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 쓰는 외과 의사 362화
제70장 비극(2)
“방금 그거, 어떻게 한 거죠? 출혈이 순식간에 멎었던데.”
루카스가 왕방울처럼 커다래진 눈동자로 물었다.
준후는 대답하지 않았다.
‘점혈 지혈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고, 설령 설명한다고 한들 믿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처치를 마치고 준후는 환자의 얼굴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지속된 출혈로 얼굴에 핏기가 없었다.
창백하다 못해 백지 같았다.
총상 환자 중 출혈량이 가장 많은 환자가 바로 이 환자였다. 저혈량성 쇼크가 가장 걱정되는 환자도 이 환자였다.
‘젠장, 아직 멀었나?’
준후는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쪽을 무심결에 응시했다.
간호실에 보냈던 일반인도, 메이유 클리닉 응급팀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알고는 있었다.
환자 상태가 심각해서.
또 마음이 쫓겨서 그렇지 실제로 시간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하지만 답답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루카스. 이 환자는 내가 보고 있을 테니까 이온 음료 좀 사와요.”
“이온 음료요? 이 상황에 뜬금없이 왜…….”
질문을 하던 루카스가 곧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총알같이 휴게실로 이동했다.
잠깐의 여유가 생긴 사이, 준후는 주변을 살폈다.
도서관 일부 벽과 기둥에 총알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홀 바닥 곳곳에 드문드문 피의 웅덩이가 고여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걱정 반, 호기심 반으로 치료 현장을 구경하기 바빴다.
총격에 쓰러진 환자는 총 7명.
그중에서 두 명을 준후가 직접 봤다.
한 명은 총알이 옆구리를 스쳤고.
다른 한 명은 총알이 복부를 관통했다.
준후는 점혈 지혈법으로 환자의 터진 혈관을 막았고.
진통 점혈법으로 고통을 덜어주었으며.
옷을 찢어서 상처를 감싸고.
내공 수액술로 생기를 북돋아주었다.
임시방편으로는 흠잡을 데 없는 최선의 치료를 했다.
그 이후로는 다른 의사들에게 이동해 그들의 치료를 거들었다.
그러던 중 마지막으로 찾은 사람이 루카스였다.
준후는 다시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손바닥을 환자의 왼쪽 가슴에 얹으려다가 멈칫했다.
이 환자에게는 ‘내공 수액술’을 쓰지 않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았다.
신체기능이 활발해지면.
오히려 출혈량이 늘어날 것 같았다.
“선생님. 이온 음료 사 왔습니다.”
휴게실에서 복귀한 루카스가 준후 앞에서 숨을 몰아쉬었다.
“줘요.”
“아뇨. 이 정도는 제가 할게요.”
루카스가 고집을 부리며 본인이 직접 환자에게 이온 음료를 먹였다.
희미하게나마 의식이 있었으므로.
환자는 이온음료를 나름 잘 받아먹었다.
‘의외로 센스가 있는걸?’
루카스는 이온 음료를 하나만 사오지 않았다. 대략 12개 정도를 사서 품에 안고 가져왔다.
다른 환자들의 출혈까지 고려했던 것이다.
“선생님.”
“네.”
“아까는 건방지게 까불어서 죄송했습니다. 저는 제가 제일 잘난 줄 알고…….”
루카스가 쑥스러워 하며 말했다.
“그럴 수 있어요. 실제로 치료하겠다고 나선 지원자 중에 루카스 경력이 제일 많기도 했고.”
“근데 응급 환자 치료 경험이 많으신가 봐요? 엄청 침착하고 치료도 깔끔하시던데요?”
“뭐, 그런 셈이죠.”
준후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환자복이라면 넘치고 넘쳤다.
환타(환자 타는 의사, 환자를 몰고 다니는 의사) 소리를 지긋지긋하게 들었다.
무공과 내공을 이용한 치료도 많이 해봤고.
힘들었지만 그 때의 경험은 모조리 준후의 경험치가 되었다.
고된 일은.
적어도 스스로 택한 고된 일은 성장의 디딤돌이 되기 마련이었다.
“루카스가 환자 잘 봤습니다. 이온 음료도 잘 사 왔고요.”
준후가 루카스를 칭찬하며 루카스가 사 온 이온 음료를 양 팔로 끌어안았다.
“환자 상태 체크하고 문제 생기면 바로 호출하세요.”
