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공 쓰는 외과 의사-382화 (382/424)

382화

제74장 스프링(2)

참관용 수술실.

오스틴은 팔짱을 낀 채 수술 장면을 비추고 있는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술 집도의는 준후.

제1어시스트는 맥스웰이었다.

집도 중인 수술은 소아 뇌동정맥 기형.

혈관은 크게 동맥, 정맥, 모세혈관으로 나눌 수 있었다.

뇌동정맥 기형 환자의 경우.

동맥 → 모세혈관 → 정맥의 순서대로 혈류가 순환하지 않았다.

모세혈관 순환이 생략되어 혈액이 동맥에서 정맥으로 곧바로 유입되었다.

이때 혈압 차이가 발생하고.

혈압 차이가 뇌출혈이라는 참사로 이어지고 만다.

다행히도(?) 환자는 뇌출혈 전에 발작이 있었다.

발작으로 의식을 잃은 덕분에 메이유를 찾아 세밀한 검사를 받고 뇌동정맥 기형 진단을 받았다.

“보면 볼수록 기가 막히네요. 저 수준이면 이미 교육생이라고 부르는 것도 우습지 않습니까?”

오스틴 곁에 앉아 있던 부르스가 혀를 차며 물었다.

준후는 전대 뇌동맥에 위치한 기형 혈관을 제거하고 있었다.

한 손에 포셉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보비(전기 소작기)를 들고 있었다.

준후는 포셉으로 대뇌 피질에 붙어 있는 기형 혈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혈관의 왼쪽 끝 부분을 소작기로 지졌다.

치이이익.

혈관이 타면서 하얀 연기가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고열을 받은 혈관이 쥐포처럼 움츠러들다가 뚝 끊어져 버렸다.

출혈은 없었다.

오스틴은 눈을 부릅뜨고 환자의 대뇌피질을 살폈다.

보비는 정확하게 혈관만 태웠다.

대뇌피질에 그을린 자국은 없었다.

환자의 신경.

그리고 뇌 영역이 손상될 수도 있는 가장 어려운 수술 단계가 매끄럽게 진행되고 있었다.

양손을 동시에 사용하는데도 준후의 손놀림은 섬세했다.

떨림도 없었고 미동도 없었다.

준후의 손을 거치면서 엉망으로 뭉치고 엉켜 있던 혈관들이 하나 둘 제거 되었다.

은색 곡반 위로 지렁이 같은 혈관들이 수북하게 쌓여갔다.

“설마 4그레이드 수술까지 소화할 줄이야. 솔직히 반쯤은 실패하길 바라고 시켰거든?”

“진심이십니까? 그러다 환자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시려고요?”

부르스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물었다.

“당연히 내가 직접 나설 생각이었지. 안 그랬으면 바쁜데 참관하고 있을 이유가 없잖아?”

“그렇군요.”

잡담을 마친 후 오스틴은 모니터에 비춘 준후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Spetzler-Martin grade.

이는 성인 및 소아 뇌동정맥 기형 환자를 총 다섯 등급으로 나누는 지표였다.

그중에서도 준후가 수술 중인 환자는 4등급이었다.

가장 예후가 안 좋은 5등급 바로 아래 등급인데 사실상 최상위 등급으로 봐야 했다.

5등급은 아예 수술이 불가능했다.

메스를 대지 않는 감마 나이프 수술을 펼쳐야 했기 때문이다.

“준후가 실패하길 바라는 이유가 있습니까?”

부르스가 한참 만에 물었다.

“너무 좌절이 없어. 서전이란 건 원래 쓴맛도 보면서 성장하는 법인데 말이야.”

“그러고 보니…… 교육생 중에는 준후가 유일하네요. 지금까지 한 명의 환자도 사망하지 않고, 한 명의 환자도 후유증이 발생하지 않은 건.”

부르스의 목소리에 감탄이 깃들었다.

준후에게 부족한 건 사실 경험뿐이었다.

집도에 필요한 정교한 손놀림.

기초부터 최신 논문까지 빠삭한 의학 지식.

대담하고 경이로운 판단력.

준후는 이미 거의 모든 면에서 부르스를 앞서고 있었다.

이는 오스틴도 알았고.

부르스 본인도 알았고.

또 다른 교수 헥터도 알았고.

심지어 준후 또한 알고 있을 것이다. 사람이란 무릇 아는 만큼 보기 마련이니까.

“아무리 실력이 좋다고 한들 모든 환자를 살릴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

“시간이 지나면 피할 수 없는 시련이 오겠죠.”

