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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322화 (322/424)

322화

제62장 하늘을 날아서(2)

내공으로 두개골의 일부를 파괴하고서 준후는 다시 한번 환자의 뇌압을 점검했다.

‘됐어! 이만하면!’

준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전의 뇌가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위태로웠다면.

지금의 뇌는 매듭 부위가 살짝 풀려 바람이 빠져나가는 풍선처럼 덜 위험했다.

최악의 사태인 뇌탈출증.

이를 무공과 내공으로 슬기롭게 대처한 것이다.

비록 두개골이 부서졌지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인공 뼈를 활용해 두개골을 재건해 줄 수 있었으니까.

“복부 자상은 어때요?”

성민을 응시하며 준후가 다급하게 물었다.

뇌가 중요하다지만 사람이 뇌만으로 사는 것은 아니었다.

복부 상처를 케어하지 못해도 환자는 죽는다.

“자상 위치를 봤을 때는 간 문맥에 손상이 있는 것 같아요.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성민이 말끝을 흐렸다.

성민의 얼굴도 먹구름이 낀 것처럼 흐렸다.

“출혈은 잡혔나요?”

“한 80퍼센트 정도? 근데 손을 떼면 어떻게 될지 몰라요.”

성민은 환자의 복부에 수차례 붕대를 감은 후 그 위를 양손으로 지그시 누르고 있었다.

직접 압박법은 제법 효과가 있었다.

붉은 피의 확산이 잦아들었다.

준후의 시선이 간호사 지혜에게로 옮겨졌다.

지혜는 환자의 정맥과 연결된 수액에 새로운 주사제를 섞고 있었다.

약물을 때려 박아서라도.

환자를 살리려고 고군분투 중이었다.

약물이 추가로 투여되면서.

수액제가 한순간 뿌옇게 혼탁해졌다.

수액과 약물의 농도를 맞추기 위해 지혜가 수액제가 담긴 비닐을 격렬하게 흔들어댔다.

째각. 째깍.

준후는 머릿속에서 시계 분침이 돌아가는 소리를 들었다.

골든 타임은 얼마나 남았을까.

평소와 달리 감이 잡히지 않았다.

모든 것이 불투명했다.

복합 외상 환자를 진료하는 건 준후도 처음이었다.

준후는 고개를 좌우로 저어 불안을 떨쳐내고 환자를 양팔로 끌어안았다.

환자와 연결된 수액은 입으로 물었다.

“준후 쌤 뭐 해요?”

지혜가 놀란 고양이 눈으로 물었다.

“혼자서 이동하게요? 무리예요. 그러다 넘어지면 진짜 돌이킬 수 없어요. 나랑 들것으로 이동합시다.”

“아뇨. 제가 먼저 헬기로.”

수액을 입에 물고 있어서 발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준후는 말을 짧게 했다.

그리고 곧장 헬기가 있는 방향으로, 왔던 길을 거슬러서 달리기 시작했다.

“야! 이 새끼야 내가 호구로 보여? 계속 네 멋대로 할래? 도와주러 왔으면 돕기나 하라고.”

등 뒤에서 성민의 욕지거리가 들려왔지만 깔끔하게 무시했다.

환자만 살릴 수 있다면.

욕에 한 트럭 가까이 파묻혀도 상관없었다.

보법인 청풍보를 밟는 준후의 신형은 자동차와 같았다.

주변의 풍경이 휙휙 지나갔다.

정면에서 거센 바람이 불어와 준후의 머리카락을 사정없이 흔들어 놓았다.

얼굴이 따갑고.

귀까지 먹먹해질 지경이었다.

준후는 바람에 저항하고 있었으며.

동시에 환자에게 예정된 죽음에도 저항하는 중이었다.

소중한 것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적과 전심전력으로 싸워야 하는 법이었다.

모용평.

내가 비록 너는 살리지 못했지만 너와 비슷한 이 사람은 반드시 살리마.

내가 예전과는 다르다는 걸 보여줄게.

청풍보 덕분에 준후는 눈 깜짝할 사이에 계류장으로 복귀했다.

환자를 침상에 눕히고 치료를 준비했다.

가장 기본은 환자 감시 장치를 연결해 바이탈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 덩치 큰 환자를 혼자 이송하셨어요?”

헬기 조종사가 고개를 돌려 치료실 쪽을 바라보았다. 목소리에 놀란 기색이 담겼다.

“네.”

“다른 분들은요?”

“뒷정리하고 오는 중일 겁니다. 오는 대로 이륙 준비해 주세요.”

