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공 쓰는 외과 의사-330화 (329/424)

330화

제63장 방법(5)

준후의 버릇없고 무례한 행동에 채팅창은 당장에라도 폭발할 듯했다.

[이 사람 지금까지 위선 떨고 있었던 건가요? 완전 실망. 대 충격! 바로 구독 삭제 갑니다.]

[이 사람도 딱 보니까 우정호인가 하는 그 뉴튜버랑 똑같음. 속은 더럽고 지저분한데 세상 착한 이미지로 방송 세탁하는 거지.]

[터질 인성은 결국 터지는구나. 잘 가라. 다시는 보지 말자.]

슬쩍 살핀 채팅창이 불바다에 매운맛이었다.

하지만 준후는 손톱만큼도 시청자들을 탓하지 않았다.

인간이란 원래 그런 동물이었다.

‘의심’을 안 하게끔 만들어진 동물이었다. 누가 00라고 말하면 00이 철썩 같은 줄 알고 믿는 동물이었다.

‘의심’을 하는데도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하나하나 ‘의심’하다 보면 아무것도 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과 달리 준후는 ‘의심’이 기본 소양이었다.

사파 출신이 아니라 오히려 정파 출신이라서 그랬다.

사파 출신은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시키는 대로.

명령받은 대로 살면 되니까.

하지만 정파에는 온갖 계략과 배신, 음모가 판을 쳤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료가 되고, 오늘의 동료가 내일의 적이 되었다.

어찌 보면 정치판과도 비슷했다.

그 부드럽고도 잔혹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준후는 ‘의심’하는 능력을 길러 왔다.

준후의 후속 행동에 모두의 관심이 쏠린 가운데.

마침내 준후가 움직였다.

준후의 양손이 영식을 향해 서서히 뻗어 나갔다.

방 안의 공기가 팽팽하고 무거워졌다. 정혜가 준후를 지켜보며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이윽고 벌어진 일에 채팅창은 다시 한번 요동쳤다.

[이 새끼 완전 돌았네. ㅋㅋㅋㅋ]

[얘 외과의사 맞나요? ㅋㅋㅋㅋ 저 지능으로 외과의사 될 수 있나요? ㅋㅋㅋㅋ]

[오늘부터 의대 들어갈 준비한다. 의대 딱댘ㅋㅋㅋㅋㅋㅋㅋ]

채팅창의 반응이 좀 전과는 180도로 달라졌다. 불바다가 아닌 웃음의 파도가 몰아쳤다.

준후는 졸지에 분노의 대상이 아닌 조롱의 대상으로 탈바꿈되었다.

왜냐고?

준후가 영식의 양쪽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간지럼을 태우고 있었던 것이다.

실로 눈으로 보기 민망한, 사이비 의사도 차마 따라 하지 못할 우스꽝스러운 행동이었다.

신경외과 의사란 작자가.

식물인간 환자를 간질이며 깨우겠다고 하면 그걸 누가 믿겠는가.

코미디 영화 속이라면 혹 모를까.

그런데도 주변의 반응을 가볍게 무시하며 준후는 영식을 계속 간질였다.

잠시 후 터진 기적적인 이벤트.

“풋.”

영식의 입이 벌어지며 외마디 웃음이 튀어나왔다.

그 의미를 알아챈 소수의 시청자들이 느낌표를 남발했다.

비극의 주인공처럼 서글픈 표정을 짓고 있던 정혜의 얼굴은 와락 일그러졌다.

모든 것이 준후의 계획대로였다.

* * *

실수로 웃음을 터뜨리기 10분 전.

영식은 속으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뭐 하는 인간이지? 사람 맞아? 초능력자 아닌가?’

준후가 머릿속으로 보내온 목소리를 듣고 영식의 간은 아랫배까지 떨어질 뻔했다.

이런 전개는 정혜와 사전에 입을 맞춘 바가 없었다.

크게 당혹스러웠다.

사실 영식은 식물인간이 아니었다.

일상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물론 교통사고를 당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부상은 경미해서 다 나았고 식물인간 상태는 철저한 연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도대체 왜?

식물인간 행세를 했냐고?

설명하면 입이 아프게도 그 이유는 당연히 돈 때문이었다.

보험금에 눈이 멀어 시작했고 곧 각종 의료 지원 및 취약자 지원을 쏠쏠하게 빼먹었다.

