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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369화 (366/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369화

제71장 쪽지 시험(4)

저벅. 저벅.

소아 신경외과 복도를 경쾌한 구둣발소리가 가로 질렀다.

브루스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컨퍼런스 룸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준후 팀의 수술이 30분 앞으로 바짝 다가와 있었다.

그들이 첫 번째 팀 수술을 과연 어떤 식으로 해석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궁금했다.

사실 이번 수술은 만만치 않았다.

무려 핍지 교종을 집도하고 쪽지 시험에서 만점 맞은 준후가 포함되었으며.

올리버도 최상위권 엘리트였고.

맥스웰은 괴짜 기질이 있지만 의료에 대한 열정만큼은 남달랐다.

그래서 다른 조보다 2배는 까다로운 수술 스케줄을 잡았다.

큰 기대가 더 큰 기대로 채워질지.

큰 기대만큼 실망도 깊어질지는.

잠시 후 판가름이 날 것이다.

드르르륵.

문을 열고 컨퍼런스 룸 안으로 들어가자 세 사람이 삼각형을 이룬 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브루스가 꼭짓점에 위치한 준후 옆에 섰다.

“토론이 치열한 것 같은데? 설마 아직까지 결론을 못 내린 건 아니겠지?”

“아니요. 세부 사항을 점검 중이었습니다.”

준후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럼 다행이고. 수술 과정 간단하게 브리핑 해볼래?”

“네.”

준후의 브리핑이 이어졌다.

수술 방법은 통칭 하이브리드였다.

직접 재관류 수술과 간접 재관류 수술을 섞어서 하는 방식이었다.

주로 소아보다는 성인 환자에게 사용되는 방법이었다.

“지금 너희 수준에서…… 직접 재관류술을 감당하기는 벅찰 텐데?”

브루스의 미간이 좁아졌다.

이마에는 지렁이 주름이 꿈틀거렸다.

역시 과감하게 나가는 건가.

“환자에게 무엇이 최선인가? 거기에 초점을 맞추고 선택한 수술법입니다.”

“혈관 문합에 실패하면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바퀴벌레 잡으려다가 집을 홀랑 태워먹는 수가 있어.”

“걱정마세요. 불은 안 쓸 겁니다.”

브루스의 비유를 준후도 비유로 받았다.

“자세히 말해봐. 무슨 뜻이지?”

“직접 재관류 수술은 딱 한 부위에만 할 겁니다. 중대 뇌동맥에 M1 부위에만요.”

“으음…… M1이라.”

브루스가 한 손으로 가만히 턱을 쓸어내렸다.

M1은 중대뇌동맥에 가지 혈관들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요충지였다.

이곳에만 직접 재관류 수술을 해도 꽤 괜찮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듯 했다.

“이건 조금 의외인 걸? 준후 너라면 M2, M3까지 수술할 줄 알았는데?”

“저 그렇게 막무가내로 수술하는 사람 아닙니다.”

준후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브루스가 준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훤히 꿰뚫고 있다는 듯.

준후는 환자 밖에 모르는 바보처럼 굴면서도 때로는 지금처럼 여우처럼 약게 때가 있었다.

도무지 알다가도 모를 스타일이었다.

“교수님이 보시기에 저희 수술의 방향은 어떻습니까?”

“M1에 직접 수술을 펼치고 나머지 부위는 간접 수술을 펼친다라…….”

브루스가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괜찮은 발상이야. 나였어도 이렇게 수술했을 것 같군.”

짝!

브루스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올리버와 준후가 격한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맥스웰만 표정이 뚱했다.

맥스웰만 간접 수술을 주장했던 모양이었다.

“간접 수술만 하는 게 꼭 나쁜 선택은 아니야. 수술에 옳고 그른 건 없어. 직접 수술을 고집했다가 환자가 오히려 더 큰 후유증을 앓을 수도 있지.”

“감사합니다. 교수님.”

브루스의 충고에 용기를 얻었는지 맥스웰이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수술 준비도 해야 하니까 슬슬 일어나지. 과장님은 이미 참관실에서 대기 중이다.”

브루스가 앞장서고 그 뒤를 세 사람이 뒤따랐다.

병동을 빠져나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

브루스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빠뜨렸다는 걸 기억해냈다.

“아, 참. 집도의와 어시스트는 결정했나?”

“네. 집도의는 올리버가 제가 1어시스트, 맥스웰이 2어시스트입니다.”

준후의 대답에 브루스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충격을 받은 나머지 입이 바보처럼 벌어졌다.

