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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365화 (362/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365화

제70장 비극(5)

“세상일이라는 게 알다가도 모르겠네.”

출근하기 전 준후는 휴대폰으로 SNS를 살피고 있었다.

준후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준후의 SNS 계정 팔로워는 본래 5만 명 정도로 적은 편이었다.

뉴튜브 구독자가 100만을 찍은 크리에이터임을 감안한다면 말이다.

이유는 준후가 SNS 활동을 거의 하지 않은 것에 있었다.

외과의 생활을 하면서 뉴튜브 영상을 촬영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라서였다.

SNS는 보통 뉴튜브 실시간 스트리밍을 미리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해 왔다.

그런데 고작 일주일 만에 준후는 SNS 생태계에 떠오르는 샛별로 등극했다.

메이유 클리닉 도서관에서 터진 총기 사고를 현장에서 지휘한 영상이 퍼져 해당 사건이 뉴스로 방송되고, 신문, 잡지에서 요청했던 인터뷰 내용이 번져 나가면서.

사람들이 준후에게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준후에게 호기심을 느꼈고.

준후를 더 알고 싶어 했다.

준후의 출신이 한국이고 또 동양이므로 일부 매체는 준후에게 ‘동방박사’를 뜻하는 ‘매기(Magi)’라는 호칭을 붙이기도 했다.

여러모로 분에 넘치는 호칭이었다.

크고 작은 관심들이 모이고 뭉쳐서 만들어진 결정체가 바로 지금 준후가 바라보고 있는 SNS 팔로워였다.

현재 준후의 팔로워는 무려 300만 명에 달했다.

총기 사건에 영향을 받은지라 미국인 팔로워가 압도적인 수를 자랑했다.

이제 계정에서 한글을 구경하는 일이 어려워졌다.

준후는 휴대폰을 가운 주머니에 넣고 방 현관으로 향했다.

분에 넘치는 사랑은 분명 고마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우쭐하거나 자만할 준후는 아니었다.

준후는 오히려 현 상황을 경계하고 조심했다.

관심이란 양날의 검이었다.

준후가 앞으로 한 번만 삐끗해도 지금까지 받았던 칭송이 욕으로 변해서 2배로 쏟아질 것이다.

행동거지를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때마침 울리는 휴대폰.

준후는 번호를 확인하고 곧바로 받았다.

-쌤, 통화 괜찮으세요?

“마침 출근하려던 참이었어요. 아직 여유 있어요.”

-얼마 전에 먼저 제안해 주신 건 있잖아요. 거기에 대해서 좀 말씀드리려고요.

영은이 본론을 꺼냈다.

영은은 준후가 소속된 MCN에서 준후를 담당하는 담당자였다.

“위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답니까?”

-그게…….

영은이 빨리 대답을 못하고 뜸을 들였다.

“물들어 올 때 노 저어야 한다니까요? 승인만 떨어지면 뉴튜브 영상도 더 열심히 촬영해서 보내드릴게요.”

준후의 말이 속사포였다.

-전부 솔직히 말씀 드리면 되죠?

“네.”

-모처럼 장난 좀 쳐봤어요. 승인이 안 날 리가 없잖아요. 쌤한테도 좋은 일이고 저희 회사에도 좋은 일인데.

“장난이 너무 심한 거 아닙니까? 담당자 양반?”

준후가 영화 대사를 패러디하며 농담을 했다.

영은이 쿡쿡 웃어댔다.

지금으로부터 닷새 전.

그러니까 SNS 팔로워가 송곳처럼 뾰족하게 솟구치던 때.

준후는 MCN에 먼저 연락을 했다.

뉴튜트 채널에 ‘영어 자막’을 추가하는 게 어떻겠냐고.

뉴튜브가 성장하려면 한국 시청자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마침 총격 사고로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지 않은가.

이 기회에 미국 뉴튜브 시청자를 싹싹 긁어모으면 좋겠다 싶었던 것이다.

건강은 만국 공통인 키워드인 데다가.

최근 K-컬쳐로 주목받고 있는 한국, 그 한국의 의료 생태계를 미국 시청자들도 충분히 좋아해 줄 가능성이 있다고 준후는 판단했다.

-자막 달아줄 사람, 벌써 2명이나 뽑아 놨어요. 이번 주부터 작업 들어갈 거예요.

“일이 잘 풀려서 다행이네요. 고생하셨습니다.”

-선생님은 환자밖에 모르시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이쪽으로도 수완이 좋으시네요?

영은이 조금 놀랐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사실 영은은 준후가 뉴튜브로 미국 시장을 공략할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다.

