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화
제63장 방법(1)
성민이 외상센터로 복귀했을 때.
스테이션에 턱이 날카롭고 깡마른 사내가 앉아 있었다.
모니터를 응시하는 사내의 눈빛이 독수리의 눈빛처럼 날카로웠다.
“교수님. 뭐 하십니까?”
성민이 사내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사내의 이름은 신일섭, 외상센터 조 교수였다.
“잠깐 작업 중이었지. 이게 의외로 골치가 아프구나.”
“엥? 엑셀 작업 중이셨어요?”
일섭 곁에선 성민이 모니터를 보고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작업이라고 하면…….
당연히 논문 작업 중일 거라고 예상했건만.
하지만 신일섭은 외상센터의 이번 달 의국비를 정산하고 있었다.
“이건 교수님이 하실 일이 아닙니다. 제가 오늘 오후까지 마무리 짓겠습니다.”
“사람도 부족해 죽겠는데 내 일, 네 일이 어딨니? 그런 거 다 따지면 우리한테 내일은 없다.”
일섭이 피식 웃으며 농담을 했다.
잡일을 하는 일섭의 모습에 성민의 가슴이 따뜻해졌다.
병원에서 인원이 가장 부족한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외상외과가 꿋꿋이 버티고 있는 이유.
그것은 일섭이 든든하게 중심을 잡아주기 때문인지 모른다고 성민은 생각했다.
하지만 감동적인 멘트에 비해.
일섭의 작업은 더디기만 했다.
영수증을 한 번 보고, 모니터를 한 번 보고, 키보드를 한 번 보면서 거북이처럼 작업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엑셀의 다양한 기능을 일섭은 손톱만큼도 써먹지를 못했다.
“교수님. 의국비 정산은 제가 할 테니까 다른 일을 하시는 건 어떨까요?”
“왜? 내가 답답해 보이냐?”
“하하하.”
성민은 어색하게 웃었다.
웃음만으로 충분히 대답이 되었을까.
일섭도 본인 솜씨가 민망했는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자리에 성민이 앉았다.
“그나저나 수술이 꽤 일찍 끝났구나. 오전에 등산객 환자 말이다. 혈복강에 혈종까지 있던데.”
“…….”
“난 최소한 3시는 되어야 끝날 줄 알았어. 헬기 이동 시간도 있으니까 말이야.”
일섭이 벽시계를 응시하며 말했다.
현재 시간은 오후 1시였다.
“정상적인 스케줄이라면 지금 시간에 혈종 제거술을 하고 있었겠죠.”
“내 말이 그거란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거니?”
“신경외과에 서준후라고 2년 차 레지던트가 있는데요. 그 친구가 아주 물건입니다.”
성민은 준후에 대한 칭찬을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았다. 꼭 자기 자식 자랑에 열을 올리는 팔불출 부모 같았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준후의 활약이 성민의 가슴에 워낙 강렬한 흔적을 남겼으니까.
이야기를 듣는 내내.
일섭은 건성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별다른 호응이나 질문도 없었다.
“혹시 제가 허풍 치는 것처럼 들리시나요? 저는 과장은 1도 안 섞었는데요.”
일섭이 대화에 집중을 못 했기에.
성민이 서운하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오히려 진짜라서 마음이 심란하구나. 놓치기에는 너무 아까운 인재야.”
“…….”
“우리 외상센터에 신경외과 출신이 없는 건 너도 잘 알고 있지?”
“네. 그래서 두개 외상 환자는 매번 신경외과 신세를 지고 있죠.”
외상센터는 전문의 자격을 획득한 외과의사가 지원할 수 있었다.
대전 신원대 병원의 경우.
소화기 외과 전문의 출신이 가장 많았고 그다음이 정형외과 출신이었다.
“준후라는 친구 말이다…… 신경외과 수련 끝났을 때 우리 과로 픽업하면 딱일 것 같은데. 네 생각은 어떠니?”
“그럼 판타스틱이죠. 저도 엄청 든든할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천천히 작업을 해보마.”