“응? 준후가 집도의가 아니라고?”

* * *

수술실 계수대.

준후와 올리버, 맥스웰이 스크럽(수술 전 소독)을 진행하고 있었다.

벅. 벅. 벅.

솔을 문지르는 소리가 리드미컬했다.

솔이 피부를 스칠 때마다 주홍빛 거품이 보글보글 일어났다.

첫 팀 수술을 앞둔 세 사람의 눈빛이 비장했다. 컨퍼런스 룸에 있었던 화기애애함은 어느새 증발한 지 오래였다.

“올리버, 정말 괜찮겠어?”

준후가 곁에 선 올리버를 곁눈질하며 물었다.

스크럽하는 올리버의 손끝이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조금 긴장되기는 하는데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첫 팀 수술부터 무리할 필요 없어. 나한테 집도를 맡기는 게 꼭 나쁜 것도 아니고.”

준후의 목소리에 걱정이 묻어났다.

지금으로부터 1시간 전.

난상 토론 끝에 수술은 직·간접 수술을 함께 하는 하이브리드로 결정이 났다.

문제는 그 이후에 터졌다.

“이번 수술 집도, 내가 할래. 내가 꼭 하고 싶어.”

올리버가 손까지 번쩍 들어가며 적극적인 의사를 밝혔다.

“간접 수술만 하면 모를까. 직접 수술이 포함 됐으면 준후한테 맡기는 게 낫지 않아?”

맥스웰이 탐탁지 않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어렵더라도 도전해 봐야지. 어차피 나중에 다 하게 될 수술이잖아.”

“쓰읍. 난 반대인데.”

“준후 네 생각은 어때?”

말과 달리 올리버의 눈은 질문을 하고 있지 않았다. 준후에게 간절한 양보를 부탁하고 있었다.

왜 올리버는 첫 수술을 고집할까.

정말 도전 정신이 뜨거워서 일까, 아니면 숨겨놓은 사연이 있는 걸까.

준후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올리버, 정 네가 하고 싶으면 해. 내가 꼭 집도해야 하는 이유는 없으니까.”

“오케이. 땡큐.”

올리버가 밝게 웃었다.

그렇게 수술 포지션이 결정되었다.

“슬슬 전쟁터로 가봅시다.”

먼저 스크럽을 끝낸 맥스웰이 앞장서고 그 뒤를 준후와 올리버가 따랐다.

수술 가운, 수술모, 수술 마스크, 수술 장갑을 착용한 세 사람이 차례대로 4번 수술방에 들어갔다.

살갗에 닿는 공기가 서늘했다.

숨을 들이 마실 때마다 독한 알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수술 도구를 준비하기 전.

준후는 수술대로 다가가 환자부터 살폈다.

12세 소년 맥시가 수술대에 누워 있었다.

환자 감시 장치와 CVC(중심 정맥관)는 이미 연결이 되어 있었다.

미국 청소년이라서 그럴까.

맥시는 한국에 있는 또래보다 훨씬 어른스럽고 성숙해 보였다.

키도 벌써 170센티미터에 육박해 보였다.

긴장을 했는지 맥시의 맥박이 분당 130으로 다소 빨랐다.

“몸은 좀 어떠니?”

“머리가 조금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워요.”

맥시가 불안한 눈동자로 준후를 올려다보았다.

준후가 맥시였더라도 두렵고 떨렸을 것이다.

다 큰 성인도 수술을 겁내는 판에 맥시는 아직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아이였다.

수술까지 대략 10분 정도 남은 시점.

아이를 달래줄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준후는 짧은 순간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흥겹게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어? 저 이 멜로디 알아요.”

“그래. 정말?”

“네. 베이비 샤크요. 어렸을 때 많이 들었어요. 학교에서 춤도 췄고요.”

맥시의 목소리가 갑자기 밝아졌다.

아기 상어 노래가 미국에서도 대박을 쳤다고 해서 따라해 봤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베이비 샤크 뚜두두두- 마미 샤크 뚜두두두-.”

맥시가 흥겹게 아기 상어 멜로디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맥시의 긴장이 풀린 것 같아서 준후는 한시름 덜었다.

이제 맥시에게 수술방은 단순히 무서운 장소가 아니었다.

아기 상어 멜로디를 흥얼거릴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작지만 위대한 변화였다.

“준후, 수술 준비 안 하고 뭐 해?”

올리버가 드레싱 카트를 끌고 와 준후 곁에 서서 물었다.

