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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348화 (345/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348화

제67장 메이유 클리닉(3)

“휴우~”

앤서니는 한숨 쉬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발바닥에서 시작됐던 피로가 기어이 정수리까지 쌓여 올라왔다. 다른 교수만 옆에 없었으면 바닥에 대자로 눕고 싶은 심정이었다.

오늘 일정은 닭 가슴살보다 퍽퍽했다.

쉬는 시간 없이 내리 몇 시간을 면접만 봤다.

아침과 점심 식사까지 거른 탓에 뱃속에 거지가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지원자들을 나름 객관적으로 파악하려다보니 머리도 지끈지끈 아파왔다.

그래도 수부외과 출신으로.

집도에 반나절 이상 걸리는 수지 접합 수술로 단련된 탓에, 앤서니는 오늘 면접을 견딜 수 있었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앤서니 교수님은 유독 피곤해 보이시는데요?”

막내 교수 격인 패트릭이 서류를 정리하며 말했다.

“지원자가 좀 많았습니까? 한 30명 정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거의 100여 명이 와버렸으니.”

“그러게 말입니다. 딱히 부스트 업 프로그램에 대해 소문을 낸 것도 아니었죠. 입소문만으로 이 정도인데 만약 정식으로 공고를 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 패트릭이 몸서리를 쳤다.

또 다른 교수 캔드릭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나라 서전들은 어떻게 알고 우리 프로그램에 지원했답니까?”

앤서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는 외국에서 온 지원자가 생각보다 많아서 놀랐다.

무려 지원자의 20퍼센트가 외국 출신이었던 것이다.

자국 서전들도 잘 모르는 정보를 타국 서전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했다.

“예전에 메이유에서 수련했던 다른 나라 서전이 꽤 있지 않습니까? 그분들에게는 따로 기별을 넣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으음…… 좋은 제자를 키웠으면 불러봐라. 이겁니까?”

“말씀 한번 잘하셨네요. 딱 그런 의도랍니다. 외국 출신 서전이 메이유에서 수련을 마쳤다는 건 대단한 업적이니까요.”

“외국 지원자는 전체적으로 실망이긴 했죠. 단 한 명만 빼고.”

패트릭이 자신이 쥐고 있는 서류 뭉치를 내려 보았다.

가장 윗면에 준후의 지원 서류가 놓여 있었다.

“이 친구,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패트릭이 준후의 서류를 테이블 중앙에 놓았다.

앤서니와 캔드릭과 함께 보자는 듯.

두 사람의 시선이 준후의 서류에 한참 머물렀다.

“준후 서? 여러모로 대단했어요. 일단 영어를 말하고 듣는 능력이 출중하더군요. 제아무리 의학 지식에 빠삭하고 수술을 잘해도 스태프들과 말이 안 통하면 합격을 시켜줄 수 없는데 말이에요.”

캔드릭이 감탄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패트릭이 칭찬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가장 충격적인 건 봉합 실습할 때 아닙니까? 저는 그때만 떠올리면 아직도 소름이 돋습니다.”

패트릭이 두 팔을 X자로 교차시켜 본인의 팔뚝을 쓸어내렸다.

앤서니도 황당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기만 했다.

당시 상황은 이랬다.

“이걸 5분 전에 다 봉합하면 가산점을 줍니까?”

준후의 당돌한 발언이 면접실에 울려 퍼졌다.

다른 응시자들도.

면접관들도 자신의 두 귀를 의심해야 했다.

5분 남짓한 짧은 시간.

그 시간에 결코 불가능한 봉합을 준후는 해낼 수 있다는 것처럼 말했다.

심지어 5분도 아니라…….

5분 전에!

어이가 없었는지 앤서니의 왼쪽 입 꼬리가 삐죽 올라갔다.

패트릭과 캔드릭은 얼굴을 종잇장처럼 구겼다.

경쟁이 심하니 튀어 보이고 싶은 마음은 백번 이해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면접 자리가 허풍을 떠는 곳인가.

당연히 아니었다.

준후를 향했던 면접관들의 호감도가 수직으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방금 그 발언은 무척 무례하고 불쾌하군요. 준후 서, 혹시 이 실습의 유래를 알고 있습니까?”

“아니요. 모릅니다.”

“이 실습은 말입니다. 우리 교수들끼리 장난삼아 했던 내기에서 비롯되었어요.”

앤서니가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우리는 보통 4분 안에 이 모형을 봉합합니다. 여러분과 똑같은 5-0 봉합사로요.”

