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9화
제63장 방법(4)
정혜가 식탁에 올려놓은 것은 한 장의 하얗고 빳빳한 종이였다.
며칠 전 끊은 남편의 진단서였다.
병원 이름은 성종병원.
현우가 정혜의 집에 오는 길에 지나쳤던 곳으로 교통사고 환자를 전문으로 보는 병원이었다.
진단명은 뇌 외상으로 인한 식물인간이라고 적혔고.
그 옆에 ‘780.03’이라는 질병 코드가 붙어 있었다.
“이걸 저한테 왜…….”
“그냥……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정혜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는데 목소리에 울먹임이 섞여 있었다.
남편이 조금도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암울한 미래에 서러움이라도 느낀 걸까.
준후도 코끝이 시큰해졌다.
저 애타는 마음을 모를 수가 없었다.
성호의 뇌사를 인정할 수 없어서 내공으로 치료하다가 혼절까지 한 준후다.
아직도 그때가 떠오르면…….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괜찮으세요? 대화가 힘드시면 잠시 쉬셔도 좋습니다.”
“아니에요. 계속해요. 어차피 앞으로 계속 이겨내야 하는 걸요.”
정혜가 처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준후는 일부러 본론으로 들어가지 않고 정혜의 이야기를 30분 정도 들어주었다.
우선 정혜 가슴에 맺힌 응어리부터 풀어주고자 했다.
다행히 정혜의 표정이 차차 풀렸다.
“제가 사실 단순히 위로만 드리려고 이 자리에 온 건 아닙니다.”
준후가 깍지 낀 양손을 식탁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그럼 왜…….”
“경제적으로 많이 힘든 상황이시잖아요. 남편분 치료하고 간병하는 데 한두 푼이 드는 것도 아니고.”
“그거야 그렇죠.”
정혜가 입술을 꼭 깨물며 대답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듯.
“경제적으로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만…… 괜찮으실까요?”
“아니에요. 선생님이 저희 집을 찾아와주신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고 또 큰 응원을 받았는걸요. 이 이상 뭐를 더 바라겠어요. 그럼 도둑놈이죠.”
정혜가 한사코 거절했지만 준후는 그래서 더 정혜를 챙겨주고 싶었다.
“도움 받는 일은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정혜 님 주머니 사정이 든든해야 마음이 든든해지고. 그게 또 남편분의 호전으로 이어지지 않을까요?”
“이럴 줄 알았으면 선생님께 메일을 보내지 말 것 그랬네요.”
“에이, 그런 말씀 마세요.”
준후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동안 남편분께 쏟은 정성을 보답 받는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그럼 마음이 더 편해지실까요?”
“선생님.”
“그럼 받는 걸로 알고 있겠습니다.”
준후가 웃었고 정혜는 죄송스럽다는 듯 준후의 시선을 피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식탁을 휘감았다.
벽걸이 시계의 째깍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경제적으로 힘든 보호자를 물질적으로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이 준후는 뿌듯했다.
뉴튜브를 시작한 보람도 느꼈다.
얼마 전 ‘가난에도 이자가 붙는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충치 하나를 치료할 돈이 없으면 나중에 더 큰 돈으로 임플란트를 해야 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을 돈이 없으면 나중에 각종 성인병으로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식의 글이었다.
외상이야 빈자와 부자에게 공평하게 벌어지지만.
질병은 빈자에게 유독 냉혹한 경향이 있었다.
아프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은 얼마나 절망적인가.
“후원비는 오늘 오후쯤에 지원해드릴 거고요. 한 가지 제안을 추가 하고 싶습니다.”
“제안이요? 무슨 제안이요?”
뜻밖의 제안에 정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호자분이 허락만 해주신다면 채널 구독자분들에게 후원을 받을까 합니다.”
준후가 제안을 설명했다.
지금 당장 뉴튜브 실시간 스트리밍을 실시한다.
시청자들에게 정혜의 사연을 소개한다.
시청자의 후원이 들어오면 그 금액을 추가로 정혜에게 지급하겠다는 것이었다.
정혜의 주머니를 최대한 두둑하게 해주기 위해서 준후가 사전에 계획한 일이었다.