“네. 선생님.”
준후는 자리를 벗어나 다른 의사들에게 이동했다. 루카스가 사온 이온 음료를 돌려 환자들이 마시게 했다.
타다다닥!
급한 불을 끄기 무섭게 1층 간호실로 갔던 일반인들이 2층으로 올라왔다.
누군가의 손에는 구급함이 들려 있었고.
누군가의 손에는 제세동기가 들려 있었다.
“선생님! 메이유 클리닉 응급실에 전화했습니다. 최대한 빨리 구조팀을 보내겠답니다!”
* * *
구조 물품이 도착하면서 추가 조치가 순조롭게 이어졌다.
이제 준후는 직접 치료를 하기 보다는 컨트롤 타워의 역할을 맡았다.
환자를 두루 살피면서.
의사들에게 필요한 처치를 내렸다.
대퇴동맥 총상 환자에게는 다리에 부목을 대게 했고.
체온계, 혈압계 등을 이용해 환자들의 바이탈 확인하게 했다.
옷으로 감싼 상처 위로 붕대를 덧 감으라는 오더도 내렸다.
당장 급한 불이 꺼져가고 있었다.
“거기 두 분, 저쪽에 누운 환자 좀 봐주세요.”
준후가 보건실에서 근무하는 간호사와 루카스에게 말을 걸었다.
준후의 검지가 한 환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저분은 왜요? 가장 멀쩡해 보이는데?”
간호사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장 상태가 안 좋은 분입니다. 제세동기 챙겨서 당장 CPR 진행 하세요.”
“CPR씩이나요?”
“네. 빨리!”
준후가 호통 치자 간호사와 루카스가 마지못해 환자에게 달려갔다.
환자는 잠에 든 듯 바닥에 곤히 누워 있었다.
“저기 괜찮으세요?”
간호사가 한쪽 무릎을 꿇고 환자의 어깨를 흔들었다.
“……!”
환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상하다 싶어서 코 밑에 손가락을 대어보았다.
그런데 웬걸?
숨결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하트 어택(심정지)이 온 것이다.
간호사는 두 번 경악했다.
환자가 심정지라는 사실에, 또 준후가 그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환자와 꽤 떨어져 있었는데 어쩜 이리 정확하고 빠른 진단을 내릴 수 있었을까.
의문을 접어두고 그녀는 루카스와CPR을 실시했다.
‘휴, 거의 다 정리 된 것 같은데?’
준후는 팽팽하게 잡고 있던 긴장의 끈을 살짝만 놓았다.
도서관에서 할 수 있는 처치는 다했다.
환자들은 아직 무사했으며.
메이유 응급팀은 벌써 구조를 떠났다고 했다.
역풍이 순풍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준후는 꾸준히 ‘만화공’ 상태를 유지했다.
만화공(滿花功).
오감을 몇 배로 증폭해 주는 것과 동시에 의식을 여러 개로 쪼갤 수 있는 궁극의 무공.
만화공 덕분에 준후는 혼자서도 7명의 환자를 거뜬하게 살필 수 있었다.
지금 CPR을 진행 중인 환자에게 심정지가 왔다는 것도 만화공 덕분에 알아차렸다.
해당 환자의 흉곽이 아까부터 도통 움직이질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환자를 두루 살피던 준후의 미간이 문득 좁아졌다.
준후는 안경 쓴 의사가 맡은 환자 쪽으로 서둘러 이동했다.
“무슨 일이죠?”
“아. 선생님. 안 그래도 호출하려고 했는데요.”
의사가 변명하듯 말을 이었다.
“이 환자분이 구토를 했는데 그 때부터 숨을 제대로 못 쉽니다.”
의사의 말처럼 환자는 꺽꺽 거리며 호흡 곤란을 호소했다.
한 손으로 목을 움켜쥐었다.
환자 옆에는 방금 막 토한 것으로 보이는 토사물이 부침개 반죽처럼 퍼져 있었다.
“구토물이 기도를 막은 것 같은데 하임리히부터 진행할까요?”
“그러죠.”
준후와 의사가 환자를 부축해서 일으켜 세웠다.
준후는 환자의 등 뒤에 서서 깍지 낀 두 손으로 환자의 복부를 밀어 올렸다. 환자의 몸이 디스코 팡팡을 탄 것처럼 들썩거렸다.
하지만 하임리히법은 통하지 않았다.
