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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320화 (320/424)

320화

제61장 군자의 복수(5)

1층 응급실, 외상외과 팀.

성민은 팔짱을 낀 채 병원 내부에서 응급실로 이어진 출입구를 곁눈질 중이었다.

“신경외과 말이에요. 요즘은 완전 맛탱이가 가버렸나 본데요?”

성민이 곁에 서 있던 간호사 지혜에게 말을 걸었다.

“왜요?”

“병원이 말장난하는 곳도 아니고. 3년 차 이상 레지던트를 보내달라니까 3, 4년 차 같은 2년 차를 보낸다잖아요.”

“…….”

“심지어 그게 과장님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데…… 신경외과의 미래가 캄캄합니다. 캄캄해.”

성민이 하소연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홍 교수가 과장이었을 때도.

홍 교수가 부 교수였을 때도.

놀랍게도 홍 교수가 범죄자가 되어 병원을 떠났는데도.

신경외과는 개판으로 운영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신경외과 서전의 고생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고생과 업무 처리를 별개였다.

“우리 성민 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나 봐요?”

“제가 뭘요?”

“신경외과 요즘 일 잘한다고 소문났어요. 응급실 콜도 바로바로 처리하고요. 수술 건수랑 수술 성공률도 확 늘었다고 하던데요?”

지혜가 신경외과 편을 들었다.

그녀 역시 응급실 출입구 쪽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그거 신경외과에서 자체적으로 퍼뜨리는 소문 아니에요? 별로 신뢰가 안 가는데.”

“저희 과장님이 과장 회의 때 직접 들은 이야기래요.”

“평소에 일을 하도 못하니까 조금만 잘해도 확 잘해 보이는 걸 거예요.”

성민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성민은 들리는 것은 믿지 않았다. 눈으로 직접 본 것만 믿었다. 세상에는 사람을 현혹하는 이야기들이 너무 많았다.

그것들을 덥석덥석 믿었다간.

배가 산으로 가게 될 것이다.

지이이잉.

때마침 문이 열리고 잘생긴 의사 한 명이 응급실로 들어왔다.

청년의 목에 걸린 명찰에 신경외과 서준후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준후의 외모부터 성민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반면 지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준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계속 보다가는 눈이 하트로 변할 것만 같았다.

“안녕하세요. 신경외과에서 지원 나온 서준후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선생님. 차지혜예요.”

“환자 보러 가는데 반가울 건 또 뭡니까?”

지혜에게 핀잔을 주며 성민이 준후를 위아래로 훑었다.

몸이 호리호리한 게 힘이나 제대로 쓸까 걱정이었다.

외상외과 스태프들은 힘이 좋아야 했다. 특히 오늘은 체력과 근력이 더 중요했다.

환자를 들것에 싣고 가파른 산자락을 올라야 하니까.

“그쪽이 그 유명한 3, 4년 차 같은 2년 차 맞아요?”

성민이 비꼬는 말투로 물었다.

“네. 맞습니다.”

“그럼 제발 이름값 좀 해주세요. 개고생은 개고생대로 하고 환자가 사망하는 건 딱 질색이니까.”

“알겠습니다. 대략적인 상황과 노티부터 부탁드립니다.”

준후가 물었고 성민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지금으로부터 30분 전.

119를 통해 한 건의 구조 요청이 들어왔다.

한 등산객이 절벽 아래로 실족한 다른 등산객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이게 그 사진이에요.”

신고자가 촬영한 사진을, 성민이 휴대폰 액정에 띄워 준후에게 보여주었다.

사진에는 가파른 경사 아래에 대자로 뻗은 50대 남자가 누워 있었다.

환자 상의가 피로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고개는 살짝 옆으로 돌아가 있었는데 관자놀이 쪽에 시퍼런 멍이 존재했다.

“이 환자, 실족 환자가 아니네요.”

준후의 말에 놀란 성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해요?”

“등산복 외투가 풀어 헤쳐져 있고 안에 받쳐 있는 상의가 찢어진 채 피로 젖었잖아요.”

“그게 뭐요?”

“일단 외투를 벗을 날씨가 아니고요. 복부에서 출혈이 발생한 것도 이상해요. 아무리 살펴도 주변에 날카로운 물체가 안 보이거든요.”

준후가 동의를 구하듯 성민과 지혜에게 번갈아 눈을 맞추었다.

그리고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래도 환자는 복부에 자해를 한 모양입니다. 나중에 인근을 조사하면 피 묻은 칼이 나올 거예요.”

준후의 결론이 호수에 파문처럼 번져 나가 성민의 마음까지 흔들어 놓았다.

사실 성민도 준후와 생각이 같았다.

