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5화
제76장 질주(5)
“준후!”
오스틴의 일갈이 우렁차게 터져 나왔다.
그 곁에 서 있던 헥터는 너무 놀라서 몸을 들썩거리고 말았다.
수술방에서 오스틴이 이렇게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는 건 이전에는 없었던 일이었다.
헥터의 시선이 오스틴을 향했다.
마스크를 써서 표정을 완벽하게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화상을 입을 것처럼 뜨거운 눈빛.
덜덜덜 떨리는 얼굴은 말하고 있었다.
오스틴의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는 사실을.
헥터는 준후도 쳐다보았다.
오스틴이 불이었다면 준후는 얼음이었다.
경막을 투박하게 찢어 놓고도, 그간 오스틴이 해온 처치를 싸그리 부정했음에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또 사과를 하지 않았다.
변명이나 핑계를 덧붙이지도 않았다.
오스틴과 준후가 만들어내는 긴장감이 당장에라도 끊어질 것 같은 고무줄로 팽팽했다.
‘이 녀석, 100퍼센트 고의로 그랬구나.’
헥터는 뒤늦게 깨달았다.
준후의 당돌한 행동에 혀를 내둘렀다.
그럼 준후는 왜 그랬을까.
오스틴의 바통을 이어받았으면 정성껏 경막을 박리했어야 하는데 왜 성의 없이 경막을 찢어버렸을까.
‘아마도 수술 시간 단축하기 위해서겠지.’
교수 짬밥이 있었던 만큼.
헥터는 준후의 의도를 어렵지 않게 짚어냈다.
솔직히 헥터도 오스틴을 지켜보는 내내 답답했다.
가슴에 돌이 얹힌 듯했다.
환자에게 최선의 처치를 해주고 싶은 욕심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경막 박리는 이번 수술의 노른자가 아니었다.
몇 시간씩이나 투자할 가치는 없어 보였다.
“너 감히 네 허락도 없이 멋대로 처치를 해?”
“허락을 구했으면 허락하지 않으셨을 거지 않습니까?”
오스틴의 질문을 준후가 거세게 받아쳤다.
“당연히 허락 안 하지. 처치를 대충하는데 그걸 허락할 집도의가 있겠나?”
“뇌막 박리하는 데만 한 세월이 걸리겠습니다. 저희 스태프들도, 환자도 지쳐 간다고요.”
“힘들어도 버텨야지.”
오스틴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러니까 준후가 돌발 행동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섬세한 뇌막 박리를 계속 고집했을 거라는 뜻이었다.
학과장 VS 교육생.
이 말도 안 되는 말다툼의 결말은 과연 어떻게 될까.
헥터는 궁금해 미칠 것 같았다.
참고로 헥터는 준후 편이었다. 적어도 뇌막의 박리 방식에 관해서는 준후의 편이었다.
오스틴을 존경한다고 해서 항상 오스틴이 옳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힘내라, 준후.
계속 밀고 나가라고!
대화가 잠시 끊어진 사이.
무거운 침묵이 수술방을 감쌌다. 환자 감시 장치만 눈치 없이 삐삐삐 울어댔다.
헥터는 슬쩍 참관용 수술방을 올려다보았다.
앞줄에 앉은 사람들의 표정이 언뜻 보였다.
다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당황한 얼굴이었다.
한낱 교육생이 오스틴에게 반기를 들 거라고 누군들 상상을 했겠는가.
“교수님 이번 수술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준후가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아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머리 구조물을 분리시켜 주는 거지.”
“구조물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당연히 뇌혈관이다.”
“그렇다면 뇌혈관을 박리하고 봉합하는 일에 전력을 다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헥터가 하고 싶었던 말을 준후가 속 시원하게 다하고 있었다.
“경막 박리가 너무 많은 시간을 잡아먹었습니다. 자그마치 2시간이라고요.”
준후의 목소리와 논리가 크레센도(점점 세게)를 띠었다.