“오빠. 우리 이번에 크게 한탕 하자. 내가 쌈박한 호구 하나 발견했어.”

영식이 사설 게임장에서 돈을 다 잃고 돌아온 어느 날 저녁.

집 앞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을 때 마주친 정혜가 한 말이었다.

쇼핑을 다녀왔는지 정혜의 양손에는 고급 브랜드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호구? 무슨 호구?”

“서준후라고 100만 뉴튜버에 신경외과 의사야. 커뮤니티 보니까 사연 있는 사람은 개인적으로도 잘 돕는다더라.”

“난 반대.”

영식은 고개를 좌우로 젓고서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바람이 역방향으로 불어 연기를 전부 영식이 뒤집어썼다.

영식은 콜록콜록 기침하다가 바람에서 등을 돌렸다.

“왜? 돈 벌기 싫어? 우리 오빠 벌써 배가 불렀나?”

정혜는 애교 부리며 영식의 곁에 엉겨 붙었다.

“돈은 공기랑 똑같아. 아무리 먹어도 배가 안 불러.”

“그럼 왜 안 한다는 거야?”

“신경외과 의사가 호구야? 호구가 아니라 저승사자 아닌가? 넌 간도 크다. 어떻게 의사를 상대로 사기 칠 생각을 하니?”

영식이 혀를 차며 물었다.

“원래 자기가 똑똑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잘 속는 법이라고. 의사, 변호사, 판사는 사기 안 당하는 줄 알아?”

정혜가 자신 있다는 듯 가슴을 펴며 말했다.

어쩌면 자신도 정혜에게 사기를 당해서 결혼한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실제로 식물인간 행세를 먼저 제안한 사람도 정혜이긴 했다.

꽁돈이 생겼다며 배시시 웃던 정혜의 미소를 영식은 꿈에서도 잊을 수 없었다.

“하자 오빠 응? 내가 세팅은 완벽하게 해놓을게. 오빠는 평소처럼 시체 놀이만 하고 있으면 된다고.”

“그래도 영 꺼림칙한데…….”

“그 의사 뉴튜버 한 번 후원하면 2~3,000만 원씩 해. 실시간 방송으로 들어오는 후원도 어마어마하고.”

“…….”

“최소 3천은 땡길 건데 이걸 안 먹는다고?”

정혜의 달콤한 제안에 영식은 입을 꼭 다물었다.

다 피운 담배의 불씨를 슬리퍼로 비벼 끄고 새 담배를 입에 물었다.

길게 내뱉은 연기가 바람을 타고 승천했다.

담배 연기가 하얀 도화지 같았고 그 도화지 위에 3,000만 원이라는 글씨가 아른거리는 듯했다.

“오빠. 진짜 이러기야? 언제부터 간이 그렇게 콩알만 해졌어?”

정혜가 실망했다는 표정으로 영식을 바라보았다.

영식은 차분하게 입술을 뗐다.

“정혜야. 옛 속담에 이런 속담이 있어.”

“무슨 속담?”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는 속담이지. 씨X 이 기회에 크게 한 몫 챙기자.”

영식은 쓸데없이 카리스마 있게 말했고 정혜는 아이처럼 손뼉을 쳐가며 좋아했다.

그런데 말이다.

현재로 돌아온 영식은 자신을 조여 오는 준후의 수사망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누가 누구를 놀리고 있었는지는 금방 판별이 되겠죠. 다들 눈으로 직접 확인하세요. 식물인간 환자가 30초 안에 깨어나는 마법을.”

준후의 말은 마치 자신이 식물인간인 척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훤히 꿰뚫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목덜미가 서늘해지고 머리카락이 곤두설 지경이었다.

‘아오. 뭐 이런 변태 같은 새끼가 다 있지?’

영식은 발가락에 잔뜩 힘을 주었다.

준후가 느닷없이 겨드랑이에 간지럼을 태웠던 탓이다.

하필 영식은 어렸을 때부터 간지럼에 약했다. 남에 손이 옆구리에만 닿아도 깔깔거리며 자지러지곤 했다.

“풋!”

결국 불가항력으로 영식은 단말마의 웃음을 토해내고 말았다.

순간 공든 탑이 무너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지만 영식은 뻔뻔하게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식물인간 행세를 계속 유지했다.

눈을 감고 있어서 바깥 상황은 몰랐지만 이 정도 웃음은 못 들었을 수도 있었다.

