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공 쓰는 외과 의사-394화 (394/424)

394화

제76장 질주(4)

쌍둥이는 서로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었다.

두개골, 뇌막, 뇌혈관 등등.

공유하는 것들을 일일이 분리시켜주고 그것들이 각각 제 기능을 하도록 만들어주는 일이 이번 수술의 가장 큰 목표였다.

두개골을 절개하고 또 분리하는 작업까지는 그나마 순탄하게 진행되었다.

비록 모형이었지만 스태프들은 실전처럼 수십 차례 연습에 매진했다.

그것도 평소 일정을 소화하면서.

그 가혹한 시간을 견뎌낸 덕분에 지금까지는 수술이 매끄러웠다.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무수히 많은 미세혈관이 뇌막 표면에 분포되었다.

어설프게 분리를 잘못했다가는 걷잡을 수 없는 출혈이 터질 수 있었다.

‘이런 긴장감은 오랜만이군.’

오스틴이 피식 웃었다.

학계뿐만 아니라 매스컴까지 주목하는 수술을 하는 경우는 오스틴이라도 많지 않았다.

특히 이번 쌍둥이 분리 수술이 그랬다.

이번 수술은 오스틴의 커리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성공하면 영웅이 될 것이고.

실패하면 역적이 될 것이다.

오스틴은 그저 순수하게 쌍둥이를 둘 다 살리고 싶은 마음뿐이었지만.

세상은 결과만 놓고 그를 판단하게 될 것이다.

“셈킨 포셉.”

“네. 교수님.”

헥터가 2개의 포셉을 건넸다.

포셉의 끝에 날이 없었다.

수술등 불빛을 받은 포셉이 은빛으로 반짝거렸다.

“괜찮으십니까?”

헥터가 오스틴에게 물었다.

“뭐가?”

“평소와 달리 살짝 긴장하신 것 같습니다. 손이 희미하게 떨립니다.”

“자네 마음이 떨리는 건 아니고?”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뇌막을 보니까 모형이 아니라 실전이라는 실감이 확 들어서서 말입니다.”

“자네는 어떨지 몰라도 난 연습도 실전처럼 했어.”

오스틴은 가만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예 긴장을 안 했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손을 떨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스틴이 심호흡을 했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깊게 숨을 내쉬었다.

심호흡은 민간요법이 아니라.

정말 마음을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었다.

교감 신경과 부교감 신경에 평형을 맞추는데 도움을 주었다.

오스틴이 미세 현미경에 눈을 가까이 했다.

우유막 같은 하얀 경막.

서로 맞붙은 쌍둥이의 경막을 양 손에 쥔 포셉으로 벗겨내기 시작했다.

두개골 절개를 했을 때는 거칠었던 손놀림이 지금은 얌전하고 섬세해졌다.

마치 오스틴의 손에서만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고 있다는 착각이 들 만큼 손놀림이 느려졌다.

경막이 100이라고 하면.

오스틴은 엠마와 소피아에게 각각 50퍼센트의 경막을 나눠주기 위해 애를 썼다.

경막을 분리하는 동안.

모세혈관의 출혈을 막기 위해 혈관을 최대한 피해서 분리하기도 했다.

경막 박리는 오로지 오스틴의 몫.

다른 스태프들은 오스틴을 지켜보기만 했다.

이런 정교한 작업은 옆에서 거들어주는 게 더 성가셨다.

수술 시야를 방해할 수도 있고, 해당 기관에 뜻하지 않은 자극이 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역시 모형에는 한계가 있었던 건가?’

오스틴의 미간이 좁아졌다.

눈은 실눈이 되었으며 입술은 저절로 오므라졌다.

당혹감이 파도처럼 전신을 덮쳐왔다.

연습 때는 고작 30분 만에 깔끔하게 경막을 박리해냈다.

그런데 웬걸?

실전에서는 속도가 더뎌도 너무 더뎠다.

토끼에서 거북이가 된 기분이었다.

똑같이 30분을 사용했는 데도 진행 속도는 연습 때의 5분의 1도 못 미쳤다.

물론 연습과 실전이 똑같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심했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자 목 뒷덜미가 서늘해졌다.

전신이 식은땀으로 천천히 젖어 들어갔다.

“하…….”

