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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354화 (351/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354화

제68장 신입(4)

“뭐, 엄청 심각한 건 아니에요. 아이가 잘 울고 토하고, 잠도 못 자고 그러더라고요.”

“정확히 언제부터 그랬습니까?”

“그게…….”

보호자가 준후의 눈치를 살피며 말끝을 흐렸다.

무슨 사연이 숨어 있는 듯했다.

“어렵게 말을 지어내지 마시고요.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진료가 왜곡되지 않아요.”

“제가 너무 유난을 떠는가 싶기는 해요. 그래도 걱정이 돼서.”

“부모가 자식 몸 걱정하는 건 유난이 아닙니다.”

준후가 보호자 편을 들어주었다.

만약 준후가 결혼하고 아이가 있다면 보호자처럼 아이의 건강에 온통 관심이 쏠렸을 것 같았다.

그것이 아마 자녀를 향한 사랑일 것이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힘이 나네요. 아이가 아픈 지는 일주일 정도 됐습니다.”

“일주일 내내 울고 보채던가요?”

“그런 건 아니고요. 갈수록 빈도가 잦아져서요.”

그 후로도 준후는 몇 가지 질문을 더 던졌다.

아이가 고열에 시달린 적이 있느냐.

아이가 낙상을 한 적이 있느냐.

선천적으로 앓고 있는 질환이 있느냐 등등.

환자가 초진이고.

준후도 초진이라서 가능한 꼼꼼하게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고자 애썼다.

그런데 웬걸?

딱히 의심 가는 질환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이는 멀쩡해 보였다.

보호자의 말에 따르면.

최근 울고 보채는 숫자가 늘고 있다는데 정작 진료실에 들어온 아이는 방긋방긋 웃고만 있었다.

정말 아이가 문제일까.

어쩌면 보호자의 걱정이 너무 과도한 건 아닐까.

준후의 의심은 이제 아이가 아닌 보호자를 과녁으로 삼기 시작했다.

“지루해, 죽겠네. 대체 언제까지  진료 볼 건데?”

모니터 뒤에서 오스틴이 하품을 했다. 그리고 눈짓으로 벽시계를 가리켰다.

진료를 9시에 시작했는데 벌써 10분이 지났다.

준후가 10분 동안 확인한 일이라고는 아이가 멀쩡하다는 사실뿐이었다.

응급실과 달리.

외래 진료는 시간에 쫓기는 구나.

하긴 오스틴 같은 서전이면 예약 환자가 잔뜩 밀려 있을 테니까.

시간의 압박을 느끼면서도 준후는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머릿속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1) 아이가 아픈데 자신이 아이의 질환을 못 알아보는 것이다.

2) 보호자의 걱정이 도를 지나친 것이다.

3) 아이는 멀쩡한데 자신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질환을 찾느라 헛고생하고 있다.

준후는 가까스로 찾은 경우의 수 3가지를 나열했다.

그중 가장 무서운 상황은 무엇일까.

당연히 1번 아닐까.

그렇다면 1번부터 완벽하게 배제하는 게 최우선 과제일 것이다.

드르르륵.

준후가 느닷없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오스틴과 보호자의 시선이 준후에게 주목되었다.

두 사람의 시선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갑자기 왜 일어나는데?

간지러운 눈총을 받았지만 준후는 따로 설명은 하지 않았다.

보호자에게 다가가 아이를 물끄러미 관찰했다.

피부에 두드러기가 났다든가.

혈색이 창백하다든가.

머리를 다쳤을 때 나오는 특유의 표정이나 손 발짓이 있다든가 등등.

준후의 눈빛에는 집요함이 끈적하게 담겨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10명의 환자를 진단하더라도 단 1명의 환자를 놓치면 말짱 꽝이었기 때문이다.

“뭔가 이상한 게 있나요?”

보호자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가까이서 보니까 뭔가 보이는 게 있네요.”

“그게 뭔가요?”

“아이의 머리가 조금 큰 것 같아서요.”

“그런가요? 저는 하나도 모르겠는데요?”

보호자의 목소리에 비아냥이 섞여 있었다.

아이 머리 크기를 지적해서 기분이 나빴던 건지.

진단이 시원치 않아서인지.

준후로서는 확인할 도리가 없었다.

“일단 확인해 보면 알겠죠. 교수님. 줄자를 주시겠습니까?”

드르르륵.

오스틴이 책상 서랍을 열고 꺼낸 줄자를 준후에게 던졌다.

준후는 줄자를 사용해서 아이의 머리 둘레를 쟀다.

무림에서부터 길러 온 준후의 눈썰미는 정확했다.

크게 티가 날 정도는 아니지만.

아이의 머리 둘레는 확실히 다른 또래의 아이들보다 1.3배 정도 더 컸다.

그러고 보니 머리가 전체적으로 볼록한 느낌도 들었다.

“아이 머리가 또래보다 조금 크긴 합니다.”

“그건 알겠는데요. 아이 머리 크기가 지금 중요한가요?”

보호자가 따지듯이 물었다.

준후를 올려다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바로 그때였다.

“으아아앙!”

