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공 쓰는 외과 의사-376화 (373/424)

376화

제73장 저질(1)

“그래요? 정말 30초면 충분합니까?”

팀 닥터 존은 팔짱을 낀 채 준후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넌 어디서 굴러먹던 개뼈다귀냐고.

메이유 클리닉 소속이라는 간판은 분명 대단했지만 그뿐이었다.

이곳은 코트 위였고.

환자는 농구 선수였다.

NBA 생태계에 관해서라면 치료가 됐든 뭐가 됐든 존이 몇 수는 위였다.

“준후. 당신한테는 30초가 아니라 3초도 아까워요.”

“탈구된 어깨도 못 맞추고 있지 않습니까? 도움이 필요하면 도움을 받아야죠.”

“웃기지 마. 내가 못하는 거면 당신도 못 해! 의사라고 다 치료할 수 있는 줄 알아?!”

존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선수는 곧 죽어도 뛰겠다고 하지, 어깨는 정복을 못 하지, 심판은 아까부터 시합 재개를 재촉하는 눈빛을 보내지.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제3자가 훼방을 놔?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폭발했다.

존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해리슨. 빨리 결정을 내려. 자네가 우유부단하게 구니까 이 꼴이 나는 거 아니야.”

해리슨의 눈빛이 존과 앤드류와 준후를 차례대로 훑었다.

그가 느릿느릿하게 말라붙은 입술을 뗐다.

“다른 선수들은 코트로 복귀하고. 앤드류 너는…… 락커룸으로 가. 대기하던 의료진이 병원으로 보내줄 거다.”

“감독님. 전 뛰고 싶습니다!”

“세상에는 의욕만으로 안 되는 것도 있어. 뛰고 싶으면 어깨가 멀쩡하다는 걸 증명하든가.”

길면서도 짧았던 실랑이는 그렇게 끝났다.

클리블랜드 팀 선수들이 우르르 코트로 돌아갔다.

앤드류는 고개를 떨어트린 채 외롭게 락커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탈골된 어깨 때문인지.

경기에 나갈 수 없는 서러움 때문인지.

앤드류의 입술 사이로 고통스러운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런데 앤드류가 선수 전용 출입구 앞에 섰을 때.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그 시선 끝에 준후가 있었다.

“저기요…… 정말 저를 치료해 줄 수 있어요?”

준후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도와주세요. 제발.”

말이 끝나기 무섭게 준후가 앤드류 쪽으로 달려 나갔다.

둘 사이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상황이 종료됐다고 방심하던 코치진들이 화들짝 놀라 몸을 들썩거렸다.

“저거 또 사고 치네. 정말 못 봐주겠군. 가드 불러서 끌어내요. 앞으로 우리 경기장 영구 출입 금지 시키고.”

존이 근처에 있던 경기장 스태프들에게 으르렁 거렸다.

그사이 준후는 앤드류의 다친 어깨에 본인의 손바닥을 포갠 채 진료를 시작했다.

“근데 무슨 생각으로 절 치료하겠다고 나섰어요? 팀 닥터가 두 눈을 버젓이 뜨고 있는데? 심지어 30초 만에 치료를 하겠다고 했잖아요.”

앤드류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준후를 내려다보았다.

NBA에 데뷔한 지 2년밖에 안 되는 신인이었지만.

앤드류는 오늘 같은 에피소드는 경험한 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다.

“30초 만에 치료 못 하면 3달이 지나도 치료 못 해요.”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아냐고요.”

“평범한 의사가 아니라는 정도만 알아둬요.”

팟팟팟!

준후의 검지가 앤드류의 어깨와 목 근처를 여러 차례 찔렀다.

사람 몸을 가지고 장난을 치네.

역시 팀 닥터의 말이 맞았나.

그냥 정신이 이상한 사람인가 싶었지만 의심은 금방 증발해 버렸다.

손가락에 찔린 것만으로도 어깨 통증이 싹 가셨다.

신기한 일이었다.

“힘 빼고 가만히 있어요. 어깨 맞출 테니까.”

“아…… 네.”

준후가 한 손으로 앤드류의 손목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앤드류의 어깨를 붙잡았다.

“괜찮겠어요? 스태프들이 당신 잡으러 오는데?”

“아슬아슬하지만 해봐야죠.”

준후가 달려오는 스태프들을 힐끔 거리고 말을 이었다.