환자에게 전선을 연결하고.

준후는 모니터를 응시했다.

혈압은 160mmHg/140mmHg.

체온은 37.7도.

맥박은 분당 130으로 빈맥.

호흡은 분당 14회.

산소 포화도는 92퍼센트.

심전도 그래프 상에는 QTc 간격 연장되는 파동이 보였다.

전반적인 결과가 명확히 출혈 소견을 가리키고 있었다.

사실 환자의 상태에 비하면 바이탈이 심각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심할 수는 없었다.

환자에게 각종 주사제를 처바르지 않았던가.

약빨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간 문맥 파혈이라고 했지?’

준후는 피에 젖은 붕대가 감긴 환자의 상복부를 내려다보았다.

피하 출혈은 멈췄을 테지만.

장기 출혈은 그대로일 것이다.

환자를 수술방까지 무사히 데려가려면 근본적인 지혈이 필요했다.

팟! 팟! 팟! 팟!

준후의 검지가 번개처럼 환자의 상복부 이곳저곳을 찔렀다.

얼핏 위중한 환자를 두고.

장난치는 것처럼 보였지만 준후는 지혈 점혈을 펼치고 있었다.

목적지는 위장과 비장의 혈액이 간으로 흘러 들어가는 간문맥.

간 문맥은 더없이 중요한 혈관이었다. 간으로 들어오는 혈액의 75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었다.

출혈이 발생하면 대참사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준후의 검지가 간 문맥에 위치한 복부를 찌르자 찢어진 혈관이 쪼그라지듯이 오므려졌다.

내공으로 혈관을 수축시킨 것이다.

점혈이 만능은 아니었다.

혈관은 언젠가 다시 팽창해서 출혈을 일으킬 것이다.

하지만 수술 시간을 버는 용도로는 지혈 점혈만큼 탁월한 수법이 없었다.

준후가 환자 상태를 재차 살피던 도중.

성민과 지혜가 뒤늦게 합류했다.

헬기에 오른 두 사람은 헥헥 거리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이 개기름을 바른 것처럼 번들거리고 있었다.

“선생님. 헬기 이륙해 주세요. 최대한 빨리요.”

“네.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쾅!

헬기 문이 닫히고 헬기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하늘길을 따라 병원으로 직행했다.

* * *

‘젠장, 꼬투리 잡을 게 없네.’

성민은 환자를 살피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사실 준후가 무모하게 혼자서 환자를 이송하다가 환자를 넘어뜨릴 거라고 생각했다.

100킬로그램은 족히 되어 보이는 거구의 환자였다.

그를 양팔로 안고 가파른 산길을 질주하는데 사고가 안 터지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닌가.

그런데 그 이상한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말았다.

준후는 환자를 무사히 헬기까지 이송했다.

넘어진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넘어졌다면 환자와 준후의 옷에 흙이 묻어 있었을 테니까.

“환자 바이탈이 예상외로 안정적이네요.”

지혜가 환자 감시 장치 모니터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혹시 추가할 약물이 있을까요?”

“아뇨. 일단 현 상태를 유지하죠. 약을 너무 많이 써도 과부화가 걸릴 수 있으니까요.”

성민은 손에 쥐고 있던 붕대를 슬며시 구급함에 올려놓았다.

이상한 일은 또 있었다.

간 문맥이 파열이 의심되는 상황이라서 환자의 상복부 출혈이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런데 웬걸?

출혈이 어느새 그쳐 있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그래서일까.

환자의 간 문맥이 정말 파열된 것이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선생님. 제 행동이 불쾌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준후가 느닷없이 사과를 했다.

“갑자기요?”

“가만 생각해 보니까 선생님 입장에서는 제 행동이 무모하게 보였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요. 절벽에서 뛰어내린 것도 그렇고. 혼자서 환자를 이송한 것도 그렇고요.”

“그걸 다 알면서 그랬어요?”

성민이 준후에게 핀잔을 주었지만 목소리는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준후 선생님이 벼랑에서 떨어져서 다쳤거나 환자를 이송하다가 넘어지기라도 했어 봐요. 그 뒷감당 누가 합니까?”

“…….”

“그거 다 내가 욕먹는 거라고요. 그거 다 내가 독박 쓰는 거라고요. 그러니 잔소리 안 하게 생겼어요?”

“그래서 사과드리는 겁니다. 진심으로.”

산에서와 달리 준후의 눈빛에 독기가 빠져 있었다.

지금의 준후는 순한 양 같았다.

