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공 쓰는 외과 의사-298화 (297/424)

298화

제57장 개척(3)

‘관상은 과학이다’라는 말이 있다.

준후는 그 말에 정확히 3분의 1만 동의했다.

얼굴이란 한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담는 그릇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자주 우는 사람은 울상을 갖게 될 테고.

자주 화내는 사람은 인상이 날카로워질 것이다.

물론 여기서 유전이나 환경에 문제를 빼놓을 수 없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3분의 1 확률로…….

그 사람의 행동이나 태도가 더해진다면, 관상의 확률은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지금 코앞에 있는 권혁처럼.

권혁은 눈매가 옆으로 찢어져 날카로웠다.

입술은 핏기없이 얇았고 왼쪽 입꼬리의 한쪽이 살짝 말려 올라가 있었다.

준후가 무림에서 수없이 상대한 소인배들의 관상이었다.

거기에 조금 전 사전에 동의를 받지 않고 몰래카메라를 찍지 않았던가.

이쯤 되면 권혁의 인성을 파악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권혁이 천연덕스럽게 오리발을 내밀었다.

소인배의 특징 하나.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를 시전한 것이다.

“오는 길에 건달을 마주쳤는데 연기가 영 부자연스럽더군요. 체구도 보통 사람들치고는 너무 좋고.”

“…….”

“그뿐만이 아니에요. 우리가 골탕 먹는 걸 잘 찍으려고 여기저기 촬영하는 사람도 숨겨놨던데.”

“…….”

“권혁 님 채널은 게스트를 욕보이고 엿 먹이는 곳입니까?”

준후의 돌직구에 권혁이 난처하다는 듯, 손가락으로 볼을 긁적거렸다.

순간 체육관 온도가 3도는 내려갔다.

체육관 사람들이 준후의 눈치를 보기 바빴다.

“변명이나 핑계의 여지라도 있습니까? 있다면 해보시죠.”

“하…… 그게…….”

“머리 굴리는 소리가 너무 잘 들리네요.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요?”

준후가 권혁을 따끔하게 꾸짖었다.

소인배의 특징 둘.

‘먼저 사과를 하면 지는 것이다’를 시전하고 있는 것이다.

“야. 원성이!”

권혁이 뜨끔 없이 목청을 높였다.

근처에 있던 한 사내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네. 관장님.”

“네가 애들보고 준후 선생님 몰래카메라 찍으라고 시켰냐?”

“네? 제가요?”

“그래. 네가 영상 편집도, 컨텐츠 기획도 하잖아. 뉴튜브 각 보려고 무리수를 던지면 어떻게 하냐? 응?”

“…….”

“게스트분들 입장도 고려할 줄 알아야지. 최소한 몰카 동의라도 구하던가 말이야!”

권혁이 사내를 거세게 몰아붙였고 사내는 한마디 대꾸도 하지 못했다.

고개를 떨어뜨린 채 얼어 있을 뿐이었다.

‘이 인간, 보기보다 더 악질이군.’

대화를 듣던 준후의 눈썹이 뾰족하게 솟구쳤다.

권혁은 자신이 한 실수를 후배에게 뒤집어씌우고 있었다.

권위적이면서 동시에 비겁한 모습이었다.

순간 오늘 촬영을 취소하고 싶은 충동이 터졌지만…….

준후는 참았다.

단순히 뉴튜브 각을 뽑으려 체육관에 왔다면 진작 발길을 돌렸을 것이다.

하지만 CRPS를 앓는 주원이 권혁을 좋아한 탓에.

권혁에게 사인과 응원 메시지를 받으려고 이곳까지 왔다.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인마, 너 때문에 내가 선생님 뵐 낯이 없잖아. 빨리 정중하게 사과드려.”

“죄송합니다. 준후 선생님. 제가 뉴튜브 각만 생각하느라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권혁의 재촉을 받은 사내가 준후 앞에 서서 90도로 허리를 굽혔다.

“그럼 이번 일은 여기까지 하죠.”

“너그럽게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제 후배들이 몸을 쓰는 친구들이다 보니 이게 많이 부족해서요.”

권혁이 검지로 본인의 관자놀이 툭툭 건드렸다.

몰래카메라를 권혁이 직접 지시했다는 증거는 없었기에 준후도 더 이상 따지고 들지는 않았다.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기를 수십 초.

“권혁 님. 괜찮으시면 사인 좀 해주실 수 있겠어요?”

준후가 먼저 화제를 돌렸다.

“아니. 사인은 제가 받아야죠. 준후 선생님은 100만 뉴튜브에 골드 버튼까지 갖고 있는데.”

“제 환자 중에 권혁 님 광팬이 있어서요.”

“아, 그런가요?”

권혁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준후는 매고 있던 크로스백에서 파일철을 꺼냈다.