“혀 집어넣고 이 꽉 깨물어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뚜두둑 하고 섬뜩한 뼈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 다음 순서로 끔찍한 통증이 밀려왔다.

앤드류는 준후가 시키는 대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얼굴은 일그러지고 얼굴에서는 소나기처럼 땀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앤드류는 똑똑하게 느꼈다.

준후가 어깨를 맞추는 방식이 팀 닥터와는 미묘하게 다른 것 같다고.

뭐랄까.

이런 설명이 가당키나 한지 모르겠지만.

어깨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느낌이랄까?

“이제 어깨 돌려볼래요? 360도로.”

“180도도 못 돌렸는데 360도로 돌리라고요?”

앤드류가 기겁하며 되물었다.

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멈칫했던 앤드류는 이판사판이라는 표정으로 팔을 한 바퀴 돌려보았다.

그렇게 기적이 일어났다.

팔이 360도로 돌아가는데 심지어 통증도 거의 없었다.

이 정도면 남은 경기를 충분히 소화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이분 건드리지 마세요. 제 손님이니까.”

앤드류가 준후를 잡으러 온 스태프들에게 경고했다. 그리고 팔을 붕붕 돌리면서 벤치 쪽으로 이동했다.

“이 정도면 시합에 나가도 되겠죠?”

복귀한 앤드류가 어깨 돌리는 모습을 확인한 감독과 코치진이 귀신이라도 마주한 것처럼 경악했다.

* * *

집 나갔던 탕아처럼 관중석을 벗어났던 준후가 개선장군으로 복귀했다.

앤드류를 치료하겠다는 맡은 바 임무를 완수한 채.

“대체 이번에는 또 무슨 묘기를 부린 거야?”

막 자리에 앉는 준후에게 맥스웰이 혀를 차며 물었다.

“동양 의술의 신비랄까. 하여튼 그런 게 있어.”

“제대로 치료한 거 맞아?”

“경기는 뛸 수 있게 만들어놨어. 후유증 같은 것도 안 남게 조치를 해놨고.”

“구체적으로 말해봐.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으니까.”

“예전에 어깨 다친 환자를 진료한 적이 있어서 그 경험을 살렸을 뿐이야. 구체적으로 말하긴 힘들어.”

준후는 대충 얼버무리는 식으로 대답했다.

내공과 무공의 비밀을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준후가 내공으로 앤드류의 어깨를 살핀 결과, 앤드류는 어깨가 탈구 된 게 맞았다.

습관성으로 발전할 여지도 있어 보였다.

문제는 인대가 심하게 늘어났고 관절낭은 짧아져 정복조차 힘들었다는 점이었다.

팀 닥터가 어깨 정복에 번번이 실패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래서 준후는 다른 팀 닥터와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축골공’을 사용한 것이다.

축골공.

이는 뼈를 단순히 맞추는 게 아니라 뼈의 정렬과 배치를 구조적으로 바꾸는 무공이었다.

축골공을 사용하면 어깨가 좁았던 사람조차 일시적으로 수영 선수처럼 어깨가 넓어질 수도 있었다.

그 반대도 가능했다.

그래서 축골공은 비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용모파기를 변장하거나.

또는 비좁은 장소에 은신할 때 종종 사용됐다.

준후는 이 축골공을 사용해 앤드류의 인대와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어깨의 구조를 바꿔놓았다.

그리고 진통 점혈법으로 앤드류의 통증을 싹 죽여놓았다.

이만하면 짧은 시간 경기를 소화하기에는 무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옳았다.

어깨를 360도로 돌릴 만큼 상태가 호전된 앤드류는 다시 출장 기회를 얻었다.

이번 경기에 모든 것을 불사르겠다는 듯 뜨거운 플레이를 펼쳤다.

코트에 복귀하자마자.

공격 리바운드를 따내는 쾌거를 올렸다.

‘그래. 미련을 남기지 않는 방법은 간단해. 미련이 남지 않도록 모든 것을 불태우면 돼. 잘하고 있어요.’

준후는 속으로 앤드류를 열렬하게 응원했다.

지금의 앤드류는 준후의 분신이나 다름없었다.

“이봐요. 잠깐 이야기 좀 합시다.”

경기에 집중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준후와 마찰을 빚었던 클리블랜드 팀 닥터였다. 그는 여전히 준후에게 불신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팀 닥터가 따라오라는 눈짓을 보냈기에 준후는 팀 닥터를 따라나섰다.

