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공 쓰는 외과 의사-370화 (367/424)

370화

제71장 쪽지 시험(5)

오스틴은 팔짱을 낀 채 참관실 천장에 달린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준후 팀은 수술 준비가 끝난 듯 보였다.

각자 위치를 잡은 채 손목을 돌리거나 목을 꺾으며 몸과 마음을 풀고 있었다.

준후에게만 머물렀던 오스틴의 시선이 이내 올리버로 옮겨졌다.

“아드님 수술은 처음 보시는 거 아닙니까? 소감이 어떠신가요?”

부르스가 지나가는 말투로 물었다.

“그 호칭은 꺼내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줬을 텐데?”

“아. 죄송합니다.”

오스틴의 살벌한 말투에 부르스가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눈을 바닥으로 깔았다.

“한 번만 더 실수하면 경고로 끝나지 않을 거야.”

“명심하겠습니다.”

“굳이 소감을 말하자면…… 그냥 그래. 덤덤해.”

“아드ㄴ…… 아니, 올리버의 수술은 일부러 어려운 수술로 잡았습니다. 걱정이 되실 법도 한데요?”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

“네? 그야 당연히…….”

오스틴의 냉담한 태도에 당황한 건 오히려 부르스였다.

부르스는 쩔쩔 매며 말끝을 흐렸다.

“수술이 실패할까, 잘못될까 걱정하는 건 집도의의 몫이지. 참관하는 사람의 몫이 아니야.”

“그렇군요.”

“그렇지.”

오스틴은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그는 올리버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주변에 알릴 마음이 없었다.

그게 이득보다 손해가 많다고 판단해서였다.

사실을 밝히는 순간.

올리버는 ‘오스틴의 아들’이라는 프레임을 벗어날 길이 없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오스틴과 비교당할 수밖에 없었다.

올리버가 자신의 그늘 안에서 갇혀 사는 걸 오스틴은 원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조금 놀랐군.”

“뭐가 말씀이십니까?”

“집도의가 준후일 줄 알았는데 올리버야. 자네도 준후가 집도할 줄 알고 어려운 수술을 잡았을 텐데.”

“정확히 꿰뚫어 보셨군요.”

부르스가 멋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과장님 생각에는 올리버가 수술을 잘 마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반반이야.”

“이유가 뭡니까?”

“준후만큼은 아니지만 올리버의 솜씨도 나쁘지 않거든. 긴장만 하지 않으면 고전하더라도 실패나 실수는 없겠지.”

오스틴이 예상하는 이번 수술의 난관은 다름 아닌 올리버의 멘탈이었다.

올리버는 유독 쉽게 멘탈이 무너지고는 했다.

특히 특정 누군가의 앞에 있을 때면 꼭.

오스틴이 팔짱을 풀고 가운에서 리모컨을 꺼냈다.

리모컨 버튼을 누르자 설치된 CCTV 카메라가 돌아갔다.

스태프와 환자의 모습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뷰가 모니터에 펼쳐졌다.

오스틴이 한 번 더 버튼을 누르자 놀라운 일이 펼쳐졌다.

모니터 영상이 줌인 되어 환자의 머리를 세밀하게 포착했던 것이다.

이는 메이유 참관실에만 존재하는 최첨단 참관 시스템이었다.

“수술 시작했군. 어디 한 번 즐겨볼까?”

* * *

오늘의 주인공은 올리버다.

올리버가 빛날 수 있도록 전심전력으로 돕는다.

그런 마인드로 준후는 어시스트에 열과 성을 다했다.

어시스트의 핵심은 집도의의 마음을 읽는 것이었다.

집도의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집도의가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등을 미리 파악하고 박자를 맞춰주는 것이다.

노래에 박자가 깨지면 흐름이 깨지는 것처럼.

어시스트가 매끄럽지 못하면 수술의 흐름이 깨지고 만다.

그렇게 흐름이 깨지면 집중력이 흩어지고.

집중력이 흩어지면 수술은 지연되고 완성도도 덩달아 떨어지게 된다.

두개골 절제술을 펼칠 때까지.

준후는 자잘한 처치를 하면서 올리버의 수술 스타일을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얌전한 외모와 달리 올리버의 수술은 과감하고 터프한 구석이 있었다.

메스로 두피를 가르거나.

수술 부위를 견인할 때 손속에 망설임이 없었다.

수술 전에는 잔뜩 긴장한 것 같더니 막상 수술에 들어가자 손목에 떨림도 멈췄다.

‘오케이. 이런 스타일이다, 이거지?’

준후가 어시스트의 가닥을 잡았다.

올리버의 처치 전후로 어시스트 속도를 반 박자 앞당겼다.

