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5화
제74장 스프링(5)
“안녕하세요. 교수님.”
준후가 몸을 돌려 상대에게 인사를 건넸다.
상대가 무뚝뚝한 얼굴로 준후를 마주 보고 섰다.
호리호리한 체구에 안경을 쓴 중년 남성은 바로 헥터였다.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표정이 굳으셨네요?”
“있었지. 네가 샴쌍둥이 분리 수술에 퍼스트로 뽑혔다고 들었거든.”
헥터가 본론부터 꺼냈다.
“왜 그렇게 어렵고 힘든 수술에 퍼스트를 자처했지?”
“이런 기회가 다시는 없을 것 같아서요. 기왕이면 수술에 직접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예전 뇌종양 수술 건도 그렇고 이번 건도 그렇고 무모한 건 여전하구나.”
헥터의 목소리에 불만이 가득했다.
헥터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준후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인간적으로 싫어한다기보다는.
준후 특유의 저돌적인 수술 방법과 사고방식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헥터가 추구하는 것은 안정적인 수술, 모나지 않는 수술이었다.
그러니까 서전으로서 두 사람의 성향은 양극단에 위치해 있었다.
온도로 비유를 하자면.
준후는 뜨거웠고.
헥터는 차갑다고 해야 할까.
“분리 수술은 네 능력으로 감당할 수술이 아니야. 지금이라도 포기하는 게 좋겠다.”
“그건 학과장님이 판단하실 문제 아닙니까?”
준후도 공격적으로 나섰다.
더 많은 수술, 더 어려운 수술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발전시키는 게 준후의 목표였다.
설령 그 과정에서 눈물과 좌절을 맛볼지라도.
그런데 그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학과장님은 이미 저를 퍼스트로 낙점하셨습니다. 저도 퍼스트를 원하고 있고요.”
“…….”
“설득을 원하신다면 학과장님께 가보시죠.”
“수술을 원한다면 세컨드로 만족할 순 없겠니? 퍼스트는 내가 서고 말이다.”
“그건 안 되겠습니다.”
준후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제1어시스트는 타협이나 협상의 대상이 아니었다.
“휴. 그놈의 고집 한 번 질기구나.”
“그런데 교수님은 왜 이번 수술을 원하십니까?”
“나?”
헥터가 피식 웃으며 말을 계속했다.
“내 실력과 자리에 어울리는 수술을 하고 싶었을 뿐이란다.”
대답은 그럴싸했다.
하지만 그게 진심인 걸까, 준후는 확신할 수 없었다.
어쩌면 헥터는 준후를 질투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오스틴이 헥터 대신 준후에게 제1어시스트 자리를 넘겨주자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사실 네가 퍼스트를 포기하지 않을 줄 알고 있었단다.”
“그럼 왜 시간 낭비를…….”
“나한테는 희소식, 네게는 안 좋은 소식을 전해주러 왔지.”
헥터의 설명이 이어졌다.
헥터의 말에 따르면 분리 수술의 퍼스트는 아직 결정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앞으로 3일 뒤.
준후와 헥터가 각자 컨퍼런스에서 쌍둥이 분리 수술 방법을 발표한다.
그리고 둘 중.
누구의 수술 방법이 더 환자에게 효과적인 판단한 후.
오스틴이 다시 퍼스트를 정한다고 알려주었다.
“교수님이 학과장님을 직접 찾아가서 따지셨군요. 제가 퍼스트를 서면 안 된다고.”
준후가 씁쓸하게 웃었다.
오스틴이 갑자기 의견을 바꿨을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헥터의 입김이 작용했을 확률이 100퍼센트였다.
“내가 네 수술을 빼앗은 것 같아서 밉니?”
“아뇨. 딱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의외의 대답이구나.”
“교수님 입장에서는 교수님이 제게 수술을 빼앗겼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헥터를 바라보는 준후의 눈빛은 여전히 차분했다.
분노, 억울, 당황 같은 감정이 깃들어 있지도 않았다.
“저는 오히려 교수님과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게 되어서 더 즐겁습니다.”
“경쟁? 즐거움? 이 상황에서 잘도 속 편한 소리를 하는 구나.”
