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공 쓰는 외과 의사-305화 (304/424)

305화

제58장 골프(5)

‘허…… 참나…….’

준후의 후궁 절제술을 지켜보던 남궁혁은 혀를 찼다.

기가 막혀서 말문까지 막혔다.

수술방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준후를 향한 기대치는 밑바닥이었다.

고작 2년 차 레지던트에게 무엇을 바라겠는가.

어시스트만 그럭저럭 따라와도 감지덕지라는 생각이 팽배했다.

그런데 웬걸?

준후는 어시스트를 시작할 때부터 남다른 면모를 과시했다.

이심전심이라고, 딱히 할 일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본인이 해야 할 처치를 찾아내 빈틈없이 해냈다.

출혈이 발생하면 썩션을 하거나 지혈 거즈로 출혈을 잡아주고.

리차드슨(견인기)으로 수술 시야를 넓혔으며.

이리게이션(세척)도 척척이었다.

준후는 레지던트 2년 차라기보다는 펠로우 2년 차 같은 완숙미를 뽐냈다.

그리고 화룡점정은 방금 마친 후궁 절제술이었다.

양손을 사용한 후궁 절제술은 전대미문의 스킬이었다.

사실 양손을 쓰는 서전이 제법 있는 편이지만 준후처럼 양손을 자유자재로 쓰는 극히 드물었다.

“와…… 대박이네요. 후궁의 절단면이 좌우로 똑같아요. 왼손하고 오른손이 완전히 똑같이 움직였다는 뜻 아닌가요?”

남궁혁이 하고 싶은 말을 윤기가 내뱉었다.

윤기는 준후를 쳐다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젓고 있었다.

진저리의 고갯짓이 아니라 감탄의 고갯짓이었다.

“준후 너, 내 기대를 훨씬 뛰어넘었구나. 수술 퀄리티는 두말할 필요가 없고…….”

남궁혁이 수술방 벽시계를 보며 말을 이었다.

“수술 시간도 평균보다 3배가량 빨랐어.”

“과찬이십니다. 아직 배워야 할 것도 많고 익힐 것도 많습니다.”

“녀석, 겸손하기는…….”

남궁혁은 준후가 마음에 들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지만, 사람은 잘 나갈수록 고개가 빳빳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준후는 그런 오만함이 없었다.

인성에도 합격점을 줄 만했다.

“그럼 일단 혈종부터 제거해 보자꾸나.”

“네. 교수님.”

“10번 블레이드.”

남궁혁이 소독 간호사에게 메스를 건네받았다.

메스가 향한 곳은 요추 2-3번 척추 전방 동맥이었다.

동맥에서 좌측으로 뻗어 나가는 2개의 혈관 중간에 검붉은 점이 존재했다.

출혈 후 굳은 채 남아 있는 혈종이었다.

메스의 날카로운 칼끝이 혈종 표면을 십자(十)로 갈랐다.

절개면에서 실낱같은 핏줄기가 새어 나왔다.

이에 준후가 썩션기로 흐르는 피와 작아진 혈종을 단번에 빨아들였다.

치이이익!

남궁혁은 같은 방식으로 나머지 혈종까지 깔끔하게 제거했다.

이제 혈종이 신경을 압박하는 일도, 원위치에서 박탈된 혈종이 척추 혈관을 떠돌아다니다가 혈관을 막는 혈전증을 일으킬 일도 없을 것이다.

발등에 떨어진 급한 불은 일단 껐달까.

‘어디 보자.’

남궁혁은 미세 현미경에 눈을 가까이하고 요추 측방에 위치한, 문제의 동정맥 기형을 살폈다.

요추 2-3번에 위치한 모세혈관이 마구잡이로 엉킨 실타래와 같았다.

눈대중으로 확인한 사이즈는 대략 4센티미터.

한눈에 파악하기 힘들게 엉킨 혈관이 깊이 신경과 맞닿아 있었다.

환자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혈관 기형을 지금 발견한 게 다행이었다.

시간이 더 지체되었다면 하지 마비나, 배뇨 장애로 환자는 더 큰 고통을 받았을 것이다.

“교수님. 모스키토로 동맥과 정맥부터 결찰부터 할까요?”

“그러자꾸나.”

딸칵!

딸칵!

준후가 기형이 발생한 혈관의 최상단부와 하단부를 혈관 겸좌로 잠갔다.

혈관 제거에 앞서 혈류부터 차단한 것이다.