“뇌막은 적당히 박리하고 뇌막 복원술을 잘해주면 되는 문제 아닙니까?”
“인공 뇌막을 쓰자는 소리냐? 네가 그 정도 생각도 못했을 것 같아?”
오스틴이 으르렁거리며 반박에 나섰다.
“인공 뇌막은 자연 뇌막을 따라가지 못해. 수술 후 경과 회복 속도가 차원이 다르단 말이다!”
“자연 뇌막을 이용하는 이득. 수술 시간과 스태프의 체력을 최소화해서 얻는 이득. 둘 중 어느 이득이 큽니까?”
“이분법으로 나누지 말거라.”
오스틴의 고개가 좌우로 움직였다.
“서전은 환자를 위해 최선의 방법을 택하고 거기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야.”
“저는 이분법이 아니라 오분법을 사용합니다. 최선, 차선, 평범, 차악, 최악.”
“…….”
“교수님의 판단은 분명 최선이지만 상황에 맞지 않는 최악입니다. 제 판단은 최악이지만 상황에 맞는 최선입니다.”
“…….”
“때로는 최선이 최악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아주십시오.”
준후가 말을 마쳤다.
준후의 말에 느끼는 바가 있었을까.
오스틴은 곧바로 반박을 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채 환자의 머리를 내려다보았다.
경막의 절반 이상은 예술과 같이 분리가 되어 있었고.
그 나머지는 종이쪼가리처럼 거칠게 분리가 되어 있었다.
과연 오스틴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헥터는 문득 오스틴의 머릿속에 들어 가보고 싶었다.
준후가 맹랑하게 반란을 일으켰지만 반란이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중세의 왕은 반역으로 몰아낼 수 있다고 해도 수술방의 집도의는 그렇게 녹록하게 물러나지 않았다.
최종 결정권자는 여전히 오스틴이었다.
“준후.”
“네. 교수님.”
“네 행동이 괘심하기는 하지만 의도 자체는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오스틴이 느릿느릿 말을 이었다.
“그럼 이렇게 해보지.”
“어떻게 말씀이십니까?”
“경막 박리 방식을 두고 우리 넷이서 투표를 하는 거다. 의견이 많은 쪽을 따르는 걸로 하면 불만 없겠지?”
“좋습니다.”
“준후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가볍게 손을 들도록.”
준후가 가장 먼저 손을 들고 레이먼드도 뒤따라서 손을 들었다.
이는 헥터도 이미 예상한 바였다.
레이먼드가 준후에게 동의하지 않았다면 죽어도 수술도구를 건네지 않고 버텼을 테니까.
준후는 앙숙을 설득할 정도로.
언변이 좋았다.
오스틴은 반대 입장이니 당연히 손을 들 이유가 없고.
그렇다면 남은 사람은 헥터뿐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헥터를 향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오스틴의 시선이 뜨거웠다.
처치만 놓고 보면 준후에게 마음이 쏠리는데.
오스틴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오스틴을 배신하는 것 같아서 속이 편하지 않았다.
헥터가 한참 손을 들지 않자 오스틴의 눈이 초승달 모양을 그리며 웃었다.
“결론은 2 대 2로군. 우리는 각각 학과장과 교수니까 너희 둘 의견보다 가산점이 있다고 봐야지.”
“…….”
“따라서…….”
“잠시만요. 교수님.”
헥터가 오스틴의 말을 잘라 먹었다.
“3 대 1입니다.”
“3 대 1?”
오스틴이 어느새 올라간 헥터의 손을 발견하고 눈썹을 치켜들었다.
오스틴의 눈은 꼭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헥터…… 너마저…….
오스틴을 실망시키는 건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준후의 판단에 마음이 끌리는 건 더 어쩔 수가 없었기에.
* * *
부우우욱. 부우우욱.
소리가 나지는 않았지만 마치 이런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집도가 재개되었고 오스틴은 이전과 달리 투박한 방식으로 뇌막을 박리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한 고생이 무색하게.
경막, 지주막, 연막이 쭉쭉 찢어졌다.