오스틴은 기어이 한숨을 토해내며 허리를 폈다.

“경막 유착이 생각보다 심각한 것 같습니다. CT로 봤을 때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

기다렸다는 듯 헥터가 한마디 했다.

“그런 것 같군. 쌍둥이의 머리가 성장하면서 뇌막도 더 가깝게 달라붙게 된 거겠지.”

“…….”

“솔직히 징그러워 죽겠어. 딱 풀로 붙여놓은 종이 2장을 안 찢고 떼어내는 꼴이라니까.”

오스틴이 평소답지 않게 앓는 소리를 했다.

그만큼 작업은 고되고 어려웠다.

“이대로 괜찮을까요?”

오스틴을 바라보는 헥터의 눈동자에 불안이 한가득이었다.

“지금 속도라면 경막 박리에 최소 2시간은 더 걸릴지도 모릅니다.”

“오래 걸린다고 해야 할 일은 안 할 수는 없지.”

“이따가 동맥 문합할 때 쓸 체력은 아껴두셔야죠. 나머지 작업은 제가 해보겠습니다.”

“체력이라면 내가 자네보다 좋지. 수술 끝나고 운동도 가는데.”

잡담으로 분위기를 전환하고.

오스틴은 다시 포셉을 양손에 쥐었다.

그의 사전에 포기란 없었다.

* * *

“야. 이거 진짜 맞는 거냐?”

레이먼드가 준후에게 바짝 붙어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귓속말을 전했다.

“벌써 2시간 째 경막 박리만 하고 있잖아. 근데 이제 겨우 절반밖에 못했다고.”

“…….”

“지주막하고 연막까지 분리하면 날 새겠다.”

레이먼드의 목소리에 불만이 섞여 있었다.

준후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준후가 보기에도 오스틴의 경막 박리는 문제가 많았다.

오스틴은 괜찮다고 했지만 체력적인 부담이 분명 켜켜이 쌓여가고 있을 것이다.

수술 시간이 뒤로 밀리는 것 자체도 크나큰 부담이었다.

당연하게도 수술 시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환자의 경과도 좋아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준후라고 해서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었다.

머릿속으로 수많은 가상훈련을 돌렸지만 지금 같은 상황은 떠올려 본 적이 없었다.

뇌막을 분리하지 않고 바로 뇌혈관으로 진입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생각을 해. 생각을.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면 있는 방법도 없는 거고.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면 없는 방법도 생기는 거야.

딱히 거들고 있는 일이 없었기에.

준후는 현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일에만 열중했다.

일단 보는 눈이 많아서 무공과 내공은 사용할 수 없었다.

순수하게 외과적인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렇다고 무림에서 얻은 사고방식까지 버릴 필요는 없었으므로, 준후는 이번 수술을 비무와 대련의 관점에서 해석하기로 했다.

‘상대를 빠르게 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수술 시간을 단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로 바꿔 보았다.

그리고 무림에서의 경험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았다.

사고방식을 바꾸자 정답은 의외로 금방 튀어나왔다.

정답은 이랬다.

살을 주로 뼈를 친다.

‘살을 주로 뼈를 친다’라는 관점에서 보면.

오스틴이 지금 하고 있는 실수와 오판에도 그럴듯한 해답이 나왔다.

오스틴은 너무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수술을 하나부터 열까지 완벽하게 하려는 집착에 빠져 있었다.

쉽게 말하면.

상대에게 한 대도 안 맞고 상대를 꺾으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이다.

“레이먼드.”

이번에는 준후가 레이먼드에게 바짝 붙어 귓속말을 했다.

“왜?”

“내가 생각한 게 있는데 넌 어떻게 생각하냐?”

“무슨 생각?”

준후의 말이 솔깃했는지 레이먼드의 눈썹이 올라가고 동공이 커졌다.

준후는 최대한 간략하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그럴듯하네. 이대로 시간을 질질 끌 바에는 네가 말한 방식이 백번 낫지.”

하지만 레이먼드는 준후의 편을 들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그걸 교수님이 받아들이겠어? 헛소리하지 말라고 할 것 같은데?”

“그건 상관없어. 어쨌든 아이디어는 통과라는 거지?”

“물론. 대찬성이다.”

