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공 쓰는 외과 의사-333화 (332/424)

333화

제64장 압축(3)

스으으윽.

스으으윽.

인철은 손에 쥔 포셉으로 소독액이 묻은 솜을 집어 환자의 코 주변과 양쪽 콧구멍 내부를 소독했다.

환자의 코 위에 하얀 방포를 덮었다.

소독하는 인철의 손가락 끝이 희미하게 떨렸다. 평소답지 않게 긴장한 모습이었다.

“…….”

“…….”

문득 인철과 눈이 마주쳤을 때.

준후는 괜찮다는 듯,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인철이 준후를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내시경 카메라와 초음파 절삭기 부탁드립니다.”

“뭐? 2개를 같이 쓰겠다고?”

수환이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집도의가 초음파 절삭기를 사용하고 어시스트가 내시경 카메라를 사용하는 게 일반적인 절차였던 것이다.

“전 양손을 다 잘 씁니다. 혼자서도 할 수 있어요.”

“어설프게 양손을 쓸 바에는 한 손이라도 제대로 쓰는 게 좋을 텐데?”

“어설프게 집도하려고 이 자리에 서 있는 거 아닙니다.”

준후가 단호하게 맞받아쳤다.

이에 ‘이놈 패기 봐라?’하는 눈빛으로 수환이 준후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순순히 준후에게 절삭기와 내시경을 넘겼다.

준후는 왼손에 절삭기를 들고 오른손으로 내시경 카메라를 들었다.

내시경 카메라가 환자의 오른쪽 콧구멍 속으로 들어가 환한 빛을 밝혔다.

미지의 동굴을 탐험하는 탐험 대원처럼.

내시경이 촬영 중인 비강 내 영상은 정면에 있는 모니터에 고스란히 출력되고 있었다.

수술 전 코털을 정리한 덕분에.

환자의 콧속은 꽤 깨끗했다.

거침없이 전진하던 내시경 앞을 코 안쪽의 점막층이 가로막았다.

뇌하수체에 도달하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첫 번째 관문이었다.

준후는 왼손에 쥐고 있던 절삭기를 환자의 왼쪽 콧구멍으로 삽입했다.

내시경과 절삭기가 극적으로 상봉했다.

딸칵!

위이이잉.

전원 스위치를 작동시켰다.

절삭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미친 듯이 회전했다.

절삭기는 코 안 쪽 점막층을 갈아댔는데 그럴 때마다 점막 파편이 사방으로 지저분하게 흩뿌려졌다.

‘이 녀석…… 정말 보통내기가 아니었잖아?’

준후의 집도를 지켜보던 수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준후가 자신에게 무시당한 게 서러워서 양손으로 만회하려고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준후는 순수하게 양손을 잘 쓰는 거였다.

그냥 잘 썼다.

양팔과 손목의 떨림이라고는 머리카락 한 올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꼭 로봇의 팔 같았다.

더욱 신통방통한 것은 절삭기를 들고 있는 왼팔이었다.

절삭기의 진동이 분명 팔에 전달될 텐데도 준후의 왼쪽 팔은 요지부동이었다.

뭐야?

대체 무슨 방법으로 진동을 억누르지?

다른 신경외과 교수들도 이렇게는 못하는데?

떠오르는 의심을 머리 한편에 밀어놓은 뒤.

수환은 부릅뜬 눈으로 정면에 있는 모니터를 응시했다.

점막층의 절개 범위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환자의 회복을 위해서 점막층은 최소 절개하는 게 좋았다.

하지만 신경을 곤두세운 보람도 없이 준후는 코 점막층을 최소한으로 잘라냈다.

괜히 수환의 눈만 뻑뻑해졌다.

“이제 좀 알겠어? 내가 왜 준후를 집도의로 찜했는지?”

수환을 바라보는 동훈의 눈이 얄밉게 웃고 있었다.

“흥. 방심하긴 일러. 본 게임은 지금부터니까. 이래 봤자 종양을 제대로 제거 못 하면 말짱 헛수고라고.”

“마치 준후가 망했으면 하길 바라는 눈치인데?”

대꾸할 가치도 없어서 수환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준후가 내심 마음에 안 드는 것도 사실은 사실이었다.

흔히 말해 나대는 부류의 서전을 수환은 좋아하지 않았다.

콧대를 세우고 잘난 척만 하다가 수술을 망치는 경우를 자주 봤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잡담을 나누는 사이.

비강 내부 점막층 절개가 종료되었다.