영은 자신도 못 했고 소속 MCN도 못 했다.

혹시 음악이나 춤 같은 컨텐츠면 모를까 준후의 일상 의료 컨텐츠는 외국 시청자들에게 생소해 외면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자체 분석 결과는 놀라웠다.

준후가 미국에서 의로운 일을 하고 나서 실제로 외국인 시청자가 껑충 뛰었던 것이다.

구독자도 그렇고.

영상도 그렇고 말이다.

“가져도 가져도 부족한 게 돈이죠. 미국 오니까 더 실감이 나더라고요.”

-하긴 미국은 감기로만 병원에 가도 10만 원씩 깨진다고 하던데. 진짜인가요?

“네. 개인 의료 보험을 안 들어놨으면요. 엄청 살벌한 동네예요.”

준후가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렘가에서 치료했던 총상 환자가 문득 머리를 스쳤다.

그게 무려 10억짜리 수술이었다.

“돈을 열심히 모아서 나중에 제 이름을 걸고 병원을 운영하든가, 아니면 후원 단체를 만들어볼까 계획 중입니다.”

준후는 마음속에만 간직했던 포부를 처음으로 꺼내 놓았다.

미국 뉴튜브 시청자까지 끌어들일 수 있다면 마냥 ‘신 포도’ 같은 꿈은 아니었다.

-선생님은 진짜 참 의사세요. 어떻게 그렇게 자나 깨나 환자 생각만 하세요?

“글쎄요. 그냥 깊은 한(恨)이 있다는 정도로만 설명할게요. 오뉴월에 서리가 내릴 만큼.”

-나중에 한국 돌아오시면 말씀해 주실 수 있죠?

“안 될 것도 없죠.”

준후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간단한 안부를 주고받으며 통화가 끝났다.

준후는 방을 나와 기숙사 복도 앞에 섰다.

반쯤 열린 창가에서 온기를 머금은 햇살이 쏟아졌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있었다.

* * *

그날 오전.

교육생들이 앉아 있는 컨퍼런스 룸에 고요하다 못해 무거운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교육생들은 소아 신경외과 교재를 읽느라 정신이 없었다.

누가 들어와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오늘은 소아 신경외과에서 진행하는 쪽지 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다만 평범한 쪽지 시험은 아니었다.

커트라인을 넘지 못하면 부스트 업 프로그램 지원 자체가 취소되는 생존게임 같은 쪽지 시험이었다.

준후는 평소처럼 앞자리에 앉았다.

교재를 동화책 읽듯 술술 넘겼다.

“뭐야? 시험은 아예 포기했나 보지?”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레이먼드가 썩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무슨 뜻인데?”

“누가 책을 그 따위로 읽냐고. 만화책도 그렇게는 안 읽겠다.”

“지금 나 걱정해 주는 건가? 감동해서 눈물이 다 나올 지경이네.”

준후가 빈정거리며 대답했다.

“도서관에서 활약 좀 했다고 거만해진 모양인데. 그렇다고 해서 쪽지 시험까지 봐주지는 않을 거다. 부스트 업 프로그램을 우습게보지 마.”

“글쎄. 내가 우습게 보는 건 너뿐이라서 말이야.”

“이 자식이!”

먼저 시비를 걸고 먼저 욱하는 레이먼드였다.

그 모습을 준후는 그저 흐뭇하게 즐길 따름이었다.

무림에서 자기애가 강한 인간들을 수없이 상대해 본 준후였다.

이런 부류는 오히려 놀리기도, 또 상대하기도 쉬운 부류에 속했다.

자존감만 살짝 눌러주면 알아서 폭발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말이다.

“메이유 레지던트 수석 졸업자가 나였어. 근데 너 따위가 감히 나를 무시해?”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지. 동양인이라고 날 먼저 무시한 건 너였어.”

“…….”

“기억이 잘 안 나면 오늘 네 해마랑 깊은 대화를 나눠봐야 할 것 같다.”

“성적이 나오고도 계속 그렇게 지껄일 수 있나 보자.”

레이먼드가 빠드득 이를 갈고 다시 교재에 집중했다.

흥이 깨진 준후가 컨퍼런스 룸을 나왔다.

복도에 있는 자판기에서 캔 커피를 뽑았다.

때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가 올리버와 맥스웰을 뱉어냈다.

두 사람 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판다처럼 눈 밑이 새까맣고.

맨질맨질했던 피부가 사막 모래 마냥 푸석푸석 해보였다.

“이게 사람이야? 좀비야?”

준후가 농담을 섞어가며 인사를 건넸다.

“지금은 좀비 쪽이 더 가깝지.”

