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 쓰는 외과 의사 357화
제69장 첫 수술(2)
준후의 눈짓을 받은 맥스웰이 ‘삭두’부터 진행했다.
삭두란 수술 전후로 절개창이 오염되지 않도록 면도칼로 환자의 머리카락을 잘라내는 처치였다.
전공의 면허증을 따고 그동안 숱하게 삭두를 했을 텐데도.
맥스웰의 손길은 엉성하고 서툰 기색이 역력했다.
그 이유가 단순히 손이 커서 둔해 보이는 것인지.
아니면 손기술 중에 어디 나사 하나가 빠져서 그런 건지는 준후조차 구분하기 힘들었다.
한마디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준후는 이를 목구멍으로 삼켰다.
헥터가 맥스웰을 흐뭇하게 쳐다보고 있어서였다.
삭두는 무려 7분에 걸쳐 끝났다.
준후라면 단 2분 안에 끝냈을 작업이었다.
삭두가 끝나면서 제이미의 민머리가 무영등 불빛에 반짝거렸다.
스으으윽. 스으으윽.
집도의에서 졸지에 제2어시스트가 되어버린 헥터가 제이미의 정수리 앞 쪽을 소독 솜으로 닦아냈다.
그 위에 새하얀 방포를 덮었다.
“10번 블레이드.”
준후는 헥터에게 건네받은 칼날을 칼대에 꽂았다.
딸칵!
칼날과 칼대에 아귀가 서로 맞으면서 경쾌한 소리가 퍼졌다.
“개두술은 어떻게 진행할 생각이지?”
헥터가 물었다.
“전두측두 개두술을 할 예정입니다.”
“클래식한 접근법이군. 하지만 수술이 끝나고 피부가 함몰되면서 미용상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을 텐데?”
준후는 손에 쥐고 있던 메스를 멈추고 헥터를 바라보았다.
준후가 무리한 수술을 진행한다고 해서 심술궂은 질문을 던지는 것은 아닌 듯했다.
헥터는 그저 시험하고 있는 듯했다.
준후가 가진 의료지식의 깊이를.
“맥스웰. 자네라면 환자의 머리를 어떻게 열거지?”
“저라면…… 측두부 개두술을 펼칠 것 같습니다. 절개 범위가 좁아서 환자의 미용까지 챙겨줄 수 있으니까요.”
“그럼 준후에게 다시 묻지. 전두측두 개두술을 하는 게 정말 옳은 가?”
“네. 제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수술이 끝나고 측두부에 금속판을 대주면 함몰을 막을 수 있습니다. 20분도 안 걸리는 처치죠.”
준후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맥스웰이 말한 것처럼 측두부 개두술을 펼친다면 수술 부위 접근이 어려워집니다. 물론 미용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종양을 제대로 제거하는 일이 더 중요하고 생각합니다.”
준후의 야무진 대답을 듣고 헥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 공부 좀 했나 본데? 함정을 파도 안 걸려드는군.”
이에 함정에 걸려든 맥스웰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운 좋게 한국에서 비슷한 케이스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그건 운이 아니라 학습이고 실력이지. 앞으로는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는 껴들지 않을 거야. 수술에 집중해도 좋아.”
“네. 교수님.”
끊어진 리듬을 되찾기 위해 준후는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했다.
그리고 제이미의 머리에 가로로 10센티미터 길이 정도 되는 절개창을 그었다.
확실히 성인 머리를 절개할 때와는 촉감이 달랐다.
메스 칼날 끝에서 말랑말랑한 감촉이 전해졌다.
그래서 준후는 임기응변으로 손목에 가하는 힘을 줄였다.
이윽고 한 붓 그리기를 한 것처럼, 제이미의 머리에 곡선 형태에 절개창이 만들어졌다.
말은 안 해도 다들 놀란 눈치였다.
절개창의 곡선이 각도기를 대고 그린 것처럼 반듯했으니까.
하지만 전직 검객이었던 준후에게 이 정도 절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맥스웰 뭐 해? 절개창 닦고 리트렉션(견인)해야지.”
“어? 어. 알았어.”
맥스웰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거즈로 절개창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냈다.
양손에 견인기를 들고 상처를 위 아래로 벌렸다.
준후는 파죽지세로 절개를 계속해 나갔다.
두개피와 두개 피하조직까지 절개하고 나자 단단한 두개골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쯤에서는 맥스웰의 양손도 자유로워졌다.
절개창에 고정형 견인기를 설치한 것이다.
“다이아몬드 드릴.”