레이먼드의 지지에 준후는 큰 힘을 얻었다.

비록 자신의 방식이 의학적인 근거가 있다고 해도 상식을 한참 벗어났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떻게 기회를 잡느냐인데…….

준후는 절반을 조금 넘게 박리된 쌍둥이의 경막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어 오스틴을 응시했다.

내색은 안 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오스틴은 많이 지쳐 보였다.

한숨을 많이 쉬다 보니 마스크가 자주 펄럭거렸다.

손놀림도 점점 둔해지고 있었다.

눈빛에 서렸던 총명함도 서서히 꺼지고 있었다.

최고의 서전이라고 해서 항상 완벽한 것은 아니구나.

자신만의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고 있구나.

내게도 분명 오스틴과 비슷한 약점이 있겠지?

준후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교수님. 나머지는 처치는 제가 진행하고 싶습니다.”

오스틴이 미세 현미경에서 눈을 떼고 한숨을 돌릴 때, 준후가 번개처럼 껴들었다.

“으음…… 그게 좋겠구나. 나도 잠깐 쉬어야겠어.”

경막 박리에 지친 오스틴은 의외로 쉽게 준후에게 기회를 주었다.

손에서 포셉을 놓았다.

헥터가 거즈로 오스틴의 얼굴에 맺힌 땀을 닦아주고 있었다.

“그런데 무슨 꿍꿍이라도 꾸미고 있는 게냐?”

오스틴이 실눈으로 준후를 응시했다.

“꿍꿍이라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준후가 태연한 목소리로 오리발을 내밀었다.

“아까 보니까 레이먼드와 귓속말을 주고받던데?”

“그냥 의견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경막을 박리하고 있는 와중에도 자신과 레이먼드의 밀담을 알아채다니…….

역시 명의는 수술 시야가 넓었다.

“무슨 의견?”

“저도 명색이 퍼스트 어시스트인데 경막 박리를 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레이먼드는 그런 저를 말렸고요. 안 그래, 레이먼드?”

준후가 레이먼드를 쳐다보며 슬쩍 윙크를 날렸다.

눈치 빠른 레이먼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굳이 경막 박리를 다른 사람이 한다면 준후가 아니라 헥터 교수님이 하는 편이 더 나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레이먼드의 대답은 자연스러웠다.

비록 그동안은 원수처럼 지냈지만 오늘만큼은 막역지우처럼 쿵짝이 잘 맞았다.

“그래? 일단 준후에게 맡기고 준후가 신통치 않으면 헥터로 교대하자꾸나.”

“네. 교수님.”

준후가 시원하게 대답하고 레이먼드를 향해 양손을 뻗었다.

레이먼드가 오스틴과 헥터의 눈치를 보다가 준후에게 재빨리 테일러 포셉을 내밀었다.

오스틴이 쓴 것은 섬세한 처치에 필요한 셈킨 포셉이었는데.

테일러 포셉은 셈킨 포셉보다 크고 우악스러웠으며 끝에 날카로운 이도 달려 있었다.

준후가 하려는 처치에 최적화된 포셉이었다.

극히 찰나의 순간.

두 사람은 공범의 눈빛, 아니, 반역의 눈빛을 주고받았다.

준후는 미세 현미경에 눈을 가까이 하고 경막을 응시했다.

오스틴이 공을 들인 만큼 지금까지 박리된 경막은 예술처럼 아름다웠다.

엠마와 소피아에게 분배된 경막은 정확히 5 대 5의 비율을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수술은 예술이 아니었다.

때로는 무림에서의 전투처럼 살을 내주고 뼈를 쳐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에서.

준후는 무엇을 내주고 무엇을 얻어야 하는지를 냉정하고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중요한 건 수술 시간을 단축하는 것이었다.

경막을 멋지게 박리해서 얻는 이득.

수술을 빨리해서 얻는 이득.

계산해 보면 후자의 이득이 몇 배는 더 컸다.

“준후, 너 손에 들고 있는 포셉이 이상하다?”

한숨을 돌리던 오스틴이 준후의 손에 들린 포셉을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준후는 이미 테일러 포셉으로 경막을 잡고 있는 상태였다.

오스틴과 달리.

거칠고 사납게 경막을 옆으로 찢어 버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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