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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344화 (341/424)

344화

제66장 적응(4)

“휴우.”

준후는 수술용 장갑을 벗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막 새 붕대를 감은 환자의 어깨를 편안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수술은 잘 끝난 거야?”

말릭의 걱정 섞인 질문에 준후가 말릭에게 눈길을 돌렸다. 말릭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릭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손길이 다정했다.

“너도 고생했다. 꼬박 3시간 동안 내 곁을 지켰잖아. 견인기까지 사용하면서.”

“솔직히 힘들긴 했지. 팔이 빠지는 것 같았고 다리도 저리고. 그래도 너만큼 고생했겠어?”

말릭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미소가 전염되면서 자말도 웃었고 준후도 웃었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끈끈한 전우애의 실이 세 사람을 묶고 있었다.

환자를 살리기 위한 사투에서.

함께 싸운 동료들이었기에.

“마이클은 앞으로는 어떻게 되는 거야? 그래도 병원에 가보기는 해야 하나?”

“아니, 그럴 필요 없어. 맥스라는 의사한테 꾸준히 소독 받고 항생제만 챙겨 먹으면 될 거야.”

“어깨는 다시 쓸 수 있겠지?”

“근육 절제도 최소화했고 오염된 뼈도 잘 긁어냈어. 본인이 무리만 안 하면 어깨는 정상으로 돌아올 거야.”

준후의 목소리가 차분했다.

집도를 할 때.

준후는 환자의 목숨을 살리는 것을 최우선으로 했다.

그렇다고 어깨의 회복을 모른 척했던 건 아니었다.

병원에 가지 않더라도 자연 치료가 될 수 있도록 총알에 오염된 부위에 변연 절제술을 펼쳤다.

변연 절제술.

괴사된 조직을 제거함으로써 그 자리에 새로운 조직이 자라도록 돕는 외과 수술의 일종이었다.

“아. 잠깐 뭐 하나를 잊었네.”

준후가 손바닥으로 가볍게 이마를 쳤다.

‘잊었다’는 말에 말릭과 자말이 잠깐 긴장을 했다.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의료 사고 같은 것을 걱정하는 눈치였다.

형제의 불안에 개의치 않고 준후는 환자의 가슴에 손바닥을 얹었다.

손바닥에서 뻗어나간 내공이 환자의 심장으로 돌진했다.

내공이 심장에 도달한 순간.

심장이 자동차 엔진처럼 심장에 고인 피를 쫙 짜냈다. 그 무시무시한 수축력에 내공이 담긴 혈액이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그랬다.

환자의 회복을 돕기 위해.

준후는 ‘내공 심장 수액술’을 펼친 것이다.

경이로운 회복력을 가진 내공이 온 몸에 골고루 퍼진다면 환자의 회복 속도는 눈부시게 빨라질 것이다.

“뭐 하는 건데?”

준후의 행동이 이해가 안 가는지 말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환자를 축복하는 기도 같은 걸로 보면 돼.”

“너도 종교가 있어?”

“종교라…… 신을 믿기에는 험한 꼴을 너무 많이 당하고 많이 보기도 해서.”

준후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뇌사로 세상을 떠난 성호가 준 건강 팔찌가 천장에 전구 빛을 반사하며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너는 종교가 있어?”

“당연히 있지. 종교도 없이 이 험난한 하렘 바닥에서 어떻게 살아가겠어?”

“기독교?”

“아니.”

“개신교? 카톨릭?”

잇따른 질문에 말릭은 고개만 저었다.

그러다가 피식 웃으며 한손으로 지폐 세는 시늉을 했다.

말릭이 믿는 종교가 무엇인지 준후는 알 것도 같았다.

그 종교는 요즘 가장 뜨겁고 관심을 많이 받는 종교였다. 해당 종교의 이름은 네 글자로 ‘자본주의’, 한 글자로 ‘돈’이었다.

대화가 잠시 끊기면서.

수술방에 아늑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만약 환자가 목숨을 잃었거나.

어깨를 회복하지 못했다면.

우울하고 침통한 침묵이 내려앉았을 것이다.

“수술하느라 출출할 텐데 배라도 좀 채우자고. 따라 와. 자말 너는 마이클 좀 보고 있어. 네 음식은 올 때 사올 테니까.”

“오케이.”

준후는 앞서 걷는 말릭의 뒤를 쫓았다.

* * *

총기상을 떠나 주택가를 가로질러 도착한 곳은 24시간 운영하고 맥도날드였다.