헥터가 건넨 드릴로 준후는 두개골 절제술에 나섰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드릴이 두개골을 파고들면서 구멍이 생겼고 그 구멍에서 슬러시처럼 갈린 뼛조각이 새어나왔다.
드릴이 사용되면서 수술방은 졸지에 공방 같은 분위기를 뿜어냈다.
‘기대 이상이군. 오스틴 교수님이 눈여겨볼 만해.’
준후를 지켜보던 헥터가 속으로 감탄했다.
오스틴이 준후를 ‘과대평가’한다고 생각했고.
준후가 스스로를 ‘과대평가’한다고도 생각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헥터가 준후를 ‘과소평가’했던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비록 수술 초입부고, 종양 절제술은 시작도 안 했지만.
준후가 지금 같은 안정감을 유지한다면 수술에 성공하는 것도 문제없어 보였다.
준후는 의학 지식이 빠삭했고.
담력이 강했으며.
무엇보다 그 두 가지를 받쳐주는 손기술이 예술이었다.
수술 내내 헥터가 준후의 손을 유심히 관찰한 결과, 준후의 손은 떨림을 몰랐다.
꼭 로봇팔 같았다.
수전증 환자도 아니고 손 안 떠는 게 뭐 그리 대수냐고 따지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천만에 말씀!
인간의 손은 원래 떨리게 되어 있다.
무언가를 오래 쥐고 있으면.
손은 자연스레 떨린다.
떨림을 멈추지 않기 위해 손에 힘을 잔뜩 주면 그것도 나름대로 문제를 터뜨린다.
손에 쥐가 날 수도 있고.
평소보다 과하게 힘을 준 탓에 수술 부위에 상처를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떨리지 않는 준후의 손은 물건이었다.
앞으로 고난이도 뇌혈관 봉합술이나 문합술을 할 때 그 진가를 발휘할 것이다.
준후에 집중하던 헥터는 맥스웰에게도 눈길을 주었다.
준후에 비하면 손길이 서툴렀지만 맥스웰은 덩치에 안 어울리게 꼼꼼하고 섬세한 친구였다.
출혈이 발생하면 그때그때 석션을 했고.
지혈 거즈를 댔고.
두개 내 조직이 건조해지지 않도록 생리식염수가 담긴 분무기를 주기적으로 칙칙 뿌렸다.
이번 부스트 업 프로그램 기수는 기대를 걸어 봐도 좋을 듯했다.
그렇게 30분이 더 흘렀다.
두개골 절제술이 끝나고 두개골이 들리면서 희뿌연 경막이 모습을 드러냈다.
‘진짜 게임은 지금부터인가?’
헥터의 입 꼬리 한쪽이 말려 올라갔다.
위기 없는 평탄한 모험은 재미도 없는 법.
잠시 후 준후는 깜짝 놀랄 만한 암초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암초를 통해 이번 수술의 선장인 준후의 진짜 역량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위기 속에서도 과연 준후는 스스로의 항해를 고집할까.
아니면 본인의 한계를 깨닫고 헥터에게 키를 넘기게 될까.
상상만으로 흥분됐다.
* * *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부탁해.”
준후는 굽혔던 허리를 펴며 맥스웰을 칭찬했다.
맥스웰의 삭두는 영 못 미더웠지만, 어시스트 능력만큼은 발군이었다.
딱지치기로 부스트 업 프로그램에 합격한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너도 제법 하는데? 경막까지 접근하는데 30분밖에 안 걸렸어. 원래 최소 1시간은 잡아먹는 건데.”
“누가 어시스트를 잘하더라고.”
준후의 농담에 맥스웰이 피식 웃었다.
수술 전에는 잠깐 티격태격했지만 수술방에 들어오고 또 같이 수술을 하면서 두 사람은 동지가 되었다.
수술방이 전쟁터였으므로.
전우애가 싹 튼 것이다.
“수술 계속합니다.”
준후는 천장에 달린 미세 현미경에 눈을 얹었다.
우유의 지방층처럼 불투명한 경막이 뇌 바깥쪽을 감싸고 있었다.
일단 뇌막을 다 절개해야.
목표로 하는 뇌에 도달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잘해왔다면.
그간의 과정은 일종의 몸 풀기에 불과했다.
집중력을 십분 발휘해야 하는 구간은 지금부터였다.
“전기 메스.”
준후는 헥터가 건네 전기 메스로 경막 절개를 시작했다.
그런데 시작부터 징조가 심상치 않았다.
메스로 3센티미터 길이의 절개창을 내는데 출혈이 심각했다.
경막 주변에 피의 호수가 생겨날 정도였다.
“뭐야? 너 어디 잘못 건드렸어?”