파일철 속에 있던 A4용지와 사인펜을 권혁에게 내밀었다.

“사인하고 응원 메시지도 같이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암요. 물론이죠.”

본인의 실수를 만회할 기회가 찾아오자 권혁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덕분에 준후는 권혁의 응원 메시지가 담긴 사인 3장.

주원을 응원하는 권혁의 1분짜리 영상까지 확보했다.

쉽게 말해서…….

권혁의 단물을 쪽쪽 다 빨아먹은 것이다.

‘이제부터 진짜 재미있게 놀아보자고.’

준후의 섬뜩한 눈빛이 후배들과 대화를 나누는 권혁에게 머물렀다.

* * *

본격적인 콜라보 촬영의 막이 올랐다.

준후와 권혁이 체육관 벽을 등지고 서 있었고 그 맞은편에 촬영 스텝이 나란히 서 있었다.

권혁은 촬영에 꽤 공을 들이는 타입이었다.

스탠드 카메라만 2대를 썼고, 한 사람은 따로 휴대폰을 들고 다양한 각도에서 영상을 녹화하고 있었다.

준후가 출현한 콘텐츠의 이름은 격투기 알지도 못하는 것들.

줄여서 격알못이었다.

격투기와는 인연이 먼 사람들이 권혁에게 간단한 격투기를 배우는 콘셉트였다.

자기소개.

콘텐츠에 출연한 계기.

근황 토크 등등.

일련의 과정이 물 흐르듯이 지나고 나서 본 콘텐츠가 진행되었다.

“평소 종합격투기에 궁금했던 점이 있으신가요?”

권혁이 준후에게 물었다.

“파이터분들은 일반인이 휘두르는 주먹 정도는 다 피한다고 하던데 진짜인가요?”

“하…… 그거야 당연하죠. 백이면 백 다 피합니다. 그러니까 선수하고 밥 벌어 먹고살죠.”

“그럼 한번 도전해 봐도 됩니까?”

“아휴.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영상 보시는 분들도 이 기회에 똑똑히 확인하세요. 일반인과 격투기 선수에 클래스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

권혁의 목소리는 자신만만했다.

본인 무덤을 본인이 파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눈치였다.

준후는 스태프가 건넨 권투 글러브를 착용하고 권혁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자신 있게 들어오세요.”

권혁이 허리를 살짝 숙인 채 약 올리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툭!

준후의 왼손 잽이 탄환처럼 뻗어 나갔다.

권법에도 조예가 깊었던지라 준후의 잽은 예사롭지 않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권혁의 안면을 두들겼다.

“아이쿠.”

잽을 정통으로 얻어맞고 비틀거리는 권혁.

준후가 힘 조절을 안 했다면 이번 잽 한 방으로도 권혁은 별을 보며 의식을 잃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재미있는 장난감을 쉽게 놓아줄 준후가 아니었다.

몰래카메라에 무례를 갚아주려면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선생님. 의외로 주먹이 맵네요?”

권혁이 감탄하며 말했다.

“파이터한테 인정받으니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어째 제 주먹을 못 피하셨네요? 아까 백이면 백, 다 피한다고 하셨는데.”

“하하하. 이게 또 워낙 방심을 했고. 그리고 선생님이 왼손잡이인 줄도 몰랐었고.”

“다시 가 볼까요?”

“오세요.”

준후는 일부러 천천히 주먹을 휘둘렀다.

왼쪽 어깨의 움직임을 일부러 권혁에게 노출했다.

파이터답게 준후의 어깨와 팔의 동작을 읽고 권혁이 얼굴과 상체를 오른쪽으로 이동시켰다.

파이터 수준에서는 꽤 괜찮은 회피 동작이었다.

다만 준후는 파이터보다 몇 단계는 위에 있는 무림인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사권(蛇拳).

직선으로 뻗어 나가던 준후의 주먹이 곡선을 그리며 권혁의 얼굴을 따라갔다.

마치 뱀이 먹잇감을 추적하듯.

사권은 뱀의 동작을 형상화한 권법으로 소림오권(少林五拳) 중 하나였다.

예전에 무공을 겨뤘던 소림사 나한의 수법을 따라 한 것이다.

퍽!

준후의 주먹이 권혁의 왼쪽 뺨을 강타했다. 권혁의 고개가 옆으로 휙 돌아갔다.

준후가 충분히 힘 조절을 했음에도 권혁은 휘청거리며 한동안 몸의 균형을 잡지 못했다.

“…….”

“…….”

순간 싸늘해지는 체육관 분위기.

영상을 지켜보고 있던 체육관원들의 입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쩍 벌어졌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권혁이 누구인가.

비록 지금은 은퇴했지만 전성기에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미들급 세계 5위를 달성한 괴물이었다.

권혁이 현역이었을 때 불린 별명은 무려 블랙 맘바였다.