며칠 전 SNS에 미리 후원 방송에 대한 운을 넌지시 띄워 놓았던 것이다.
“그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정혜가 의외로 고민 없이 수락했다.
이번에 놀란 쪽은 준후 쪽이었다.
준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얼굴과 집안이 공개될 겁니다. 불편하거나 불쾌한 기분이 드실 수도 있어요.”
“그 정도는 감수해야죠. 저도 남편을 위해 힘을 내기로 결심했답니다.”
준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실시간 방송을 시작해 볼까요?”
* * *
SNS에 공지했던 대로 준후는 뉴튜브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
촬영을 위해 따로 구입한 휴대폰을 꺼내 거치대에 고정하고 거치대를 손에 쥐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실시간 방송은 오래간만이죠?”
셀카 모드로 본인의 얼굴을 촬영하며 준후가 말했다.
채팅이 오뉴월 장맛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오늘이 선생님 돈쭐 내주는 날인가요? 총알은 충분히 장전해뒀습니다. ㅋㅋㅋㅋ]
[라이브 방송 자주 해주세요. 보고 싶어요. ㅠㅠ]
[와! 얼빡 샷! 이건 귀중하네요.]
준후는 채팅을 읽으며 시청자들과 소통하다가 본론을 꺼냈다.
정혜와 정혜 남편의 사연을 소개했다.
그다음으로 휴대폰을 촬영 모드로 전환해서 정혜를 촬영했다.
실시간 뉴튜브 방송이 부담스러울 텐데도 정혜는 의외로 담담하게 본인 이야기를 했다.
시청자들이 그런 정혜를 의연하다며 한껏 치켜세웠다.
“이제 안방에 들어가 봐도 될까요?”
“네. 그럼요.”
준후는 휴대폰이 고정된 거치대를 들고 문제의 안방으로 들어갔다.
안방은 집안의 옹색함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벽지는 누렇게 색이 바랬다.
천장 한 귀퉁이에는 새까만 곰팡이가 끼었으며 몇 안 되는 가구들은 전부 낡고 칠이 벗겨졌다.
정혜의 남편.
영식은 담요가 깔린 방 중앙에 누워 있었다.
영양 섭취를 위해 코에 비위관(콧줄)이 삽입되어 있었고, 왼쪽 팔에 수액이 연결이 되어 있었다.
최근에는 면도를 하지 못했는지 인중과 턱 근처에 거뭇거뭇하게 수염이 자라 있었다.
준후는 환자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보호자의 정성 때문인지 환자는 겉으로는 꽤 멀쩡해 보였다.
환자 상의를 살짝 위로 걷고 몸을 옆으로 뒤집어 보았는데 욕창의 흔적은 없었다.
다리와 팔도 마찬가지였다.
“대소변은 기저귀로 해결하시죠?”
“네. 음식을 못 먹으니까 치울게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그래도 대소변 치우는 게 어디 보통 일인가요?”
준후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설령 가족이라도 똥오줌을 치우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그런 일을 하다 보면 입맛이 달아나기 일쑤였다.
“요양 보호사님은 언제부터 언제까지 근무하시죠?”
“보통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봐주세요. 시간대에 맞는 분을 구하는 것도 어렵고…….”
정혜가 땅이 꺼져라 한숨 쉬며 말을 이었다.
“일을 제대로 해주시는 분을 찾기도 힘들더라고요. 좋은 분들도 많긴 한데. 일을 하러 오신 건지 놀러 오신 건지 모를 분도 많아서요.”
“저도 그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채팅창을 확인하니 다들 ‘ㅠㅠ’로 도배를 하거나 못된 요양 보호사에 대한 분노를 성토하는 내용의 댓글이 이어졌다.
누가 준후의 채널 구독자가 아니랄까 봐.
다들 감수성이 풍부하고 정의로운 성향을 보였다.
‘그럼 본 게임은 지금부터인가?’
준후는 고개를 좌우로 꺾으며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굳이 집을 방문한 이유는…….
단순히 정혜를 금전적으로 돕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의사로서 확인해 보고 싶은 것도 있어서였다.
