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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358화 (355/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358화

제69장 첫 수술(3)

숨 막히는 정적이 수술방을 사로잡았다.

헥터가 공을 던졌고 그 공을 받을 것인지 쳐낼 것인지는 준후의 선택에 달렸다.

스태프들의 이목이 죄다 준후에게 집중되었다.

‘저렇게 뜸 들이는 걸 보면 포기하겠네. 하긴 더 이상은 무리지. 매정하게 힌트도 안 준다는데.’

맥스웰은 준후가 헥터에게 집도의 자리를 순순히 양보할 거라고 예상했다.

부스트 업 프로그램 시험장에서 레이먼드를 들이받고.

또 핍지 교종 수술을 집도하겠다고 나설 만큼.

준후는 주장이 강하고 당찼다.

그런 준후가 망설인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다는 뜻이었다.

“넌 지금까지 충분히 잘해왔어. 자랑스러워해도 돼.”

맥스웰이 준후를 격려했다.

하지만 준후는 아무런 대답 없이 환자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꺼낸 말은 걸작이었다.

“응? 뭐라고?”

“내 말 못 들었어? 너 지금까지 잘해왔다고. 그러니까 여기서 포기한다고 해서 실망하지 말라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 준후가 어깨를 으쓱하고 헥터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교수님. 도움은 필요 없습니다. 집도는 지금처럼 제가 진행하겠습니다.”

준후의 발언이 수술방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놀란 맥스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커튼 뒤 마취의는 사레에 걸렸는지 콜록콜록 기침을 해댔고 소독 간호사는 불안한 눈동자를 좌우로 굴렸다.

“좋을 대로 해. 대신 포기 선언은 언제든지 받아줄 테니까 그렇게 알고.”

“네. 교수님.”

뒤집어진 수술방에서 침착한 스태프는 헥터와 준후뿐이었다.

수술을 계속 밀어붙이겠다는 준후도 미쳤고.

그걸 순순히 받아주는 헥터도 미쳤다.

이 수술은 미친 수술이었다.

“준후, 오기 부리지 말고 교수님께 맡겨. 환자가 죽으…… 아니, 환자한테 문제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

“메이유 와서 변호사 얼굴부터 보고 싶어?”

맥스웰이 꾸짖듯이 물었다.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말해야 손톱만큼이라도 말 귀를 알아들을 테니까.

“무슨 말 하는지 알겠는데 지금은 수술에 집중하자. 말싸움 하느라 시간이 너무 지체됐어.”

“출혈을 해결할 방법은 있고?

“잘 찾아봐야지.”

“너무 무책임한 발언 아닌가?”

“없는 길을 만드는 것도 서전이 갖춰야 할 덕목이다. 이 위기를 극복하면 한 번 더 성장할 수 있어. 전기 메스.”

준후가 헥터에게 건네받은 전기 메스로.

출혈이 발생했던 지점에서 1cm 아래 위치한 경막을 절개해 나갔다.

“아…….”

맥스웰은 반사적으로 침음성을 흘렸다.

또 출혈이 터졌다.

아까만큼은 아니었지만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답답해 죽겠네.

대체 왜 이러는 거지?

확실히 준후가 실수를 한 것도 아닌데 말이야.

경막을 적시는 빨간 피를 썩션하면서 맥스웰이 얼굴을 찌푸렸다.

정답을 아는 헥터가 입을 꼭 다물고 있으니 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경막 절개만 하다가 날 새겠다.”

“아니.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것 같아.”

“갑자기?”

준후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대후두공에서 무려 5센티미터 떨어진 곳에 전기 메스를 갖다 대었다.

“거긴 종양하고 너무 떨어져 있지 않아?”

“괜찮아. 견인해서 벌려주면 돼.”

“그래. 일단 시도는 해봐.”

맥스웰의 목소리가 침울했다.

고작 절개 장소만 바꾼다고 해서 출혈이 사라질까?

그럴 리 없었다.

맥스웰이 봤을 때.

환자는 특이한 뇌혈관 질환을 같이 앓고 있는 게 분명했다.

성인이 됐든, 소아가 됐든.

경막 절개에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양에 출혈이 발생할 수는 없었다.

치이이익.

전기 메스의 칼날을 따라, 궤적을 따라 경막이 서서히 벌어졌다.