새벽 2시가 가까웠는데도 맥도날드는 의외로 사람들로 붐볐다. 테이블에 3분의 1정도가 차 있었다.

“이 시간에도 사람이 꽤 많네?”

준후가 의아하다는 얼굴로 말릭에게 물었다.

“왜일 것 같아?”

“글쎄. 저녁에 일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은 건가?”

“그런 거면 차라리 행복하지.”

키오스크로 주문을 마친 말릭이 손님들을 훑어보곤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여기 있는 사람들 죄다 홈리스야.”

“홈리스?”

“그래. 홈리스. 집이 없는 사람들인 거지. 잘 때는 마땅치 않고 노숙하기는 싫으니까 음료나 음식 하나 주문해 놓고 여기서 버티고 있는 거야.”

가난의 알몸을 본 것 같아서 준후는 기분이 묘했다.

맥도날드를 숙소로 삼아야 하는 삶은 어떤 삶인지 머릿속으로 그려보려고 했지만 잘 그려지지가 않았다.

적어도 준후가 경험하기로는.

한국에서 이런 방식으로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은 본 적이 없었다.

“표정을 보니까 충격을 받았나 보네?”

“꽤 많이.”

“그래도 여기 사장은 인심이 좋은 편이야. 다른 매장은 홈리스를 쫓아내지 못해서 안달이거든.”

대화를 나누면서 말릭과 준후가 창가 쪽 자리에 앉았다.

창밖의 어둠이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텅 빈 도로에서 시작된 적막이 맥도날드 매장까지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덩달아 매장도 고요해졌다.

준후는 문득 맞은편에 있는 사람을 주목했다.

그는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쪽 잠을 자고 있었다.

머리를 지탱하는 팔이 흔들릴 때마다 그의 머리도 같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당장에라도 머리가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피곤하지는 않아?”

“뭐, 딱히? 평소에도 체력이 좋은 편이라서.”

준후는 가볍게 주먹을 쥐어 보였다.

집으로 돌아가서 운기조식만 하면 컨디션은 100퍼센트 회복할 수 있었다.

내일 있을 부스트 업 프로그램 테스트도 문제없었다.

“마이클을 치료해 줘서 뭔가를 해주고 싶은데 뭘 해줘야 할지 모르겠네.”

“됐어.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니까.”

“그래도 은혜를 모른 척할 순 없지. 가만있어 보자…… 그래, 그게 좋겠구나!”

말릭이 경쾌하게 손가락을 튕기더니 바지에서 지갑을 꺼냈다.

지갑에서 꺼낸 물건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히죽 웃었다.

“이건 왜…….”

준후가 말끝을 흐렸다.

* * *

그 날 새벽.

딸랑!

시끄러운 도어벨 소리와 함께 콧수염이 인상적인 중년인이 총기상에 들이 닥쳤다.

“오 맥스! 출장 갔다고 했는데 일찍 돌아왔네.”

총기상 밥이 왕진 가방을 든 맥스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마이클이 총에 맞았다고 들었는데 정말 괜찮은 거야?”

맥스가 허리를 숙인 채 가쁜 숨을 내쉬며 물었다.

급한 마음에 주차장에서부터 총기상까지 뜀박질을 해서 왔다.

다리가 아직도 후들거렸다.

“수술 잘 끝났다고 말릭이 연락 안 했어? 난 당연히 했을 줄 알았는데?”

“소식은 들었어.”

“그럼 다 알면서 왜 그렇게 호들갑이야?”

밥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거야 수술했다는 애송이를 도무지 믿을 수가 있어야지. 동양인에 엄청 어려 보이는 얼굴이라고 하던데.”

“…….”

“엉터리로 수술했으면 마이클이 오히려 위험하다고.”

“자네도 수술도 그렇게 완벽한 것 같지는 않던데?”

밥의 목소리에 비아냥이 섞였다.

“이 자식이 보자마자 사람 속을 긁어대네? 내가 지금은 폐인처럼 살지만 예전에는 무려 UCLA병원에 소속되어 있었던 몸이라고.”

“그 놈의 UCLA 타령…… 지겹다. 지겨워.”

“네가 내 말을 안 믿으니까 이러는 거 아니야.”

“네. 네. 오죽하시겠어요.”

숨을 고른 맥스는 밥에게 대꾸하지 않고 바로 지하 수술방으로 이동했다.

수술대에는 마이클이 누워 있었고 그 곁을 자말이 지키고 있었다.

“맥스 왔어? 빨리 왔네?”

“마이클 상태는 좀 어때?”

