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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355화 (352/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355화

제68장 신입(5)

“그게 정말입니까? 장난치시는 거 아니죠?”

놀란 헥터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오스틴이 방금 막 전해준 소식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내가 자네한테 시답지 않은 장난이나 칠 사람인가?”

“평소에도 장난 많이 치지 않습니까? 뭐, 이런 종류는 아니지만.”

헥터의 지적에 오스틴이 피식 웃고 말았다.

“어쨌거나 방금 한 말은 전부 사실이야.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전부.”

“그렇군요.”

여운이 다 가시지 않았는지 헥터가 입을 살짝 벌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오스틴에 말에 따르면.

준후는 벌써부터 명의가 될 재능을 갖추고 있다고 했다.

소아 신경외과 외래 진료를 처음 봤음에도 환자를 야무지게 잘 봤다고 한다.

준후의 진단은 무려 오스틴의 진단과 60퍼센트 가까이 일치했다고 한다.

실로 경이로운 수치였다.

준후를 비롯한 부스트 업 프로그램 지원자는 애송이였다.

적어도 소아 신경외과 분야에서는.

아직 제대로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고.

경험이 쌓인 것도 아니건만.

그런 말도 안 되는 성적을 냈다?

이는 기적에 가까웠다.

헥터는 자신이 외래 진료를 처음 보던 날을 떠올리곤 쓰게 웃었다.

지옥도 그런 지옥이 없었다.

환자와 보호자는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지.

영상과 각종 검사 판독 결과가 모순을 일으키지.

가뜩이나 환자가 밀려 진료 시간도 촉박하지 등등.

할 수만 있다면.

헥터를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이제 막 발병된 수두증 환자를 진단해 낸 게 하이라이트군요. 눈썰미가 보통내기가 아닙니다.”

“내 말이 그 말이야. 심지어 내가 골탕 먹이려는 것까지 알아챘다니까.”

오스틴이 질렸다는 듯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 부스트 업 테스트에서 수석을 한 게 레이먼드가 아니라 준후라고 합니다.”

“곁에서 지켜보니까 그럴 만해.”

“올해는 재능 있는 지원자가 풍년이군요. 레이먼드에, 준후에, 올리버까지.”

“올리버 이야기는 하지 말지.”

오스틴이 갑자기 정색하며 말했다.

헥터도 실수를 깨닫고 손으로 입을 가렸다.

올리버는 오스틴 교수의 친아들이었다.

그래서 말을 꺼내는 게 더 조심스러웠다.

올리버에 대한 평가가 지나치게 좋아버리면 자기 자식을 감싸고돈다는 이야기가 나올까봐.

오스틴은 특히 더 경계하고 있었다.

“조금 이따가 자네가 집도하는 뇌종양 수술이 있지?”

“네. 기억하시는군요.”

“그 수술 집도를…… 준후에게 맡기게.”

오스틴의 파격적인 제안에 헥터가 눈썹을 찡그렸다.

반박하는 목소리가 헥터의 목소리가 곱지 않았다.

“그건 선을 넘는 것 아닙니까? 쉬운 수술부터 차근차근 가르쳐야 합니다. 교육을 시작하자마자 소아 뇌종양 수술이라니요.”

“그 친구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

“3시간 동안 잠깐 본 것 아닙니까? 그걸로 준후를 판단하기에는 이릅니다.”

헥터는 한발자국도 물러나지 않았다.

준후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가뜩이나 어려운 수술을 교육 첫날부터 집도했다가 실패하면 그 후유증은 길고 오래 갈 것이다.

잘못하면 폐인이 될지도 몰랐다.

오스틴은 분명 존경할 만한 서전이었지만 그의 교육 방식은 가끔씩 도를 지나칠 때가 있었다.

오늘처럼.

“사자 새끼를 토끼 새끼랑 똑같이 취급하면 되겠어?”

“사자도 갓 난 자식에게 사냥을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자네 오늘따라 유독 삐딱하구먼. 나한테 불만이라도 있나?”

“생각해 보십쇼. 지금까지 교수님 눈에 들었던 친구들은 전부 다 나가떨어지지 않았습니까?”

“…….”

“잠재력이 높은 친구일수록 아껴서 다뤄야 한단 말입니다.”

“지들이 지 발로 나간 걸 왜 내 탓을 해?”

오스틴이 뾰로통한 얼굴로 대답했다.

