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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361화 (358/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361화

제70장 비극(1)

잇따라 발생한 총성은 고요했던 열람실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공부하던 사람들은 일제히 부엉이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출입문 쪽을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이 놀라고 당황한 것처럼 준후도 놀라고 당황했다.

하지만 준후의 감정은 그 결이 조금 달랐다.

누군가가 자신을 해칠까봐 걱정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다쳤을까봐 걱정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준후는 다급하게 열람실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열람실 앞으로 펼쳐진 홀에 몇몇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누군가는 비명을 질렀고.

누군가는 자리를 피했고.

누군가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총을 든 백인 남성이 있었다.

남성이 허공에 겨눈 총구 끝에서 하얀 연기가 불길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남성의 눈동자는 분노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찰칵! 찰칵!

남성이 연신 방아쇠를 당겼다.

탄이 떨어졌는지 차가운 격발음만 들렸다.

총기 난사를 작정했을까.

남성은 자킷에서 새로운 탄창을 꺼내 총 손잡이에 밀어 넣었다.

“이봐요. 진정해요.”

남성과 눈이 마주친 순간, 준후는 두 손을 들어 싸울 의지가 없음을 드러냈다.

“넌 뭔데?”

“지금이라도 사격을 멈추세요. 더 이상 죄를 짓지 말라고요.”

“네가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지껄이지?”

남성이 눈을 부라리며 언성을 높였다.

“날 이렇게 만든 건 세상이야. 가족은 나를 떠났고 회사는 나를 잘랐어. 난 그저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을 뿐인데.”

“세상을 원망할 순 있어요. 하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당신에게 잘못한 건 아니잖아요? 제 말이 틀렸나요?”

남성의 총구가 준후를 겨눴음에도 준후는 침착하기만 했다.

사실 총 따위는 두렵지 않았다.

아영과 사격장에서 데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내공을 최대치로 발휘하면.

총의 궤도를 파악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이었다.

준후야 용케 총알을 피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이 준후를 따라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제 아무리 준후라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 쏟아지는 총알을 맨 몸으로 막아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럼 쌓인 내 울분은 어디서 풀지? 누가 풀어주지?”

“지금부터 같이 생각해 봐요. 우선 총부터 내려놓고요.”

“너 이 새끼. 총 안 내려놔!”

남성이 일갈을 지르며 측면에 있는 휴게실 쪽으로 총을 쏘았다.

총탄이 관통한 자리에 구멍이 생겼다.

휴게실 쪽에도 총을 소지한 사람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런 식이라면 총 싸움이 벌어지면서 애꿎은 사람이 더 다칠 판국이었다.

준후는 입술을 깨물며 쓰러진 사람들을 살폈다.

총상을 입은 환자는 6명.

복부, 흉부, 옆구리 등등, 다친 부위는 제각각이었으며 그들이 흘린 피로 바닥이 흥건했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준후는 모처럼 단전에 있는 내공과 마나 하트에 모아 두었던 내공을 전부 터뜨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준후의 전신에서 피어올랐다.

청풍심법에 영향을 받은 준후의 눈동자가 푸른 호수 빛을 띠었다.

“너…… 넌 뭐야?”

준후에게 위압감을 느낀 남성이 마른침을 삼켰다.

“다들 엎드리세요! 당장!”

준후의 외침이 쩌렁쩌렁하게 홀에 울려 퍼졌다.

사람들이 일제히 바닥에 엎드렸다.

파바바밧!

준후는 인간 탄환이 되어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사내가 황급히 준후에게 총을 쏘았다.

탕! 탕! 탕! 탕!

연발로 쏘아진 총탄의 궤적이 준후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머리, 어깨, 가슴 부위인가.’

준후는 반원을 그리며 총알을 모조리 피해냈다.

보이지 않는 것은 피할 수 없지만 보이는 것은 능히 피할 수 있었다.

“헉!”

사내는 코앞까지 다가온 준후를 발견하고 헛숨을 들이켰다.

총을 연발하고.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떴을 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 짧은 순간에 이렇게까지 거리를 좁힌단 말인가.

총은 또 어떻게 피했고 말이다.

귀신이라도 된단 말인가.

하지만 사내에게는 경악할 여유조차 없었다.

사내에게 접근한 준후가 수도로 사내의 손목을 내리쳤다.

“아아아악!”

사내가 내지른 비명이 홀에 터져 나갔다.

퍽!

