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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372화 (369/424)

372화

제72장 믿음(2)

우우우웅. 우우우웅.

거대한 진동음이 수술방에 울려 퍼졌다.

수술대 옆에 위치한 포터블 CT에서 나는 소리였다.

포터블 CT는 직사각형 가운데에 구멍이 뚫린 형태였는데 기존의 CT를 최소화시켜 수술방에서도 CT 촬영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삐이이. 삐이이.

환자가 누워 있던 검사대가 동그란 엑스레이 튜브를 통과했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준후는 맥스웰과 함께 환자를 조심스럽게 들어서 수술대에 다시 눕혀놓았다.

“수술도 다 끝나가는 마당에 하필이면…… 네 생각은 어때? 출혈이 왜 발생한 것 같아?”

맥스웰이 시선이 준후에게 향했다.

“나도 몰라.”

“모른다고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니야?”

준후의 대답이 못마땅했는지 맥스웰이 얼굴을 찌푸렸다.

“뇌혈관 수술을 하다보면 여러 혈관들이 혈역학적으로 불안정해져. 설령 수술 부위에 실수가 없었다고 해도 말이지.”

“…….”

“맥스웰, 네 생각은 어때?”

“수술시간이 길어져서 그런 거 아닐까? 교수님이 집도했으면 지금쯤 수술이 끝났을 테니까.”

“난 아니라고 봐.”

준후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올리버가 첫 번째 직접 수술에 실패했잖아. 그 시간은 계산 안 할 거야?”

“그건 내가 요골동맥을 빨리 채취하면서 충분히 메웠어. 교수님들 수술하고 비교해도 10분 정도밖에 차이 안 날 걸?”

“쓰읍. 난 반대인데.”

맥스웰은 여전히 준후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아마 실제 시간이 아니라.

심리적인 시간을 길게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준후는 생각했다.

준후도 우여곡절이 많은 수술은 시간이 더디게 가는 것처럼 느끼곤 했다.

맥스웰과 잡담을 마치고.

준후는 수술대 옆에 펼쳐진 모니터를 응시했다.

올리버가 책상 앞에 서서 진지한 얼굴로 CT 영상을 보고 있었다.

“결과는 나왔어?”

올리버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준후도 영상을 확인했다.

환자의 측두부에 40ml양에 혈종이 뭉쳐 있었다.

혈종의 양이 꽤 위협적이었는데 크기가 엄지손톱만 했다.

환자 뇌압이 가파르게 치솟은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산 넘어 산이라더니. 직접 수술도 안 끝났는데 거대 혈종이야?”

맥스웰이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수술방 분위기가 순식간에 무겁게 가라앉았다.

수술 부위에 출혈이 발생했다면.

썩션이나 주사기로 흡인을 해서 혈종 제거술을 펼치면 됐다.

그런데 혈종 발생 부위가 골 때렸다.

절개창을 내지 않은 측두부였다.

그 말인 즉…….

두개골 절제부터 뇌막절개까지의 복잡하고 험난한 과정을 다시 한번 거쳐야한다는 뜻이었다.

“일이 꼬이려면 이렇게도 꼬이네. 하…….”

답답함을 참을 수 없었는지 올리버도 끝내 한숨을 터뜨렸다.

준후는 대답하지 않고 환자의 뇌압부터 살폈다.

환자의 현재 뇌압은 28mmHg였다.

최초 뇌압인 35mmHg보다는 다소 떨어졌다. 정상 뇌압인 0-15mmHg보다는 여전히 높았다.

혈압 강하제와 항고혈압제를 투여한 덕분이었다.

출혈로 발생한 혈류를 통제하면 뇌압을 다소 줄일 수 있었다.

준후가 환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문득 맥시가 수술 전에 흥얼거렸던 아기 상어의 멜로디가 귓가에 재생되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 멜로디를 다시 듣고 싶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아기 상어가 있을 테지만 맥시가 부른 아기 상어는 맥시만 부를 수 있었다.

환자를 위한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정석대로 측두부를 열고 혈종 제거술을 펼쳐야 할까.

아니면 제3의 길이 있을까.

고민이 깊어갔다.

잘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의 부담 없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혈종을 제거하는 방식은…….

환자의 생명과 치료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준후 앞에 놓인 갈림길은 그만큼 중요했다.

“올리버, 넌 어떻게 하고 싶어?”

맥스웰이 올리버에게 물었다.

