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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374화 (371/424)

374화

제72장 믿음(4)

준후와 올리버, 맥스웰이 탄 자동차가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준후는 조수석에 앉아 주변 경치를 즐기는 중이었다.

4차선 도로가 뻥 뚫려 시원했다.

반쯤 열어둔 차창에서 바람이 우르르 밀려들어왔고 양 옆의 경치는 지평선이 다 보일만큼 탁 트여 있었다.

한국은 산이 많고 건물이 많아서.

지평선을 구경하기가 쉽지 않은데 말이다.

“근데 맥스웰 우리 어디로 가는 거야?”

조수석에 앉은 올리버가 물었다.

“미리 알려주면 재미없지. 도착해서 놀라라고.”

“놀라서 심장마비 오면 책임질 거야?”

“서전이 2명인데 걱정은.”

두 사람이 농담을 농담으로 주고받았다.

“아 참, 준후 어떻게 된 거야? 이틀 전에 아버지 잠깐 마주쳤다면서?”

“그랬지. 학과장님이 말씀하셨나 보구나.”

“내 속내를 네가 말하는 건 반칙 아니야?”

올리버가 투덜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올리버의 입장에선 충분히 불만일 수 있었다.

오스틴에게 인정받지 못해 괴로운 심정을 올리버가 직접 오스틴에게 전달한 게 아니라.

준후가 대신 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준후로서도 어쩔 수없는 선택이었다.

영화를 보다보면 이런 기분이 들 때가 있지 않은가.

예를 들어 장르가 스릴러라고 치면 ‘쟤가 범인이라고, 쟤가. 빨리, 잡아넣어!’하고 주인공에게 말해주고 싶은 기분이 들 때 말이다.

준후는 그런 감정을 올리버와 오스틴에게 느꼈다.

두 사람이 정말 티끌만큼 사소한 오해와 착각으로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는 게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끝내 훈수를 두고 말았다.

“내가 너라도 불쾌했을 것 같다. 사과할게.”

“무슨 의도인지는 알겠는데 그래도 내 이야기를 할 거면 사전에 내 동의를 받았어야지.”

“나 빼고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밌게 하시나?”

맥스웰이 대화에 껴들었다.

이제 맥스웰도 삼총사의 일원이었으므로.

올리버는 자신과 오스틴의 관계, 최근 준후까지 엮였던 에피소드를 허심탄회하게 털어 놓았다.

“와! 대박이네. 학과장님이 네 아버지였어?”

“맞아. 이런 반응이 나올까봐 숨기고 있었어. 나나 아버지 둘 다 곤란해지니까.”

“난 입이 무거운 편이니까 걱정하지 마. 그건 그렇고 며칠 전 일은 준후가 잘 끼어들었구만 뭐.”

맥스웰이 의외로 준후 편을 들었다. 이에 올리버가 팔짱을 낀 채 운전석을 노려보았다.

둘 사이에 공기가 냉랭해졌다.

“남 이야기라고 너무 쉽게 말하는 거 아닌가?”

“…….”

“나도 준후한테 고맙기는 해. 덕분에 아버지와 화해했으니까. 그래도 내 허락을 안 받은 건 좀 불쾌하단 말이지.”

“준후가 허락해달라고 하면 허락할 거였어?”

“물론.”

“웃기지 마. 넌 그럴 위인이 못 돼. 자기가 알아서 말하겠다고 하고 시간이나 질질 끌었겠지.”

맥스웰이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네가 직접 말해서 풀릴 오해였으면 10년 넘게 속을 끓였겠냐?”

“너, 말이 너무 심하다?”

“둘 다 그만해. 싸우려고 나온 거 아니잖아.”

둘 사이에 불이 붙은 것 같아서 준후가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불길이 생각보다 강했던 걸까.

말싸움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그러는 너는 서전이 되어 가지고 쉬운 수술만 하려고 하고. 그래서 어디 실력이 늘겠어?”

급기야 올리버가 혀로 맥스웰을 때렸다.

바로 어제.

맥스웰이 팀 수술을 이끌었는데 ‘소아 두개골조기유합증’이라는 비교적 난이도가 낮은 수술을 집도했다.

“그게 뭐 어때서? 처음에는 다 쉬운 수술부터 배우는 거지.”

“차라리 솔직해지는 게 어때? 넌 그냥 겁이 많은 거잖아. 네 손으로 수술을 망치고 환자가 다칠까 봐 무서운 거잖아.”