“교수님께서 직접 말씀입니까?”
성민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일섭이 스카우터를 자처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물건을 훔치는 건 반드시 죄가 되지만 사람을 훔치는 건 때때로 죄가 안 될 때도 있지.”
일섭이 성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 * *
신경외과 중환자실.
병실에 누워 있던 철우는 붕대가 둘둘 감긴 머리에 손을 가져가다가 중간에 멈췄다.
정수리 쪽이 간지러웠지만.
의사가 손을 대지 말라고 했던 것을 떠올린 것이다.
과도로 배를 찌르고.
벼랑 아래로 떨어지며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것이 벌써 열흘 전 일이었다.
그런데 철우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복부에서 피를 한 대야 가까이 쏟아내고 머리가 박살 났음에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 철우는 신기했다.
“몸은 좀 어떠세요?”
잡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침상 옆에 서서 말을 걸었다.
배우처럼 잘 생긴 청년의 정체는 주치의 준후였다.
철우가 의식을 차렸을 때 간호사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준후가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라고.
“감사합니다. 선생님.”
“저는 환자분 몸 상태를 여쭸는데요?”
“감사는 아무리 많이 해도 부족하지 않은 법이죠. 몸 상태라면 많이 좋아졌습니다. 아직 혼자서 거동은 못 하겠지만…… 그래도 머리가 맑은 느낌입니다.”
“다행이네요. 두개골 성형술 경과도 아주 좋습니다. 슬슬 일반 병실로 가시죠.”
“중환자실에 조금 더 있으면 안 됩니까?”
철우가 애절한 눈빛으로 물었다.
“가족분들을 만날 용기가 아직 안 생기셨나요?”
철우가 준후의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중환자실 바깥에 위치한 보호자 대기실에 가족이 있었다.
보고 싶은 사람들이고.
철우가 사경을 헤맬 때 등대가 되어준 사람들이지만.
지금은 어쩐지 가족을 보는 게 껄끄러웠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게 부끄러워서인지.
미안해서인지.
죄책감을 느껴서인지.
가족들 볼 면목이 없는 이유가 워낙 다양해서 한 가지를 꼬집을 수 없었다.
“환자분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평생 중환자실에서 있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닙니까?”
“뭐…… 그거야 그렇죠.”
“아내분도 그렇고. 따님도 그렇고. 환자분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어요. 이제 용기를 내셔야 해요.”
철우를 내려다보는 준후의 눈빛이 단호했다.
어쩌면 준후의 말이 맞을지 몰랐다.
남은 인생에 가장 필요한 것은 용기일지 모른다.
살아갈 용기.
막대한 빚에 맞설 용기.
자신의 나약함을 피하지 않는 용기.
다 죽은 줄 알았던 용기에 조금이나마 숨이 붙어 있었던 건 걸까.
철우는 더 이상 준후의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준후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일반 병실 가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어요. 지금 바로 가시죠.”
“벌써요?”
“사실 전실 신청을 벌써 해뒀거든요.”
뭔가 속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물은 이미 엎질러졌다.
준후가 침상을 끌고 중환자실을 복도로 나왔다.
침상에 누운 채 철우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살폈다.
수십 명의 사람 속에서도 철우의 눈은 어렵지 않게 한 사람을 찾아냈다.
며칠 못 잔 것처럼 눈빛이 퀭하고 눈 밑이 거뭇거뭇한 여인.
긴 머리를 뒤로 질끈 묶고 하염없이 천장만 올려다보고 있는 여인.
금반지로 프로포즈를 했을 때.
뭐 이렇게 쓸데없이 비싼 걸 샀냐고 타박했던 생활력 강한 여인.
나의 아내.
아내가 철우를 발견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쪽으로 달려왔다.
그러자 준후가 침상을 멈추어 두 사람이 재회할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
“…….”
서로의 눈빛이 오랫동안 교차했다.
비록 둘 다 목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셀 수 없을 만큼에 복잡한 대화가 오고 갔다.