“보시다시피 훌륭하지. 새근새근 잠들었어.”

비의료인의 말은 믿을 수가 없어서 밥은 수술대에 다가가서 마이클을 직접 살폈다.

체온을 재니 37도가 나왔고 혈압은 120mmHg/800mmHg로 정상 수치였다.

호흡과 맥박도 꽤 안정적이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수술이 잘 끝난 모양이었다.

솔직히 믿기 힘들었다.

우연히 알게 된 동네 주민이 외과의사고 그것도 모자라 이 열약한 환경에서 어깨 총상 수술을 성공적으로 해냈다는 사실을.

이러다간 밥줄이 끊어질지도 몰랐다.

“그 동양인 의사, 수술 잘하는 것 같았어?”

맥스가 넌지시 간보는 질문을 던졌다.

“수술하는 모습이 끔찍해서 제대로 못 보긴 했는데 실력은 있는 것 같더라. 마이클이 멀쩡히 살아 있는 걸 보면.”

“…….”

“엄청 침착하기도 하고 마이클 부모에게 전화해서 혈액형도 막 알아내더라고.”

자말의 말에 맥스가 수액걸이에 걸린 혈액팩을 보았다. 혈액팩 포장지에 O자가 적혀 있었다.

마이클이 O형이라는 것을 맥스는 오늘 처음 알았다.

“그 의사 어디 출신인지는 알아?”

“노스 코리아에서 왔는데 신경외과인가 전공이래.”

“노스 코리아라…….”

맥스가 혼잣말을 읊조리며 턱을 쓸어내렸다.

노스 코리아 출신 외과의면 총상 수술도 능숙할 것 같기는 했다.

그곳은 독재 정권 치하에 있고.

인권 유린이 밥 먹듯이 벌어지는 곳이었다.

미국만큼은 아니더라도 총상 환자를 치료할 기회가 퍽 많았을 것이다.

“너 뭐 해?”

맥스가 왕진가방에서 뭔가를 꺼내 손에 쥐자 자말이 화들짝 놀랐다.

놀란 부엉이 눈을 했다.

맥스의 손에 들린 것이 가위였던 것이다.

“상처 좀 확인해 보게.”

“수술 잘 끝났다니까?”

“그걸 의사도 아닌 네가 어떻게 알아?”

서걱. 서걱.

맥스는 붕대를 풀고 마이클의 어깨를 두 눈으로 확인했다.

동양인 의사는 5-0 nylon에 단순 단속봉합으로 절개창을 꿰맸다.

봉합 솜씨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nylon 봉합사는 상처의 감염과 염증 반응을 낮춰 주는 장점이 있었지만 매듭의 안정성이 떨어지고 조작이 힘든 단점이 있었다.

그런데 웬걸?

그 의사의 봉합술은 흠잡을 곳 없이 완벽했다.

매듭은 반듯한 일자(一)였으며 매듭과 매듭 간의 간격이 자로 잰 듯 일정했다.

봉합사가 피부를 잡아주는 장력도 완벽했다.

“그거 다 꿰매는 데 3분도 안 걸리더라.”

“뭐라고? 10바늘을 꿰매는 데 3분이 안 걸려?”

“손이 막 쉭쉭쉭 하던데?”

자말이 동양 무술이라도 흉내 내는 것처럼 허공에 정신없이 손을 놀려댔다.

“아 참. 그 친구가 이것도 전해주라고 했어.”

자리에서 일어난 자말이 수납장에서 무언가를 꺼내 맥스에게 내밀었다.

하나는 곡반이었다.

초승달처럼 굽은 곡반에는 말라붙은 피와 뼛가루가 묻은 총알, 까맣게 괴사한 피부 조직들이 담겨 있었다.

다른 하나는 수첩에 무언가를 휘갈긴 메모지였다.

맥스는 메모를 눈에 가까이 하고 찬찬히 읽었다.

-Debridement of the contaminated skin wound and contaminated subscapular bone(오염된 피부상처와 견갑하골의 변연절제술)

-Remove a bullet(총알 제거)

-Ruptured brachial artery branch dissection(파열된 상완동맥 분지의 박리)

동양인 의사가 남긴 쪽지와 수술의 흔적을 확인하고 맥스를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경이로운 녀석이었다.

맥스가 본인의 수술을 의심하지 못하게끔 이렇게 증거를 미리 남겨놓은 것을 보면.

한편으로 맥스는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출장을 간 것이 오히려 신의 한 수 아니었을까.

맥스의 솜씨로는 아마 마이클을 살려내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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