“처 맞기 싫으면 주둥이 함부로 놀리지 마.”

“지랄, 누가 먼저 시작했는데?”

“그만!”

준후가 사자후의 기운을 담아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그 기백에 압도당한 두 사람이 입을 꼭 다물었다.

“너희 둘 다 선 넘었어. 친구일수록 지킬 건 지켜줘야지. 서로 사과하고 방금 대화는 없었던 걸로 해.”

준후가 강압적으로 나오자 두 사람이 못 마땅한 표정으로 사과를 주고받았다.

일시적인 봉합이라는 건 알았지만.

일시적인 봉합도 필요할 때가 있었다.

사실 준후는 친구 사이에 갈등이나 다툼을 꼭 나쁘게 보지는 않았다.

싸우고 난 후에만 보이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었기에.

하지만 날 음식을 잘못 먹으면 배탈이 나듯.

날 감정을 드러내면 친구 사이에 상처가 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준후도 무림에서 오랫동안 개고생을 했다.

‘확실히 뭐가 있긴 있나 본데? 오늘 술이라도 한 잔 하면서 알아봐야겠어.’

준후의 시선이 운전석 쪽으로 향했다.

맥스웰에 내면에 어두운 무언가가 숨어 있었다.

그걸 털어내지 않으면.

맥스웰 본인은 물론이요 팀으로 지내는 데에도 문제가 터질 위험이 있었다.

말다툼은 어찌저찌 끝났지만.

차 안에 감도는 어색하고 무거운 공기는 떠날 줄 몰랐다.

그사이 자동차는 외곽 도로를 벗어나 시내로 들어섰다.

중심도로를 10분 쯤 통과했을까.

저 멀리서 돔 형태의 경기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NBA에 온 걸 환영한다.”

맥스웰이 한 마디 툭 던졌다.

* * *

“이야, 자리 엄청 좋네?”

준후가 관중석에 앉으며 중얼거렸다.

세 사람이 잡은 자리는 벤치 바로 뒷좌석이었다.

그러니까 선수들이 코앞이고 선수들의 대화까지 엿들을 수 있는 금싸라기 같은 자리였다.

“VVIP석이니까. 티켓 가격이 1,000만 원 정도야. 돈이 있어도 못 구할 수도 있고.”

“미쳤네. 경기 한 번 보는데 1,000만 원을 태워?”

준후가 기겁하며 말했다.

“정확히 말하면 3,000만 원이지 1인당 티켓 가격이 1,000만 원이니까.”

NBA에 인기가 세계적이고.

티켓 값이 비싸다는 것도 알았지만 설마 가격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준후였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앉아 있는 의자에서 느껴지는 감촉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이래서 맥스웰이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주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나 보다.

“그럼 네가 티켓 샀어?”

아직 다툰 감정이 남았는지 올리버가 뚱한 표정으로 물었다.

“산 건 아니고 받았어. 내 친척 동생이 클리블랜드 팀 식스맨(후보 선수)이거든.”

“좋은 동생 뒀네. 덕분에 NBA 직관도 하고.”

“뭐, 그런 셈이지.”

맥스웰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야, 올리버 아까는 미안했다.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는데 갑자기 급발진을 해버렸다.”

“피장파장이지 뭐. 그냥 흘려들을 수도 있었는데. 나야말로 인신공격해서 미안하다.”

경기장에 도착해서야 두 사람이 제대로 화해를 했다.

둘 다 굳었던 표정을 풀기 시작했다.

준후가 보기에는 아직 해결할 문제가 남아 있어 보였지만 말이다.

NBA를 잘 모르는 준후를 위해 맥스웰이 간단하게 경기를 브리핑 해주었다.

오늘 경기는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vs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

준후가 앉아 있는 쪽은 클리블랜드를 연고지로 두고 있는 클리블랜드 팀이었다.

오늘 경기는 플레이오프 진출에 사활이 걸린 중요한 경기라고 했다.

패배 시에는.

남은 경기에 상관없이 플레이오프 진출 탈락이 확정이라고 했다.

마침 설명이 끝날 때쯤.

선수들이 코트에서 몸을 풀기 시작했다.

“친척 동생은 누구야?”

“저기. 파마 머리한 친구 보여?”

준후의 질문에 맥스웰이 3점슛을 막 던진 선수를 검지로 가리켰다.

NBA 선수답게 덩치가 우람하고 키가 컸다.