점막층 제거를 끝마치자 새까맣고 텅 빈 암흑의 공간이 펼쳐졌다.

이름하여 접형동이었다.

접형동 천장을 덮고 있는 나비뼈 위쪽에 문제의 뇌하수체 선종이 위치하고 있었다.

“교수님. 내시경을 맡아주시겠습니까?”

“그래.”

준후가 내민 내시경을 수환이 건네받았다.

본래 뇌하수체 선종 수술에서 이비인후과 의사의 역할은 시야 확보와 코의 해부학적 구조에 대해 코치를 하는 것이었다.

‘의외로 자기 주제는 아는군.’

수환의 입가에 번지는 미소.

의외로 준후는 끝까지 내시경을 본인이 사용하겠다고 고집부리지 않았다.

이후의 수술 과정에서는 준후 본인의 지식보다 수환의 지식과 경험이 뛰어나다는 걸 알고 있는 눈치였다.

준후가 환자의 왼쪽 비강 안으로 썩션기를 밀어 넣었다.

치이이익.

치이이익.

준후는 나비뼈 근처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점막층을 빨아들이고.

주변 점막이 건조하게 말라붙지 않도록 이리게이션(식염수 세척)도 했다.

환자의 코에서 허연 이물이 묻은 액체가 쏟아져 내렸다.

그것을 인철이 거즈로 닦아냈다.

잠깐에 정리가 끝난 후 수술의 2막이 올랐다.

수환이 비강 내 시야를 확보하고 준후는 초음파 절삭기로 나비뼈를 향해 전진했다.

나비뼈를 빙수처럼 갈아버리면서 절삭기가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나비뼈에 1cmX1cm 크기의 구멍이 뚫렸다.

“교수님 홀 크기는 이 정도면 될까요?”

“아니. 좀 더 크게. 1.5cmX1.5cm 크기는 되어야 선종을 적출하기 쉬워.”

어느새 부드러워진 수환의 목소리.

순간 준후는 깨달았다.

수환이 이미 자신의 팬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 * *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준후가 선창을 하고 인철이 후창을 했다.

잔뜩 당긴 고무줄처럼 팽팽했던 수술방 분위기가 물에 젖은 휴지처럼 흐물흐물 풀어져 갔다.

인철이 환자의 얼굴을 덮고 있던 방포를 제거했다.

수술은 그걸로 종료였다.

“내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군. 이게 레지던트의 솜씨라니.”

수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거봐. 내가 뭐랬어? 걱정할 필요 없다고 그랬지?”

“솔직히 결과만 보면…… 자네가 수술을 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아.”

“내 눈에도 그렇게 보여.”

“준후 너, 혹시 예전에 뇌하수체 선종 수술을 집도해 본 적이 있나?”

수환이 준후에게 눈길을 돌리며 물었다.

“아뇨. 오늘이 처음입니다.”

준후의 대답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물론 집도 자체는 오늘 처음 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준후는 후두엽 점혈법으로 시신경을 자극해 머릿속으로 열 번 가까이 뇌하수체 선종 수술을 해봤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준후의 수련이 막무가내도 아니었던 게.

평소 초식화해 놓은 동훈의 뇌하수체 선종 수술 과정을 상상 수련 때 고스란히 펼쳤던 것이다.

실력 있는 교수들의 수술 과정 초식화.

후두엽 점혈법을 활용한 머릿속 가상 수술.

이 두 가지 수법은 준후를 위대한 서전으로 만들어줄 날개와도 같았다.

양손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양수 호박 기술.

또 섬세한 손놀림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대성(大姓)한 호월십이수.

이 두 가지 무공의 위력에 관해서는 이제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였고 말이다.

“널 무시했던 걸 진심으로 사과하마.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

“아닙니다. 두 교수님에 비하면 아직 갈 길이 먼 걸요.”

“녀석. 겸손할 줄도 아는구나. 하여튼 수술에 백미는 종양을 절제할 때였지.”

수환이 아련한 눈빛으로 수술방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하얀 천장은 도화지가 되었고 그 위로 준후가 선종을 제거하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선종의 후면이 시선경과 딱 달라붙어 있었음에도 준후는 정교한 손놀림으로 선종만 제거해냈다.

시신경과 선종 사이에 경계선을 그어 놓고 그 선 안쪽으로는 1밀리미터도 침범하지 않는 듯한 활약을 선보였다.

지금도 그때만 떠올리면 입이 떡 벌어지는 수환이었다.