3,000만 원을 향한 의지가 그리 간단하게 꺾여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의지만으로 되는 일은 없는 것 같았다.

“크크크크.”

영식은 배를 들썩거리며 웃고야 말았다.

준후의 끈질긴 간지럼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모든 것이 망해 버렸으므로 영식은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이제 좀 정신이 드십니까?”

준후가 비웃음 섞인 눈빛으로 영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곁에 있던 정혜의 눈동자는 당장에라도 영식을 잡아먹을 것처럼 사나웠다.

아…… X됐네.

* * *

[미쳤다. 크크크. 무슨 코미디 한 편 보는 줄.]

[전 준후 선생님을 믿고 있었어요. 아무렴 준후 선생님이 환자랑 보호자를 함부로 대할 사람이 아니죠.]

[감히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오늘부터 석고대죄 시작합니다. ㅠㅠ]

[의사 맞냐고 하던 애들 어디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영식이 눈을 뜨면서 채팅창의 분위기가 다시 반전되었다.

시청자들은 준후에게 미안함과 죄송함을 전하기 바빴다.

준후는 채팅창을 읽었지만 딱히 반응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사실 준후의 관심은 자신을 작정하고 속이려 했던 괘씸한 영식과 정혜에게 쏠려 있었다.

“분명 식물인간 상태라고 들었는데 간지럼을 태우니까 눈을 번쩍 뜨시네요?”

준후가 비아냥거렸다.

영식은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는데 그를 대신해서 정혜가 빠르게 정리에 나섰다.

“선생님. 정말 대단하세요. 선생님 덕분에 저희 남편이 기적적으로 깨어났어요. 정말 감사드려요.”

정혜가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준후에게 고개를 숙였다.

제법 순발력 있고 유연한 대처였다.

아무래도 사기극의 본체는 정혜 쪽인 듯했다.

준후의 눈길이 정혜를 향했다.

“연기 따위는 집어치우고 사죄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당신이 그러고도 사람이에요?”

“연기라니요.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세요? 저희 남편은 식물인간 상태가 맞아요. 진단서도 보셨잖아요.”

“진단서가 무슨 절대 무적의 방패인 줄 압니까?”

준후가 코웃음을 치며 정혜를 꾸짖었다.

“진단서 뗀 그 병원 말입니다. 저도 오는 길에 봤거든요? 교통사고 환자만 전문적으로 보는 병원 같던데…….”

“…….”

“의사랑 짜고 진단서를 허위로 작성한 걸 누가 모를 줄 알아요?”

준후는 팩트로 정혜의 약점을 깊숙하게 찔렀다.

병원 중에는 환자나 보호자와 작당해서 보험금을 챙겨 먹는 악질 병원이 꽤 있었다.

그리고 그 피해는 정당하게 보험료를 내는 보험 가입자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준후는 부부와 병원 둘 다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남을 속이고, 기만하고, 배신하고, 농락하는 이런 악당들은 천벌을 받아야 했다.

“따질 거면 그 병원 의사한테 따지세요. 저희는 모르는 일이에요.”

시치미를 떼는 정혜가 준후의 가슴에 불을 붙였다.

이 역시 악당들의 전형적인 패턴이었다.

악당들은 자신의 죄를 인정할 줄 몰랐다.

죄를 인정할 줄 모르므로 용서나 사과를 구할 줄도 몰랐다.

“김영식.”

준후는 다짜고짜 영식에게 반말하며 영식을 노려보았다.

겁먹은 영식이 준후의 살벌한 눈빛을 피했다.

“내가 지금 속이 타서 죽을 것 같거든? 가서 물이라도 한잔 떠 와.”

영식은 차마 대답을 못 하고 정혜의 눈치를 봤다.

정혜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영식이 깨어났다는 사실은 되돌릴 수 없으니 그 정도 행동은 괜찮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영식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갔다가 물 컵을 들고 방에 돌아왔다.

준후에게 조심스럽게 물 컵을 내밀었다.

준후는 물을 마시지 않고 컵을 옆자리에 내려놓았다.

“지금 너희들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 모르겠지?”

준후의 지적에 영식과 정혜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깜빡거렸다.

“아까 듣기로는 당신은 무려 1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지냈다고 했는데 말이야. 그건 지금 행동하고 전혀 맞지 않아.”

준후가 영식을 향해 최후의 일격을 처박았다.

“그 정도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었으면 근육이 거의 다 죽어 있어야 하거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