두 사람이 마주선 곳은 선수 전용 출입 구역이었다.

“대체 앤드류에게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직접 봤잖아요. 치료죠.”

준후가 싱겁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는 정형외과 전공이고 팀 닥터로 10년을 지냈어요. 그런데 그런 내가 못 한 일을 당신이 해냈잖습니까. 그것도 고작 1분 안쪽으로. 난 아직도 도통 이해가 안 가요.”

맥스웰과 올리버완 달리 팀 닥터는 쉽게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준후가 한 처치가 얼마나 대단한지 잘 몰랐다.

그래서 준후가 대충 설명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팀 닥터는 달랐다.

그는 준후의 탁월함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준후 입장에서는 곤란한 일이었다.

금나수와 축골공.

그리고 진통점혈법을 설명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저만의 비법이 있거든요.”

“뭐, 영업 비밀이라는 겁니까?”

“그렇게도 볼 수 있겠죠.”

“죽어도 입을 열 생각이 없어 보이니 포기해야겠군요.”

팀 닥터가 실망한 표정을 짓고는 화제를 바꿨다.

“메이유 클리닉 신경외과 전공이라고 들었는데 혹시 연봉은 얼마나 받습니까?”

“갑자기 연봉은 왜 묻죠?”

준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스카우트 제의를 하고 싶어서요. 제 연봉이 50만 달러(5억)인데 그 정도 맞춰주면 되겠습니까?”

“팀 닥터가 연봉 협상을 할 권한이 있나요?”

“후임자를 찾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당신이 제 빈자리를 채우면 된다는 이야깁니다. 제 추천이라면 아마 구단에서도 싫은 소리는 안 나올 겁니다.”

팀 닥터가 설득에 나섰다.

팀 닥터가 되면 병원에서 수술하며 아등바등거릴 필요 없다.

선수들의 자잘한 부상이나 재활을 돕는 것만으로도 더 많은 돈을 만질 수 있다고 했다.

“전 아등바등거리는 걸 더 좋아합니다.”

“사서 고생을 하시겠다?”

“맞아요. 남이 시키는 일로 고생하면 말 그대로 고생이지만 제 스스로 선택한 고생은 성장에 발판이 되거든요.”

“허…….”

“근데 처음 본 제게 왜 이렇게 좋은 제안을 하시죠?”

“진짜 선수들을 위해주는 팀 닥터가 될 것 같아서요. 이 바닥에 의외로 그런 사람이 드물거든요.”

“…….”

“저도 나름 팀에 애정이 있는 사람이라 당신 같은 사람이 팀 닥터로 남아줬으면 합니다.”

“마음만 받죠. 그리고 만약 제가 코트에 돌아온다면…….”

“돌아온다면?”

“아마 팀 닥터가 아니라 선수로 뛸지도 모르겠네요.”

“외과의사가 NBA 선수를 하겠다고요? 올해 들은 농담 중에 가장 참신하군요.”

준후의 속도 모르고 팀 닥터가 껄껄껄 웃었다.

용건이 끝난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경기에 집중했다.

시간은 흘러 남은 시간은 어느덧 10초.

130 : 128로 홈팀 클리블랜드가 근소하게 앞서고 있었다.

공격권은 상대 팀 골든 스테이트에게 있었다.

“커리에게 공이 가겠네요.”

“그렇겠죠. 알아도 못 막는다는 게 문제겠지만. 오늘 3점 슛 성공률도 60퍼센트던데.”

두 사람의 시선이 스테픈 커리에게 집중되었다.

스테픈 커리.

NBA에 3점슛 열풍을 불러 온 혁명가.

놀랍게도 커리는 국내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 출연한 경력도 있었다.

마지막 공격권을 가진 골든 스테이트가 유기적으로 공을 돌렸다.

“디펜스! 디펜스!”

홈 관중들이 한 목소리로 팀을 응원했다.

누군가는 천장으로 손을 올렸고.

누군가는 기도 하듯 양손을 모으며 경기를 관람했다.

이제 남은 시간은 3초.

수비를 따돌린 커리에게 결국 공이 갔다.

커리가 한 마리의 새처럼 날아올랐을 때.

자유투 라인에 서 있던 앤드류가 늑대처럼 커리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코트를 힘껏 박차며 허공에 손을 뻗었다.

손끝에 공이 닿을 듯 말 듯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