도저히 아까와 같은 사람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였다.

“사람을 살리고 싶은 혈기는 이해하는데 그래도 선은 지켜야죠. 용감하다고 해서 항상 오늘처럼 결과가 좋은 건 아닙니다.”

성민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설마 앞으로도 계속 이럴 건 아니죠?”

“아뇨. 계속 이럴 건데요.”

“참나. 반성하고 있는 거 아니었습니까?”

준후의 대답이 어이없어서 성민이 혀를 찼다.

이 인간이 지금 나를 놀리나?

아주 들었다 놓았다 하는구먼?

“제 능력을 두 눈으로 보셨잖아요. 제 입으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저는 남다른 피지컬을 타고났습니다.”

“…….”

“제가 한 행동들이 단순히 우연으로 보이시나요?”

준후가 역으로 되물었고 성민은 할 말을 잃었다.

색안경을 빼고 봤을 때.

준후의 활약을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하기는 힘들었다.

정말 강인한 피지컬을 타고 난 것인지.

환자 이송부터 구출까지.

준후는 경이롭고 완벽한 모습을 선보였다.

“성민 쌤. 준후 쌤한테 너무 뭐라고 하지 마세요. 준후 쌤 아니었으면 환자는 아직 벼랑 아래에 있었을 걸요?”

잠자코 있던 지혜가 대화에 껴들었다.

이에 성민의 눈썹이 이마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지금 준후 선생님 편드는 겁니까?”

“에이. 누구 편들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잖아요. 사실을 말한 것뿐인데.”

“…….”

“벼랑의 경사와 높이를 생각해 보세요. 우리 힘만으로 환자를 구출하는 건 불가능했어요. 119 산악 구조대가 추가로 출동했어야 했다고요.”

지혜의 지적에 성민은 입을 꼭 다물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사실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어? 여기 뭐가 떨어져 있네요.”

준후는 허리를 숙이며 바닥에서 무언가를 주워들었다.

꼬깃꼬깃 접힌 종이쪽지였다.

치료 도중 환자의 바지 주머니에서 빠져나온 것으로 보였다.

준후는 종이를 펼쳐 눈으로 훑었다.

[혜인이 엄마. 그리고 혜인이에게 미안합니다. 부모님과 친구들에게도 모두 미안합니다.

나는 더 이상 살아갈 자격이 없는 쓰레기입니다.

차라리 죽는 편이 좋겠습니다.

내 사업 빚으로 주변 사람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대체 언제까지 지켜봐야 합니까?

다른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내 죄는 내가 달게 받고 세상을 떠나겠습니다.

더 이상 내 가족들은 괴롭히지 마세요.]

환자의 유서를 다 읽고 나서 준후의 가슴이 쓰라렸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다.

자연의 이치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그 어려운 일을 시도한다는 것은 그만큼 삶을 버텨내기 힘들었다는 뜻이었다.

이런 선택을 하기까지.

환자가 겪었을 심적인 고통을 준후는 차마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준후는 입술을 꽉 깨물고 성민에게 유서를 전했다.

차오르는 슬픔을 견디는데.

손등에 예상치 못한 촉감이 전해졌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준후는 환자를 쳐다보았다.

“으으으으.”

환자의 벌어진 입술에서 옅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환자는 어느새 눈을 똑바로 뜨고 있었다.

“여…… 여기는 어디죠?”

“헬기 안입니다. 지금 병원으로 이동 중이에요.”

“의사 선생님?”

“네. 의사입니다. 저희를 알아보시겠어요?”

환자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준후 손등 위에 얹었던 손에 힘을 주었다.

다만 그 악력은 신생아보다 미약했다.

“선생님…… 저 살고 싶어요. 혜인이랑 혜인이 엄마…… 그리고 가을이가 보고 싶어요. 잠깐 바보짓을 했나 봐요…….”

순간 환자의 얼굴이 햇살처럼 밝아졌다.

환자는 제법 또렷한 목소리로 정확히 의사 표시를 했다.

퍽 긍정적으로 보이는 신호였건만 준후는 오히려 두려움을 느꼈다.

회광반조.

해가 지기 직전에 일시적으로 햇살이 강하게 비추는 현상.

더불어 사람이 죽기 직전에 잠시 생기를 되찾는 현상.

환자에게서 회광반조를 느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환자는 금방 눈을 감았고 사지가 축 늘어졌다.

심전도 그래프는 일(一)자로 퍼져 버렸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다급한 비프음을 쏟아내는 환자 감시 장치.

공기가 또다시 차갑게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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