올리버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밤 샜어?”

“응. 오랜만에 밤 새보니까 죽을 맛이네. 머리에 돌이라도 들어가 있는 것 같아.”

“나도 마찬가지야.”

맥스웰이 올리버의 말을 거들었다.

평소라면 쇄지공을 훈련하고 있을 맥스웰인데 오늘은 손이 얌전하기만 했다.

“커피라도 한 잔 뽑아줄까?”

“아니…… 됐어. 어제 큰 컵으로 두 잔이나 마셨거든. 더 마시면 혈중 카페인 농도 초과야.”

“둘 다 여기 앉아 봐.”

“왜?”

“일단 시키는 대로 해.”

준후의 지시에 올리버와 맥스웰이 자판기 옆에 놓인 벤치에 앉았다.

준후는 우선 맥스웰의 머리에 추궁과혈을 펼쳐주었다.

손가락에 내공을 담아서 혈자리를 자극해 주었다.

일단 맥스웰의 정수리에 엄지를 얹은 후 엄지를 둥글게 문질렀다.

정수리에는 백회혈이라는 게 있는데 이곳은 하늘의 기운을 받는 자리였다.

백회혈을 잘 자극하면 사고, 판단, 감정 조절 등등 머리의 전반적인 능력이 향상됐다.

그 후로도 준후는 맥스웰의 태양혈, 아문혈, 천추혈, 풍지혈을 차례대로 점혈해 주었다.

“지금은 좀 어때?”

준후의 질문에 맥스웰은 선뜻 대답을 못했다.

눈을 쉴 새 없이 깜빡거리며 준후를 올려다볼 따름이었다.

“방금 나한테 뭘 한 거야?”

“동양식 마사지랄까?”

“이거 미쳤는데? 머릿속에 안개가 싹 가신 느낌이야. 머릿속이 완전히 깨끗해졌어!”

맥스웰이 아이처럼 신난 표정으로 말을 계속했다.

“고마워, 준후. 덕분에 최소한 실력 발휘를 못하는 일은 없겠다. 올리버, 너도 빨리 받아봐.”

“난 됐어.”

올리버가 관심 없다는 듯 허공에 손을 내저었다.

“커피도 많이 마셨다며? 준후의 마사지가 아니면 컨디션 조절할 방법이 없을걸?”

“아니,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 손가락으로 머리 좀 만진다고 컨디션이 확 올라간다니.”

올리버가 맥스웰에게 반박하다가 준후의 시선을 읽고 머쓱해했다.

“그러니까 준후 너를 못 믿는다기보다는 내가 이런 쪽에 별로 믿음이 없어서…… 하하하.”

“그래도 눈 딱 감고 받아봐. 내가 돈 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잖아?”

설득하는 준후의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올리버와 맥스웰.

이 둘은 준후가 미국에 와서 사귄 첫 친구들이었다.

성격은 무던했으며 의료에 대한 열정도 뜨거웠다.

그래서 준후는 되도록 이 두 사람과 부스트 업 프로그램을 함께 헤쳐 나가고 싶었다.

쪽지 시험 따위로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았다.

“난 이런 쪽에 관심 없는데…….”

“거 참 답답하게 구네. 돈 드는 것도 아니고 시간 드는 것도 아닌데. 혹시 내가 지금 준후랑 짜고 너한테 장난치는 것 같아?”

맥스웰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솔직히 그래.”

“장난 같이 보이면 받아주라.”

“쓰읍. 알았어.”

준후의 거듭되는 제안에 올리버도 결국 백기를 들었다.

그렇게 5분이 지난 후.

올리버가 합장을 하듯 양 손바닥을 겹치고 준후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마스터를 못 알아 뵈었습니다.”

* * *

제1교수 브루스의 감독 하에 첫 번째 쪽지 시험의 막이 올랐다.

시험지를 받아본 준후는 눈을 의심했다.

첫 번째 문제부터 강적이었다.

1) 아놀드 키아리 증후군을 정의하고 해당 질환의 5가지 유형과 수술법을 전부 서술하시오.

문제는 주관식이었는데.

교재를 암기하지 않았다면 적을 수 없는 문제였다.

시험지와 답안지가 20페이지에 육박하고 시험 시간이 2시간일 때부터.

낌새를 차리긴 했지만 그래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다들 같은 생각일까.

여기저기서 한탄하는 곡소리와 한숨이 터져 나왔다.

1번 문제의 답을 적기 전에.

준후는 시험지를 넘겨가며 문제부터 싹 훑었다.

그리고 씩 웃었다.

이거 다 아는 문제들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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