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화
제58장 골프(2)
신원대 병원 응급실.
응급실은 오늘도 지옥이었다.
수십 개의 침상이 환자들로 이미 가득 차 있었다.
방금 막 구급차에 실려 온 응급 환자는 의료진에게 심폐 소생술을 받고 있었다.
흉부 압박을 하는 응급의학의의 얼굴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곁에 있는 보호자는 발을 동동 굴렀다.
술에 취한 환자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주정을 부렸다.
목청이 나팔 소리처럼 우렁찼다.
응급실의 지옥도는 입원한 환자들의 수만큼이나 다양했다.
‘하아…… 미치겠네. 진짜.’
대휘는 입술을 깨물며 침상에 누운 환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경증 환자를 치료하는 C섹터.
대휘가 맡은 환자의 이름은 서진오였다.
나이는 34세.
얼굴에 넓게 번진 여드름 흉터가 인상적이었다.
환자 곁에는 어머니인 보호자가 있었는데 턱이 뾰족하고 입술이 얇아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처럼 보였다.
“으으…….”
“선생님. 우리 진오가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아무것도 안 해주시나요?”
환자의 입에서 신음이 계속되자 보호자가 따지며 물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닙니다. 정확한 병인을 찾는 중입니다. 원인을 알아야 치료도 제대로 할 수 있죠.”
“그래서 그 치료를 언제 해주실 거냐고요.”
“보호자 분 심정은 이해하지만 너무 재촉하지 마세요. 사람 치료하는 거, 쉬운 일 아닙니다.”
보호자의 닦달에 대휘의 이마에 주름이 늘어났다.
지금으로부터 20분 전.
응급실 콜을 받고서 대휘는 자신만만하게 응급실로 내려왔다.
응급실 차트대로라면 두통약만 줘서 돌려보내면 되겠다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웬걸?
대휘의 판단은 순진하기 짝이 없었다.
흉부 엑스레이.
피 검사.
소변 검사.
심전도.
기본 검사들의 결과는 다 정상이었건만 환자 상태는 차트에 적힌 것보다 훨씬 안 좋았다.
환자는 머리가 깨질 것 같다고 했다.
극심한 구역질도 호소했다.
환자가 평소에 두통을 앓는 것도 아니었고.
머리 쪽으로 다른 기저질환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대휘는 어리둥절했다.
환자가 고통받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꺼내든 비장의 무기가 브레인 CT였는데 CT에서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럼 대체 뭘 어쩌라는 건지…….
막막한 마음에 대휘는 곧바로 준후에게 구조 신호를 보냈다.
“환자분.”
“……네.”
“혹시 책상 모서리나 벽에 머리를 세게 부딪친 적이 있나요?”
“아뇨. 없어요.”
“최근에 스트레스가 심하진 않았나요.”
“그런 적 없어요.”
대휘는 최초 문진 때 묻지 못했던 질문을 몇 가지 던졌지만 성과가 없었다.
그래서 페널티 킥을 실축한 축구 선수처럼 우울했다.
“오 선생님. 환자 바이탈 한 번만 더 체크해 주시겠어요?”
멀뚱멀뚱 서 있기 민망해서 대휘는 곁에 있던 간호사에게 오더를 내렸다.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이고 바이탈을 확인했다.
체온 36.7.
분당 호흡수 15회.
맥박 120
혈압 145mmHg/100mmHg
환자의 체온과 호흡수는 정상이었고. 맥박과 혈압은 정상보다 조금 높았다.
그런데 대휘의 예감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환자에게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그 일이 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환장할 노릇이었지만.
“환자분. 허리도 안 좋으신가요?”
어느 순간부터 환자가 한쪽 손을 허리에 올려놓은 것을 발견하고 대휘가 물었다.
“네. 조금 찌릿찌릿해요.”
“다치시거나 디스크 수술은 받은 적이 있나요?”
“아니요. 근데…… 평소에 허리가 안 좋은 편이긴 했어요.”
“저기요. 선생님. 얘가 힘들어하는데 왜 계속 물어보고 그러세요? 이럴 거면 진통제라도 놔주시던가요.”