“환자 기분 좀 풀어주고 있었지.”

“넌 진짜 환자밖에 모르는 환자 바보구나? 수술방 오자마자 환자부터 보고.”

“수술이란 건 단순히 병만 고치는 게 아니야. 한 사람과 그 가족에게 미소를 되찾아주는 일이지.”

준후가 아기상어를 흥얼거리는 맥시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난 예전부터 계속 그런 마음으로 수술에 임해왔어.”

말을 하는 준후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순간 무림에서 겪었던 비극이 떠오른 것이다.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께 잠들었던 동료들이 처참한 시체로 널브러졌던 날들.

그들이 하늘에 별이 되었다는 소식에 절규하고 절망하며 또 혼절했던 가족들.

그때 맛보았던 무력감과 괴로움을 준후는 다시는 맛보고 싶지 않았다.

“맥시, 지금은 기분이 좀 어때?”

“아까보다는 훨씬 나아요.”

맥시가 대답했다.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맥박이 어느새 정상 수치로 내려갔으니까.

“선생님들이 최선을 다해서 치료해 줄게. 꼭 건강해져서 다시 보자?”

“네. 선생님.”

맥시와 대화를 마친 후.

준후는 올리버와 창고와 수술대를 오가며 수술 도구를 세팅했다.

맥스웰은 Portable CT를 가지러 잠시 수술방을 떠났다.

“올리버. 굳이 오늘 집도를 고집한 이유가 뭐야?”

“왜? 너도 내가 못마땅해?”

올리버가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

“그런 건 아니고 평소랑 다르게 뭔가 필사적인 느낌이 들어서.”

“눈치 한 번 빠르네. 역시 넌 속일 수가 없다.”

역시 올리버에겐 오늘 수술을 반드시 집도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모양이었다.

올리버가 포셉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팀 수술 첫 번째는 학과장님이 꼭 참관한다고 하잖아. 그래서 이건 내가 해야겠다 싶었어.”

“아…… 그런 거였어?”

“그래. 그런 거였지.”

준후의 시선이 올리버의 푸른 눈동자와 금발의 곱슬머리를 훑었다.

그것들은 오스틴의 외양과 판박이처럼 닮아 있었다.

잠시 까먹고 있었지만 올리버의 아버지는 학과장 오스틴이었다.

“난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한테 인정받고 싶었어. 아버지는 무뚝뚝한 편이라 칭찬을 잘 안 하시거든.”

“…….”

“메이유 의대에 입학했을 때도 그랬고, 부스트 업 프로그램에 합격했을 때도 그렇고…….”

“…….”

“아버지가 보기에는 내가 한참 모자라 보이나봐.”

올리버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서 팀 수술을 멋지게 집도하면 칭찬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아버지 앞에서 수술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는 않을 테니까.”

“부담되지는 않고?”

“부담 돼. 엄청. 솔직히 후회도 되고……. 그래도 엎지른 물이니까 잘 수습해 봐야지.”

올리버의 사연을 준후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살면서 꼭 인정받고 싶은 사람이 누군들 없겠는가.

준후는 무림에서 무림맹주에게, 현대에서는 스승 재현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그리고 환자와 보호자에게도 인정받고 싶었다.

당신을 위해서 내가 이렇게 노력했다고.

‘인정 투쟁’이라는 용어가 괜히 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 미리 말해둘게.”

“뭘?”

“나 이번 수술에 절대 손 안댈 거야. 그러니까 집도하다가 문제가 생겨도 절대 나한테 집도를 부탁하지 마.”

“그건…… 좀 야박하지 않나?”

“대신 제1어시스트로 최선을 다해 널 도울 거야. 네가 학과장님한테 인정받을 수 있도록. 그거면 되지?”

“좋아. 까짓거 해보지, 뭐.”

두 사람의 시선이 끈끈하게 허공에서 엉켰다.

잡담을 마친 두 사람이 나머지 수술 준비를 마쳤다.

때마침 맥스웰도 Portable CT를 챙겨 수술방으로 복귀했다.

마취의가 맥시를 전신마취하면서 수술 준비는 끝나고 수술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집도의 위치에 올리버가 섰고.

그 맞은편에 준후가 섰고.

맥스웰은 올리버의 곁에, 소독 간호사는 준후 곁에 섰다.

수술의 막이 오르기 직전.

올리버가 심호흡을 하며 고개를 들었다.

올리버의 시선 끝에 2층 참관실이 걸려 있었고 그 끝에는 학과장 오스틴과 브루스가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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