“잘했다, 준후야. 네가 내 체면을 세워줬구나.”

“별말씀을…… 인철이도 고생 많이 했습니다.”

쏟아지는 칭찬에 준후는 인철도 띄워주며 멋쩍게 웃었다.

그러다가 은빛 곡반에 담긴 뇌하수체 선종을 내려다보았다.

조직 검사에 필요한 양은 이미 따로 떼어내서 검사실에 보냈다.

곡반에 담긴 암 조직은 의료 폐기물로 버려질 것이다.

암 조직은 새끼손톱 크기만 했으며 선홍빛을 띠고 있었다.

육안으로 봐서는 정상 조직 같기도 했다.

인간의 몸에 암 조직이 있다면.

사회에도 암과 같은 인간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자기밖에 모르고.

끊임없이 증식하면서.

정상인인 척 연기를 하고.

주변에 광범위한 피해를 입히는 인간들 말이다.

수술방을 나가기 전.

준후는 곡반에 담겨 있던 선종을 의료 폐기물 통에 휙 던져 버렸다.

* * *

4층 휴게실.

준후는 낡고 헤진 소파에 동훈과 나란히 앉아 캔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두 사람 다 오래 쉴 수가 없었다.

30분 뒤에 다음 수술 스케줄이 있었다.

“처음 뇌하수체 선종을 집도해 본 소감은 어떠니?”

동훈이 웃는 낯으로 물었다.

“이런 말씀 드리기는 뭐하지만…….”

“뭐하지만?”

“솔직히 재미있었습니다. 머리가 아닌 코를 통해 뇌로 접근하는 방식도 신선했고, 이비인후과 교수님과 협업하는 것도 새로웠습니다.”

“수술이 재미있다라…… 남들이 들으면 큰일 날 소리를 하는구나.”

“재미라는 표현보다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네요.”

말을 마친 준후가 캔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커피가 달콤하고 쌉쌀했다.

그동안 흘려 왔던 피땀눈물이 씁쓸했고 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냈다는 사실은 달콤한 것처럼.

“네가 전문의 시험에 떨어질 일은 없을 테고. 그럼 자연스레 펠로우를 지원할 건데.”

동훈이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세부 전공은 결정했니?”

“아니요. 아직입니다.”

“평소 너답지 않게 우물쭈물하는구나. 이유라도 있니?”

“하고 싶은 건 많은데 할 수 있는 일이 적어서 그렇습니다. 저는 신경외과와 관련된 세부 전공을 전부 마스터하고 싶거든요.”

“세부 전공을 전부 마스터하겠다고? 진심이니?”

“네. 교수님.”

“야망이야 클수록 좋다지만 이룰 수 없는 수준이면 포기해야지. 세부 전공을 전부 마스터한다면 7개 전공에 전부 펠로우를 지원해야 한다는 건데 말이야.”

동훈이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가며 세부 전공을 읊었다.

뇌혈관 파트.

뇌종양 파트.

경추·요추 파트.

정위 신경 파트.

소아 신경외과 파트.

수부외과 파트.

외상외과 파트.

신경외과 세부 전공을 전부 마스터려면 최대 14년이 필요했다.

펠로우 수련 과정이 보통 2년이니까.

하지만 준후에게 14년이란 시간은 너무 길었다.

신경외과 지원율은 오래전부터 바닥을 쳤고 외과의를 해외에서 수입해야 한다는 우려 섞인 말까지 나오는 현실이었다.

14년이란 기나긴 시간 동안 자신이 무기력하게 잃어버릴지도 모를 환자들의 목숨을 생각하면.

보호자들의 비탄을 생각하면.

준후의 가슴은 벌써부터 찢어지는 듯했다.

모든 과를 마스터해야 그 어떤 환자가 오더라도 즉각 치료를 해줄 수 있을 텐데…….

“준후야. 그러지 말고 세부 전공은 뇌종양 쪽으로 선택하는 건 어떻겠니?”

동훈이 슬며시 운을 띄웠다.

동훈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감미로웠다.

“뇌수술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게 뇌종양 수술 환자란다.”

“…….”

“그러니까 뇌종양 파트를 세부 전공하면 그만큼 많은 환자를 볼 수 있다는 뜻도 되지. 그럼 네 본래 목적과도 크게 빗나가는 것은 아니지 않니?”

동훈의 유혹이 이제 노골적인 형태를 띠었다.

준후는 텅 비어버린 커피 캔을 만지작거리다가 입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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