준후가 수도로 사내의 목덜미를 강하게 내리쳤다.

사내는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 * *

준후가 총기 난사범을 제압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도서관은 아직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직 넋이 나간 얼굴을 한 사람이 많았고.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다는 사실에 흐느껴 우는 사람도 있었다.

‘이걸 대체…….’

총상에 당한 환자들을 훑어보며 준후는 입술을 깨물었다. 찢어진 입술 사이에서 짭짤하고 비린 피 맛이 났다.

이 사람들을 과연 내가 다 살릴 수 있을까.

동시다발적으로 번져 나가는 죽음에 질식할 것 같았다.

뭔가 감당할 수 없는 짐이 어깨를 짓누르는 것 같기도 했다.

무슨 바보 같은 생각을.

너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지.

압도당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압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해.

준후는 스스로를 꾸짖으며 양 손으로 볼을 가볍게 찰싹 두들겼다.

“응급처치 가능하신 분, 전부 이 자리에 모여주세요! 의대생 또는 의사분이면 더더욱 좋습니다.”

준후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홀에 울려 퍼졌다.

이에 총 7명의 인원이 쭈뼛쭈뼛 준후에게 다가왔다.

“의사 또는 의대생은 왼쪽으로, 아닌 분은 오른쪽으로 이동해 주세요.”

준후의 지시에 사람들이 두 부류로 나뉘었다.

하늘이 준후를 버리지는 않은 걸까.

의료 종사자가 총 4명, 일반인이 3명이었다.

희망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불씨를 살리는 건 온전히 준후의 몫이었다.

“저기요. 치료를 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럼 제 지시를 따라 주실래요?”

안경을 낀 남성이 준후 앞으로 나왔다.

남성의 목소리가 까칠했다.

“저 메이유 클리닉 소화기 외과 레지던트 4년차거든요? 그 쪽이 제 말을 따르는 게 맞지 않겠어요?”

“난 신경외과 전공의입니다. 부스트 업 프로그램 교육 중이고요. 까불지 말고 입 다물어요.”

준후의 말투가 평소와 달리 거칠었다.

쓸데없는 말싸움으로 시간을 낭비하기 싫었다.

“아…… 알겠습니다.”

안경 낀 청년은 더 나대지 않고 볼을 긁적거리고 말았다.

준후에게 기 싸움에서 밀린 것이다.

“일단 이쪽에 두 분은 보건실로 가주세요. 총격전이 벌어졌다고 알리고 필요한 물건을 전부 챙겨서 이 자리로 돌아오세요.”

“네!”

“그리고 나머지 한 분은 도서관에 있는 제세동기를 챙겨서 복귀하세요. 아, 참. 메이유 클리닉 응급실에도 연락해 주시고요.”

“911이 아니라요?”

“911보다 내부 응급차를 이용하는 편이 더 빠를 겁니다. 거리가 가까우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지금 출발하세요.”

용감한 일반인들이 번개처럼 현장을 벗어났다.

“네 분은 각각 환자분을 한 명씩 맡아서 진료해 주세요. ABC(Airway, Breathing, Circulation) 확인을 최우선으로 해주시고 그 다음 지혈입니다.”

준후의 지시가 비장했다.

* * *

루카스는 본인이 맡은 환자에게 다가가던 도중 준후를 힐끔거렸다.

준후는 상태가 가장 안 좋아 보이는 환자들에게 향하고 있었다.

‘목숨이 여러 개인 사람인가?’

루카스는 문득 총격전의 말미를 떠올리곤 부르르 몸을 떨었다.

준후는 괴한을 설득하다가 놀랍게도 괴한에게 달려드는 선택을 했다.

실로 멍청한 짓이었다.

괴한과 준후가 가까웠으면 모를까.

두 사람 사이에는 어림잡아도 20미터의 간격이 있었다.

막무가내로 덤벼들었다간 총알에 벌집이 되기 딱 좋았다.

그런데 웬걸?

준후는 총알을 다 피해내고.

우사인 볼트처럼 괴한에게 다가가 괴한을 손쉽게 제압해 버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현장에서 가장 빨리 정신을 차린 후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청했다.

침착함과 판단력이 발군이었다.

부스트 업 프로그램 교육생은 뭐가 달라도 다른 모양이었다.

“저기요. 괜찮으세요?”

루카스는 본인이 맡은 환자에게 다가가 한 쪽 무릎을 꿇었다.

환자는 대답 대신 신음만 흘렸다.