철우가 먼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미안해. 여보……. 정말 미안해.”
“바보. 등신. 힘들면 힘들다고 말을 해야 할 거 아니야. 왜 맨날 혼자서 속을 끓이고 있어?”
“…….”
“빚지고도 열심히 잘 살고 성공하는 사람도 있는데. 왜…….”
아내도 철우를 타박하다가 이내 눈물을 흘렸다. 흐느껴 울며 철우의 손을 꼭 움켜쥐었다.
부부가 눈물로 재회하자 주변의 시선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두 사람 다 개의치 않았다.
두 사람은 두 사람만의 특별한 공간에 있었으니까.
하지만 서로 할 말이 너무 많았으므로.
오히려 대화가 더 이어지지 못했다.
그때 준후가 나섰다.
“회포는 병실에 가서 푸시는 게 더 좋겠네요. 일단 병동으로 가시죠.”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착한 신경외과 병동.
준후는 철우는 6인실 병실에 창가 자리로 데려갔다. 철우의 아내는 중간에 화장실을 간다고 해서 빠져나갔다.
아마 지금쯤 세면대 앞에서 펑펑 울고 있으리라.
한편 철우는 환자복 소매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연신 코를 훌쩍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준후도 괜히 코끝이 찡했다.
재회에는 언제나 사람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었다.
어쩌면 자신이 서전을 계속하도록 밀어주는 원동력.
그 원동력이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준후는 생각했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싶다는 욕심 말이다.
포기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나도, 환자도.
준후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철우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장면들이 촤라락 영화처럼 머릿속에 재생되었다.
그 시간들은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다.
“아내 분과는 만나셨고. 혜인이와 가을이도 곧 보시겠네요.”
“그걸 선생님이 어떻게…….”
“본의 아니게 환자분 주머니에 있던 유서를 봤습니다.”
유서 이야기에 철우의 얼굴이 취한 듯 붉게 물들었다.
“혹시 그거 아직까지 갖고 계시나요?”
“처리해드릴까요?”
“아니요. 갖고 계시면 돌려주셨으면 해서요.”
철우의 대답이 뜻밖이었다.
준후는 당연히 철우가 유서를 제거해달라고 할 줄 알았다.
유서는 철우의 깊은 상처였다.
그리고 상처를 마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었다.
“이유를 여쭤 봐도 될까요?”
“정신을 차리고 싶어서요. 앞으로 힘들 때마다 유서를 볼 생각입니다. 죽을 각오로 살다 보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습니까?”
철우의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컨설팅(협진)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 보였다.
준후는 고개를 끄덕이고 가운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유서를 꺼내 철우에게 건넸다.
철우가 건네받은 유서를 빤히 쳐다보았다.
철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준후는 알 수 없었다.
“혹시 따님이 두 분인가요?”
준후가 화제를 돌렸다.
“아뇨. 딸 아이는 한 명입니다.”
“아, 그럼 가을이는 남자아이였군요.”
“가을이는 남자아이가 아닌데요?”
철우의 대답이 준후는 어리둥절했다.
세상에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성별이 존재한단 말인가 싶었던 것이다.
그런 준후의 표정을 읽고 철우가 키득키득 웃었다.
“가을이가 누군지 궁금하시죠?”
“네.”
“사실 가을이는…… 저희 집 애완견입니다. 가을에 집에 데려와서 가을이죠.”
철우의 대답을 듣고 준후도 허탈하게 웃었다.
애견인이 아니다 보니 유서에 강아지 이름이 나올 줄은 몰라서, 가을이 당연히 사람인 줄 알았던 것이다.
뭔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때마침 화장실에서 철우의 아내가 돌아왔다.
아까와 달리 두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두 분이서 좋은 말씀 나누시고요. 혹시라도 몸이 불편하시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철우와 철우 아내의 인사를 받으며 준후는 병실을 나섰다.
당직실로 복귀하니 괴짜 2년 차 동기 서진이 심각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야, 너 뭐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