“…….”

“진 사람이 커피나 간단한 간식을 사곤 했죠.”

앤서니의 말에 다른 응시자들이 입을 벌린 채 경악했다.

과연 세계 최고 메이유의 서전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문의 자격을 획득한 응시자들조차 그만한 속도를 낼 수는 없었으니까.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충분히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5분 안으로 봉합을 한다면 제 봉합 솜씨가 교수님들과 동급이라는 뜻 아닙니까?”

“…….”

“응시자가 감히 교수님들과 동급의 실력을 갖췄다고 하니 화가 나신 거고요.”

“맞아요. 찰떡같이 정리했군요.”

앤서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쯤 되면 준후가 말을 알아들었겠지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저는 정말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거짓말을 해봐야 망신 밖에 더 당하겠습니까?”

“허…….”

면접관들이 일제히 침음성을 흘렸다.

도무지 준후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준후와 면접관들이 기 싸움을 벌이면서 면접실 분위기가 일촉즉발이 되었다.

괜히 불똥이 튈까.

다른 응시자들만 애꿎게 긴장을 했다.

“좋아요. 피곤하게 입씨름 하지 말고 실력으로 이야기합시다. 준후 서가 5분 안쪽으로 봉합을 끝낸다면 가산점이 아니라 이번 시험 수석으로 뽑겠어요. 단.”

“단?”

“5분 안에 못 끝낸다면 실격 처리하겠습니다.”

준후를 향한 앤서니의 눈빛에 표독함이 묻어났다.

자신감 있는 서전은 좋아하지만.

자만하는 서전은 증오하는 앤서니였다.

“교수님, 탈락이라니 그건 좀 심하지 않습니까? 원래 5분 안에 봉합하는 게 목표도 아니고.”

패트릭의 지적에 앤서니는 단호하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실로 대쪽 같은 태도였다.

“봉합 실습이 아니라 실전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본인이 소화하지도 못할 수술을 밀어붙였다가 환자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뭐 그렇기야 한데…….”

“자기 주제를 파악하는 것도 서전의 덕목 중 하나입니다. 실전에서 환자 하나를 죽이는 것보다 우리 프로그램에서 탈락하는 게 백번 나을 겁니다.”

말을 마친 앤서니가 다시 준후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이렇게 묻고 있었다.

너 이래도 감당할 수 있겠어?

준후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케빈, 타이머 키고 바로 실전 테스트 시작합시다.”

“네. 교수님.”

케빈이 바지 주머니에서 타이머를 꺼낸 뒤 하나, 둘, 셋 숫자를 셌다.

셋이라는 말과 함께 봉합 실습의 막이 올랐다.

응시자들의 손이 번개같이 수쳐 세트로 향했다.

앤서니는 팔짱을 낀 채 오로지 준후만을 응시했다.

입으로는 잘 까불었지만.

어디 손으로도 잘 까불 수 있을까.

의심 반.

불신이 반이었던 앤서니에 마음의 추가 서서히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 미친…….’

앤서니는 눈을 부릅떴다.

준후의 손놀림이 신들린 듯 빨랐던 것이다.

봉합사 포장을 벗기고 니들홀더로 봉합침을 쥐는 데 채 3초가 걸리지 않았다.

끼기기긱.

니들홀더로 봉합침 조이는 소리가 경쾌했다.

다른 응시자들은 아직 봉합사 포장도 다 뜯지 못한 상태였다.

준후의 왼손과 오른손이 환상적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니들홀더를 쥔 오른손으로 모형에 운침을 하고.

왼손으로 봉합침과 봉합사의 방향을 차분하게 유도했다.

그렇게 상처 양쪽에 봉합침을 삽입한 후.

준후가 오른손목을 부드럽게 회전시켰다. 봉합사가 꼬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매듭을 만들어냈다.

실로 완벽한 One-Handed 역 타이 매듭법이었다.

총 세 번의 매듭을 짓고서.

준후는 매듭에서 0.5mm 상단 부분을 가위로 잘랐다.

찰칵!

남은 봉합사가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설명이 길었지만.

실제로는 5초 만에 벌어진 일!

앤서니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준후의 실력이 압도적이라서 그랬다.

준후를 지켜보는 앤서니의 미간은 갈수록 좁아졌다.

심지어 시간이 지나면서 준후의 봉합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그 속도가 워낙 빨라서.

누가 보면 꼬마가 소꿉장난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드르르륵.