“그거야 그렇지만…… 기왕이면 내 밑에 있었을 때 넘어졌으면 좋겠단 말이지. 내가 원래 넘어진 사람 일으키는 데 일가견이 있잖아?”

오스틴이 씽긋 웃었다.

오스틴이 위대한 이유는 단지 수술을 잘해서만은 아니었다.

후학들에게 강철 멘탈을 교육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내가 조만간 재미있는 그림을 그려 볼까해.”

“교수님이 그리는 그림은 교수님만 재미있지 않습니까? 지켜보는 사람은 불안하다고요.”

부르스가 진저리를 치며 말을 이었다.

“부디 그 그림에서 저는 빼주세요. 배경으로도요.”

“운이 좋군. 자네는 제외됐어.”

“오. 하느님. 그럼 불쌍한 희생양들은 누구입니까?”

“준후하고 헥터.”

“주인공들이 하나같이 만만치 않네요. 혹시 그 수술 승인하셨습니까?”

“물론이지. 수술을 피하는 건 서전의 수치니까.”

오스틴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평소라면 소아 신경외과 최고 권위자인 그를 든든하게 여겼겠지만 이번만큼은 그럴 수가 없었다.

새로 맡을 수술이 워낙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해당 환자는 거의 모든 대학 병원에서 수술을 거절당하고 마지막으로 메이유를 찾았다.

해당 수술에 스태프로 뽑히지 않았는데도 부르스는 불안했다.

의국에 태풍이 불어오고 있는 것만 같아서.

* * *

4층 휴게실.

소아 뇌동정맥 기형 수술을 마친 준후가 소파에 등을 기댔다.

딸칵!

캔 커피 뚜껑을 따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입안이 달콤 쌉싸름해졌다.

“설마 설마 했는데 4등급 수술까지 해낼 줄이야. 너 사람 맞아?”

“어쩌면 렙틸리언 일지도?”

렙틸리언은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파충류 외계인이었다.

“그거 신빙성 있다. 랩틸리언이니까 어떤 수술을 해도 겁이 없는 거지. 인간보다 실력도 월등하고.”

맥스웰이 준후의 농담을 받아주고서 피식 웃었다.

“학과장님은 내심 네가 수술에 실패하길 바라셨던 거 같더라?”

맥스웰이 화제를 돌렸다.

“너도 눈치챘어?”

“솔직히 교육생이 감당할 수술은 아니었잖아. 네가 수술을 망치면 학과장님이 등장할 계획 같더라고.”

“우리 맥스웰. 머리 잘 돌아가네.”

준후의 말에 맥스웰이 고개를 좌우로 각각 90도씩 돌렸다.

요즘 들어 부쩍 쾌활하고 들뜬 맥스웰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난 8개월 동안, 교육생 중 손기술이 월등하게 발전한 사람이 바로 맥스웰이었기 때문이다.

급상승한 실력의 원인이라면.

당연히 준후가 알려준 쇄지공 덕분이었다.

쇄지공은 소림의 72기예 중 하나였다.

수련법은 무척 간단한데.

엄지에 다른 네 손가락 끝을 차례대로 붙이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손목뿐 아니라 손등과 손가락에 힘을 분산해서 실어주는 요령을 터득하게 된다.

그동안 맥스웰은 주변 동료들에게 바보 소리 같다는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쇄지공을 익혔다.

그리고 지금까지 받은 박해(?)의 성과를 최근에서야 드러내고 있었다.

오늘 맥스웰의 수술 어시스트는 한마디로 끝내줬다.

포셉으로 혈관을 미동도 없이 고정해 주었다.

중대뇌동맥 몇 군데를 봉합할 일이 있었는데 준후 대신 봉합도 훌륭하게 해냈다.

부스트 업 프로그램을 졸업할 때까지 맥스웰을 열심히 가르치고.

그 데이터를 나중에 후학들 가르칠 때 응용하면 좋을 듯했다.

“다음 수련하는 과목이 수부외과라고 했나?”

준후가 소파에 등을 기대며 중얼거렸다.

“수부외과 맞아. 난 소아 신경외과보다 수부외과가 더 빡셀 것 같아서 걱정이다.”

맥스웰이 으으 하는 신음을 흘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절단한 손가락을 자르는 것까지는 참아줄 수 있는데 손목이나 팔뚝, 다리 절단 환자는 끔찍해서 못 볼 것 같아.”

“보다 보면 다 익숙해질걸?”

“너 렙틸리언 맞구나?”

“내 경험인데 사람은 결국 다 적응하게 되어 있더라고.”

무림에서 목격했던 수많은 시체들을 떠올리며 준후가 쓰게 웃었다.