여전히 본인의 단점을 모르는 눈치였다.

“어쨌거나 방금 이야기는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감히 하극상을 벌이겠다?”

“교수님이 폭군처럼 나오셔서 그러는 거 아닙니까. 부디 이번만은 제 말을 따라주세요.”

헥터가 간절하게 나오자 오스틴이 턱을 쓸어내렸다.

그러다가 이내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빙긋 웃었다.

헥터는 그래서 더 불안했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해보는 건 어때?”

* * *

그 시각.

준후는 텅 빈 진료 데스크에 서서 로비를 훑고 있었다.

기다림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지루함도 하염없이 길어지고 있었다.

내공으로 청력을 높인다면.

오스틴과 헥터의 대화를 엿듣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상대가 적이라면 정보를 캐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르지 않았겠지만.

오스틴과 헥터는 적이 아니었다.

아군의 사생활은 지켜주고 싶었다.

할 일이 없어 준후는 오전에 진료한 환자들을 한 명 한 명 되짚었다.

잘한 부분은 어디인지.

부족하거나 아예 헛다리를 짚은 부분은 어디인지 치밀하게 분석했다.

마치 무림에서 비무를 치르고 나서 비무를 복기하듯이.

혼자서 하는 준후의 복기는 심지어 경건하기까지 했다.

눈빛은 매서웠고.

꼭 다문 입술은 비장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환자가 자신의 오진으로 병을 키웠다고 상상하면 한 명의 환자를 복기하는 데도 처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처절함이야말로…….

무공과 내공을 넘어서 준후를 성장시킨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날개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날갯짓을 하지 않으면 새도 날 수 없었다.

벌컥!

복기가 막 끝날 때쯤, 진료실 문이 열렸다.

기분 탓인지 몰라도 헥터의 얼굴이 어두워 보였다.

“이야기는 잘 끝내셨어요?”

“뭐, 대충. 일단 식사라도 간단하게 할까? 교수님 샌드위치를 사다 드려야 하니까 샌드위치를 먹는 게 좋겠어.”

“그러시죠.”

“무슨 이야기를 하셨길래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나요?”

준후가 넌지시 운을 띄웠다.

“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길래 딱 잘라 거절했지.”

“그게 뭡니까?”

“식사 끝나고 나서 말해줄게. 너 체할라.”

헥터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헥터와 찾은 곳은 지하 1층 식당가였다.

병원 건물만큼이나 식당가의 인테리어도 세련되고 정갈했다.

중식, 일식, 심지어 한식당도 눈에 띠었다.

준후가 호기심에 식당 앞 메뉴판을 훑다가 갓 눈을 뜬 심봉사처럼 눈을 크게 떴다.

부대찌개 가격이 사악했다.

1인분에 무려 2만원을 받았다.

메이유의 봉급과 뉴튜브 수익을 생각하면 큰돈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충격은 충격이었다.

헥터와 찾은 식당은 샌디 파티라는 햄버거와 샌드위치를 파는 가게였다.

제일 잘 나가는 샌드위치를 주문하고 두 사람이 창가 자리에 앉았다.

간편식이라서 식사는 금방 끝났다.

“아까 하던 이야기나 마저 해주세요. 궁금해서 미치겠습니다.”

“아…… 그거? 참 나, 너도 듣고 나면 어처구니가 없을 거야.”

헥터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글쎄. 너한테 지금 당장 집도를 맡기란다.”

“원래 집도도 하는 거 아닌가요?”

준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오리엔테이션 파일에 따르면 부스트 업 프로그램 지원자는 매일 1개 이상의 집도, 1개 이상의 어시스트를 맡도록 되어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오스틴의 제안이 상식적으로 느껴졌다.

“보통 수술이 아니니까 그렇지. 8살짜리 아이 전두엽에 핍지 교종을 수술하라잖아.”

“아…… 뇌종양 수술이었군요.”

“그래. 그나마 양성이긴 한데 그래도 어렵고 위험한 건 마찬가지야.”

목이 타는지 헥터가 오렌지 주스를 빨대로 쪽 빨아 먹고 말을 계속했다.

“지금 너희들 수준이면 수막종이나 뇌하수체 종양 정도가 딱이거든.”

“…….”

“더 골 때리는 건 뭔지 알아?”

“뭡니까?”

“너한테 집도 할지, 안 할지를 물어보고 네가 원한다면 시켜주란다. 당연히 거절하겠지?”

