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8화
제61장 군자의 복수(3)
대전시 중구에 위치한 상유 아파트에 근접한 상가 골목.
오늘따라 유독 하늘이 어두웠다.
구름이 껴서 달이 보이지 않았다.
가로등 불빛이 안간힘을 쓰며 달빛을 대신 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나 보다.
깜빡깜빡 점멸하기 바빴다.
“쓰으읍. 후우우우.”
가로등 아래에서 훈식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바람에 휘말린 담배 연기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콜록. 콜록.
담배를 피우다 말고 훈식이 고통스럽게 기침을 했다. 10년 전에 끊었던 담배를 모처럼 피웠더니 대미지가 장난이 아니었다.
일단 머리가 울렁거렸고.
그다음 속이 울렁거렸고.
고량주를 마신 것처럼 목구멍이 쓰라렸다.
그래도 훈식은 손에 쥔 담배 꾸역꾸역 다 태웠다.
그걸로도 부족한지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또 물었다.
두 번째는 그래도 조금 나았다.
어지러움과 구역질이 덜했다.
몸이 담배를 잊지 않고 있었다는 듯.
훈식의 눈길이 담배 연기를 따라 하늘로 향했다.
하늘이 캄캄했다.
훈식의 마음도 캄캄했다.
그래도 어두운 하늘에는 내일 해가 떠오르겠지만 훈식의 인생에는 다시 해가 떠오르지 않을 것 같았다.
“하…… 왜 이런 일이…….”
벌어진 입술 사이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훈식이 피땀으로 쌓아 올린 대전 신경외과 의국이라는 왕국은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믿을 수 없었다.
믿고 싶지 않았다.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았다는 속담은 정녕 틀렸단 말인가.
훈식은 검지로 담배에 붙어 있던 불똥을 튕겨냈다. 슬리퍼로 그 불똥을 짓이겨 껐다.
왜인지 서 있을 힘이 없어서 상가 2층으로 통하는 계단에 앉았다.
엉덩이가 삽시간에 축축해졌다.
훈식은 그저 자신의 지시를 무시한 준후를 몇 대 때렸을 뿐이다.
이유 없이 때린 게 아니라 맞을 짓을 해서 때렸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사소한 행동이 훈식에게 파멸을 불러왔다.
공교롭게도 폭행을 당하던 준후가 휘청거리다가 책상 모서리에 머리를 찧었다.
심정지를 일으키며 쓰러졌다.
‘머리를 다쳤는데 왜 심정지가 왔을까…….’
훈식은 아직도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뭔가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그렇다고 준후가 일부러 그리고 자발적으로 심정지에 빠졌다고 주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만약 그런 주장을 한다면.
훈식은 인간쓰레기로 낙인 찍혀서 사회에서 소각당할 것이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패딩 주머니에 넣었던 휴대폰이 갑자기 떨어댔다.
오 마이 동아줄.
번호를 확인하니 진료부원장의 전화였다.
“네. 부원장님.”
부원장이 앞에 있는 것도 아닌데 훈식은 몸을 굽실거리며 전화를 받았다.
“혹시 제가 말씀드린 건은 어떻게…….”
-이번에는 내 입김으로도 안 되겠는데? 일이 너무 커졌어. 소문이 병원장님 귀에까지 들어갔단 말이야.
“병원장님씩이 나요? 벌써요?”
-환자도 아니고 의사가 CPR 받는 경우가 희귀하긴 하잖아.
“그래도…… 저는 부원장님만 믿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이 사람이 내가 무슨 슈퍼맨이라도 되는 줄 알아? 그리고 내가 얼마 전에 자네 당직 때 골프 치러 갔던 사건도 막아줬잖아. 내 역할은 거기까지야.
진료부원장이 한숨 쉬며 말을 이었다.
진료부원장은 최악의 상황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라고 했다.
교수 직위 해임.
의사 면허 취소.
훈식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들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휴대폰을 쥔 손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지 않습니까?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면 뭔가 방법이 있을 겁니다.”
-없어. 이번에는.
“너무 야박하십니다. 진료부원장님. 제가 그동안 진료부원장님께 충성한 시간이 어디 1, 2년입니까? 큰 따님 미대 들어갈 때 미술 작품도 선물해 드리고 그랬는데.”
-자네 지금 날 협박하는 건가?
진료부원장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수화기 너머에서 씩씩거리는 콧김도 들려왔다.
“오해하지 마시고요. 제 사정을 배려해 주십사 하는 겁니다. 처벌을 안 받겠다는 게 아니라 처벌 수위를 조절해 보자는 거죠.”
훈식이 아기 달래듯 진료부원장을 달랬다.
