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공 쓰는 외과 의사-383화 (383/424)

383화

제74장 스프링(3)

그날 저녁.

오후 진료를 마친 준후는 소아 신경외과 학과장실에서 오스틴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은 소파에 앉아 서로를 마주보았다.

“그 환자, 미리 말씀해 주셨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준후가 다짜고짜 물었다.

따로 설명은 덧붙이지 않았다.

“미리 말해주면 재미없지. 인생의 재미라는 건 말이야 무릇 예기 못한 사건에서 발생하는 법이거든.”

“한 번만 더 재미있었다간 심장마비가 올 것 같습니다.”

준후의 목소리에 농담 반, 진담 반이 담겼다.

준후는 소파에 등을 기댄 채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아직도 샴쌍둥이의 얼굴이 선명했다.

유모차에 누운, 정수리가 맞닿은 두 아이가 준후를 올려다보았는데 아이들은 준후를 향해 방긋 웃으며 인사하듯 손을 흔들어주었다.

준후는 웃지 못했다.

같이 손을 흔들어주며 인사를 받아주지도 못했다.

샴쌍둥이 환자를 직접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충격이 더 컸다.

그것은 에베레스트 산을 등반하는 동영상을 보는 것과 실제로 에베레스트 산을 등반하는 것만큼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었다.

“수술을 해도 괜찮은 걸까요?”

준후가 걱정하며 물었다.

“질문이 잘못됐어. 수술을 해야 괜찮아지겠지.”

“제 말은 수술 방법에 대한 겁니다. 보호자 말로 다른 병원에서는 전부 한 아이만 살리는 쪽으로 수술을 권했다고 하던데요.”

당연하게도 샴쌍둥이 환자의 머리와 뇌 분리 수술은 난이도가 끔찍했다.

한 명만 살리는 것도 어렵고 두 명 다 살리는 것은 토가 나올 만큼 어려웠다.

분리 수술이 워낙 위험했기에.

분리 수술을 하지 않고 몸을 공유한 채 살아가는 샴쌍둥이도 꽤 많았다.

“보호자가 두 아이를 다 살리기를 원하고 있어.”

“의사가 보호자의 뜻을 다 맞춰줄 수는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준후의 질문에 오스틴이 입을 꼭 다물었다.

팔짱을 낀 채 준후를 지그시 응시했다.

“이번 수술은 의외로 보수적이군. 자네라면 당연히 두 아이를 다 살리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이유가 있나?”

“보호자 입장에서 생각해 봤습니다.”

준후가 괴로워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

“보호자가 두 아이를 온전히 살리려다가 두 아이를 전부 잃었을 때의 심정을요. 저라면 가슴이 찢어질 것 같습니다.”

“물론 자네 말도 일리는 있어. 하지만 이런 쪽으로는 생각해 봤나?”

“어떤 쪽 말씀이십니까?”

“자네가 보호자라면 두 아이 중 어떤 아이를 살리겠나?”

준후는 대답을 못했다. 말문이 콱 막혀 버린 느낌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물에 빠졌는데 둘 중 한 명만 구할 수 있다면 누구를 구할 것인가.」

예전에 유행했던 짓궂은 질문을 받은 듯했다.

만약 실제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후회나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을까.

“왜 대답이 없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했냐면…….”

오스틴이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앞으로 자네가 질문에 끌려 다니지 말았으면 해서 하는 소리야. 질문은 분명 중요해. 하지만 때로는 질문이 정답으로 가는 길을 방해할 수도 있지.”

“무슨 뜻입니까?”

“다시 보호자 이야기로 돌아가지. 자네가 보호자라면 아이들에게 어떤 수술을 해주고 싶나?”

“당연히 두 아이 다 무사할 수 있는 수술을 해주고 싶을 것 같습니다.”

좀 전과 달리 준후는 즉답을 내놓았다.

이건 생각할 필요도 없는 문제였다.

“바로 그거야!”

오스틴이 손가락을 경쾌하게 튕겼다.

“자네의 욕망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보고 그 욕망을 이룰 수 있는 방법으로 질문을 선택하란 말이지.”