“별수 있나. 당연히 측두부 열고 혈종 제거술 해야지. 뇌압이 더 올라가서 뇌 탈출증이라도 발생해 봐. 그땐 진짜 손도 못 써.”

“이번엔 죽이 잘 맞네. 나도 동감이다. 준후 너도 제거술 오케이?”

“…….”

“준후, 왜 대답이 없어?”

맥스웰이 준후를 재촉했지만 그 후로도 준후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집도는 올리버가 하고 있었지만.

사실상 팀의 리더는 준후였다.

모두의 시선이 준후에게 집중되었다. 준후의 입술에서 어떤 결정이 떨어질지 기다렸다.

“그냥 가자.”

“가긴 어딜 가?”

“혈종 제거술 하지 말고 기존 수술 그대로 진행하자고.”

준후의 충격적인 발언에 스태프들이 일제히 기겁했다.

올리버와 맥스웰은 말할 것도 없었고, 커튼 뒤에 있던 마취의까지 사레가 들린 듯 헛기침을 했다.

“눈 크게 뜨고 CT 영상을 다시 한 번 봐. 환자 머릿속에 저런 게 있는데 그냥 무시하자고?”

맥스웰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검지로 모니터를 가리켰다.

“준후. 나도 그건 아닌 것 같아. 약물 투여하고 뇌압이 떨어지긴 했지만 그건 일시적인 결과일 뿐이야. 근본적인 처치가 없으면 안 돼. 언 발에 오줌을 누는 꼴이라고.”

올리버도 맥스웰을 위해 지원 사격에 나섰다.

졸지에 2대1로 싸우게 된 준후였다.

세 사람 사이에 충돌하는 눈빛이 팽팽했다.

어느 한 쪽도 쉽게 물러설 기미가 없었다.

아래로 절벽이 펼쳐진 외나무다리에서 서로 결사항전을 벌이는 듯한 비장한 분위기가 수술방을 휘어 감았다.

그때 준후는 생각하고 있었다.

과거 무림 맹주가 자신에게 해주었던 조언을.

[최고의 검객은 검을 쓰지 않고도 상대를 제압하는 검객이다.]

“너희 둘. 나 믿니?”

준후가 먼저 침묵을 깨뜨렸다.

“날 믿으면 내 말대로 가자.”

* * *

수술용 참관실.

오스틴을 팔짱을 낀 채 수술방을 비추는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측두부에 혈종이 발생하면서.

수술은 잠시 중단되었다.

스태프들끼리 치료에 이견이 있는지 꽤 오랫동안 설전이 오고 갔다.

“잘 나가다가 막판에 일이 복잡해졌네요. 하필 측두엽에 혈종이라니…….”

브루스가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이건 예정에 없던 상황인데 조언이라도 해줄까요? 안 그러면 보나마나 혈종 제거술을 할 것 같은데. 혈종 제거술을 하면 수술 시간만 길어지고 환자도 위험할 것 같습니다.”

“일단 지켜보자고.”

“그래도 아직 교육생들인데 조언에 너무 인색하신 것 아닙니까?”

“자네야말로 너무 성급해.”

오스틴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조언을 하더라도 스스로 생각할 시간은 주고 난 다음이어야지.”

“결과가 너무 뻔하니까 그렇죠. 저 덫에 안 걸릴 서전이 몇 명이나 있겠어요.”

브루스의 목소리에 불신이 가득했다.

사실 브루스의 지적도 틀린 건 아니었다.

맛있는 먹잇감이 눈앞에서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고 있는데 그걸 물지 않을 물고기는 없었다.

하지만 오스틴은 스태프간의 다툼이 길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다툼이 길어진다는 것은 의견이 통일되지 않았다는 뜻이고.

의견이 통일되지 않았다는 것은 먹이를 물지 않은 물고기가 있다는 뜻이었다.

먹이를 물지 않은 물고기는 아마 준후일 것이다.

‘수술이면 물불 가리지 않는 스타일일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건 아니었던 건가?’

오스틴은 새삼 준후에게 감탄했다.

환자에게 발생한 측두부 혈종.

이는 분명 위협적이었지만 본 수술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그 방법’을 미리 알고 있다면 말이다.

그러고 보니 ‘그 방법’을 교재에 싣는다는 것을 깜빡했다는 사실을 오스틴은 뒤늦게 깨달았다.

그럼 본능으로 ‘그 방법’을 알아차렸다는 건가?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친구로군.