그러면서도 양수호박기술을 사용해서 양손으로 빈틈없이 올리버를 보조했다.

스포츠카가 마음껏 질주할 수 있도록 고속도로를 깔아준 것이다.

양수호박기술을 인턴 때부터 익혀서 마스터한 건 과연 신의 한수였다.

준후는 너끈하게 2인분 몫을 해낼 수 있었다.

한손으로 절개창을 견인하고 다른 손으로 썩션을 한다든가.

한 손으로 이리게이션(세척)하면서 거즈를 사용한다거나 등등.

오른손이 왼손이고.

왼손이 오른손이다 보니.

처치의 정밀도가 떨어지는 일도 없었다.

“이야. 살다 살다 이런 어시스트는 처음 받아보네.”

두개골 절제술을 마친 직후.

그러니까 잠시 숨을 고르며 쉬어가던 때 올리버가 감탄조로 준후에게 말했다.

“텔레파시라도 익혔어? 내가 뭘 해줬으면 좋겠다 싶으면 그걸 바로 해버리네?”

“다른 사람 시점에서 상상하는 습관이 있거든.”

“흔치 않은 습관이네?”

“그런 편이지.”

준후의 눈이 초승달 모양을 그리며 웃었다.

타인의 시점에서 상상하는 습관.

이는 당연히 무림에서 배워온 것이었다.

무사가 살아남으려면 무력도 무력이지만 심리전과 관찰력이 뛰어나야했다.

상대의 마음을 읽어야 검로를 읽을 수 있고 그래야 상대를 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습관을 현대에서 수술 어시스트에 활용하게 될 거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지만.

“컨디션은 어때?”

“아직까지는 훌륭해. 몸도 부담 없고 집중력도 날카롭고.”

“맥스웰 너는?”

준후의 눈길이 맥스웰에게 향했다.

눈에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맥스웰의 어시스트는 빈틈이 없었다.

맥스웰은 적재적소에 필요한 수술 도구를 올리버에게 건넸다.

수술에 집중하고 또 수술 과정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나도 이상 없어.”

“다음 수술은 맥스웰, 네가 집도해 보는 게 어때?”

“난 준후 너 다음에 할래.”

“왜? 굳이?”

준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맥스웰이 지나치게 수술을 피하고 있다는 느낌이 얼핏 들었다.

“하여간 그런 게 있어. 나중에 말해줄게.”

“알았어. 그럼 수술 계속하자. 올리버, 손 식겠다.”

“자, 2차전으로 가봅시다.”

분위기 전환을 마치면서 수술의 제2막이 올랐다.

경막과 지주막, 연막이 차례대로 절제되었다.

쾌속의 질주였다.

처음 호흡을 맞춰보는데도 세 사람은 거의 한 몸처럼 움직였다.

의외로 저돌적인 수술을 펼치는 올리버.

꼼꼼하고 세심한 맥스웰.

마지막으로 준후가 두 사람 사이에서 속도와 정확도의 균형을 잡아주고 있었다.

순조로웠던 항해는 30분 만에 암초에 부딪쳤다.

우려했던 사태가 터지고 말았다.

꽉 막힌 중대 뇌동맥의 M1 부위에 혈관 문합술을 펼칠 때였다.

봉합술에 앞서.

올리버가 깊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수술대를 비추고 있는 CCTV 카메라를 한 번 올려다보고 참관실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준후가 보기에는 그 행동이 독이 되었다.

수술에만 잘 집중하던 올리버가 그 때부터 오스틴을 의식하게 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올리버? 뭐 해?”

준후가 꾸짖듯이 물었다.

준후는 환자의 요골 동맥에서 채취한 혈관을 중대 뇌동맥 M1 부위에 갖다 대고 있었다.

두 혈관을 문합하는 게 올리버의 몫이었다.

두 혈관을 문합하는 게 오늘 수술의 하이라이트였다.

직접 수술만 끝내 놓으면.

이어지는 간접 수술은 순식간에 해치울 수 있었다.

그런데 올리버는 계속 뜸만 들이고 봉합을 못했다.

“미안. 갑자기 손이 떨리기 시작해서.”

“여태 해온 것처럼만 하면 돼. 너라면 충분히 할 수 있어.”

“정말 그럴까?”

“정 너를 못 믿겠으면 나를 믿어. 넌 할 수 있어.”

준후는 가짜 위로를 한 게 아니었다.

진심으로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환자가 12세였던 덕분에 환자의 뇌혈관은 꽤 튼튼하고 굵은 편이었다.

올리버의 솜씨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알았어. 기합 넣고 다시 해볼게.”