얌전히 있던 아이가 우렁차게 울기 시작했다.

보호자는 침착하게 한 손으로 아이의 기저귀를 살폈는데 대소변을 본 것은 아니었다.

“아이가 배가 고픈 겁니까?”

“아니에요. 오기 전에 젖은 먹였어요. 이렇게 이유도 없이 울어서 미칠 지경이라니까요.”

아이를 진정시키려는 듯.

아이를 안고 있는 보호자의 두 팔이 리드미컬하게 움직였다.

준후는 슬슬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환자를 꼼꼼히 보는 건 물론 중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준후를 기다리는 환자는 한두 명이 아니었다. 대기 중인 환자들의 입장도 고려해야 했다.

정상과 비정상.

그 경계를 확인하기 위해.

준후는 최후의 승부수를 던졌다.

지구상에서 오로지 준후만 해낼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까꿍! 엄마 당황하니까 울면 안 돼요.”

준후는 아이를 진정시키는 척하면서 아이의 이마에 잠깐 손을 얹었다가 떼었다.

준후의 눈썹이 아주 짧은 순간 치솟았다가 가라앉았다.

이후 준후는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시간을 오래 잡아먹긴 했는데 관찰력은 제법이군.”

오스틴이 팔짱을 낀 채 말을 계속했다.

“저 아이는 대두증이다. 한 마디로 머리가 크다는 뜻이지. 발달 장애는 없어 보이는데 그냥 머리만 큰 거라고 봐야지.”

“교수님은 끝까지 얄궂으시군요.”

“응? 그게 무슨 뜻이지?”

오스틴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물었다.

준후는 설명 없이 입을 꼭 다물었다.

“선생님. 아이가 괜찮으면 괜찮다, 이상이 있으면 이상이 있다고 말씀해 주세요. 더는 못 기다리겠어요.”

아이를 간신히 달랜 보호자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오래 기다리셨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걸 아신다니 다행이네요.”

“제가 봤을 때, 아이는 정상이 아닙니다. 아무래도 자세한 검사를 해봐야 병명이 나올 듯합니다.”

“머리가 큰 것도 병인가요?”

“머리 크기가 병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설마 메이유 클리닉 같은 곳에서 검사비를 뜯어내려고 수작을 부리는 건 아니겠죠?”

준후를 향한 보호자의 눈초리가 날카로웠다.

벌써 심사가 뒤틀린 눈치였다.

하지만 보호자의 거센 기운에도 준후의 표정은 태연하기만 했다.

준후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자신의 판단이 100퍼센트 옳다는.

“Brain CT 촬영하고 다시 뵙겠습니다. 어쩌면 수술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네요.”

* * *

“자네, 아주 당돌한 소리를 하던데? 멀쩡해 보이는 환자한테 CT 오더를 내리고 수술을 받을 수도 있다고?”

환자가 떠난 후 오스틴이 준후를 쳐다보며 말했다.

준후는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차트를 작성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흡사 피아니스트가 연상될 정도였다. 눈으로 손을 따라가기 벅찰 정도였다.

타다다닥. 타다다닥.

경쾌한 키보드 소리가 진료실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교수님 함정을 판 건 너무 치사하지 않습니까?”

오스틴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준후는 자기 할 말만 했다.

준후의 지적에 오스틴은 가슴이 살짝 뜨끔했다.

틀린 말이 아니었으니까.

오스틴의 진단으로 환자는 수두증을 앓고 있었다.

수두증.

말 그대로 머리에 물(뇌척수액)이 차는 질환이다.

수두증 환자가 2세 이하일 경우.

환자의 머리가 둘레가 비정상적으로 커지며 자주 울고, 자주 보채고, 음식물을 토하기도 한다.

수두증이 심하면.

그러니까 머리 둘레가 누가 봐도 커졌다면 진료는 쉬운 편이다.

하지만 이번 케이스는 환자의 머리 둘레가 애매했다.

대두증으로 오인하고 넘어가기에 딱 좋은 케이스였다.

실제로 준후는 아이의 머리 크기가 비정상이라는 점까지 간파하는 데 성공했다.

이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긴 했다.

첫 진료에 그만한 눈썰미를 갖추긴 쉽지 않았다.

보호자는 비협조적이고.

아이는 시끄럽게 울어대고.

진료 시간의 압박이 덮치는 상황에서 냉정한 판단을 내리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으니까.

만약 준후가 아닌 다른 교육생이 들어왔으면 어버버하다가 환자가 멀쩡하다며.

환자를 그냥 집으로 돌려보냈을 확률이 높았다.

그런데 준후는 어땠는가.

평정심을 유지한 채 진료를 끝마쳤다.

오스틴이 함정을 팠다는 사실까지 간파하고 있었다.

외래 진료를 처음 하는 애송이 주제에 오스틴의 손바닥을 벗어나 버린 것이다.

하지만 오스틴은 준후에게 감탄했으면서도 그 속내를 표현하지는 않았다.

“함정? 무슨 함정 말이지?”

오스틴이 시치미를 뚝 떼며 되물었다.

