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2화
제76장 질주(2)
수술방은 밤바다와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수술방에는 둥근 보름달 대신 무영등이 떠올라 있었다. 그림자가 지지 않는 불빛이 쨍하게 밝았다.
환자의 몸을 감싸고 있는 수술포는 파란빛을 띠고 있었다.
파도 소리는 아니지만.
환자 감시 장치에서 삐삐삐- 하고 규칙적인 리듬이 흘러나왔다.
샴쌍둥이 분리 수술은 하이라이트로 치닫고 있었다.
두개골을 절제하고 뇌막을 걷어낸 후, 쌍둥이가 공유하고 있는 중대뇌동맥을 절제했다.
혈관이 반으로 뚝 끊어졌다.
뇌 안에 붉은 피 웅덩이가 생겨났다.
제3어시스트인 레이먼드가 썩션기로 피 웅덩이를 빨아들였다.
오스틴은 엠마의 동맥 혈관을.
준후는 소피아의 동맥 혈관을 각각 다른 뇌혈관에 문합(끝과 끝을 봉합해주는 것) 해나갔다.
살얼음 위를 걷는 듯한 긴장감이 수술방을 감쌌다.
문합은 토가 나올 정도로 어려웠다.
아이들의 동맥은 매끈하고 탄력이 넘쳐서 연신 수술 도구 위에서 미끄러졌다.
소피아의 혈관을 잡아주고 있는 레이먼드의 손도 희미하게 떨렸다.
준후는 침착함을 유지했다.
어시스트가 완벽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예상해두었다.
당연하게도…….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생각해둔 바가 있었다.
준후는 만화공을 펼쳤다.
오감을 최대치로 증폭하고.
집중력을 여러 개로 분산시켜도 그 집중력이 하나인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무공을.
레이먼드의 떨리는 손이 파도라면.
문합하는 준후는 서퍼였다.
파도에 흐름을 내맡기고 본인이 할 도리를 다하면 그만이었다.
한 바늘, 한 바늘.
꼼꼼하고 끈기 있게 혈관을 꿰매다 보면 문합은 어느새 종료되어 있다.
소피아는 이제 자신만의 중대뇌동맥을 갖게 된다.
혈류 테스트를 해봤다.
혈류가 누수 없이 쌩쌩 잘만 돌아간다.
준후는 뿌듯함을 느끼며 맞은편을 바라보았다. 오스틴도 막 혈관 문합을 끝낸 참이었다.
오스틴의 눈이 웃고 있었다.
오스틴도 동맥 문합을 성공적으로 끝낸 것이다.
-바이탈 정상이고 뇌압도 정상입니다. 산소포화도만 살짝 떨어져서 올려주겠습니다.
커튼 뒤에서 들려오는 마취의의 목소리가 상쾌했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돌아가면서 샴쌍둥이 분리 수술은 종료됐다.
보호자는 행복에 눈물을 흘리고.
스태프들은 지난 고생을 떠올리며 기쁨의 포옹을 나눴다.
뒤늦게 쏟아지는 매스컴의 찬사.
누구도 다치지 않고, 누구도 아프지 않고.
동화 속 결말처럼 행복하게 샴쌍둥이 분리 수술은 성공적으로 종료됐다.
“휴.”
수술을 끝마친 후 준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까지 휴게실에 있었던 준후는 놀랍게도 기숙사 방 안에 있었다.
사실 오늘은 수술 당일이었고.
준후는 출근하기 전 마지막으로 상상 수련을 연습한 것이었다.
준후의 몸은 땀으로 범벅이었다.
아직 남은 흥분감에 양팔도 희미하게 떨렸다.
준후의 상상 훈련은 실전만큼이나 현실감이 넘쳤으므로 훈련을 마치고 나면 실제 수술을 한 것처럼 피로가 밀려왔다.
준후는 앉아 있던 자리에서 곧바로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30분 정도 내공을 회전하다 보니.
메말라 있던 체력과 집중력이 촉촉하게 차올랐다.
자리에서 일어난 준후가 욕실로 향했다.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고 샤워도 했다.
이번 수술의 성패가 자신에게 달렸다는 믿음은 변함이 없었다.
흔들림도 없었다.
3D 프린터를 이용한 모형 수술 연습.
이것이 스태프의 실력을 수직상승 시켜주었다고는 해도 한계는 명확했다.
모형 제작에 사용된 혈관, 근육, 신경, 뼈 등등은 전부 인공이었다.