“아뇨. 전 하고 싶은데요?”

준후의 대답은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이에 놀란 헥터가 사레가 들렸는지 콜록콜록 기침을 해댔다.

헥터의 벌어진 입에서 튀어나오는 오렌지 주스가 섞인 침방울을 준후가 고개를 옆으로 젖혀 피해냈다.

“요즘 신입은 농담도 화끈하네. 근데 하나도 재미없어. 인마.”

“당연히 재미가 없었을 겁니다. 농담이 아니니까요.”

“너 지금 네가 한 말의 뜻을 충분히 알고 하는 거야?”

“네.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해를 했으면 감히 그런 말이 안 나올 텐데?”

헥터가 팔짱을 낀 채 불만 섞인 눈빛으로 준후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준후의 태도는 침착하기만 했다.

눈썹 한 번 까딱거리지 않았다.

양성 핍지 교종이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건 자신이 해야 하는 수술이다 싶었던 준후였다.

헥터의 눈에는 준후가 풋사과처럼 보일지 몰라도.

준후는 결코 풋사과가 아니었다.

한국에서 뇌종양 파트를 거의 마스터하고 왔다.

교수들의 수술들을 초식화했고.

이를 ‘후두부 시신경 점혈법’으로 상상해서 수없이 많은 집도를 펼쳐왔다.

물론 소아 뇌종양 환자를 수술한 적은 없었지만.

큰 맥락은 성인수술과 다르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개개인의 능력 발휘를 중시하는 미국 땅이 아닌가.

그렇다면 더 이상 힘숨찐 노릇은 그만 두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실력을 십분, 아니, 백분 발휘하고 싶었다.

“오스틴 교수님이 제 판단에 맡기겠다고 하셨다면 제 판단이 곧 오스틴 교수님의 판단이겠죠?”

“어…… 그거야 그렇긴 한데.”

“그럼 핍지 교종 수술, 제가 하겠습니다.”

설득을 해도 안 먹힐 거라 생각했는지 헥터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고집을 부리면 내가 막을 방법은 없어. 근데 말이다. 오늘 결정을 평생 후회하게 될지도 몰라. 그걸 감당할 수 있겠어?”

“네.”

준후의 대답이 짧고 굵었다.

“좋아. 그럼 나중에 딴 소리 하지나 마. 내가 억지로 수술방에 넣었다고 한다거나.”

“그럴 일 없습니다.”

“일어나자. 오스틴 교수님께 샌드위치 드리고 바로 수술실 가는 걸로.”

헥터가 앞장서고 그 뒤를 준후가 뒤따랐다.

까맣게 타는 헥터의 속도 모르고.

준후는 미국에서 하는 첫 집도에 들떠 있었다.

발걸음이 날개를 단 듯 가벼웠다.

* * *

“샌드위치 배달 왔습니다.”

소아 신경외과 제1진료실 문이 열리고 헥터가 안으로 들어왔다.

오스틴은 책상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중이었다.

“표정이 썩은 걸 보니 뜻대로 잘 안 됐나 보지?”

오스틴이 이를 드러내며 웃으며 헥터가 건네는 샌드위치를 받았다.

포장지를 뜯는 손놀림이 경쾌했다.

“준후, 그 친구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요. 완전 크레이지 보이라니까요?”

헥터가 답답하다는 듯 제 가슴을 두드리며 하소연했다.

“아니 글쎄, 이야기를 꺼내기 무섭게 본인이 직접 집도를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좋게좋게 설득을 해도 안 통해요.”

“거봐. 내가 뭐랬어. 준후는 내 과라니까?”

오스틴이 키득키득 웃었다.

“아까는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러니까 교수님이 준후를 막아주세요. 이러다가 애 하나 버리겠습니다.”

“본인이 할 수 있다고 하잖아? 그럼 믿고 맡겨야지.”

“그런 논리라면 유치원생한테도 수술을 맡기실 겁니까?”

“그건 비유가 과해.”

쫙 펴진 오스틴의 검지가 좌우로 까닥거렸다.

“만약 저렇게 뻐기다가 수술에 실패하면 뒷감당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그게…… 내가 알 바인가?”

오스틴의 입가에 냉정한 미소가 떠올랐다.

살 놈만 살고.

강해질 수 있는 놈만 강해져라.

그것이 오스틴의 교육 철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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