있으니까…….”

“있으니까?”

“최소 10년은 이상은 썩지 않을까 싶네요.”

경찰의 답변은 다소 실망이었다.

확정된 형은 아니지만, 사람 둘을 죽이려고 했는데 그 대가가 고작 10년 형이라니.

현대는 다 좋았지만 악인에 대한 처벌이 형편없었다.

법이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지.

아니면 가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지 헷갈릴 수준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가해자의 반성문은 왜 또 그렇게 인정이 잘 되고, 가해자의 반성 여부는 판사가 왜 어떻게 판단한단 말인가.

만약 무림이었다면 정·사파를 가리지 않고 시호는 무조건 목을 내놓아야 했을 것이다.

무림에선 목숨은 목숨으로 갚았다.

“질문이 늦었는데 어디 다치신 곳은 없습니까?”

“보시다시피.”

준후는 양팔을 좌우로 활짝 펼쳤다.

“사정청취는 이쯤 해도 되겠습니다. 번거롭지만 경찰이나 법원에 몇 번 더 출석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알고 계세요.”

“물론이죠. 선생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준후는 경찰과 흉부외과 컨퍼런스 룸을 나왔다.

그러다가 문 앞에서 대화를 엿듣던 흉부외과 당직의와 눈을 딱 마주쳤다.

당직의가 다급하게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의 시선을 피하며 한 손으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준후는 당직의에게 조금 이따 사정을 설명해 주겠다고 했다.

“근데 선생님. 경찰차까지 동행해도 될까요?”

“상관없습니다만…… 굳이 왜…….”

“가해자에게 아직 다 못한 이야기가 있어서요.”

“뭐, 그러십쇼.”

병원 1층 지상 주차장에 도착했다.

경찰차는 금방 눈에 띄었다. 지붕 위에 달린 조명이 사방으로 붉고 푸른빛을 쏘아내고 있었다.

시호는 수갑을 찬 채 운전석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옆을 홀쭉이 경찰이 지켰다.

지이이잉.

안경 쓴 경찰이 운전석에 앉아 시호가 앉은 자리의 창을 내려주었다.

“…….”

“…….”

교차하는 준후와 시호의 눈빛.

아까와는 입장도 달라졌고 서로를 향한 감정도 달라졌다.

“가기 전에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부탁? 이제 와서? 나한테?”

준후의 말에 시호가 쓰게 웃었다.

“너밖에 들어줄 사람이 없고 너밖에 확인해 줄 사람이 없어서 그래.”

“들어는 보지.”

“있잖아. 난 예전부터 그게 궁금했어. 사람들이 병원 환자 식단이 그렇게 맛이 없다고 난리를 피우잖아?”

화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을까, 시호의 고개가 옆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그래서 갑자기 궁금해졌는데. 교도소랑 구치소 밥이 더 맛이 없을까. 아니면 병원 밥이 더 맛이 없을까?”

“…….”

“확인하고 알려주면 안 될까?”

“……이 개새끼가…….”

준후의 도발을 알아챈 시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눈썹과 볼살이 파르르 떨렸다.

거기에 경찰들이 푸훗 웃음을 터뜨리면서 기름을 부었다.

시호의 모멸감이 극에 치달았다.

똑. 똑. 똑.

준후가 경찰차를 가볍게 두드렸다.

지이이잉.

시호가 탄 좌석 창문이 닫히고 경찰차가 병원을 빠져나갔다.

경찰차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준후는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 * *

사이코패스는 시호는 이제 병동에서 없어졌다.

앞으로 시호를 보고 싶으면 뉴스로 챙겨 봐야 했다.

후련한 발걸음으로 준후는 흉부외과 병동을 찾았다.

당직의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신경외과 병동으로 복귀해서는 경수, 민경과 대화를 나눴다.

화제는 당연히 시호에 관한 것이었다.

“진짜 고생 많았다. 네 덕분에 병동이 평화를 되찾았네.”

경수가 준후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경수도 어렴풋이 눈치채기는 했다.

시호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마냥 선한 인간은 아니라고.

뭔가 구린 꿍꿍이속이 있다고.

그런데 놀랍게도 준후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시호의 범죄 사실을 파헤쳤으며 시호의 형량을 더 하기 위해 작전을 추가했다.

그 방법이 다소 위험천만하긴 했지만…….

그래도 결과는 경이로웠다.

시호는 의사 면허 취소를 당하면서 의료계에서 매장을 당할 테고, 끔찍한 범죄자로 낙인 찍혀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할 테니까.

“너도 고생 많았다. 네가 아니었으면 이렇게까지 깔끔하게 일 못 끝냈지.”

“나야 뭐, 네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경수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내 말을 진심으로 들어줬다는 것 자체가 고마운 거지. 헛소리라고 치부할 수도 있었잖아.”

“…….”

“최악의 경우엔, 내 계획을 시호 선배에게 발설할 수도 있었고.”

말을 마치고 준후는 민경에게 시선을 돌렸다.

“선배는…… 괜찮아요?”

“아니. 별로.”

준후의 질문에 대답하는 민경의 목소리는 풀이 죽어 있었다.

표정도 세상 우울해 보였다.

민경을 둘러싼 주변만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 이유를 너무나도 잘 알았기에 준후는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민경은 시호를 짝사랑하고 있었다.

줄곧 짝사랑해 온 사람이 사실 두 얼굴의 살인마라는 것을 깨달았다면?

그 충격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그래서 준후는 민경을 함부로 위로조차 하지 못했다.

힘을 낼 수 없는 사람에게, 힘을 내라고 하는 일은 자칫 폭력이 될 수도 있었다.

“준후야. 한 가지만 묻자.”

“네. 선배.”

“넌,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거지? 시호 선배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걸.”