상대를 독사같이 밀어붙인다고 해서 얻은 별명이었다.

그런데 그런 권혁이 일반인에게 두 번이나 주먹을 허용한다?

이는 실로 비상식적인 일이었다.

“하…… X발 졸라 열 받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권혁이 모기만 한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렸다.

의사 나부랭이한테 주먹을 허용했더니 견딜 수 없는 자괴감과 짜증이 솟구쳤다.

이러면 후배들은 물론이고 영상을 볼 시청자들이 자신을 뭐라고 생각하겠는가.

들끓어 오르는 분노를 권혁은 가까스로 억눌렀다.

대신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여러분. 충분히 재미있으셨죠? 제가 준후 선생님 주먹을 다 피하면 그게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

“장난은 이쯤하고 진지하게 해볼게요.”

카메라를 보고 멘트를 친 권혁이 다시 준후에게 몸을 돌렸다.

“준후 선생님.”

“네.”

“앞으로 주먹을 딱 다섯 번만 휘둘러보세요. 제가 전부 다 멋지게 피해 볼게요.”

“하긴 뭔가 이상하다 싶더라고요. 일반인인 제 주먹을 권혁 님이 다 맞으실 리가 없으니까요.”

“저를 못 맞춘다고 해서 실망하기 없기입니다.”

“그게 당연한 일인데요. 뭐.”

준후는 코웃음을 치며 자세를 잡았다.

슬슬 이번 대련에 마무리를 지을 때가 왔다.

이번 기회에 무례한 권혁에게 진짜 개망신이 무엇인지 알려주리라.

왼손 잽.

오른손 훅.

왼손 어퍼컷.

오른손 바디 블로우.

왼손 스트레이트 펀치.

준후의 주먹이 사정없이 권혁을 폭격했다.

이번에 준후가 펼친 무공은 용호난무였다. 용과 호랑이가 뒤엉켜 싸우는 모습을 형상화한 무공이었다.

용호난무는 난타 계열의 무공으로 처음 한 대를 맞으면 그 뒤에 주먹은 피할 수가 없었다.

용에게 한 번 물리면 벗어날 수가 없고.

호랑이에게 앞발을 맞으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 것처럼.

퍼어어억!

준후의 첫 번째 잽이 권혁의 안면을 정통으로 때렸으므로.

권혁은 속수무책으로 나머지 연속공격도 허용할 수 없었다.

준후에게 얻어맞을 때마다 권혁의 고개가 돌아가고, 허리가 출렁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퍽! 퍽! 퍽! 퍽!

준후가 휘두른 5번의 주먹을 다 처맞은 권혁의 상태는 어느새 걸레짝이 되어 있었다.

눈동자가 희미하게 풀려 있었다.

이에 다시 한번 경악하는 체육관원들.

“야. 방금 의사가 날린 펀치들 봤어? 내 눈에는 안 보이던데?”

“나…… 나도 못 봤어. 미쳤던데? 진짜 의사 맞아? 복싱 전문으로 배운 거 아닌가?”

관원들이 준후의 정체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준후의 활약은 기절초풍할 만한 했다.

권혁이 진심 모드로 들어갔는데도 총 5번의 주먹을 벌처럼 권혁에게 꽂아버렸으니까.

“야. 이 멍청이들아. 너희는 아직도 권혁 선배를 모르냐?”

잠자코 있던 화살코 관원이 대화에 껴들었다.

“이번에도 권혁 선배가 일부러 맞아준 거잖아. 딱 봐도 티가 나는구먼.”

“일부러 맞아줬다고? 선배 꽤 열 받아 보였던데?”

“선배도 이제 예능인 다 됐어. 의사한테 맞아주는 게 오히려 뉴튜브 각이라는 걸 안 거지.”

“한 번이면 몰라도 두 번은 아닐걸? 선배 별명이 왜 블랙 맘바인 줄 잊었어?”

“그래서 더 말이 안 되잖아. 블랙 맘바가 일반인 주먹을 다 얻어맞는다는 게.”

화살코 관원이 재차 반박했다.

관원들의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도 카메라는 돌고 있었다.

기어이 정신줄을 붙잡은 권혁은 속으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말이 안 되는 상황이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준후의 펀치를 마냥 럭키 펀치라고 볼 수 없다는 뼈아픈 진실을.

권혁은 진심으로 준후의 펀치를 피하려고 했는데 진짜로 다 처맞아버렸다.

모양 빠지게 시리.

‘이 새끼 진짜 의사 맞아? 아닌 것 같은데?’

마주하고 있는 준후의 표정은 여전히 여유롭기만 했다.

자신을 그저 먹잇감으로 보고 있는 듯했다.

세계 1위를 상대할 때도 자신만만했던 권혁은 놀랍게도 일반인인 준후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어쨌거나 사태를 수습하는 게 1순위였다.

“자, 여러분 잠시 소란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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