오스틴의 설명이 한줄기 빛이 되어 준후의 어두웠던 머릿속을 비추어주었다.

쌍둥이 분리 수술이 너무 어렵고 위험한 나머지.

준후는 자신의 욕망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환자와 보호자 모두가 행복한 수술.

준후가 꿈꾸는 수술은 바로 그런 수술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물에 빠졌는데 둘 중 한 명만 구할 수 있다면 누구를 구할 것인가.」

지금이라면 그 질문에 어렵지 않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준후는 둘 다 구하려고 할 것이다.

‘제 말 이해 못하셨어요? 둘 중 한 명만 고를 수 있다니까요?’라고 질문자가 항의해도 듣지 않을 것이다.

준후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당신이 둘 중 한 명만 구하려고 하니까 한 명만 구할 수밖에 없는 거라고.

물론 두 사람을 모두 살리려다가 두 사람을 다 잃는다면 가슴 아플 것이다.

하지만 그건 선택한 사람이 책임져야 할 몫이었다.

궁극적으로 봤을 때.

한 사람만 살린다고 해서 책임져야 할 몫이 사라지거나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수술 방법은 찾으셨습니까?”

준후가 화제를 돌렸다.

“아니, 아직. 나도 그동안 샴쌍둥이 분리 수술을 5번 정도 해봤는데 이런 케이스는 처음이라서 말이지.”

“학과장님도 처음인 수술이 있군요.”

“세상은 넓고 환자는 많으니까.”

오스틴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라고 해서 왜 두려움이 없겠는가.

어찌 보면 오스틴이 느낄 두려움은 준후가 느끼는 두려움보다 더 클지도 몰랐다.

보호자가 그에게 거는 기대.

주변 사람들의 평판 같은 것도 전부 크고 무거운 짐일 테니까.

그래서인지 몰라도.

준후는 얼핏 오스틴에게서 무림맹주의 모습을 겹쳐 보았다.

“학과장님. 저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해봐.”

“이번 샴쌍둥이 분리 수술 말입니다.”

* * *

그날 저녁.

준후는 당직실에서 교육생 당직을 서고 있었다.

교육생 당직이란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당직 교수인데 소아 신경외과 병동의 총 책임자로 응급 환자가 들어오면 수술까지 맡는 자리였다.

딸칵! 딸칵!

마우스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준후의 미간이 깊게 패었다.

샴쌍둥이의 CT와 MRI를 보는 중인데 보면 볼수록 한숨이 나왔다.

둘이 머리뼈만 공유를 했다면.

수술은 비교적 쉬웠을 것이다.

두개골을 분리해서 각각 두개골 성형술을 펼쳐줬으면 됐을 테니까.

하지만 그랬다면 다른 병원에서도 결코 수술을 거절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두 아이는 중대뇌동맥의 상당 부분까지 공유하고 있었다.

하나의 혈관과 두 명의 아이.

문제는 그래서 심각했다.

음식이라면 나눠 먹으면 그만이지만 혈관은 나눠 먹을 수가 없었다.

준후는 모니터를 한참 노려보다가 한 손으로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뾰족한 수가 없었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머릿속 뇌세포가 꽈배기처럼 꼬이는 기분이었다.

수술법을 찾는 게 어렵다는 건 알고 있었다.

타 대학병원도 두 손을 들었고.

심지어 그 대단한 오스틴마저 그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말하자면 준후가 잠깐 고민한다고 정답이 튀어나올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두 손 놓고 가만히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외과의는 구함(find)으로써 구하는(save) 직접이니까.

“우와. 이게 그 오늘 입원했다던 샴쌍둥이 환자 영상인가요?”

같이 근무를 서고 있던 1년차 레지던트 다니엘이 준후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준후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두개골도 붙었고 중대뇌동맥도 절반 넘게 붙어 있네요? 이거 수술이 가능하긴 한가요?”

“안 되면 되게 해야지.”

“근데 이걸 준후 선생님이 왜 보세요? 어차피 집도는 오스틴 학과장님이 하는 거 아닌가요?”

“내가 제1어시스트거든.”

몇 시간 전, 준후는 오스틴에게 부탁을 했다.