맥스웰이 미간을 찌푸리며 썩션기로 피를 빨아들였다.
“아니. 평소 하던 대로 했는데?”
준후도 영문을 몰라서 눈만 깜빡거렸다.
어느 부위가 됐던 절개를 하면 출혈은 피할 수 없다.
혈관은 몸의 모든 부위를 지나가니까.
그렇다고 해도 방금에 출혈량은 상식 밖이었다.
경막에 분포한 혈관은 대부분 모세 혈관인데…….
왜 이런 대량 출혈이……?
“그럼 평소에도 환자 피를 이렇게 본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나?”
“너도 내가 절개하는 거 봤잖아. 특별히 혈관을 건드리지는 않았어.”
“근데 실수가 아니고서 어떻게 출혈이 이렇게 심하냐는 거지.”
맥스웰의 지적에 준후는 반박을 못했다.
준후도 이유를 몰랐던 것이다.
맥스웰과 다툼을 하는 와중에 출혈은 계속되었다.
경막 위로 스멀스멀 빨간 피가 올라오고 있었다.
준후의 미간이 좁아지고 이마에는 주름이 잡혔다.
‘이거 야단났는데?’
출혈이 발생했는데 정작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보비(전기 소작기).”
준후는 일단 응급처치부터 시작했다. 출혈이 발생한 혈관을 소작기로 지졌다.
치이이익. 치이이익.
혈관 조직이 타면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달고나 냄새 같은 달달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출혈이 그제야 간신히 멈췄다.
“뇌압부터 측정해 줄래?”
“15mmHg. 간당간당하네. 바이탈이랑 심전도는 다행히 아직까지 문제없고.”
정상 뇌압의 범위는 5mmHg-15mmHg였다.
뇌압은 정상 범위에서 가까스로 턱걸이를 하고 있었다.
“교수님. 대체 왜 출혈이 발생한 거죠?”
준후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헥터에게 물었다. 맥스웰도 이유가 궁금하다는 듯 헥터를 바라보았다.
“요즘은 집도의가 제2어시스트에게 조언도 구하나?”
“그건 아닙니다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서 그렇습니다.”
“궁금하면 알려줄 수는 있어.”
“그럼 알려주세요.”
“단 조건이 있다.”
헥터의 눈동자가 개구쟁이처럼 빛났다.
헥터는 약 올리듯 한참 뜸을 들이다가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방법을 알려주는 대신 남은 수술은 내가 집도하겠어.”
헥터의 제안에 준후가 입술을 깨물었다.
처음부터 이럴 속셈이었나.
자신에게 수술을 맡길 생각이 없었나 싶었던 것이다.
“방법만 알려주시면 제가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습니다.”
준후도 지지 않고 대꾸했다.
지금은 그저 경험과 지식이 부족해서 헤매고 있을 뿐이었다.
약간의 힌트만 얻는다면.
스스로 충분히 수술을 완성할 수 있다고 준후는 믿었다.
“왜 이렇게 이번 수술에 집착하지? 다른 수술을 집도해도 되잖아?”
“…….”
“자네의 실력과 가능성은 이미 충분히 보여준 것 같은데?”
“힘들다고 포기하기 시작하면 그게 버릇이 됩니다. 그리고 그런 버릇을 가진 서전을 환자와 보호자 스태프들이 어떻게 믿겠습니까?”
“이봐, 준후. 그건 지독한 모순이야.”
“무슨 말씀입니까?”
“힘들다고 포기하기 싫다며? 그럼 내게 답을 구하지 말고 자네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
헥터가 냉정한 목소리로 받아쳤다.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면 때로는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료는 괜히 존재하는 게 아니니까요.”
“그렇다면 말이야. 내가 이 자리에 없었다면 어땠을까? 자네는 누구한테 도움을 받았을까?”
헥터가 아픈 곳을 찔러 왔다.
맞는 말이긴 했다.
만약 이 자리에 헥터가 없었다면.
준후는 스스로 답이 없는 문제와 싸워야 했다.
그래서일까.
자신이 소아 파트에서 무력하다는 사실을 준후는 새삼 깨달았다.
“교수님. 그래도 첫 수술이고 어려운 수술인데 힌트 정도는 주실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잠자코 있던 맥스웰이 모처럼 한마디 했다.
헥터의 살벌한 눈빛을 받고 금방 입을 다물기는 했지만.
“자, 선택지는 단 두 개뿐이야. 집도를 나한테 넘기든가, 아니면 혼자서 살 길을 찾든가. 시간이 없으니까 빨리 결정하라고.”
헥터의 최후통첩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