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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343화 (340/424)

343화

제66장 적응(3)

“오리엔탈 큐어?”

말릭은 넋이 나간 얼굴로 준후가 했던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직역하면 동양적인 치료법 같은 의미가 될 텐데.

눈으로 직접 보니 신기하긴 했다.

손가락으로 어깨를 몇 번 찔렀다고 출혈이 뚝 그치다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영화를 보면…….

동양인들은 사람의 몸에 침을 박아 넣어서 치료를 하던데 준후의 치료도 일종의 그런 방식을 따르는 것 같았다.

“난 지금부터 수술에 필요한 장비를 챙길 거야. 넌 환자 혈액형부터 알아봐.”

“혈액형은 왜…….”

“당연히 피를 공급하기 위해서지. 그동안 흘린 피를 보충해야 할 것 아니야.”

준후가 자기 할 말만 하고 수술대를 떠났다.

준후의 손에는 어느새 드레싱 카트 손잡이가 들려 있었다.

텅! 텅! 텅!

수납장 앞에 선 준후가 경이로운 속도로 수술 기구와 소모품들을 챙겨 드레싱 카트 위에 내려놓기 시작했다.

저것들을 어디에 쓸 것인지.

말릭은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만큼은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오늘 처음 맥스의 진료실에 온 주제에 준후가 수술 도구와 기구의 위치를 순식간에 암기해 버렸다는 것을.

아무리 의사라고 해도 이 정도 기억력은 특별한 게 아닐까?

“야. 마이클 너 혈액형이 뭐야? 뭐라고? 안 들려 크게 말해봐!”

말릭이 준후에게 한 눈을 판 사이, 동생 자말이 마이클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며 혈액형을 물었다.

자말의 다급한 목소리에 말릭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이클 혈액형이 어떻게 된대?”

말릭이 자말에게 물었다.

자말은 마이클의 입가에 귀를 바짝 대고 있었다.

고개를 드는 자말의 얼굴이 썩어 있었다.

“젠장! 모른대! 재수도 지지리 없지.”

자말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하지만 하렘가 출신이 자기 혈액형을 모르며 사는 경우는 그리 드물지 않았다.

“이제 어떻게 하지? 본인이 모르는 걸 우리가 어떻게 알아?”

“혹시 자넷 전화 번호 알아?”

“알지. 근데 자넷은 갑자기 왜?”

“자넷한테 물어보자. 빨리 번호 불러봐.”

말릭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며 다급하게 말했다.

자넷은 마이클의 어머니였다. 어머니라면 자식의 혈액형을 알 수도 있지 않을까?

말릭은 자말이 불러준 전화번호로 자넷에게 전화를 걸었다. 1초가 급한 상황이라 번호를 누르는 손가락이 희미하게 떨렸다.

-말릭. 우리 마이클은 좀 어때?

통화음이 두 번으로 넘어가기도 전에 자넷이 통화를 연결했다.

목소리에 불안함이 가득 차 있었다.

자넷은 얼마 전 다리를 다쳐서 이곳 치료실에 오지 못했다.

“어떻게든 치료는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그건 그렇고 마이클 혈액형은 알아?”

-마이클 혈액형? 잘…… 모르겠는데? 왜? 지금 그게 중요해?

“수혈을 받아야 하는데 혈액형을 알아야 할 것 아니야.”

-…….

“천천히 생각해 봐. 마이클의 목숨이 달린 일이라고! 하나뿐인 아들이 혈액형을 몰라서 죽는다면 억울하지 않겠어?”

말릭은 자신도 모르게 자넷을 혹독하게 다그쳤다.

잘은 모르겠지만…….

마이클의 상태가 점점 나빠지고 있는 것 같았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빨갛던 입술이 보랏빛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미안…… 전혀 모르겠어.

자넷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자넷으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미국은 아이를 출산하더라도 병원이 부모에게 아이의 혈액형을 알려주지 않았다.

아이의 혈액형을 알고 싶으면 40-100달러를 주고 따로 혈액형 검사를 해야 했다.

하렘가 사람들은 보통 그 돈이 아까워 혈액형 검사를 따로 받지 않았다.

사실 자기 혈액형을 모르는 건 말릭과 자말도 마찬가지였다.

“빌어먹을. 우리 인생은 왜 맨날 이렇게 시궁창이냐고!”

말릭은 손에 쥔 휴대폰을 바닥에 내동댕이치려고 했지만 갑작스레 제지를 당하고 말았다.

어느새 수술대로 복귀한 준후가 말릭의 손목을 붙잡았던 것이다.

“내용은 대충 들었어. 환자 혈액형을 모른다는 거지?”

“맞아.”

“혹시 환자의 부모는 자기 혈액형을 알고 있나?”

준후가 차분하게 물었다.