“환자가 대두증 환자인 것처럼 몰아가시지 않았습니까? 저였으니까 꼼꼼히 따지고 들었지, 다른 친구들이면 꼼짝 없이 속았을 겁니다.”

“대두증 맞는데?”

“끝까지 말장난을 하실 겁니까?”

타이핑을 하던 준후가 오스틴을 향해 눈을 흘겼다.

“하늘에 맹세하건대 난 틀린 말을 한 적이 없어.”

오스틴이 끝끝내 오리발을 내밀자 준후가 크게 한숨을 터뜨렸다.

“그럼 이렇게 말씀드리면 되겠습니까? 환자는 수두증으로 인한 대두증을 앓고 있었다고요.”

준후의 입에서 끝내 수두증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풋내기가 자신과 똑같은 결론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오스틴은 한 번 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 맹랑한 녀석 봐라?

“환자가 수두증이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

준후는 즉답을 못하고 잠깐 멈칫거렸다.

‘내공 뇌혈관 조영술’을 설명할 방법이 없어서였다.

“일단 아이 머리 둘레가 비정상이었고요. 아이가 자주 울고, 가끔씩 토한다는 데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그 정도야 그 나이 대 아이들 사이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 아닌가?”

오스틴이 끈질기게 물었다.

준후에게서 무언가를 더 끌어내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일반적인 증상이 머리 둘레와 합쳐지면 수두증을 의심하기에 충분하죠. 각각의 증상을 하나로 묶는 게 진단의 기초라고 배웠습니다.”

오스틴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옳디옳은 말이었다.

이쯤 되면 한 방 먹은 것은 자신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모든 의도를 간파당하고.

환자 진단까지 준후가 스스로 척척 해냈으니까.

어쩌면 기대주 레이먼드보다 준후가 더 물건일지 모른다고 오스틴은 문득 생각했다.

* * *

시간이 흐르고 흘러 오후 12시가 되었다.

점심시간이 찾아오면서 준후의 첫 오전 외래 진료의 막이 내렸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는 자네가 다 했지.”

준후의 인사를 받은 오스틴이 멋쩍게 웃었다.

“교수님은 식사하러 안 가십니까?”

“오늘은 간단하게 샌드위치로 때워야겠어. 환자가 꽤 밀려 있으니까.”

“죄송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점심시간에도 진료를…….”

준후가 오스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최선을 다했지만 환자가 밀리는 것만큼은 막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첫 외래진료를 맡다 보니 익숙하지 않은 부분이 많았던 것이다.

준후는 새삼 자신의 문진 실력이 모자라다는 것을 느꼈다.

꼼꼼한 건 좋은데…….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던지지 못해 진료 시간이 질질 끌리고 말았다.

덕분에 손 기술이 뛰어나다고 우쭐했던 마음이 겸손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서전에게 수술은 더없이 중요했지만 그렇다고 수술이 치료에 전부는 아니었던 것이다.

명의로 가는 길은 아직 멀고 험난했다.

배워야 할 것도 산더미였다.

하지만 준후는 그래서 더 좋았다.

배움에 끝이 없다면 강해지는 데도 끝이 없을 테니까.

“마침 방금 결과가 나왔군.”

“무슨 결과 말씀이십니까?”

“뭐긴 뭐겠어? 직접 확인해 봐.”

진료실을 나가려던 준후가 발길을 돌려 업무 책상으로 다가갔다.

모니터에 Brain CT 영상이 떠올라 있었다.

“자네가 처음으로 진료했던 환자야. 자네 눈에는 어떻게 보여?”

준후가 눈을 가늘게 뜬 채 CT 영상을 판독했다.

환자의 머리 중앙에 나비 모양의 검은 음영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저 검은 음영이 환자의 머릿속에 축적된 뇌척수액이었다.

사실 준후는 ‘내공 뇌혈관 조영술’을 통해 결과를 벌써 알고 있긴 했지만 말이다.

“수두증이 맞습니다.”

“그래. 내 함정에 안 걸리고 진료를 아주 잘해냈어.”

“별말씀을.”

준후가 멋쩍게 웃었다.

대화가 잠깐 끊긴 사이, 노크 소리가 들리자마자 진료실 문이 벌컥 열렸다.

키가 전봇대처럼 큰 의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교수님. 식사 안 하십니까?”

“오늘은 일이 바빠서 안 되겠군.”

“교수님답지 않게 진료가 밀려 있기는 한 것 같더군요. 근데 옆에 있는 친구는 누굽니까?”

“부스트 업 프로그램을 듣는 제자야. 이쪽은 헥터라고 해. 브루스와 마찬가지로 너희들을 지도해 줄 교수 중 한 명이지. 세미나를 마치고 이제 막 돌아온 모양이군.”

“안녕하세요. 준후 서라고 합니다.”

“반가워. 헥터라고 해.”

준후는 헥터와 간단하게 통성명을 주고받았다.

“준후, 너는 잠깐 진료실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어. 나는 헥터와 잠시 이야기를 나눠야겠어.”

“알겠습니다. 교수님.”

준후는 진료실 바깥으로 나간 뒤 데스크 근처를 서성거렸다.

나 빼고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거지?

갑자기 호기심이 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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