대위기에 몰렸음에도.

준후의 눈빛과 손짓은 차분함, 그 자체였다.

“어라?”

잔뜩 긴장한 채 썩션을 준비하던 맥스웰이 크게 당황했다.

눈으로 보고 있는데도 믿기 힘들었다.

준후가 3번째로 택한 장소에서는 출혈이 많지 않았다.

이게 어찌된 영문이지?

* * *

‘잘은 모르겠지만 성공한 건가?’

경막을 다 절개하고 나서 준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1) 수술 부위와 최단거리에 있는 경막을 절개할 것인가.

2) 돌아가더라도 안전해 보이는 경막을 절개할 것이냐.

이번 사태의 원인을.

준후는 딱 두 가지로 좁힌 후 후자를 선택했다.

평소 성격대로라면 분명 전자를 밀어붙였을 것이다.

준후는 빠르고 정확한 것을 선호했다. 보통은 그 편이 환자의 치료와 회복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이뇨제를 투입하고.

항고혈압 제제를 투여하고.

환자의 머리를 거상시킨다.

그렇게 환자의 뇌압을 낮춘 후 출혈을 감수하면서 경막 절개를 계속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마음을 돌렸다.

평소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해 보았다.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 초기 증세다.]

아마 아인슈타인이 했던 말로 기억했다.

그의 말이 옳다면.

새로운 문제는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하는 게 좋겠다는 직감이 뇌리에 번뜩였다.

그리고 준후의 판단은 적중했다.

“교수님. 지금이라면 출혈이 발생한 이유를 말씀해 주실 수 있겠죠?”

준후의 시선이 헥터를 향했다.

맥스웰도 이유가 궁금하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뭐, 문제가 해결됐으니 말해주는 것도 상관없겠지. 처음하고 두 번째에 경막을 절개했던 부위가 어디였지?”

“대후두공 근처였습니다.”

“소아 환자는 말이다. 대후두공 주변에 정맥들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어.”

설명하는 헥터의 목소리가 차분했다.

“아직 뇌와 뇌혈관이 활발하게 만들어지고 성장하는 단계이기 때문이지.”

“…….”

“혹시 뇌가 25살이면 완성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나?”

“그건 잘못된 이야기 아닙니까? 신경 가소성이 있어서 뇌에 회로는 나이가 들어서도 새로 생기고 발전할 수 있지 않습니까?”

준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해. 하지만 25살에 뇌가 ‘구조적’으로 완성되는 것도 사실이야.”

“구조적인 부분이군요.”

“그래. 핵심 단어를 잘 짚었다. 사람 성격이 쉽게 변하지 않는 이유도 25살에 뇌가 구조적으로 완성되어서란다.”

긴 설명을 마친 헥터가 준후와 눈을 마주쳤다.

내색은 안 했지만 그는 준후가 이번 수술에서 엎어질 거라 확신했다.

고집이 센 걸 보아하니.

정맥동이 발달한 경막을 계속 절개하다가 매운맛을 보고 메스를 넘길 게 분명하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뜻밖의 변수가 발생했다.

준후는 정면 돌파가 아닌 우회전술을 택했다.

“왜 중간에 생각이 바뀌었지? 꾸준히 정맥동을 절개할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게…….”

준후가 머쓱하게 웃고선 대답을 이어갔다.

“한국 속담 중에 나무가 너무 곧으면 부러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제가 부러지는 거면 상관없는데 환자가 부러지면 곤란하죠. 그래서 제 고집을 꺾었습니다.”

“의외로 유연한 면도 있구나. 잘했다.”

헥터는 모처럼 준후를 칭찬했다.

수술방만 아니었으면 준후의 어깨도 두드려 주었을 것이다.

준후는 소아 신경외과 교제를 공부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뛰어난 지략을 선보였다.

다른 교육생들은 아마…….

죽었다가 깨어나도 준후 같은 판단을 못 내렸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수술을 맡지도 않았으려나?

절개한 경막을 벌리면서 수술은 계속되었다.

지주막과 연막이 차례대로 절개 되면서 호두처럼 생긴 뇌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게는 1.4킬로그램에서 1.6킬로그램 언저리.

그러면서도 신체 에너지의 20퍼센트를 소비하고 전신을 통제하는 컨트롤 타워.