상황이 개판인데도 이렇게 침착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아마 모를 거야.”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물어보기는 해봐.”

질문을 하면 한 번 더 절망할 것 같았지만 말릭은 꾹 참고 휴대폰을 귀에 가까이 댔다.

“자넷. 혹시 네 혈액형하고 네 남편 콜드의 혈액형은 알아?”

-그거라면 알아. 콜드랑 나랑 둘 다 O형이야.

자넷의 즉답에 말릭은 혀를 찼다.

뭐가 어떻게 되는 거지?

아들 혈액형은 모르면서 부모 본인들은 자신의 혈액형을 알고 있다고?

“뭐야 너희 둘 혈액형은 어떻게 아는데?”

-예전에 데이트할 때 헌혈한 적이 있거든. 그때 알게 됐어.

“알았어. 이쪽에서도 최선을 다할 테니까 네가 믿는 신께 기도나 해. 정말 신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릭은 통화를 끊고 준후에게 자넷과 콜드가 O형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근데 말이야.”

“뭐가 궁금한데?”

“부모의 혈액형하고 자식의 혈액형하고 상관이 있나?”

말릭의 질문에 놀란 듯 준후가 쉴 새 없이 눈을 깜빡거렸다.

* * *

미국의 의료 체계와 미국인의 의료지식에 대해 알면 알수록 안 좋은 쪽으로만 감탄하게 되는 준후였다.

(물론 일반화일지도 모르겠지만.)

본인 혈액형을 모르지를 않나.

혈액형이 어떤 식으로 유전되는지도 모르지를 않나.

“자세한 설명은 치료가 끝나고 하지. 냉장고에서 O라고 적힌 혈액팩하고 하트만이라고 적인 수액을 가져 와.”

지시를 내린 준후는 수술 용품이 올려진 드레싱 카트를 자신의 몸 쪽으로 바짝 붙였다.

부모 두 명이 O형이라면 환자도 O형일 확률이 높았다.

봄베이 O형이라고 해서.

A또는 B형인데 검사 상으로는 O형으로 나오는 특이 케이스가 있긴 했지만 그럴 확률은 드물었다.

상황이 위급하면 배제할 것은 배제해야 했다.

“여기 있어!”

자말이 수액과 혈액팩을 챙겨 헐레벌떡 수술대로 돌아왔다.

준후는 환자의 팔뚝을 소독하고 정맥 라인부터 잡았다.

라인 잡는 처치는 뚝딱 끝났다.

눈 깜짝할 사이에 종료되었다.

뚝. 뚝. 뚝.

하트만 용액과 혈역팩에 있는 혈액이 점적통으로 힘차게 떨어져 내렸다.

응급처치가 빨랐으므로.

수술 도중 저혈량성 쇼크가 터지는 것은 방지할 수 있을 듯 했다.

“우리가 또 도와줄 건 없어?”

준후는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일반인이 수술에 도움이 될 리가 없었다.

사각. 사각. 사각.

손에 쥔 가위로 준후는 환자의 어깨를 두르고 있던 붕대를 잘라냈다.

“으으으으…….”

곁에 있던 자말과 말릭이 동시에 침음성을 터뜨렸다.

와락, 얼굴을 구겼다.

환자의 어깨와 겨드랑이 사이에 탄환이 뚫고 들어간 흔적이 역력했다.

손가락만 한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 구멍 주변에 피부가 새까맣게 타들어 가 있었다. 상처 주변에는 벌써 말라붙은 피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준후는 환자의 상체를 살짝 옆으로 돌려 보곤 미간을 좁혔다.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어깨 뒤쪽으로는 상처가 없었다.

총알이 어깨를 관통하지 않고 체 내에 박혀 있다는 뜻이었다.

차라리 깔끔하게 관통해 버렸으면 좋았을 것을…….

아무래도 예상보다 훨씬 고되고 긴 수술이 될 듯 했다.

“근데 너 전공이 뭐야? 의사들은 전공이라는 게 있다며?”

자말이 물었다.

“신경외과. 보통 머리나 허리를 보지.”

“그럼 어깨 수술은 하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어깨 수술은 정형외과라는 곳에서 하지만 별수 없잖아. 지금 수술할 사람은 나밖에 없는데.”

어깨 총상 수술은 처음이라 준후도 긴장이 되긴 했다.

하지만 지금은 물불 따질 때가 아니었다.

환자를 살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외과의 근본은 절제와 봉합이란다. 절제와 봉합에 능하다면 다른 외과 수술도 쉽게 적응할 수 있어.

언젠가 스승 재현이 준후에게 해줬던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서 준후는 헥사(6) 신경외과의를 꿈꾸게 되었다.

지금처럼 어깨 수술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필요 없는 건 잘라내고.

필요한 건 이어주면 되는 거야.