환자의 얼굴이 백지처럼 창백했다.

추위를 느끼는지 환자의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상체는 멀쩡해 보였는데 고개를 내렸더니 환자의 허벅지에 총상이 있었다.

까맣게 탄 바지 구멍 사이로 피가 꿀렁꿀렁 흘러내리고 있었다.

환자의 바지는 이미 흘린 선혈로 흠뻑 젖어 있었다.

루카스는 자신도 모르게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출혈량이 심상치 않았다.

불행하게도 총알이 대퇴동맥을 스친 모양이었다.

‘하…… 씨 돌겠네.’

루카스는 답답함을 느끼며 양손으로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환자에게 희미하게나마 의식이 남아 있다는 건 희소식이었다.

하지만 그것 빼고는 다 비보였다.

이곳은 도서관이었다.

비록 자신이 외과 레지던트라고 해도 막상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으으으으…… 너무 아파요. 죽고 싶어요.”

환자가 얼굴을 찡그리며 고통을 호소했다.

그 탓에 루카스의 가슴도 찢어질 듯 했다.

이 사람이 무슨 죄가 있는가.

그저 공부하려고 도서관에 왔을 뿐이고 재수 없는 총격전에 휘말렸을 뿐인데 말이다.

‘일단 지혈이 급선무인데. 어쩌지?’

지혈을 할 도구가 없어서.

루카스는 발을 동동 굴렀다.

붕대는 언감생심이고.

급한 대로 옷으로 총상을 감아주고 싶은데 하필 입고 있는 옷이 두꺼운 재질의 후드티였다.

궁여지책으로 루카스는 한 손바닥으로 환자의 총상을 덮었다.

그 위에 다른 한 손을 포갠 뒤 있는 힘껏 눌렀다.

직접 압박법을 사용한 것이다.

“아아아악!”

상처에 압박이 가해지자 환자가 홀이 떠나갈 듯 비명을 질렀다.

“죄송해요. 지금은 이 방법밖에 없어요.”

“끄아아악!”

환자의 비명이 더 거세졌다.

이러다간 환자가 비명을 지르다가 혼절을 할 기세였다.

루카스가 어쩔 줄 몰라 하는데.

낯선 그림자가 루카스를 뒤덮었다.

뒤를 돌아보니 반팔 차림의 준후가 서 있었다.

아니…… 벌써?

치료를 끝냈다고?

가장 위급한 환자를 한 명도 아니라 두 명이나 본 거 아니었나?

게다가 보건실로 간 사람들이 구급함을 들고 복귀한 것도 아닌데?

무슨 수로 치료를 했지?

“총상에서 손 떼고 옷 벗어요.”

“네?”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고. 손 떼고 옷 벗어요.”

준후의 강렬한 카리스마에 루카스가 총상에서 손부터 뗐다.

잠깐 압박을 했을 뿐인데 손바닥이 피투성이였다.

루카스가 후드티를 벗어서 준후에게 건네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찌지지직!

그 두꺼운 재질의 후드티가 종잇장처럼 찢어진 것이다.

심지어 준후는 한 번 세로로 찢은 후드티를 한 번 더 찢었다.

옷이 졸지에 4조각이 되었다.

이 사람 대체 뭔데?

루카스가 놀라거나 말거나, 준후는 한 쪽 무릎을 꿇은 후 환자의 총상 위로 찢어진 옷감을 감고 또 감았다.

출혈 부위보다 조금 더 위쪽에 천을 감아 출혈의 양을 줄이는 수법도 사용했다.

분명 신경외과 전공의라고 했는데 준후는 응급처치에도 일가견이 있어 보였다.

모든 행동이 능숙했다.

하지만 이후의 펼쳐진 행동에 루카스는 경악하고 말았으니…….

팟! 팟! 팟!

준후가 검지로 환자의 허벅지 주변을 콕콕 찔러댔던 것이다.

“뭐 해요? 환자 두고 장난해요? 상처 주변을 손가락으로 찔러대는 게 치료예요?”

준후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에 루카스가 발끈했다.

잘 나가다가 왜 이런 멍청한 짓을 한단 말인가.

“본인 눈으로 직접 확인해요. 출혈점이 어떻게 됐는지.”

“그야 당연히…….”

총상을 다시 확인한 루카스는 말문을 잃었다.

후드티를 무시무시한 속도로 붉게 적셔가던 피의 얼룩이 어느새 뚝 그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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