사람의 구성 요소와 크기와 형태는 비슷할지언정 촉감, 탄력성, 혈류의 흐름 등까지 완벽하게 재현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준후는 달랐다.
그동안 집도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실전과 똑같은 수술을 머릿속으로 그려내서 수십 차례 경험했다.
즉 이번 수술의 베테랑은 헥터도, 오스틴도 아닌 준후였던 것이다.
찰싹!
준후가 느닷없이 자기 볼을 때렸다. 느슨해진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였다.
방심하면 안 돼.
수술방은 기상천외한 일이 언제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야.
심지어 내가 예측하지 못한 돌발 상황이 터져 버릴 수도 있어.
만약 그렇다면.
‘왜’ 그런 참사가 발생했는지.
그 참사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최대한 냉정하게 질문하고 답해보자.
복장을 갖추고 기숙사를 나서면서 준후는 최후의 마인드 세팅을 끝마쳤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이 흐렸다.
맞은편 하늘에서 거대하고 까만 뭉게구름이 준후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 * *
병동에 도착한 준후는 곧장 엠마와 소피아의 병실을 찾았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좋은 아침입니다.”
보호자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눈 후 아이들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뇌압 관리가 잘 된 덕분일까.
두 아이가 열흘 전처럼 병실이 떠나가라 울어대는 일은 없었다.
아이들은 준후를 발견하고 방긋방긋 웃어주었다. 만나서 반갑다는 듯 손도 흔들어주었다.
형제나 자매와 같은 방을 쓰는 것도 답답해 죽겠는데 머리를 공유하고 있으면 얼마나 답답할까.
아이들은 반드시 분리되어야 했다.
비단 안락함뿐만이 아니라 더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그 과정에서 둘 중 누구도 잃어서는 안 됐다.
이 감정을 부담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책임감이라고 해야 할까.
준후는 문득 자신의 양 어깨에 각각 엠마와 소피아의 생명이 묵직하게 내려앉아 있는 것 같다는 무게감을 느꼈다.
“많이 피곤해 보이시는군요.”
준후가 먼저 보호자들에게 물었다.
“솔직히 밤새 한숨도 못 잤습니다. 가슴이 계속 쿵쾅쿵쾅 뛰어서 말이죠…….”
조던이 한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대답했다.
“저는 악몽을 꿨어요. 선생님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들 머리가 안 떨어지는 악몽이요…….”
말하면서 악몽을 떠올렸는지 스칼렛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실례지만 이번 수술…… 성공률은 어떻게 될까요?”
조던의 목소리가 조심스러웠다.
“뭐라고 말씀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정수리가 붙은 샴쌍둥이 수술은 경험이 없어서 말이죠.”
“…….”
“비교할 만한 케이스도 많지 않고요. 아시다시피 만만치는 않을 겁니다.”
“그렇군요. 쓸데없는 질문인 건 아는데 계속 머릿속에 맴돌아서 참을 수가 없더군요.”
“당신, 괜찮아요?”
스칼렛이 조던의 손을 꽉 붙잡아주었다.
서로에게 의지하는 부부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참고로 준후도 어젯밤에 아영과 통화하면서 위로와 응원을 잔뜩 받았다.
“선생님은 좀 어떠세요? 선생님도 불안하고 초조하실 것 같은데요.”
스칼렛이 준후를 걱정했다.
“불안하고 초조한 게 일이라서 괜찮습니다.”
“저런…….”
“식상한 말로 들리시겠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늘을 위해 스태프들이 뼈를 깎는 노력을 했습니다. 그럼 하늘도 돕겠죠.”
꽈꽈꽈광!
준후의 말을 부정하듯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퍼졌다.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리려고 하자 스칼렛이 침상으로 다가가 성심성의껏 장난감을 흔들어댔다.
준후의 시선이 창가로 향했다.
촤아아아!
장대비가 시원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안 도와주겠다는 거냐?
그래도 상관없어.
네가 돕든, 안 돕든 수술은 성공할 테니까.
보호자와 작별 인사를 하고 준후는 컨퍼런스 룸을 찾았다.
컨퍼런스 20분 전인데도 먼저 와 있었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레이먼드였다.
레이먼드는 불안하게 한 쪽 다리를 떨어댔다.
치아로 손톱을 물어뜯기 바빴다.
“일찍 왔네?”
준후가 레이먼드 곁에 스스럼없이 앉으며 물었다.
수술 연습을 함께하면서.
레이먼드에게 아주 조금 정이 들긴 했다.
맥스웰로 어시스트를 바꿀 수도 있다고 자극한 후.