뭐가 그렇게 유쾌한지 헥터가 배를 잡고 깔깔깔 웃었다.
그 호탕한 웃음소리에 복도를 거닐던 환자와 보호자 몇 명이 이쪽을 쳐다보았다.
“역시 넌 보통이 아니야.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구나. 하지만 말이다.”
“…….”
“난 이미 분리 수술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을 알고 있단다. 넌 생각해둔 게 있니?”
헥터의 질문에 청산유수였던 준후의 말문이 턱 막혔다.
입술이 몇 번 들썩거렸지만.
목소리가 나오지는 않았다.
나라면 샴쌍둥이 분리 수술을 어떻게 할 것인가.
오늘 하루 종일 고민했는데도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망망대해에 빠진 바늘을 찾는 기분이었다.
턱!
헥터가 준후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씽긋 웃었다.
“이런 게 바로 경험의 차이란다. 네 말대로 공정한 경쟁을 하게 됐으니 지더라도 날 원망하지는 말거라.”
* * *
이튿날 오전.
준후는 가장 먼저 컨퍼런스 룸에 도착해 자리에 앉았다.
두 눈을 지그시 감고.
팔짱을 낀 채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머릿속에 각기 다른 모양에 퍼즐 조각이 30개쯤 둥둥 떠 있었다.
그것들을 여기 넣었다가, 저기 넣었다가, 뺏다가 도로 넣었다가를 반복했지만.
큰 그림은 그려지지가 않았다.
‘이러다가 뇌세포를 학대했다고 신고가 들어오는 건 아닌지 몰라.’
스스로를 비웃으며 준후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준후는 쌍둥이 분리 수술의 출구는커녕 입구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틀 동안 고민했는데도 손이 텅 비었다.
문득 양 관자놀이가 지끈 아파왔다.
준후는 내공을 담은 검지로 관자놀이를 꾹 지압했다. 그제야 머릿속이 상쾌해졌다.
“세상에 고뇌란 고뇌는 다 짊어진 것 같은 표정이네.”
익숙한 목소리가 옆자리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맥스웰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맥스웰의 기척을 느끼지 못할 만큼.
준후의 정신은 온통 분리 수술에 팔려 있었다.
“한잔해.”
맥스웰이 양손에 쥐고 있던 커피 중 하나를 준후 앞으로 밀었다.
준후가 커피를 한 손에 쥐었다.
커피에서 전해지는 온기보다 맥스웰의 배려가 더 따뜻했다.
“고맙다.”
준후가 웃으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아직도 분리 수술 때문에 골머리 썩고 있냐?”
“응. 죽겠어.”
“진도가 전혀 안 나간 표정이네.”
“내 말이.”
지난 이틀 간 준후는 뭐 빠지게 분리 수술 논문을 뒤졌다.
그런데 건진 게 하나도 없었다.
샴쌍둥이 분리 수술은 그 자체가 워낙 희귀했다.
그런데다가 분리를 하는 부위가 허리, 엉덩이, 가슴 등등으로 예상보다 다양했다.
머리 분리 수술은 끽해야 4건.
그중에서도 정수리가 붙은 건은 딱 한 건인데 그것마저도 환자가 뇌동맥을 공유하는 케이스는 아니었다.
쉽게 말해서 참고할 자료가 하나도 없는 셈.
준후는 그동안 계속 맨땅에 헤딩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중간에 치트키를 쓰고 싶은 욕심이 불쑥 불쑥 치밀어 올랐다.
스승 박재현에게 연락한다면.
꽤 괜찮은 조언을 들을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준후는 그 충동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거저 얻은 해답을 자신이 찾은 것처럼 포장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준후는 스승의 손길을 벗어나 독립할 때가 되었다.
앞으로는 자신의 이름을 딴 수술을 만들어내야 할지도 몰랐다.
어쩌면 이번 시련이 그 발판 아닐까.
“헥터 교수님은 수술 방법 아신데?”
“첫날부터 이야기 하더라. 자기는 답을 알고 있다고.”
“애초부터 불공정 게임이었네. 그냥 포기하는 게 어때? 헛고생하지 말고.”
