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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393화 (393/424)

393화

제76장 질주(3)

참관용 수술방은 모처럼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마련된 30여 개의 좌석이 빈 틈 없이 가득 차 있었다. 꼭 인기 많은 공연이 매진된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들은 다소 들뜬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었다.

수술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과연 수술은 성공할 것인가 등등.

참석자들은 당연하게도 전원 소아 신경외과 서전이었다.

미국의 10대 병원에 근무하는 서전들은 물론이요.

다른 병원에서도 참관을 왔다.

정수리가 맞닿은 샴쌍둥이의 수술은 희귀했다.

이런 수술을 참관하고 여기서 무언가를 배울 만한 기회는 좀처럼 자주 오는 것이 아니었다.

한편 메이유 클리닉의 병원장 크리스.

하얀 턱수염이 인상적인 그는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참관 온 서전들을 훑었다.

그러다가 곁에 앉은 소아 신경외과 제1교수 브루스에게 말을 걸었다.

“의사 인생 40년 동안 참관용 수술방이 꽉 찬 건 오늘 처음 보는 군.”

“보통 수술이 아니니까요. 의학적인 면에서도, 이슈적인 면에서도 말이죠.”

“이슈는 알 바가 아니네. 중요한 건 환자야.”

크리스의 눈빛이 진지했다.

“오스틴의 판단은 환자를 최우선으로 한 판단이 맞나?”

크리스의 생각에 오스틴의 판단.

그러니까 두 아이를 모두 살리겠다는 판단은 무모해 보였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가 한 마리 토끼도 잡지 못하는 불상사를 야기하는 판단 같았다.

누군들 아이를 둘 다 살리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말이다.

위험한 최선보다 안정적인 차선이 더 옳지 않을까.

크리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실제로 다른 병원 소아 신경외과 서전들은 아이를 둘 다 살리고 싶다는 보호자의 의견을 거절하기도 했고.

“환자에게 무엇이 최우선이냐. 그걸 해석하는 건 전적으로 서전의 몫 아니겠습니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크리스의 미간이 좁아졌다.

목소리는 퉁명스러웠다.

“오스틴 교수님에게 있어서 최우선은 최고의 결과를 뽑아내는 수술입니다.”

“환자가 위험해지는 건 아무렴 상관없고?”

“상관이 없는 게 아니라 좋은 수술에는 원래 위험이 뒤따르는 법이죠.”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똑바로 합시다. 위험이 뒤따르는 수술은 좋은 수술이 아니라 위험한 수술이죠.”

누군가가 대화에 껴들었다.

크리스의 왼쪽 편에 앉은 서전이었다.

역 삼각형처럼 날카롭고 뾰족한 얼굴. 가느다란 눈매의 소유자는 미칼이었다.

클리블랜드 클리닉 소속 서전으로 오스틴의 라이벌이었다.

미칼은 팔짱을 낀 채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미칼 교수는 이번 수술 어떻게 봅니까?”

“병원장님 앞이라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뭐하지만…….”

미칼이 손에 들고 있던 유인물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오늘 수술 과정을 간략하게 적어놓은 인쇄물이었다.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라이벌인 오스틴이 망하기를 바라서 악담을 하는 걸까.

아니면 다른 근거가 있는 걸까.

크리스는 미칼의 의도를 쉽사리 읽을 수 없었다.

반면 미칼은 그런 크리스의 속내를 읽었다는 듯 피식 웃었다.

“이번 수술의 핵심은 쌍둥이가 공유하고 있는 중대뇌동맥 혈관을 박리해서 서로에게 이식해 주는 문합술이죠.”

“그렇지. 그런데 그게 왜?”

“그거 올 여름에 직접 해봤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아셨습니까?”

불길함을 느낀 크리스는 차마 대답을 못했다.

“혈관 파열로 환자가 사망했습니다. 심지어 제 환자의 나이가 오늘 수술 받는 환자보다 많았는데도요.”

“…….”

“성공할 수 있는 수술이었으면 진작 제가 받았을 겁니다. 저 환자, 저희 병원을 가장 먼저 찾아왔거든요.”

새로운 정보에 크리스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다른 서전의 말이라면.

애써 넘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칼은 명실상부 오스틴의 라이벌이었다.

소아 신경외과 서전계의 양대 산맥이었다.