최대한 단순하게 생각하자.

각오를 다진 준후가 자말에게 물었다.

“수납장을 봤는데 마취제만 없었어. 혹시 마취제가 어디 있는지 알아?”

“마취제? 난 그런 거 못 본 것 같은데? 형은?”

자말이 바통을 건네듯 말릭에게 물었다.

“그건 내가 알지.”

말릭이 갑자기 수술대 아래로 허리를 굽혔다.

수술대 아래서 뚝딱 뚝딱하는 소리를 내더니 vial(용액이 든 작은 유리병)을 손에 쥐고 몸을 일으켰다.

vial의 정체는 다름 아닌 펜타닐이었다.

준후가 딱히 선호하는 마취제는 아니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도리가 없었다.

똑!

준후는 바이알의 머리 부분을 꺾어서 따고 3cc 주사기에 용액을 채웠다.

그리고 주사 바늘을 환자의 상처에서 조금 떨어진 근육에 찔러 넣었다.

환자의 신음성과 신음 소리가 차차 잦아들었다.

본 게임은 지금부터 시작.

준후는 가볍게 목을 좌우로 꺾으며 사기를 충전했다.

환자는 갱단의 싸움에 휘말려 ‘억울하게’ 총상을 당했고, 가난한 죄로 ‘억울하게’ 치료를 못 받고 있었다.

그 울분을 풀어줄 수 있는 사람 오직 준후뿐이었다.

콸콸콸!

수술 장갑을 착용한 준후는 환자의 상처에 냅다 생리식염수부터 쏟아 부었다.

피부에 붙은 이물질들을 씻어내는 작업이었다.

거즈로 생리 식염수를 닦아낸 후.

준후는 Scalpel(칼대)에 10번 블레이드를 꽂았다.

칼대와 칼날에 아귀가 맞아 떨어질 때, 딸칵하고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환자의 동그란 총상에 준후는 십자가 형태로 절개 창을 냈다.

스으으윽.

피부가 종잇장처럼 갈라지면서 울컥 피가 쏟아졌다.

거기에 개의치 않고 준후는 근육 조직과 피하지방까지 더 깊숙하게 절개를 했다.

그러자 더는 못 보겠는지 자말과 말릭이 사이좋게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러고 보니 너희 둘이 할 일이 있을 것 같네.”

“뭔데?”

“거기 효자손, 아니 갈고리 모양으로 생긴 게 senn(수동형 견인기)이거든. 그걸로 상처를 벌려줘야겠어.”

“끔찍해서 못 보겠는데?”

“못 보겠으면 안 봐도 돼. 고개를 숙이거나 돌리고 있어도 되니까. 시간 없어. 빨리!”

준후의 재촉에 자말과 말릭이 각각 견인기를 손에 들고 절개창을 벌렸다.

덕분에 수술 시야가 탁 트인 평야처럼 넓어졌다.

치이이익.

절개창에 우물처럼 고여 있던 혈액들을 썩션기로 빨아들이자 수술 시야가 완벽해졌다.

가장 먼저 들어온 물체라면…….

당연히 총탄이었다.

까만 그을림이 묻은 총탄이 쇄골하동맥 바로 아래 쪽 근육층에 깊숙하게 박혀 있었다.

뼈의 손상도 걱정했던 것만큼 심하지는 않았다.

상완골의 끝자락이 희미하게 바스라져 있는 수준이었다.

하늘이 도왔는지 총알이 위험한 급소는 다 피했던 것이다.

총알이 어깨를 관통하지 못한 걸 보면 어딘가에 반사돼서 위력이 한참 떨어졌던 것 같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환자가 위험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총알을 빼내야 했고.

그을림에 오염된 뼈를 깎아내야 했으며.

점혈 지혈의 효과가 떨어질 때가 되었으므로 출혈을 일으킨 혈관을 찾아서 문합을 하거나 소작을 해줘야 했다.

‘일단 눈엣가시부터 처리해야지.’

준후는 포셉으로 총알을 쥐고 당겨서 빼내려고 했다.

하지만 총알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총알의 회전력으로 비틀린 근육이 총알을 꽉 붙잡고 안 놓아주고 있었다.

포셉이 총알을 제대로 잡아주지 못하고 계속 미끄러지는 문제도 있었다.

마침 자말과 말릭이 고개를 돌리고 있었기에 준후는 무공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용조수(龍爪手)!

준후의 엄지와 검지가 용의 발톱처럼 단단하게 굽혀졌다.

쎄에에엑!

준후의 팔이 마치 먹이를 낚아채고 비상하는 독수리처럼 총알을 향해 뻗었다가 다시 천장으로 들어 올려졌다.

준후의 엄지와 검지 사이에.

어느새 피와 뼛가루가 묻은 총알이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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