기도를 막은 이물질이 튀어 나올 기미가 없었다.
환자는 여전히 호흡곤란으로 고통스러워했다.
“환자분 입 최대한 크게 벌려 보세요.”
입을 제대로 벌릴 힘이 없는지 붕어처럼 입을 꿈뻑꿈뻑하는 환자.
“갑자기 입은 왜? 설마 손을 입에 넣으시려고요? 너무 위험해요. 손가락이 잘릴 수도 있어요.”
“그런 아마추어 같은 짓은 안 합니다.”
준후는 환자의 입에 손바닥을 얹었다.
그리고 내공을 운용해 흡(吸, 빨아들일 흡)자 결을 펼쳤다.
준후의 손과 내공이 썩션 역할을 대신했던 것이다.
쎄에에엑!
그로 인해 진공청소기와 같은 흡입압이 환자의 입 안에서 만들어졌다.
그런데.
‘말도 안 돼. 이것도 안 먹힌다고?’
시간이 꽤 지났는데 손바닥에 닿는 것이 없었다.
흡자결로도 이물질을 빨아 당기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당황한 준후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흡자결의 출력을 높이느냐, 마냐를 두고 준후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준후는 입술을 깨물며 환자의 입에 갖다 대었던 손을 떼어냈다.
결론은…….
흡자결 중단이었다.
무리하게 흡자결을 운용했다간 환자의 기도 표면에 오히려 손상이 갈 수 있었다.
내공이 주는 압력이란 생각보다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맙소사! 환자가 의식을 잃었는데요?”
의사가 눈을 깜빡거리며 다급하게 외쳤다.
뒤에서 환자를 끌어안고 있던 준후도 환자의 몸이 힘없이 축 늘어지는 것을 느꼈다.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었다.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 솟아올랐다.
“선생님. 커터 칼 하고 빨대 좀 챙겨 와주세요. 최대한 빨리요.”
“커터 칼하고 빨대면…… 설마?”
“설마가 맞습니다.”
“그건 안 됩니다, 선생님. 이 자리에서 하기에는 너무 위험해요.”
“환자의 죽음보다 위험한 건 없어요! 당장!”
준후의 일갈에 의사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이를 깨물고 자리를 떠났다.
준후는 환자를 똑바로 눕혔다.
그리고 환자의 목 주변에 ‘진통 점혈’을 펼쳤다.
구급함에 있던 소독약으로 환자의 목 주변을 소독도 했다.
낭떠러지 끝자락에 내몰린 상황.
환자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뿐.
그게 무리라는 것도 알았다.
그게 위험하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이대로 손 놓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설령 구조팀이 온다고 해도.
막상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환자를 살리려면 기관 절개술을 통해 숨 쉴 통로를 만들어줘야 했다.
응급실로 환자를 이송하고.
정작 응급실에서 기관절개술을 펼칠 때가 되면.
환자의 뇌는 벌써 데미지를 입었을 것이다.
환자를 멀쩡하게 살리고 싶다면.
도서관이라는 이 현장에서 기관절개술을 펼쳐야 했다.
“하아…… 하아…… 하아…… 선생님. 여기요.”
숨을 몰아쉬며 도착한 의사가 빨대와 커터 칼을 건넸다.
카페나 매점에서 얻었는지 빨대는 새 것이었다.
커터 칼은 남의 것을 빌렸는지 끝 부분에 녹이 슬어 있었다.
딸칵!
준후는 의사에게 건네받은 녹슨 커터 칼날을 잘라냈다.
드르륵 하고 새 칼날을 밀어올린 후 새 칼날을 알콜 솜으로 소독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선생님. 이건 너무 위험해요. 구급팀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겠어요.”
의사가 걱정이 잔뜩 섞인 눈빛으로 말했다.
“그럴 시간 없습니다. 설령 구조팀이 온다고 해도 해줄 수 있는 건 없고요.”
“선생님은 지금까지 충분히 잘해주셨어요. 그건 누구나 인정할 거라고요.”
의사의 목소리가 격정적으로 변했다.
“성공해도 본전이고 실패하면 선생님 면허가 날아갈지도 몰라요. 그래도 좋습니까?”
준후는 대답을 하지 않고 잠깐 의사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고 담담하게 말했다.
“사람을 살리는 게 왜 본전입니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커터 칼로 환자의 목을 가로로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