우주처럼 아직도 미지로 가득 찬 장기.

헥터는 뇌에 매력에 사로잡혀서 소아 신경외과의가 되었다.

우주가 아니라 소우주가 보고 싶어서랄까.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단다. 과연 네가 거기까지 해낼 수 있을까?’

헥터가 준후를 곁눈질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 * *

‘하이라이트는 지금부터다!’

준후는 미세 현미경으로 핍지 교종을 노려보았다.

핍지 교종은 정수리에서 5센티미터 아래에 위치해 있었다.

준후가 기억하기로 이곳은 운동 신경과 감각 신경이 분포된 곳이었다.

그러니 준후의 메스가 빗나간다면 에이미는 몸을 움직이거나 촉각을 느끼는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최악의 경우…….

일부 운동 능력과 감각 능력을 상실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기 메스를 손에 쥔 준후는 오히려 자신감에 넘쳤다.

비록 진검은 아니지만.

메스를 들었을 때에 자신감은 하늘도 꿰뚫을 듯했다.

무림에서 준후는 검에 죽고 검에 살았다.

물론 그 때는 복수의 검이나 다름없었지만 지금의 준후는 활인검이었다.

“정말 괜찮겠어?”

맥스웰이 걱정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두개골이나 뇌막은 실수를 해도 어떻게든 복원이 되지만 뇌는 아니야. 까닥 잘못하면…….”

“내 걱정할 힘이 있으면 그 힘으로 어시스트에 더 집중해 줘.”

“후. 너를 무슨 수로 말리겠냐. 알았다.”

맥스웰이 체념한 듯 말했다.

헥터는 아까부터 입을 다문 채 한 마디도 안 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준후로서도 알 길이 없었다.

설마 아직까지 내가 못 미더운 걸가.

“핍지 교종 제거 수술 계속하겠습니다.”

준후의 전기 메스가 뇌종양을 향해 다가갔다.

메스는 4센티미터 크기의 뇌종양의 테두리부터 동그랗게 잘라내기 시작했다.

절제를 진행하는 동안, 준후는 잠시 호흡을 멈췄다.

들숨을 마시고.

날숨을 내뱉는 미묘한 순간에도 손이 흐트러질 수 있었다.

전기 메스가 0.1mm라도 종양을 넘어선다면 대뇌피질에 분포된 신경이 죽을 수 있는 만큼.

신중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었다.

종양을 절제하면서.

준후는 메스에 무공 초식 중 하나인 풍청월랑(風天月朗)에 묘리를 담았다.

풍청월랑(風天月朗).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형상화한 무공으로 움직임이 부드럽고 완만한 것이 특징이었다.

준후는 의도적으로 손목에 힘을 뺐다.

다른 사람이 보면 손목이 흐느적거린다고 착각할 만큼.

대신 손가락에는 충분한 힘을 실었다.

호월십이수를 대성한 덕분일까.

손이 곧 준후였고.

메스가 곧 준후였다.

준후의 종양 제거술은 마치 물과 같아서 거스르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메스를 사용하면 할수록.

집중력과 섬세함에 탄력과 가속도가 붙고 있었다.

물고기가 물을 만나서 생기는 시너지였다.

준후는 어느새 무아경에 돌입했다. 자아가 사라진 자리에서 모든 것을 느꼈다.

‘미쳤네. 얘 인간 맞아?’

종양 제거술을 지켜보며 맥스웰은 속으로 감탄하기 바빴다.

준후의 손놀림은 기가 막혔다.

떨림 없는 손.

유연하디유연한 손목.

자로 잰 것처럼 딱 떨어지는 종양 윤곽선.

준후는 마치 아이가 그림을 따라 그리는 것처럼 종양 테두리를 손쉽게 박리하고 있었다.

누군가 이 모습을 보면.

‘종양 절제술이 이렇게 쉽다고? 나도 충분히 할 수 있겠네.’하고 오해할 정도였다.

종양의 테두리를 전부 박리한 준후는 곧 회를 뜨듯 전기 메스를 깊숙하게 밀어 넣었다.

종양을 완전히 들어낼 작정인 듯 했다.

그런데 왜일까.

지켜보는 제3자인 자신의 눈에도.

준후가 실패할 거라는 걱정은 머리카락 한 올만큼도 안 드는 이유가.

무공 쓰는 외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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