결연한 표정을 지은 올리버가 니들홀더로 7-0 봉합사를 쥐었다.

준후가 쥐고 있는 이식 혈관에 봉합침을 찔러 넣었다.

바늘이 깊게 들어가는 것을 걱정했을까.

봉합침은 혈관 표면을 회 뜨듯이 살짝 긁어대는 데 그쳤다. 혈관에 생긴 생채기 위로 희미한 핏방울이 맺혔다.

“다시 해봐. 조금만 더 깊이.”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 시도는 성공이었다.

봉합침이 적당한 깊이로 혈관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산 넘어 산이라고.

그 다음부터는 봉합이 문제가 되었다.

봉합사가 혈관에 주는 장력이 들쑥날쑥 했다.

어떤 매듭은 느슨했고.

어떤 매듭은 또 너무 타이트했다.

실이 엉망진창으로 꼬이는 바람에 실을 중간에 잘라내야 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야. 웬만하면 참아주겠는데 이건 도저히 못 써먹겠다.”

보다 못한 맥스웰이 한마디 했다.

이식혈관과 중대 뇌동맥 M1 혈관의 문합이 개판이었던 것이다.

비유하자면 어린 아이가 소꿉놀이로 바느질을 한 수준이었다.

매듭의 간격이 균일하지도 않았고 매듭의 길이도 다 달랐다.

“준후, 이제 어떻게 할 건데?”

맥스웰이 준후를 쳐다보며 의견을 물었다.

맥스웰은 내심 준후가 집도해 주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집도의는 올리버야. 난 오늘 집도 안 해.”

준후가 딱 잘라 말했다.

“나도 당연히 올리버를 믿고 싶지. 그런데 상황이 그런 상황이 아니잖아?”

“…….”

“엉터리 문합하는데 20분이나 잡아먹은 거 알지? 참관실에서 학과장님이랑 교수님이 보고 있다는 것도 잊지 않았지?”

“…….”

“팀이라면 오히려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맥스웰의 메스처럼 날카로운 말들을 올리버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지은 죄가 있어서 반박을 못하는 기색이었다.

준후는 말 대신 메스를 들었다.

엉터리로 문합된 혈관을 단 번에 잘라냈다.

잘린 혈관에서 꿀렁꿀렁 피가 흘러내렸다.

치이이익.

썩션기로 피를 흡입하고 준후는 환자의 왼쪽 요골동맥에서 새로운 이식 혈관을 채취했다.

무림 검객 출신답게.

준후의 메스는 빈틈이 없었다.

정확하고 빨랐으며 우아하면서 절도가 넘쳤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최소 20분이 걸렸을 혈관 그래프트를 5분 만에 뚝딱 해치웠다.

실로 귀신 들린 솜씨였다.

의료용 쟁반에 놓인 그래프트 혈관의 양 끝 면이 자로 대고 자른 것처럼 깔끔했다.

길이도 이식 받을 혈관과 딱 맞아 떨어졌다.

“자, 이걸로 첫 문합술에서 까먹은 시간은 다 복구했어. 어때? 문제없지?”

준후가 맥스웰을 쳐다보았다.

맥스웰이 질렸다는 듯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준후.”

“왜?”

“난 포기하는 게 맞는 것 같아.”

올리버의 목소리가 시무룩했다.

문합술 전까지 보였던 파이팅은 이미 증발하고 없었다.

“이번 요골 동맥까지 말아 먹으면 채취할 혈관도 마땅치 않잖아. 더 이상 민폐를 끼치면 안 될 것 같아.”

“…….”

“그냥 네가 집도하는 게 맞겠다.”

“민폐라…….”

준후가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올리버, 진짜 민폐가 뭔지 알아?”

“진짜 민폐? 그런 게 따로 있어?”

“당연히 따로 있지.”

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네 자신을 못 믿어주는 게 진짜 민폐야. 네가 너를 부끄러워하면 온 세상이 다 너를 부끄러워할 거라고.”

“…….”

“실수? 까짓거 할 수도 있어. 대신 다음에 조금만 더 잘하면 돼. 그렇게 마음먹자.”

준후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올리버를 타일렀다.

누군들 없을까.

감당하지 못할 시련이 닥쳐와 스스로가 한심해 보이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처럼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때가.

준후 또한 뇌사로 하늘에 별이 된 성호 앞에서 그런 절망을 겪었다.

그리고 그런 준후를 아영이 감싸주면서 준후는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타인은 절망이지만 동시에 희망이기도 했다.

“다시 해. 될 때까지 해.”

“하지만 그러다가 환자 상태가 나빠지면…….”

“그래도 해.”

준후가 칼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환자도, 너도 내가 지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