환자가 왜 아픈지 모르겠고.
보호자는 옆에서 계속 쪼아대고.
대휘는 소리 지르며 응급실 바깥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구원자 준후가 침상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준후 주변에서 광채가 발산되는 것 같았다.
응급실에 난잡한 풍경 속에서 대휘의 눈에는 오로지 준후만 보였다.
“선배.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침상에 도착한 준후에게 대휘가 귓속말을 했다.
* * *
대휘가 구구절절 노티를 하는 동안.
준후는 환자를 응시하며 턱을 쓸어내렸다.
내려오기 전 확인했던 검사 내용과 대휘의 노티를 참고해서 환자를 진단 중이었다.
환자의 CC(Chief Complaint, 주요 증상)은 두통이었는데 브레인 CT에서 이상 징후가 드러나지 않았다.
대휘가 애를 먹은 것도 이해가 갔다.
“선생님은 누구세요?”
보호자가 준후를 향해 따가운 눈초리를 보냈다.
“신경외과 레지던트입니다. 후배가 곤란해 하길래 대신 진료를 보러 왔습니다.”
“선생님은 몇 년 차에요?”
“2년 차입니다.”
“하…… 그러면 다음에는 3년 차가 내려오겠네요?”
보호자의 말투가 삐딱했다.
무례한 언사에 화가 났는지 대휘가 콧김을 씩씩 뿜어댔지만 준후는 보호자의 말에 생채기조차 받지 않았다.
보호자는 원래 예민한 법이었다.
소중한 사람이 눈앞에서 아프고 힘들어하는데 어찌 태연할 수 있을까.
물론 개중에는 진짜 진상도 있긴 하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환자분 가만히 계세요.”
딸칵.
준후는 펜 라이트를 켜고 환자의 양쪽 동공을 살폈다.
동공의 크기.
동공의 수축과 확장 반응에 큰 이상은 없었다.
두통을 극심하게 호소하는 것치고는 머리와 관련된 검사들이 너무 깔끔했다.
기이한 현상이었다.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준후는 환자가 옆구리에 손을 얹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저 행동에 진단의 실마리가 있다고 준후의 본능이 소리쳐 댔다.
잠깐만…….
그러고 보니 대휘가 환자에게 요통이 있다고 했었지?
“환자분, 일단 엎드려 누워보시겠어요?”
“왜…… 왜요?”
“허리도 통증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근력사정(Motor power grade)이라는 검사를 해봐야겠습니다.”
“아니, 여기 진짜 대학병원 맞아요? 머리가 제일 아프다는데 왜 허리를 본다고 그래요?”
“선배. 이건 조금 그렇지 않나요? 요즘 직장 생활하는 사람이면 허리 통증은 기본으로 달고 사는데…….”
보호자가 딴죽을 걸었고.
대휘도 작은 목소리로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두통 환자에게 허리 검사를 하겠다니 의아했던 것이다.
하지만 준후에게는 다 계획이 있었다.
“보호자분.”
“네.”
“의사 면허는 땅따먹기로 거저 얻은 게 아닙니다. 아드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시겠지만 참을성을 갖고 지켜봐 주세요.”
좋게좋게 설득하자 보호자가 잔소리를 멈췄다.
아니꼬운 기색은 여전했지만.
“으으으으…… 됐어요?”
환자가 고통스러워하며 엎드려 누웠다.
“네. 잘하셨습니다.”
환자복 상의를 들추고 준후는 환자의 허리에 손을 얹었다.
단전에서 끌어올린 내공이 손바닥으로 향했다.
손바닥에 있던 내공은 다시 환자의 몸속으로 침투했다.
호수에 일어난 파문처럼.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갔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파동으로 변한 내공이 환자의 허리의 구조물.
이를테면 뼈, 근육, 혈관, 신경 등등을 어루만지고 지나갔다.
‘머리에 문제가 없다면 허리에 문제가 있어야지.’
준후는 환자의 허리 질환을 의심하고 있었다.
허리 질환이 머리까지 영향을 끼치는 케이스가 희박하지만 존재했다.
만약 허리마저 이상이 없다면?
그때는 준후조차 백기를 들어야 했다.