식물인간 환자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었다.
하나는 의식 없는 식물인간 상태.
다른 하나는 의식 있는 식물인간 상태.
후자의 경우 매우 특별한 경우로 환자는 주변 사람들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즉, 의식은 깨어 있는데 몸과 입만 못 움직이는 상태다.
식물인간 환자가 기적적으로 회복하는 경우는 대부분 이 케이스에 해당될 때였다.
-환자분 제 목소리 들리세요? 들리신다면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여보시겠어요?
준후는 곧바로 영식에게 전음을 날렸다.
전음입밀.
내공으로 상대방 머릿속에 말을 거는 일종의 텔레파시와 같은 무공이었다.
파르르르.
전음이 끝나기 무섭게 영식의 몸이 희미하게 떨렸다.
마치 준후의 전음에 반응하는 것처럼.
준후는 어둠 속에 비치는 한 줄기 햇살을 본 것도 같았다.
-환자분, 의식이 있는 거죠? 지금 상황이 많이 당황스럽겠지만 실제 상황입니다. 저는 환자분의 머릿속으로 말을 걸고 있어요.
두 번째 전음에 환자가 또다시 반응을 했다.
그런데 준후가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반응이었다.
환자의 팔뚝에 오소소 닭살이 돋았다.
갑자기 호흡이 빨라져 요골동맥에 손가락을 촉지해 보니 맥박이 미친 듯이 뛰었다.
환자는 마치 준후를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전음 때문에 놀란 건가?
하긴 처음 보는 사람이 머릿속으로 말을 건다고 하면 당혹스러울 수도 있겠지.
환자의 반응을 무심하게 넘기려던 그 순간.
준후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았다.
그것은 환자의 입 쪽에서 일어난 아주 사소하면서도 미묘한 변화였다.
그 ‘변화’를 인지한 순간.
준후의 얼굴이 매섭게 일그러졌다.
손에 쥐고 있는 거치대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팔이 부들부들 떨릴 지경이었다.
이러다간 거치대를 부술 것 같아서 준후는 간신히 힘을 조절했다.
“보호자분.”
“네. 선생님.”
“아무래도 제가 오늘 남편분을 깨우는 기적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정혜의 눈이 부엉이처럼 휘둥그레졌다. 동시에 채팅창도 폭발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이번에는 선 넘으신 것 같아요. 식물인간인 환자분을 무슨 스로 깨워요? 아내 분 상처받을 것 같아요 ㅠㅠ]
[에이. 아무렴 이건 아니죠. 잘 나가시다가 갑자기 왜 삐딱선을…….]
[아내분에게 당장 사과하세요. 방금 그건 너무 질 나쁜 농담이에요.]
준후 편이었던 시청자들이 단번에 준후에게 등을 돌렸다.
총 시청자의 20퍼센트가 일순간에 싹 빠져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준후는 결코 말을 주워 담지 않았다.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입을 가볍게 놀린 적이 없습니다. 제가 가능하다고 하면 가능한 거예요.”
준후는 채팅창을 보며 단호하게 말했고 곧 시선을 정혜에게 돌렸다.
정혜의 표정은 오묘했다.
준후가 농담을 한 건지, 농락을 한 건지 분간이 안 된다는 얼굴이었다.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화려한 네일로 본인의 바짓단을 긁어대고 있었다.
“외과 의사인 선생님이 당연히 저보다 많은 걸 알겠지만요…… 식물인간이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게 가능한가요?”
“…….”
“그런 기적은 예수님만 가능한 게 아닌가요?”
“오늘만큼은 저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너무하세요…… 위로하러 와주신 줄 알았는데 지금 저를 놀리고 계시잖아요.”
정혜의 목소리에 섭섭함이 듬뿍 담겼다.
시청자들 역시 준후의 무례한 화법에 분노하기 시작했다.
준후는 졸지에 공공의 적이 되었다.
“누가 누구를 놀리고 있었는지는 금방 판별이 되겠죠. 다들 눈으로 직접 확인하세요. 식물인간 환자가 30초 안에 깨어나는 마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