앤서니는 급기야 의자를 뒤로 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후가 봉합 상태를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열차 같은 속도를 내면서도.

봉합은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상처 양쪽으로 운침한 자리의 간격이 일정했다. 매듭과 매듭 간의 간격도 일정했다.

다소 난이도가 높은 파도 모양(~).

곡선(⁀)모양의 상처를 봉합할 때도 준후의 봉합은 한결같이 올곧기만 했다.

“저게 말이 됩니까? 직접 보고 있는데도 기가 막히는 군요.”

“없어서 톡 까놓고 이야기 하는데…… 솔직히 로니 교수님보다 잘하는 것 같은데요?”

어느새 패트릭과 캔드릭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 역시 뭔가에 홀린 듯 준후의 봉합을 지켜보고 있었다.

면접관은 응시자들을 냉정하게 살필 의무가 있었지만 지금은 도무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준후의 실력이 너무 뜨거웠다.

준후가 세 번째 상처를 봉합하고 있을 때.

다른 응시자들은 고작 첫 번째 상처의 절반쯤을 봉합한 상태였다.

사실은 저게 정상이었다.

면접관 앞에서 봉합을 하고.

또 다른 응시자들과 속도 경쟁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제 실력을 발휘하기 힘드니까 말이다.

오로지 준후만이 남들과 다른 차원에서 봉합을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전 다 끝났습니다.”

준후가 니들홀더와 포셉을 손에서 놓으며 후련하다는 듯 말했다.

“케빈, 시간은?”

“4분 5초입니다.”

“적어도 6-0 봉합만큼은 교수들에게 뒤지지 않는 군…… 놀라워.”

앤서니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뭐래?

6-0말고 11-0 봉합도 할 수 있는데. 난 이미 호월십이수를 대성했다고.

준후가 속으로 말했으므로.

그 말은 교수들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5분 다 됐습니다. 응시자들은 전부 들고 있는 수술도구를 내려놓으세요.”

케빈의 지시에도 몇몇 응시자들이 끈질기게 봉합을 계속했다.

결국 그들은 감점을 받았다.

실습이 끝난 후 성적표라고 할 수 있는 봉합 모형이 응시자들 앞에 놓여 있었다.

당연하게도…….

실습 성적의 최고점은 준후가 찍었다.

허풍인 줄 알았건만 정말 5분 안에 모든 상처를 모조리 봉합해 냈으니까.

심지어 봉합의 완성도 또한 다른 응시자들을 월등하게 뛰어넘었다.

“준후 서. 앞으로 더 기대하겠어요. 이번 테스트 1등은 당신입니다.”

회상을 마치고 앤서니는 피식 웃고 말았다.

신경외과 부스트 업 프로그램에 준후라는 괴물이 나타났다.

그 여파는 절대 작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닥터 서가 왜 이렇게 실력이 출중한지 알 것도 같습니다.”

“닥터 서에 대해 알아요? 그동안 왜 말을 안 했습니까?”

패트릭의 혼잣말에 앤서니가 눈썹을 치켜뜨며 반응했다.

“그야…… 방금 생각났으니까요. 이번 시험에서 사우스 코리아 출신 지원자는 닥터 서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거야 그렇죠.”

“메이유에서 수련했던 닥터 팍도 사우스 코리안 출신 아닙니까? 닥터 팍이 닥터 서를 추천했다면 말이 되죠.”

“아…… 그 사람을 잊고 있었군요.”

앤서니가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재현 팍.

메이유 클리닉을 들었다가 내려놓은 희대의 천재 서전.

재현 팍은 느슨했던 메이유 클리닉 신경외과 의국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환자에게 접근하는 방식이나 수술하는 방식이 스마트해서 그에게 붙여진 별명이 미스터 스마트였다.

“사우스 코리아 출신 서전들이 대체적으로 실력이 좋긴 하죠. 영어만 잘했어도 지원자가 많았을 텐데.”

“맞습니다. 일상용어와 의학용어는 또 다른 영역이니까요.”

앤서니의 말에 패트릭이 맞장구를 쳤다.

대화가 잠시 끊겼을 때.

케빈이 종이봉투를 들고 면접실로 들어왔다. 교수들의 허기를 채워 줄 햄버거가 도착한 것이다.

케빈이 햄버거를 나눠주면서 교수들의 눈치를 봤다.

“자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

“그게…… 이런 말씀 드리기는 죄송한데…….”

케빈이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혹시 레이먼드는 시험을 잘 봤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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