“네.”

“그래서 내가 시호 선배에게 고백하려는 걸 기를 써서 막았던 거고.”

“네.”

“그런 거면 진작 말해주지. 미리 알고 있었으면 마음이 좀 더 편했을 텐데…… 지금처럼 고통스럽지 않았을 텐데…….”

민경이 서글픈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난 그만 가볼게.”

민경이 자리를 떠났지만 민경이 남긴 여운은 오래갔다.

여운을 음미하느라 준후와 경수는 한동안 침묵을 지켜야 했다.

“민경 선배도 어지간히 충격받았나 보네. 생전 남 탓 안 하던 사람이 네 탓을 하고.”

먼저 말문을 연 이는 경수였다.

“솔직히 그렇잖아. 네가 시호 선배가 사이코패스라고 미리 말을 했더라도 그걸 민경 선배가 곧이곧대로 믿었겠냐고.”

“…….”

“이미 시호 선배한테 콩깍지가 단단히 쓰였는데 말이야.”

“됐어. 민경 선배 너무 몰아붙이지 마.”

“아는데.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지.”

경수는 확실히 선을 그었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것이 경수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어쨌거나 넌 속 시원하겠다?”

“당연히 속 시원하지. 이제 마음 편히 대전에 갈 수 있으니까.”

준후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예전부터 대전에 파견 가고 싶었던 준후였다.

대전 신원대학교 병원은 권역 외상센터로 지정되어 있었는데, 준후는 대전에 가면 다양한 외상 환자를 치료하며 경험치를 쌓을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동안 대전행을 망설였던 이유라면…….

100퍼센트 시호 때문이었고 말이다.

하지만 시호가 사라진 지금 준후에게 대전행은 타 문파에 무공을 배우러 가는 모험과 같았다.

“그나저나 너도 고생 많겠다?”

준후가 화제를 돌렸다.

“한 달 정도는 빡세겠지. 너도 없고 치프도 없으니까. 그래도 우리 과장이 어디 보통 사람이야?”

“…….”

“T.O 비는 걸 가만두지는 않겠지.”

“하긴 그것도 그러…….”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던 준후는 호주머니에서 진동을 느꼈다.

휴대폰을 꺼내보니 아영이 전화를 걸었다.

하……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메스를 든 시호보다 아영의 전화가 더 무서운 준후였다.

오늘 사건을 어떻게 설명해야 아영을 달랠 수 있을까.

* * *

그 시각, 경찰차.

외과의에서 범죄자로 전락한 시호는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야밤이라 도로는 한산했다.

길이 뻥 뚫려 경찰차가 미끄러지듯 질주 중이었다.

주변의 풍경이 휙휙 지나갔다.

살짝 열어놓은 창틈 사이로 드나드는 바람 소리가 요란했다.

긴급 체포를 당한 터라 시호는 아직 의사 가운을 걸친 채였다.

마침 차가 터널을 통과하면서.

터널의 어둠이 시호의 가운을 까맣게 물들였다.

-그래서 갑자기 궁금해졌는데. 교도소랑 구치소 밥이 더 맛이 없을까. 아니면 병원 밥이 더 맛이 없을까? 확인하고 알려주면 안 될까?

준후의 말이 끊임없이 머릿속에 맴돌아서, 시호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경찰만 곁에 없었다면.

시호는 주변에 있는 모든 사물을 때리고 부수고 던졌으리라.

몇 번의 심호흡으로 시호는 마음을 가까스로 가다듬었다.

그리고 준후에게 반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고민했다.

그래.

준후 새끼 알고 보니 초능력자였잖아?

아직도 믿기지는 않지만.

분명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알 수 없는 힘으로 내 손에 들린 메스를 쏙 빼갔다고!

“이봐. 중요하게 할 말이 있어.”

“뭡니까?”

“내가 죽이려고 했던 의사 말이야. 그 의사, 사실은 초능력자야.”

“…….”

“당신들도 봤지? 내 손에서 메스가 저절로 빠져나가는 거. 그럼 그 새끼도 붙잡아서 조사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시호가 언성을 높이며 물었다.

“당신 돌았어요? 세상에 초능력자가 어디 있습니까?”

곁에 있던 홀쭉한 경찰이 시호를 바라보며 비웃었다.

운전석에 있던 경찰은 코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당신들 정말 못 봤어? 진짜 메스가 알아서 빠져나왔다니까?”

“이 사람 진짜 안 되겠네. 벌써부터 정신질환 밑밥 까는 거야? 누가 의사 아니랄까 봐.”

“아니! 내 정신은 멀쩡해. 준후 새끼가 분명 허공섭물이란 걸로 내 손을 멈추고 메스를 빼앗아갔다니까!”

“오. 허공섭물. 진짜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네.”

“당신! 허공섭물을 알아?”

시호의 목소리가 화색을 띠었다.

이제야 경찰과 말이 통하는 것 같았다.

“알다마다. 무협지에 나오는 무공이지. 내공으로 물건을 밀거나 끌어당기는 일종의 염력이랄까.”

운전석에 앉은 경찰이 말했다.

하지만 이어진 대답으로 사지에 힘이 쏙 빠졌다.

“이 한심한 양반아. 근데 그건 무협지에나 나오는 거고, 현실에서 허공섭물이 어떻게 가능해?”

“아니…… 진짜야. 난 봤고 당했다니까.”

“입 다물고 조용히 갑시다. 당신 헛소리 들어줄 만큼 너그러운 사람이 아니야. 우리는.”

경찰의 일갈에 시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졸지에 자신만 바보가 되었다.

다시 한번 수치심이 밀려왔다.

준후 새끼.

설마 이것까지 전부 계산한 건가.

진짜 악마는…… 따로 있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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