“이름이 앤드류고 포지션은 파워 포워드야. 공격보다는 수비를 잘해. 그래서 식스맨인데도 클러치 타임(접전)에 자주 나오지.”

“그렇구나.”

준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수비 전문 선수라서 그런지.

확실히 슛 동작이 어색해 보이긴 했다. 매끈하다기보다는 나사가 살짝 빠진 느낌이었다.

외과의사가 안 됐으면 무얼하며 먹고 살았을까.

준후는 문득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공을 이용한 피지컬이 인류 최강인 만큼 스포츠 선수로 이름을 떨치지 않았을까.

그런데 한 번 뻗어나간 생각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돌진했다.

나중 일이긴 했지만.

준후는 자신의 이름을 건 후원재단이나 병원을 설립해 보고 싶었다.

그때 가장 필요한 건 당연히 돈 일 텐데…….

스포츠 선수로 바짝 돈을 땡긴 다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건 어떨까 싶었던 것이다.

스포츠를 시작하기에는 말도 안 되게 늦은 나이였지만.

준후에겐 나이가 중요치 않았다.

구단 측에서도 준후를 탐탁지 않게 여기겠지만 실력을 보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테고 말이다.

‘일단 가능성으로 남겨는 두자.’

준후가 속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잠시 후 경기가 시작됐다.

* * *

경기장이 뜨거웠다.

선수들이 코트에서 뿜어내는 열기가 관중들을 달궜고 관중들은 환호와 박수로 그 열기를 증폭 시켰다.

플레이오프 진출이 달린 중요한 경기라서 더 그런 듯 했다.

홈 팀에 이점인지 몰라도.

다소 약체 팀으로 분류되는 클리블랜드가 전통의 강호 골드 스테이트와 막상막하에 접전을 펼쳤다.

점수 차이가 8점 이상 벌어진 적이 없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치열한 경기는 4쿼터 후반까지 이어졌다.

이제 남은 시간은 2분.

양 팀의 점수 차이는 100 : 102로 골든 스테이트가 근소하게 앞서 있었다.

맥스웰의 친척 동생 앤드류도 코트 안에 있었다.

수비 전문답게 힘든 상황에서도 블록슛을 하고 리바운드도 비교적 잘 따냈다.

악재는 홈 팀이 수비를 하던 그 때에 터졌다.

“아아아악!”

앤드류가 갑자기 한손으로 어깨를 부여잡은 채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댔다.

“…….”

“…….”

선수들도, 코치진도, 관중들도, 준후도 놀란 나머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소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앤드류를 응시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앤드류가 갑자기 괴로워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공중에서 상대 선수와 몸싸움을 하던 중 추락했다던가.

몸을 날려 공을 살리려고 했다가 바닥에 어디를 부딪쳤다든가 등등.

앤드류의 행동에 격한 점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앤드류는 그저 상대 팀 선수가 넣지 못한 슛을 리바운드 하기 위해 손을 뻗어 뛰어 올랐을 뿐이었다.

삐이이익!

휘슬 소리와 함께 경기가 잠시 중단 되었다.

선수들과 앤드류가 벤치로 복귀했다.

앤드류는 여전히 한 손으로 다친 어깨를 감싸 쥐고 있었다.

일그러진 얼굴에서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앤드류. 왜 그래?”

“어깨가 너무 아픕니다. 갑자기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너 혹시 부상을 숨기고 있었던 거야?”

감독이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앤드류를 추궁했다.

“아니요. 그런 거 아닙니다.”

“내 눈 똑바로 보면서 말해. 부상을 숨겼냐고.”

“절대 그런 일 없습니다.”

앤드류가 감독과 눈을 맞추며 딱 잡아뗐다.

감독이나 코치진이 눈치 챘는지는 몰라도 준후는 앤드류가 거짓말 한다는 것을 금방 알아 차렸다.

“그럼 계속 뛸 수 있겠어?”

“당연히 뛰어야죠. 지금 저 빠지면 수비에 구멍 생겨요.”

“그래도 환자를 코트에 보낼 순 없어. 팀 닥터!”

감독의 호출에 하얀 의사 가운을 집은 사내가 구급함을 들고 앤드류에게 다가갔다.

앤드류가 얼마나 다쳤는지.

과연 경기는 계속 뛸 수는 있는 건지.

준후도 궁금했다.

그래서 벤치 쪽으로 모든 신경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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