“길고 짧은 건 대봐야지.”
“난 안 대봐도 알 것 같은데?”
“그럼 잘못 봤네. 눈 씻고 제대로 봐.”
준후의 목소리에 오기가 서렸다.
불굴의 의지.
이 역시 지금의 준후를 만들어준 강력한 무기였다.
무림에서도 그랬다.
준후가 적일도에게 복수를 하겠다고 할 때.
세가 사람들이나 지인들은 하나 같이 준후를 뜯어말렸다.
무림 10대 마두 중 한 명인 적일도를 준후가 감히 어떻게 처치하겠냐고.
억울하더라도 다 잊고 살라고.
하지만 준후는 와신상담하는 각오로 꿋꿋이 버텼다.
결국 조화경에 다다랐으며.
우여곡절 끝에 적일도를 황천길로 보내는 데 성공했다.
이번에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다만 무림 때와 달리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는 게 가장 문제였지만.
짧은 대화 후 침묵이 찾아왔다.
맥스웰은 더 이상 충고를 하지 않았다.
후루룩, 커피를 마셨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쳐다보니 맥스웰이 가운 주머니에서 과자를 꺼내고 있었다.
미국의 국민 간식으로 불리는 트윙키였다.
맥스웰이 반으로 쪼갠 트윙키를 커피에 적셔 먹었다.
빵이 젖어서 커피에 빠질까봐 그런 듯 했다.
준후는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만 보았다.
준후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왜냐하면 아무런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 때였다!
텅 비어 있던 머리로 예상치 못한 깨달음이 흘러 들어왔다.
“찾았다!”
준후가 고함을 질렀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양손을 천장으로 들어올렸다.
이 짜릿한 기분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깜짝이야! 심장 마비 오는 줄 알았네. 찾기는 갑자기 뭘 찾아?”
놀란 맥스웰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쌍둥이 분리 수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았다고.”
“이렇게 느닷없이?”
“이렇게 느닷없이!”
준후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한 손으로 준후의 맥스웰의 손을 감싸 쥐었다.
“고맙다. 맥스웰. 다 네 덕분이다.”
준후의 갑작스러운 감사 인사에 맥스웰은 더욱 황당하다는 얼굴이 되었다.
“나…… 난 트윙키 먹은 것밖에 없는데?”
* * *
다음 날 오전, 컨퍼런스 룸.
오스틴은 팔짱을 낀 채 컨퍼런스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었다.
오스틴의 신경은 잠시 후 펼쳐질 준후와 헥터의 수술 토론에 온통 쏠려 있었다.
잔뼈 굵은 교수 VS 수련한 지 1년도 안 된 교육생.
사실 경합의 결론은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마 준후는 분리 수술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조차 잡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왜냐고?
참고할 자료가 아예 없었으니까.
준후의 데이터가 전무한 반면.
헥스는 그동안 소아 신경외과 교수로 집도하면서 수많은 데이터를 몸으로 축척했다.
말하자면 둘 사이의 간격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하긴 내 욕심이 너무 컸어. 준후가 어디까지 해내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던 거지.’
오스틴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물은 이미 엎질러져 버린 것을.
오스틴은 준후를 바라보다가 헥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공교롭게 헥터도 오스틴을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친 순간 헥터의 눈이 반달 모양으로 웃었다.
자신이 넘친다는 눈빛이었다.
헥터는 분명 분리 수술의 해답을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해답은 오스틴이 찾은 해답과는 전혀 다른 형태일 것이다.
‘녀석, 우쭐하기는. 네 수술 방식과 사고방식은 치명적인 문제가 있단다. 그걸 알려주기 위해 준후를 퍼스트로 세우려고 했던 거고.’
오스틴은 속으로 혀를 찼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컨퍼런스가 끝났다.
순간 방 안에 공기가 무겁고 팽팽해졌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앞으로 펼쳐질 중요한 이벤트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수를 친 사람은 헥터였다.
헥터가 단상에 올라 교육생과 오스틴, 다른 교수들을 굽어보았다.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말하겠습니다. 제가 생각한 샴쌍둥이 분리 수술의 핵심은 이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