미칼이 비슷한 수술에 실패했다는 말은 도무지 흘려들을 수 없었다.

크리스가 힐끔 부르스의 얼굴을 살폈다.

부르스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방금 들은 이야기는 부르스도 금시초문이었던 듯 했다.

대화를 나누는 사이.

스태프들이 수술방으로 들어왔다.

참관용 수술방에 있던 사람들의 눈길이 죄다 스태프에게 쏠렸다.

수술 도구 세팅.

중심 정맥관 삽관.

환자 감시 장치 연결.

전신 마취 등의 절차는 다른 스태프들이 먼저 끝내놨으므로 수술은 바로 시작될 것이다.

수술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참관용 수술방의 공기가 무겁고 팽팽해졌다.

말소리는 차차 줄어들었고 목소리는 차차 작아졌다.

하나둘 자리를 잡는 스태프들을 보면서 크리스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위화감을 느꼈다.

틀린 그림 찾기를 하는 것 같다고 할까.

무언가가 잘못 됐는데 그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어서 답답했다.

그리고 이를 정확하게 포착한 사람은 미칼이었다.

“그러고 보니 브루스.”

미칼이 부르스를 응시하며 물었다.

“네. 교수님.”

“자네는 여기서 뭐 하는 건가?”

“참관 중이지요. 수술 진행 사항을 병원장님께 전해드릴 거고요.”

“그런 거라면 다른 사람한테 맡겨도 되잖아. 헥스가 퍼스트 어시스트고 자네가 세컨드 어시스트를 서는 게 맞지 않나?”

미칼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

크리스는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이 바로 크리스가 느낀 위화감의 정체였다.

수술방에 있어야 할 부르스가 왜 참관용 수술방에 있는가.

메이유 소아 신경외과의 정점이 오스틴이라면.

원투 펀치는 각각 헥터와 부르스였다.

“맙소사. 대체 무슨 짓을…….”

미칼이 참관용 모니터를 확인하고 급기야 혀를 찼다.

퍼스트 어시스트라고 철썩 같이 믿었던 헥터가 세컨드 어시스트로 주저앉았다.

퍼스트 어시스트 자리.

그러니까 집도의의 맞은편 자리를 처음 보는 애송이가 차지하고 있었다.

“저 친구는 누구지?”

“준후라고. 부스트 업 프로그램 교육생입니다.”

“교육생? 쌍둥이 분리 수술에 교육생을 세운다고? 그것도 퍼스트 자리에?”

미칼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크리스의 표정도 덩달아 넋이 나갔다.

수술 성공에 대한 기대감이 빠져 나간 자리를 깊은 불안이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 * *

‘누가 내 욕을 하나?’

준후는 참관용 수술방을 올려다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까부터 귓불이 간질간질했다.

아마 저기에 앉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준후의 실력을 의심하고 있을 것이다.

쟤가 뭔데 이렇게 중요한 수술에 퍼스트를 맡느냐고.

그들을 탓할 건 아니었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스태프 구성인 것 맞았으니까.

그들의 의심에 준후는 실력으로 대답할 계획이었다.

스태프들과 3D 프린팅으로 재현한 모형으로 수술연습을 해왔고.

시신경을 점혈한 뒤 머릿속으로 실전과 똑같은 연습을 토 나올 정도로 반복해 왔다.

말하자면.

수술방과 참관용 수술방을 통틀어서 이번 수술의 경험이 가장 많은 사람은 준후였다.

그래서 누구보다 자신감이 넘쳤다.

준후의 시선이 스태프들을 하나하나 훑었다.

오스틴은 담담하게 환자 감시 장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헥터는 드레싱 카트에 세팅된 수술도구를 정돈하고 있었다.

레이먼드는 수술대에 누운 아이를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딱히 누구 하나 긴장한 기색이 없었다.

이는 연습이 충분했다는 뜻도.

자리에 모인 스태프들이 강심장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준후의 시선이 이윽고 엠마와 소피아에게 향했다.

아이들은 수술대에 세로로 누워 있었다. 머리카락 없는 두피가 맨들맨들 윤이 났다.

‘너희 둘 중 한 명도 잃지 않을게. 너희들이 서로를 마주볼 수 있게 해줄게. 약속한다!’