결과를 알 수 없어.
초조한 마음속에 진행되는 ‘내공 요추 혈관 조영술’.
어느 순간 준후의 미간이 확 좁아졌다.
요추 2번과 3번 사이에 위치한 척추 동맥에 이상 징후가 포착되었다.
혈관이 엉키고 꼬인 실타래 같은 형상을 했고 혈관 일부는 척수 신경을 짓누르고 있기도 했다.
환자를 괴롭히고 있던 질환은 바로…….
‘척추 경막내 동정맥 기형’이었다.
척추 혈관이 동맥 → 모세혈관 → 정맥의 순서대로 이동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동맥 → 정맥의 순서로 한 단계 건너뛰어서 생기는 질환이었다.
동정맥 기형은 뇌에 주로 발생하는 편이라서 환자는 특이 케이스였다.
‘야단났네. 야단났어.’
진단명을 확정했음에도 준후의 얼굴은 펴질 줄 몰랐다.
환자의 허리에서 떼는 손도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환자 상태가 심각했다.
팽창한 혈관이 척수 신경을 누르고 있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환자는 보행 장애와 배뇨 장애를 동시에 앓을 수 있었다.
최악의 경우 척추 혈관 파열이 발생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허리 통증이 두통까지 올라왔다는 건…….
척추 혈류가 뇌 혈류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순환에 장애가 일어났다는 뜻이었다.
당장 응급수술이 필요한 상황!
대형 산불 급의 불이 준후의 발등에 떨어지고 말았다.
“무슨 근력 검사를 한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허리에 손만 얹고서 뭐하셨던 거예요?”
보호자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이것도 검사의 일종입니다. 어쨌거나 제가 봤을 때 환자분은 허리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응급으로 허리 CT도 촬영하죠.”
“진짜 너무 하시네. 제가 바보인 줄 알아요? 여기저기 CT 찍어놓고 돈 받아먹을 생각이죠?”
“천만의 말씀입니다. 환자의 허리에 이상 없으면 제가 오늘 진료비 전액 지급해드리겠습니다.”
“그 약속 지킬 수 있어요?”
“물론입니다. 대휘야, 내가 CT 오더 낼 테니까 환자랑 응급 CT 촬영 다녀와라.”
준후의 다급한 시선이 대휘를 향했다.
“선배. 일을 너무 크게 벌이시는 거 아니에요? 두통 환자한테 허리 CT는 좀…… 나중에 뒷감당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대휘가 속삭이듯 물었다.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빨리!”
“아. 네.”
준후가 쩌렁쩌렁하게 호통을 쳤다. 놀란 대휘가 환자의 침상을 끌고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결과가 나오는 즉시 알려드리겠습니다.”
보호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준후는 재빨리 응급실 스테이션으로 이동했다.
환자에게 허리 CT 오더를 응급으로 내고 수술방에 전화를 걸어 수술 예약을 잡았다.
그리고 다시 훈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은 훈식이 당직 교수였다.
신경외과는 워낙 인원이 부족했기에 교수들도 당직 근무를 섰다.
지금처럼 응급 환자가 닥치면 수술을 하기 위해서.
뭐하냐, 빨리 좀 받아라!
사람이 죽게 생겼다고!
10초의 신호음이 10분처럼 느껴지는 가운데 첫 번째 통화가 실패했다.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하겠다는 안내 메시지가 얄밉게만 들렸다.
준후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훈식이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주변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나이스!
오늘 양 선생, ……감각이 끝내주는데?
요번에 산 ……가 아주 요물입니다. ……의 완성은 역시 명품…… 이죠.
불길한 예감에 준후의 목 뒷덜미가 서늘해졌다. 팔뚝에 솜털이 삐죽삐죽 솟구쳐 올랐다.
-어. 왜? 무슨 일인데?
훈식이 뒤늦게 뚱한 목소리로 용건을 물었다.
“교수님. 저 준후입니다. 응급실에 환자가 왔는데 척수 경막내 동정맥 기형입니다. 응급 수술이 필요합니다.”
이어지는 훈식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나 수술 못 하는데? 지금 골프장에 와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