정황은 실족이 유력했지만.

환자를 꼼꼼하게 살펴보면 수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놀라운 건 2년 차에 새파란 레지던트가 자신과 똑같은 결론에 도달했다는 점이었다.

보통은 환자의 복부에 자상이 있더라도 추락하면서 날카로운 나뭇가지 같은 것에 찔렸겠지 하고 판단하기 마련인데.

“어쩜. 성민 쌤하고 똑같은 이야기를 하시네요. 정말 3, 4년 차 같은 2년 차 맞나 본데요?”

지혜가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준후에게 단단히 빠진 듯한 모습이었다.

“대단한 거 아닙니다. 눈썰미만 있으면 다 알 수 있어요.”

“지금 저 눈썰미 없다고 핀잔주시는 거예요?”

“어…… 그런 뜻은 아닌데. 일단 빨리 복장부터 갖추고 출동하죠.”

지혜가 폭발하기 전에 성민이 화제를 돌렸다.

준후를 데리고 갱의실에 들어가 헬기 탑승에 필요한 복장을 갖췄다.

눈에 잘 띄는 형광색 조끼.

단단해 보이는 형광색 헬멧.

헬기 소음을 차단해 주고 스태프 간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헤드셋.

두 사람은 허겁지겁 3종 세트를 착용하고 지혜와 합류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헬기가 대기 중인 옥상이 가까워질수록 헬기의 소음이 커졌다. 몸이 덜덜덜 진동을 했다.

“준후 씨.”

“네. 선생님.”

“혹시 예전에도 닥터 헬기 타본 적 있어요?”

“아뇨. 오늘이 처음인데요?”

“그래요? 처음치고는 꽤 담담해 보여서.”

성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외상외과 스태프야 헬기가 제3의 집이었지만 다른 외과의들은 아니었다.

헬기를 탄다고 하면 겁부터 집어먹었다. 갑자기 두통이나 현기증, 구역을 호소하곤 했다.

그에 반해 준후는 차분해도 너무 차분했다.

그게 준후의 원래 성격인지 아니면 아무 생각이 없어서 그런 건지.

성민은 종잡을 수가 없었다.

* * *

헬기 내부가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맞은편에 앉은 성민과 지혜의 몸이 자꾸 흔들렸다.

특히 성민은 어깨가 살짝 비대칭이라서 헬기 진동으로 어깨춤을 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두두두두.

두두두두.

프로펠러 소리는 요란했다. 누군가가 옆에서 기관총 사격을 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오늘은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었다.

거센 기류를 통과할 때마다 이따금 헬기의 몸체가 오뚝이처럼 좌우로 기우뚱거렸다.

그러나 준후는 헬기에 탑승하는 것이 처음이었지만 적응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무림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어서 그랬다.

적응을 마친 후에는 닥터 헬기 안에 있는 물품과 장비를 재빨리 눈으로 훑었다.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즉시 처치가 가능할 테니까.

‘의외로 있을 건 다 있네.’

헬기를 살피는 준후의 눈동자가 커졌다.

환자감시장치, 제세동기.

각종 수액과 혈액.

응급 상황에 필요한 에피네프린을 비롯한 다양한 주사제.

붕대와 거즈와 부목.

메스, 포셉, 가위 등의 처치 도구.

닥터 헬기라는 명성에 걸맞게 헬기 안에는 응급처치에 필요한 물품들이 압축되어 있었다.

수술 빼고 웬 만 한 건 다 가능해 보였다.

헬기 구조를 암기한 준후의 시선이 창 너머를 향했다.

하늘이 호수처럼 파랬다.

커다란 뭉게구름이 헬기를 호위하듯 양옆을 지키고 있었다.

준후는 창가에 더 붙어서 하늘 아래 펼쳐진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헬기가 도심을 통과하고 있었다.

자동차와 건물들이 개미보다 작아 보였다.

‘설마 살아 있는 건 아니겠지?’

불현듯 무림의 적일도가 떠올랐다.

준후의 가문 절기에 당해 적일도는 낭떠러지에서 추락했다.

그 높이라면 죽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적일도의 죽음을 눈으로 확인한 것은 아니었다.

그 점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사실 준후는 현대 의술 솜씨를 가지고 무림에 돌아가서 의사 노릇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그러면 정말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을 테니까.

무림에서 현대로 왔다면 현대에서 무림으로 가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준후는 예전부터 꾸준히 그런 상상을 해봤다.

물론 그것이 준후가 바란다고 이루어지는 종류의 사건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뭔 생각을 그렇게 해요?”

헤드셋을 통해 성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후가 잠에서 막 깬 사람처럼 몸을 들썩거렸다.