“전, 미리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브루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 앞에 놓인 테이블로 향했다.

교육생들이 혈종 제거술을 택하면 바로 조언을 해줄 작정인 듯했다.

그렇게 5분쯤 지났을까.

스태프들이 다시 제 자리를 잡고 수술에 들어갔다.

놀랍게도 혈종 제거술은 펼쳐지지 않았다.

* * *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스태프들이 앞 다투어 한마디 씩 했다.

총 수술 시간 6시간 20분.

소아 모야모야병에 대한 직접·간접 재관류 수술의 막이 드디어 내렸다.

중대 뇌동맥 M1 부위에 새로운 혈관이 이어졌고.

얇고 가늘어 혈액을 제대로 운반하지 못했던 기존 혈관 주변에 두피의 혈관들이 심어졌다.

환자가 성장하면서 이식한 혈관들은 새싹처럼 자랄 것이다.

정상적인 혈관 흐름을 책임질 것이다.

“혈종을 제거하지 않고 수술을 끝냈더니 뭔가 찜찜한네.”

올리버가 혀를 차며 혼잣말을 했다.

“그러게. 뭔가 화장실에서 밑을 안 닦은 느낌이랄까. 준후, 진짜 별문제없는 거지?”

맥스웰의 탐탁지 않다는 눈빛이 준후에게 향했다.

“내 계획대로라면.”

“계획만 믿고 가기에는 너무 위험했던 거 아닌가?”

“동료를 믿는 것도 중요하고 자기 자신을 믿어주는 것도 중요하지. 난 내 결정을 믿어.”

준후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사실 준후도 무언가 정확한 의료 지식을 알아서 혈종 제거술에 반대했던 건 아니었다.

환자에게 최선은 무엇인가.

그 질문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다 보니 이런 질문이 불쑥 머릿속에 떠올랐다.

만약 혈종 제거술을 하지 않아도 혈종이 알아서 제거된다면?

말도 안 된다는 소리라는 건.

황당한 소리라는 것도 알았다.

혈종이 제거가 안 되니까 혈종 제거술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혈종이 자연발생적으로 제거되는 예외적인 케이스가 있다는 걸 준후는 알았다.

그 예외적인 케이스가 이번 케이스가 될 수도 있겠다고 준후는 믿었다.

헛다리를 짚고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없지는 않았지만 최선을 다해 물리쳤다.

내가 나를 못 믿으면.

누가 나를 믿어주나 싶어서.

“환자 바이탈하고 뇌압은 어때?”

“바이탈은 다 정상이고 뇌압은 20mmHg. 정상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야.”

“환자, 중환자실로 보내기 전에 CT 한 번 더 찍자.”

“당연히 그래야지.”

맥스웰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가 누운 검사대가 엑스레이 튜브를 향해 전진했다.

그 모습이 준후의 눈에는 슬로우 화면에 걸린 것처럼 느리게만 보였다.

시험 문제는 풀었고.

드디어 채점 결과가 나오기 일보직전이었다.

준후의 판단이 옳았다면 혈종의 크기는 다소나마 줄어 있어야 했다.

만약 혈종 크기가 그대로라면.

준후는 환자에게도, 올리버와 맥스웰에게도 못할 짓을 한 것이었다.

혈종 제거술을 추가로 진행해야 할 판국이었으니까.

짧은 듯 긴 시간이 흘러갔다.

CT 장비가 환자를 토해냈다.

환자는 베드로 옮겨졌고 세 사람은 수술대 옆 모니터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럼 확인한다?”

올리버의 말에 준후와 맥스웰이 고개를 끄덕였다.

딸칵!

마우스 클릭과 함께 듀얼 모니터에 각각 CT 영상이 떠올랐다.

왼쪽에 기존 CT 영상이.

오른 쪽에 방금 막 찍은 따끈따끈한 영상이 위치했다.

올리버가 마우스 포인터를 움직여 방금 찍은 CT 영상에 존재하는 혈종을 드래그 했다.

혈종의 크기와 폭이 계산되면서 혈종의 혈액량이 그 위로 떠올랐다.

기존 40ml였던 혈종의 양이 25ml로 대폭 줄었다.

스태프들이 한 일이라고는 혈전 용해제만 꾸준히 투여했을 뿐인데 말이다.

“뭐야? 정말 혈종이 작아졌네? 대체 왜 그런 거야?”

올리버가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큰 눈동자로 준후를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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