사소했지만 결찰 위치가 탁월했다. 남궁혁이 미리 점 찍어두었던 곳이었기에.

“알곤 빔(전기 메스).”

남궁혁의 손에 볼펜처럼 생긴 전기 메스가 들렸다.

두 눈은 미세 현미경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척추 동정맥 기형 수술법은 뇌 동정맥 기형 수술법과 동일했다.

비정상적으로 자란 모세혈관을 통째로 제거하는 것이었다.

환자의 비교적 젊은 나이.

기형인 척추 동정맥의 상태.

이 두 가지를 감안하면 수술적 제거만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기대해 볼 만했다.

남궁혁은 교과서대로 모세혈관에 피를 공급하는 동맥부터 절제해 나갔다.

치이이익.

고주파 칼날이 요추 동맥의 일부를 예리하게 베어냈다.

이미 혈관에 고여 있던 피가 요추 인근 공간을 빨갛게 가득 채웠다.

비릿한 피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그때 준후가 나섰다.

이제는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버린 양손으로 단번에 피 웅덩이를 썩션했다.

후속 처리도 야무졌다.

주사기에 지혈제 용액을 재서 혈관 주변에 쏘아냈다.

이번 수술은 어렵지만 그래도 실패할 일은 없겠다고 남궁혁은 확신했다.

* * *

수술을 시작한 지 4시간 만에.

응급으로 치러진 척추 동정맥 기형 수술이 성공적인 막을 내리고 있었다.

‘이게 진짜 서전이지.’

환자의 허리 피부를 봉합하는 남궁혁을 보며 준후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혁은 책임감이 충만한 서전이었다.

신경외과를 도우러 왔음에도 환자를 자기 환자처럼 열정적으로 집도했다.

만약 집도의가 훈식이었다면 어땠을까?

척추 동정맥 기형만 제거하고, 그게 정말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수술방을 떠났을 것이다.

피부 봉합 같은 것은 잡무로 여기며 준후에게 떠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남궁혁은 달랐다.

집도의 처음과 끝을 스스로 매듭짓고 있었다.

준후가 피부 봉합을 하겠다고 해도 마다했다.

또한 남궁혁은 실력 있는 서전이었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

남궁혁의 처치는 정교하면서 동시에 깔끔했다.

메스나 전기 메스를 사용하는 솜씨.

포셉으로 혈관 조직을 고정시키는 수법.

다른 뒤처리들까지 완벽했다.

그래서 무림에 존재하는 남궁세가의 무사들과 재회한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이제 슬슬 작업에 들어가야겠어.’

빠드드득.

준후가 별안간 이를 갈았다.

상념이 수술에서 훈식으로 옮겨간 것이다.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은 바로 훈식이었다.

실력도 없는 주제에 책임감도 없어서 당직 근무를 내팽개치고 간 훈식 말이다.

훈식은 대전 신경외과 의국에 암이었다.

훈식을 방치한다면 대전 의국에 암담한 미래는 불 보듯 뻔했다.

찰칵!

다른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준후는 기계적으로 남궁혁이 지은 마지막 봉합 매듭을 가위로 잘랐다.

준후는 만화공을 사용 중이었다.

만화공을 사용한 상태에서는 모든 감각과 생각들 하나하나에 집중할 수 있었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준후가 선창하자 윤기와 소독 간호사가 준후의 뒤를 따랐다.

수술이 완벽했으므로.

수술 후의 경과도 완벽할 것이라 기대하기 좋았다.

덕분에 준후의 몸과 마음은 날아갈 듯 가벼웠다.

“다들 고생했어요. 그리고 준후 너는 특히 마음고생 심했겠어. 홍 교수님이 자리 비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참담했을 텐데 말이야.”

“괜찮습니다. 덕분에 교수님도 뵙고 수술도 많이 배웠는걸요.”

준후는 눈으로 씽긋 웃었다.

빈말이 아니었다.

수술을 어시스트하면서 준후는 남궁혁의 수술 기법과 요령들을 초식으로 기억해 머릿속에 남겼다.

언제라도 꺼내볼 수 있도록 남몰래 또 한 번 성장한 것이다.

지이이잉.

수술방 문이 열리고 신선한 공기가 밀려 들어왔다.

준후는 수술방 옆에 놓인 의료 폐기물 박스에 피와 땀에 젖은 수술 가운부터 벗어 던졌다.

수술모와 수술 장갑들이 그 뒤를 이었다.