“헬기에 탑승하니까 없던 생각도 막 생겨나네요.”

“왜요? 헬기가 추락할까 봐 무서워요?”

성민이 준후를 놀리듯이 물었다.

프로펠러 굉음에 성민의 목소리가 뭉개져서 들렸다.

“제가 죽는 건 안 무섭습니다. 환자가 죽는 게 무섭지.”

“그냥 하는 소리인데 뭐 그렇게 비장하게 말해요? 누가 들으면 우리가 전장에 파견되는 특수 요원인 줄 알겠네.”

“제가 원래 진지충이거든요.”

준후가 요즘 스타일로 말장난을 쳐봤다.

이에 지혜는 깔깔깔 웃었고 성민은 무표정한 얼굴로 준후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헬기 아래로 푸른 산자락이 펼쳐졌다.

환자가 기다리고 있는 야산에 도착한 것이다.

헬기는 산 중턱에 있는 착륙장에 내렸다.

헬기에서 내린 준후가 혼자서 들것을 어깨에 둘러메었다.

“괜한 힘 자랑하지 말고 같이 들어요. 정상까지 가는데 족히 10분은 걸려요. 환자 보기도 전에 퍼질 일 있어요?”

“그래요. 선생님. 너무 의욕적이어도 문제예요.”

성민과 지혜가 만류했지만 준후는 괜찮다고 웃어 보였다.

준후의 피지컬은 비공식 인류 최강이었다. 이 정도 노동은 노동이라고 볼 수도 없었다.

“일단 누구라도 먼저 현장에 도착해서 환자를 살피는 게 중요하겠죠?”

“당연한 걸 왜 물어요?”

“그럼 제가 먼저 현장으로 가겠습니다.”

말을 마친 준후가 가파른 산길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서씨세가의 자랑인 청풍보를 밟는 준후는 한 자락의 바람이었다.

준후가 스쳐 지나갈 때마다 근처에 있던 나뭇가지가 좌우로 휘청거렸다.

풀잎은 파르르 떨렸다.

“준후 선생님…… 뭐예요……? 무슨 축지법이라도 쓰나? 지금은 아예 안 보이는데요?”

눈으로 준후의 뒤를 쫓던 지혜가 벙찐 얼굴로 말했다.

준후의 신형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던 것이다.

“하여간 초짜들은 이래서 문제라니까. 저러면 자기가 멋있고 세 보인다고 생각하는 거죠.”

“성민 쌤은 아까부터 왜 준후 쌤을 까느라 바빠요? 나름 일도 똑 부러지게 잘하고 의욕적인데.”

“그런 게 있어요.”

성민은 대충 얼버무리고 경사 높은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준후를 볼 때마다 의대 동기가 떠올라 마음이 심란했다.

항상 자신만만했던 녀석.

나서기 좋아했던 녀석은 분에 넘치는 수술을 하던 중 자신의 실수로 환자를 죽이고 말았다.

죄책감에 못 이겨 레지던트 3년 차에서 수련을 그만두고 말았다.

그때 성민은 깨달았다.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 것인지를.

용기와 무모함의 경계는 항상 애매모호했다.

그 경계를 확실하게 구분 지을 수 없다면 매사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성민은 확신했다.

한편 같은 시각.

성민과 지혜가 첫 고개를 넘기도 전에 준후는 사건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선생님. 여기입니다. 여기!”

신고를 한 등산객으로 보이는 사내가 준후를 발견하고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준후가 사내와 합류했다.

바닥에 들것을 내려놓고 벼랑 앞에 섰다.

벼랑 아래는 뾰족하고 뭉툭한 기암절벽으로 되어 있었다.

경사까지 가팔라서 전문 산악인이 아니면 접근이 불가능해 보였다.

환자는 접시처럼 넓은 돌판 위에 대자로 뻗어 있었다.

척 봐도 상태가 위독해 보였다.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고 몸은 미동도 없었다. 복부 출혈이 더 심해졌는지 등산복 이너가 피범벅이었다.

환자의 수명 줄어드는 소리가 준후에게도 들리는 것 같았다.

“근데 이걸 어쩝니까……? 저 사람 쓰러진 곳까지 내려갈 방법이 없어요.”

“…….”

“제가 가보려고 했는데 어제 비가 와서 그런지 바위 표면이 엄청 미끄럽더라고요.”

사내는 환자의 보호자라도 되는 것처럼 안타까워했다. 정이 많은 사람 같았다.

“그래도 환자를 살리려면 내려가야죠.”

“선생님까지 다칠 것 같아서 불안한데요?”

“제가요? 다친다고요?”

되묻는 준후의 입가에 가소롭다는 미소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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