레이먼드의 어시스트 솜씨는 나날이 발전했다.
인성은 둘째 치고 수술에 관해서라면 등을 맡겨도 좋을 수준이었다.
“기숙사에 있어도 할 일이 없는 건 마찬가지니까.”
“너무 긴장한 거 아니야?”
“긴장을 안 하면 그게 이상한 거 아닌가?”
레이먼드가 되물으며 쓰게 웃었다.
“긴장도 적당히 해야지. 그 상태로 수술 제대로 하겠어?”
“몰라.”
“손바닥 내봐.”
“갑자기 왜?”
“일단 내보라고.”
준후가 강압적으로 말하자 레이먼드가 일단 시키는 대로 준후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준후는 레이먼드의 중지 아래에 있는 부위를 엄지로 둥글게 문질렀다.
내공을 적당히 실어서.
해당 위치에는 심중혈이 존재했다.
긴장, 불안, 초조할 때 심중혈을 자극해주면 감정을 다스릴 수 있었다.
나아가서 준후는 레이먼드의 귓불도 자극했다. 정신을 맑게 해주는 청운혈에 추궁과혈 수법을 활용했다.
“방금 뭐야?”
레이먼드의 눈이 놀란 부엉이 눈이 되었다. 커다래진 눈이 당장이라도 눈 밖으로 또르르 굴러 나올 것만 같았다.
“무슨 약이라도 먹은 것처럼 마음이 싹 내려앉았는데? 갑자기 불안한 마음도 안 들고.”
“동양의 침술을 응용한 수법이다. 꽤 효과가 좋아.”
“거 참, 신기하네? 어쨌거나 고맙다. 이제 좀 살 것 같아.”
레이먼드가 한결 개운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기지개를 켰다.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떴나? 너한테 고맙다는 말도 다 들어보네?”
“고마운 건 고마운 거지.”
레이먼드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오늘 어시스트 기대해라. 어제보다도 좋아졌을 테니까.”
“듣던 중 반가운 소리.”
레이먼드와 잡담을 나누는 사이.
스태프들이 하나 둘 빈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총 40분간 진행된 컨퍼런스 내용은 준후의 귀에 조금도 흘러 들어오지 못했다.
분리 수술이 코앞이었다.
분리 수술과 관련된 정보가 아니면 뇌는 모든 것을 거침없이 튕겨냈다.
그렇게 컨퍼런스가 끝난 후.
회의실에 남은 이는 분리 수술에 들어가는 4명의 전사뿐이었다.
집도의 오스틴.
제1어시스트 준후.
제2어시스트 헥터.
제3어시스트 레이먼드.
오스틴은 수술을 30분 앞둔 시점에서 최종 브리핑을 직접 소화했다.
수술 과정을 되짚었고.
스태프들의 사기를 북돋아주었다.
“우리가 박살낸 3D프린터 모형만 무려 11개야. 실전과 완전히 똑같은 건 아니지만 11번의 실전을 거쳤다고 해도 무방하지.”
“…….”
“특히 마지막 연습에서는 수술 시간을 처음에 비해 2시간을 단축했고 성과도 좋았어.”
“…….”
“우리가 할 일은 어제의 성공을 기억하고 재현하는 거다. 알겠나?”
“네. 교수님.”
“네. 교수님.”
“네. 교수님.”
세 사람이 한마음 한뜻으로 대답했다.
“물론 연습 때보다 두렵긴 할 거야. 외부에서 손님도 올 거니까.”
“어떤 손님들입니까?”
준후가 물었다.
“제임스 홉킨스 병원, UCLA, 클리브랜드 클리닉 등등. 웬만한 대학병원 소아 신경외과 교수들은 다 참관하겠다고 했단다.”
“…….”
“세어 보니까 대략 50명이 넘더구나.”
“어마어마한 숫자네요. 본인들 일정도 있을 텐데.”
“그렇다고 봐야지. 노파심에 딱 한마디만 더 하마.”
오스틴이 스태프들과 일일이 눈을 마주치며 말을 이었다.
“절대로! 절대로! 그 인간들이 너희를 평가한다고 생각하지 마. 반대로 오늘 수술 자리가 너희들의 솜씨를 그 인간들에게 자랑하는 자리라고 생각하렴.”
말을 마친 오스틴이 허공에 손을 내밀었다.
그 위로 준후와 레이먼드, 헥터의 손이 차례대로 포개졌다.
“Put the patient first!”
우렁찬 구호와 함께 스태프들의 손바닥이 천장으로 솟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