“뭘 그렇게 빤히 쳐다보니?”

준후의 시선을 느낀 남궁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술 방에 들어오기 전에 교수님이 호랑이 같은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외모는 전혀 호랑이 같지 않으셔서요.”

남궁혁의 반전 외모에 준후는 가까스로 웃음을 참았다.

남궁혁은 얼굴이 동그랗고 볼살이 통통했다. 몸매도 푸짐한 항아리 형태였다.

제 나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피부는 뽀얗고 매끈했다.

외견만 놓고 보면 호랑이보다는 아기 돼지가 어울렸다.

“이 녀석…… 설마 그 동물을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뭔지 모르겠지만, 아닐 것 같습니다.”

“그래. 분명 아닐 거야. 아니. 꼭 아니어야 할 거다.”

남궁혁이 웃으며 준후의 농담을 받았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스태프들이 수술실을 나왔다.

환자는 나중에 도착하는 인턴이 신경외과 병동으로 옮길 것이다.

“선생님. 수술은 잘 끝났나요? 저희 아이는 무사한가요?”

환자의 어머니가 준후를 알아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준후에게 다가왔다.

그녀를 마주한 순간 준후의 가슴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저 다급한 마음을 준후가 모를 리 없었다.

준후도 어머니의 수술을 기다리며 느꼈던 마음이 있으니까.

그때 어머니가 혹시나 잘못되지는 않을까 하고 별의별 생각을 하며 고통과 번민에 빠졌다.

“교수ㄴ…….”

남궁혁을 바라보던 준후는 말을 다 잇지 못했다.

남궁혁이 준후에게 고갯짓을 했는데 그 의미는 명확했다. 준후에게 수술 후 노티를 맡긴 것이다.

아무래도 보호자와 처음부터 얼굴을 대면한 사람은 준후였으니까.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아드님은 무사하시고요. 중환자실에서 회복하면 금방 좋아질 겁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응급실에서는 죄송했어요.”

보호자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가 선생님을 무시하고 싶어서 무시했던 건 아니고요. 아들이 너무 힘들어하는데 뭔가 치료가 시원시원하게 안 되니까 너무 답답해서 그랬어요.”

“아드님이 아프신데 정신이 온전한 게 더 이상한 일이죠.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보호자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가냘픈 어깨가 파르르 떨리고 붉어진 눈시울에서 이슬 같은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준후는 보호자를 가볍게 끌어안았다.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그녀의 눈물이 절망의 눈물이 아니라 환희의 눈물이라서 다행이었다.

갖은 고초를 겪었지만 환자가 무사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준후는 자신이 서전의 길을 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 * *

지하 1층 카페.

남궁혁은 휴무임에도 급하게 병원을 찾아온 시덕과 마주하고 있었다.

남궁혁이 지난 수술 과정을 설명하는 동안 시덕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따금 침음성만 흘렸다.

시덕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그러니까 환자를 살린 건 7할이 준후였다고 봐야지. 어린 녀석이 아주 대단해.”

“…….”

“너도 알다시피 척추 동정맥 기형은 희귀한 질병이야. 진단하기가 영 까다로운 게 아니라고. 근데 준후 녀석은 그걸 해냈어.”

“…….”

“어시스트 솜씨도 기똥차더군. 레지던트 2년 차가 아니라 펠로우 2년 차인 줄 알았다니까. 네 밑에 있는 아이가 아니었으면 내가 진작 빼 왔을 거다.”

남궁혁은 준후가 자기 자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칭찬을 늘어놓았다.

칭찬을 대량으로 쏟아놓자 입이 말라서 음료를 마셔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어쩌란 말인가.

준후의 활약이 그만큼 경이롭고 눈부셨는데.

더 놀라운 건 지금까지 한 이야기들이 과장 없는 순전한 팩트라는 점이었다.

“예사롭지 않은 아이라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군. 자네가 레지던트를 칭찬하는 건 머리털 나고 처음 들어보는데?”

“다 그럴 만하니까. 자네도 준후와 함께 수술해 보면 금방 알 거야.”

“그래. 조만간 자리 한번 마련해야지.”

“그건 그렇고 홍 교수는 앞으로 어떻게 할 건데?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거야?”

남궁혁이 화제를 홍훈식으로 돌렸다.

전(前) 신경외과 과장이자 현(現) 신경외과 실세를.

부교수 훈식의 이름이 거론되자 시덕의 이마에 주름이 생겨났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