진료부원장을 끌어안고 벼랑에 떨어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훈식이 박살 나는 건 동일했으니까.
-그게 가능하면 내가 이러고 있겠냐고. 증거 자료가 너무 확실해.
“증거 자료요?”
-그래. 녹음 파일이 있더라. 그것만인 줄 알아? 자네가 레지던트를 폭행하던 영상도 있단 말이야.
금시초문인 이야기에 훈식이 눈을 번쩍 떴다.
-자네, 그것도 몰랐어?
“네…… 진료부원장님께 처음 들었습니다.”
-쯧쯧쯧. 그것뿐만이 아니야. 자네가 상습적으로 레지던트를 때렸다는 소문도 돌고 있어.
“…….”
-신경외과 2년 차 레지던트가 자네 괴롭힘을 못 이겨서 나가 버렸다더군. 내일 징계 위원회가 열릴 때, 그 친구가 직접 참석해서 추가 폭행을 밝힐 거란 이야기가 돌고 있어.
“…….”
-자네도 입이 있으면 말을 해봐. 이 상황에서 내가 자네한테 도대체 뭘 해줄 수 있는지.
진료부원장의 말에 훈식은 허탈하게 웃었다.
사방이 낭떠러지였다.
어느 쪽으로 가든 자신의 파멸은 약속된 것처럼 보였다.
진료부원장과 통화를 마치고 훈식은 담배를 한 대 더 물었다.
폭행 현장을 증명할 녹음 파일과 영상 파일이 있다는 진료부원장의 말을 떠올렸다.
서준후. 개자식.
아니, 독사처럼 교활한 자식.
이 모든 걸 다 네가 꾸몄구나.
처음부터 날 열 받게 해서 얻어맞을 작정이었던 거야.
훈식은 뒤늦게 준후의 악독한 계략을 파악했다.
하지만 준후라는 독사에게 물린 독은 이미 전신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해독제가 없었으므로 훈식은 꼼짝없이 죽어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 * *
다음 날 오전.
훈식은 병원 징계 위원회에 참석했다.
사건이 워낙 커져서 병원 자체적으로 묻을 수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사건을 묻으려고 했다간 오히려 사건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모래성을 쌓는 건 오래 걸리지만 모래성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원내 긴급 절차를 통해.
회의 당일 훈식은 교수 자리를 박탈당했다.
향후 20년간 신원대 병원 계열 병원에는 취직할 수 없다는 패널티 또한 받았다.
한국 의사 협회에서 징계가 있을 거라는 소식도 들려왔다.
아마 훈식의 의사 면허 정지를 고려하는 듯했다.
하루가 더 지나자 신문과 뉴스에는 훈식의 폭행이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세상 모든 사람이 훈식을 손가락질하고 비난했다.
심지어 경찰의 소환 통보도 받았다.
그저 준후를 폭행한 일에 나비효과로 훈식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잃어야 했다.
* * *
훈식이 의국에서 쫓겨난 지 일주일이 지난 시점.
준후는 평소와 같이 당직실에서 당직 근무를 서고 있었다.
“어휴. 속이 다 뻥 뚫리네.”
마우스 스크롤을 내리던 준후가 유쾌하게 혼잣말을 했다.
좀 전까지 훈식에 관련된 뉴스 기사를 살피던 중이었다.
훈식은 경찰 조사를 받고 구치소에 수감되었다고 한다.
드디어 마땅한 죗값을 치르게 된 것이다.
준후는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시원하기 기지개를 켰다.
훈식 건은 잘 마무리했지만 앞으로도 이렇게 일이 술술 풀릴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았다.
악당에도 레벨이 있는데.
훈식 정도면 하급 악당이었다.
무림으로 비유하자면 시정잡배 같은 삼류 무사에 불과했다.
나는 나쁜 놈이다.
나는 나쁜 짓을 한다.
이런 분위기를 팍팍 풍기고 다녔기 때문이다.
자고로 진짜 무서운 악당이란 주변 사람이 악당인지도 모르는 그런 게 진짜 악당이었다.
준후가 어렵게 처리했던 사이코패스 시호 같은 부류 말이다.
그래도 시호야 같은 레지던트라서 비교적 쉽게 처리를 했지.
교수급이 마음먹고 악독한 짓을 하면 준후도 처단하기 힘들었다.
어쨌거나 사건의 매듭은 잘 지어졌다.
훈식은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가 되었고.
준후는 과장과의 약속을 지켰다.
남은 파견 기간 동안 경추·요추 수술을 마스터하는 데 집중하면 될 듯했다.
이윽고 준후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수술대가 생겨나고.