속으로 각오를 다지는 준후.

“지금부터 정수리가 맞닿은 샴쌍둥이의 분리 수술을 시작하겠습니다.”

오스틴의 외침에 스태프들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선봉장은 레이먼드였다.

레이먼드는 환자의 머리를 소독하고 그 위에 파란 방포를 덮었다.

지난 열흘 간 지옥 훈련을 한 덕분일까.

스태프들은 말없이 눈빛만으로도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다.

“10번.”

준후의 오더에 레이먼드가 스칼펠(칼대)과 블레이드를 건넸다.

딸칵!

칼대에 칼날이 들어맞는 소리가 경쾌했다.

스으으윽.

손에 쥔 메스로 준후는 쌍둥이의 머리 중심부를 세로로 갈랐다.

수술 부위가 넓었던 만큼 절개창의 길이도 길었다. 그 길이가 무려 7센티미터에 달했다.

절개창을 내는 동안.

준후의 손은 떨림이 없었다.

떨림이 없었으므로 절개창이 옆으로 삐뚤어지거나 곡선으로 휘어지는 일도 없었다.

절개창은 일직선 그 자체였다.

두피 절개를 끝내고 준후가 메스를 들어올렸다. 반듯하게 잘려나간 두피에서 꾸물꾸물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레이먼드가 거즈로 피를 닦아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메스 쓰는 솜씨 하나만큼은 나도 못 따라가겠구나.”

오스틴이 준후의 절개창을 내려다보며 감탄했다.

절개창을 낸 부위는 평면이 아니었다. 머리가 봉긋하게 솟았다가 꺼지는 구간이 있었다.

꽤 난 코스인데도 준후는 깔끔하게 절개에 성공했다.

“과찬이십니다. 교수님에 비하면 아직 갈 길이 멀었죠.”

“알긴 아는구나.”

오스틴의 농담에 스태프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준후는 스테블라이저(고정형 견인기)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절개창에 스테블라이저를 설치한 뒤 절개창을 좌우로 넓게 벌렸다.

절개창이 벌어지면서 수술 시야가 들판처럼 탁 트였다.

하나로 맞닿아 있는 아이들의 두개골이 눈에 보였다.

지금부터는 집도의 오스틴이 활약할 차례였다.

“다이아몬드 드릴.”

오스틴의 지시에 헥터는 놀랍게도 다이아몬드 드릴 2개를 건넸다.

오스틴이 각각 양손에 다이아몬드 드릴을 쥐었다.

딸칵!

위이이잉.

드릴이 맹렬하게 회전하면 요란한 소리를 내뿜었다.

오스틴의 왼손이 왼쪽으로 반원을 그렸고 오스틴의 오른손이 오른쪽으로 반원을 드렸다.

양손이 제각각 원을 그리며 절개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역시 대단하단 말이지.’

오스틴의 현란한 손놀림에 준후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무공을 익힌 준후와 비교해 봐도 오스틴의 양손 기술은 절대 준후에게 밀리지 않았다.

실력과 기술이 장인 수준에 도달하면 그 자체가 일종의 무공이 되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드릴이 두개골을 갈 때마다 슬러시 입자 같은 두개골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에 세컨드 어시스트 헥터가 과열을 막기 위해 중간 중간 생리식염수를 칙칙 뿌려주었다.

작업 자체는 단순했지만 타이밍이 예술이었다.

30분쯤 지났을까.

오스틴이 원형으로 된 두개골을 수술 도구로 들어 올렸다.

레이먼드가 들린 두개골을 손으로 집어 따로 보관해두었다. 곡반에 담긴 두개골이 꼭 작은 맨홀 뚜껑 같았다.

“수술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경막, 지주막, 연막을 차례대로 떼어내면서 대뇌피질까지 접근한다.”

“…….”

“뇌압과 바이탈 체크 철저하게 하고 한순간의 방심도 용납하지 않겠다. 알았나?”

“네. 교수님.”

스태프들이 동시에 씩씩하게 대답했다.

준후는 미세 현미경에 눈을 가까이 대고 하얀 우유막 같은 경막을 살폈다.

엠마와 소피아는 뇌혈관은 물론이요 뇌막까지 공유하고 있었다.

뇌막부터 분리하는 것이 이번 수술의 첫 번째 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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