“그나저나 너무 멀리 나간 거 아니냐? 아직 수련 3개월이 남았는데.”

“그렇긴 한데. 난 살짝 지루한 감이 있어서.”

준후가 솔직한 속내를 밝혔다.

오늘 뇌동정맥 기형 수술에 성공한 순간 느낌이 팍 왔다.

웬만큼 특이한 케이스가 아니고서는 수술에 실패하지 않겠다고.

수련이 8개월 차로 접어들면서.

새로운 수술보다 기존에 했던 수술을 반복하는 일이 늘어난 것도 무료함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였다.

“배부른 소리 하네. 나니까 가만히 있지.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마. 싸대기 맞는다.”

“그럴지도 모르겠네.”

준후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고 맥스웰이 준후를 올려다보았다.

“어디 가게?”

“오후 진료 있거든. 이따 저녁에 보자.”

이때까지만 해도 준후는 몰랐다.

자신이 느낀 지루함이 고작 10분 만에 뒤집혀 버릴 거라는 사실을.

* * *

지상 1층 소아신경외과 외래 진료실.

준후는 바쁘게 진료를 보고 있었다.

부스트 업 프로그램은 수술 위주로 구성되었지만 일주일에 최소 2번은 4시간씩 진료를 보았다.

그래서 진료 실력도 꽤 성장시킬 수 있었다.

메이유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외래 진료 시간은 꽤 널널했다.

한국 대학 병원에서 외래 진료를 받아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텐데.

한국 외래 진료는 의사가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의사가 물으면 환자가 답했다.

막상 환자가 궁금한 것을 물어보려고 하면 진료 시간이 벌써 끝나 버리기 일쑤였다.

진료 시간이 대략 3-4분 정도랄까.

대학병원에 워낙 환자가 쏠린 탓도 있고 병원의 수익 문제, 긴 대기로 인한 환자의 불평이나 불만 문제 등등.

한국 외래 진료 시간이 짧은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어 환자 입장에서는 못 미더운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메이유에서는 준후가 환자를 한 명 한 명 세심하게 봐줄 수 있었다.

진료 시간이 10분을 넘어가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휴.”

방금 막 진료를 끝낸 준후가 책상에 놓여 있던 물통을 들어 물을 마셨다.

말을 많이 해서 그런지 입안이 바짝 말라 있었다.

“선생님. 다음 환자 들여보낼까요?”

문밖에서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준후가 그러라고 대답했다.

끼이이익.

진료실 문이 열리고 안경을 쓴 중년 남성이 진료실로 들어왔다.

그는 더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한 손으로 진료실 문을 잡고 있었다.

남성이 차고 있는 손목시계가 예사롭지 않았다.

무려 롤렉스였다.

시계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금빛 파도로 출렁거렸다. 문자판에는 반짝거리는 보석이 알알이 박혀 있었다.

호화롭다는 뜻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저 시계를 보여주면 될 것 같았다.

가격을 떠나서 준후마저 시계에 시선을 빼앗길 정도였으니까.

남성이 열어준 문을 유모차가 통과했다. 직사각형 형태로 가로가 넓은 왜건형 유모차였다.

유모차를 밀고 있는 이는 금발의 여성이었다.

부부로 보이는 남성과 여성이 진료 의자에 앉았다.

유모차는 두 사람 사이에 수직으로 주차되었다.

천장 덮개가 닫혀 있어 아이의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네. 안녕하세요.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일단 차트부터 확인해 볼까요?”

준후는 빠르게 진료 의뢰서부터 훑었다.

남성의 롤렉스에 시선을 빼앗긴 탓에 차트를 미리 읽어두지 못한 탓이다.

‘어라?’

자트를 살피는 준후의 눈이 가느다래졌다.

미간이 좁아지고 이마에는 지렁이 주름이 늘어났다.

보호자가 진료 의뢰서를 받아 온 병원이 하나 같이 최상급 병원이었다.

클리블랜드 병원.

메사추세츠 병원 등등.

뿐만 아니라 이런 CT와 MRI 사진을 준후는 신경외과 의사가 되고 나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사전에 연락을 못 받으신 모양입니다. 많이 놀라셨죠?”

남성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 네.”

“모니터를 보는 것보다 저희 아이를 직접 보는 게 더 빠를 겁니다.”

남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유모차에 천장 덮개를 열었다.

아이를 확인한 순간.

준후의 몸이 돌처럼 굳었다.

환자는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었다. 그리고 서로의 정수리가 딱 붙어 있었다.

환자는 샴 쌍둥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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