그 위로 미세 현미경이 달리고.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 무영등이 빛을 쏟아내고.
환자 감시 장치가 생겨나는 등등.
고작 30초 만에 준후는 어둠 속에 수술방을 만들었다.
환자도 만들고.
수술을 도와줄 스태프들도 만들었다.
시각을 담당하는 뇌의 후두엽을 점혈법으로 자극해 수술방 풍경을 선명한 이미지로 만든 것이다.
자신이 창조한 세계 속에서 준후는 요추 수술을 집도하기 시작했다.
오늘 집도하는 수술은 전이성 척추종양이었다.
바로 어제 어시스트를 했던 수술인데, 집도의의 수술 방식을 초식화해서 하나도 빠짐없이 암기를 해두었다.
그리고 준후는 머릿속으로 집도의가 되어 집도의의 집도를 모방하고 있었다.
신 수술을 개발하는 것은 교수가 된 이후부터 할 일이었다.
지금 해야 하는 일은 고수들의 술기를 스펀지처럼 모조리 빨아들이는 것이었다.
늦게 배운 시뮬레이팅 수술로 준후는 시간을 가는 줄 몰랐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창밖을 응시하니 동녘이 떠오르고 있었다.
어두웠던 하늘이 오렌지 빛깔로 그라데이션을 그리고 있었다.
똑. 똑. 똑.
별안간 들리는 노크 소리.
준후가 들어오라고 하자 낯선 인물이 당직실로 들어왔다.
빼빼 마른 삼각 턱의 사나이.
훈식과 혁재의 괴롭힘에 못 이겨 탈주했던 2년 차 서진이었다.
서진은 하얗고 빳빳한 의사 가운을 걸친 채 준후에게 다가왔다.
“복귀, 축하한다.”
준후가 서진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동안 자주 연락한 데다가 나이가 같아 스스럼없이 반말을 했다.
“…….”
서진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준후가 내민 손을 빤히 살필 뿐이었다.
“사람 무안하게 뭐 해? 더 기다리다간 팔 떨어지겠어.”
“손이 깨끗한가 봤다. 다행히 지저분하진 않네.”
서진은 그제야 안심이 된다는 듯 준후와 악수를 나눴다.
“너도 보통 캐릭터는 아니구나. 혹시 결벽증이라도 있니?”
“뭐, 결벽증까지는 아니고…… 워낙 깔끔한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서.”
그리고 서진은 당직실을 한 번 훑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돼지우리 같은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네.”
“말이 너무 심하다? 너 온다고 내가 한 번 청소해 놓은 거거든?”
“그럼 앞으로 어디 가서 청소한다고 하지 마. 완전 개판인데.”
지난 회포를 푸는 것보다 청소를 하는 것이 서진에게 더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였던 걸까.
서진은 바로 창문을 열고 청소를 시작했다.
창틀 구석구석을 물티슈로 닦고, 책장에 있는 책들의 먼지를 털고, 냉장고 안을 정리하고 닦고 등등.
서진의 청소는 가히 청소 업체 직원급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준후는 직감했다.
앞으로 청소 문제로 서진에게 잔소리를 들을 게 불 보듯 뻔하다고.
서진의 청소는 무려 1시간 가까이 진행됐고 그동안 준후는 시간이 남아 오전 컨퍼런스 준비를 했다.
입원 환자 경과 요약을 뽑고.
수술 스케줄을 교통 정리하고.
컨퍼런스 때 논의할 주요 요점들을 파일로 만들었다.
컨퍼런스 준비는 사실 인턴과 레지던트 1년 차의 몫이었지만 준후는 별다른 거부감 없이 스스로 했다.
이런 사소한 배려가 한참 힘든 시기에 후배들에게는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지이이잉.
때마침 울리는 전화기.
준후가 전화를 받았다.
응급실 콜일까 기대했는데 병동 콜이었다.
-선생님, 스테이션인데요. 607호실 김점례 환자분이요. 열이 계속 안 가라앉아서요. 해열제 복용했는데도 37.5도 유지 중이에요. 어떻게 할까요?
“으음…… 감염증이 있나 본데요? 제가 금방 갈게요.”
준후는 감염 여부를 살피기 위해 요추 천자 오더를 내리고 서진을 응시했다.
서진은 아직도 청소 중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당직실에 놓여 있는 물건들에 각을 맞추는 중이었다.
이등병이 관물대 각을 잡는 것처럼.
“서진아.”
“왜?”
방해받은 게 귀찮다는 표정으로 서진이 말했다. 심지어 준후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너 요추 천자 한번 해볼래?”
준후는 서진의 능력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