이번 분리 수술의 제1어시스트를 맡고 싶다고.

이유라면 여러 가지가 있었다.

다만 그중 한 가지만 꼽자면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어보고 싶어서였다.

과연 나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다만 그게 올바른 선택이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었다.

만약 분리 수술 도중.

두 아이가 목숨을 잃는다면.

준후는 말도 못할 충격을 받을 것이다. 성호를 떠나보냈을 때처럼 넋이 나가 버릴 것이다.

한동안 후유증으로 수술 스케줄을 소화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도망치거나 숨는 것은 준후의 방식이 아니었다.

“네? 선생님이 제1어시스트요?”

“너 아까부터 계속 놀라기만 한다?”

준후가 피식 웃었다.

“놀랄 일만 있으니까 그렇죠. 학과장님이 순순히 허락하던가요?”

“그러라고 하던데?”

“어메이징 하네요. 전 당연히 교수님들이 퍼스트 어시스트를 설 줄 알았어요. 수술이 보통 수술이 아니잖아요.”

“나도 마찬가지야.”

준후 역시 의문이었다.

오스틴이 왜 선뜻 자신을 제1어시스트로 간택했는지.

산전수전을 다 겪은 양반이니 무슨 꿍꿍이가 있을 게 분명한데…….

그 속내는 알 길이 없었다.

“따로 노티할 환자는 없어?”

“네. 아직까지는요. 느낌이 좋은 게 오늘 밤은 어쩐지 조용하게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말 하면 꼭 환자가 터지던데.”

“불길한 소리 마세요.”

다니엘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한국 사람이었다면 준후에게 소금이라도 뿌렸을 것 같았다.

“아, 참. 얼마 전에 레비 선배한테 연락 왔어요.”

다니엘이 화제를 돌렸다.

“레비가 누구였지?”

“예전에 준후 선생님하고 시비 붙었던 레지던트 2년 차요.”

“아…….”

준후는 그제야 레비를 기억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레비는 근무 태도가 불성실한데다가 음주까지 해서 준후가 혼쭐을 내줬던 녀석이었다.

피 검사를 통해 녀석의 혈중 알콜 농도가 밝혀진 뒤.

녀석은 징계를 먹고 병원에서 쫓겨났다. 그것도 벌써 6-7개월 전의 이야기였다.

“걔는 뭐 하고 지낸대?”

“제임스 홉킨스 병원에서 레지던트 중이래요. 메이유보다 제임스 홉킨스 병원이 백배는 낫다고 하더라고요.”

“그냥 하는 소리겠지.”

준후가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시게요?”

“잠깐 환자 좀 보려고.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준후는 당직실을 떠나 복도를 가로 질렀다. 스테이션과 가장 가까운 병실로 들어갔다.

의외로 병실에 보호자가 없었다.

보통 소아 병실은 부부 중 한 명은 반드시 자리를 지키기 마련인데 말이다.

준후를 고개를 갸웃거리곤 침상에 가까이 갔다.

맑은 4개의 눈동자가 준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이들의 이름은 각각 소피아와 엠마였다. 하지만 준후는 누가 소피아고 누가 엠마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뭐가 그렇게 좋은 걸까.

아이들은 진료실에서 그랬던 것처럼 방실방실 웃으며 준후를 향해 팔을 휘저었다.

준후는 아이들에게 각각 검지를 내밀었다.

아이들이 준후의 검지를 만지작거리기 바빴다.

아이들의 손에서 말랑말랑하고 보드라운 감촉이 느껴졌다.

역시 두 아이 중 하나만 선택해야한다는 것은 너무나 가혹한 일이었다.

고되고 위험부담이 있더라도.

두 아이를 전부 살릴 수 있는 수술을 하는 게 옳다는 확신이 들었다.

문제는 그 방법을 어떻게 찾느냐 일 텐데…….

고민이 깊어지는 가운데.

드르륵 하고 병실 문이 열렸다.

샴쌍둥이의 보호자 조던과 스칼렛이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부부가 준후 곁에 섰다.

준후는 가장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둘 중 누가 엠마고 누가 소피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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