찢어진 뇌막층은 너덜너덜했으며 이전과 달리 미세 혈관 출혈도 발생했다.
썩션기로 피를 빨아들이고.
거즈로 출혈 부위를 지혈하는 추가적인 처치가 들어갔다.
하지만 수술 속도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고작 1시간 만에.
스태프들은 아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뇌막을 전부 떼어내는 데 성공했다.
기존 오스틴의 방법을 썼으면.
과장이 아니라 정말 반나절은 걸렸을 처치였다.
뇌막이 걷히면서 호두처럼 쭈글쭈글하고 주름진 뇌가 빼꼼 모습을 드러냈다.
준후는 미세현미경에 눈을 가까이했다.
엠마와 소피아가 공유하고 있는 중대뇌동맥이 반원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저 뇌혈관을 분리해서 각자의 혈관에 끌어다가 문합(끝과 끝을 묶어주는 봉합)해 주는 것이 오늘 수술의 하이라이트였다.
문합의 성패가 곧 수술의 성패나 다름없었다.
뇌동맥을 자세히 관찰하니 뇌동맥이 희미하게 펄떡거리고 있었다.
마치 뭍에 올라온 생선처럼.
정맥에 비해 동맥은 탄력이 너무 좋아서 오히려 문합이 어려웠다.
문합할 때 힘을 더 주다보니 혈관이 파열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교수님. 죄송합니다.”
준후는 미세 현미경에서 눈을 떼고 오스틴을 바라보았다.
뒤늦게 사과를 건넸다.
오스틴은 준후의 반역 이후 아무 말이 없었다.
오더를 내리지 않고 본인이 할 일만 딱딱 해냈다.
활발한 사람이 과묵해졌다는 건 그만큼 충격이나 상처가 컸다는 뜻이었다.
“죄송이라…….”
오스틴이 아련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굳이 따지면 죄송한 건 내 쪽이다.”
“어째서 교수님이……. 멋대로 굴었던 건 저였습니다.”
“따지고 보면 나도 멋대로 굴었어. 너희들의 의견도 물어보지 않고 내 스타일을 밀어붙였으니까.”
“…….”
“준후 네 말을 듣고 많이 생각을 많이 해봤다. 그래. 다 내 욕심이었지. 나는 완벽이라는 아집에 갇혀 있었던 거야.”
오스틴이 스태프들과 일일이 눈을 마주치며 말을 이었다.
자신의 실수를 억지로 인정하는 태도가 아니라 진심으로 뉘우치는 태도였다.
“내가 생각한 완벽이 환자에게는 완벽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구나. 너희들, 내게 좋은 깨달음을 줘서 고맙구나.”
“…….”
“참고로 내가 지금까지 말이 없었던 건 꽁해 있어서가 아니란다. 반성의 시간이 필요해서였던 거야. 그건 꼭 알아두고.”
오스틴의 통렬한 자아 성찰에 준후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준후가 허락도 받지 않고 처치를 했는 데도.
아래 스태프들이 본인의 처치를 반대했는 데도.
오스틴은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과연 자신이 오스틴이어도 그랬을 수 있을까.
준후는 장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오스틴이 더 존경스럽고 멋있어 보였다.
자신이 틀렸을 수도 있다고 가정하는 자세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깨달음을 얻은 건 오히려 준후였다.
그래서 결심했다.
언젠가 자신이 뇌종양, 뇌혈관, 소아, 정위 신경, 척추, 수부외과(접합 전문)에 통달하는 헥사 신경외과 서전이 되더라도.
스태프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하는 자세를 잊지 않겠다고.
따지고 보면 무림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스스로를 정의라고 포장하는 이들이 사파고.
스스로가 정의인지 아닌지를 고민하는 이들이 정파였다.
“레이먼드.”
“네. 교수님.”
“환자 상태는?”
“체온 36.7도. 혈압 120mmHg에 80mmHg. 맥박은 분당 100. 산소 포화도 이상 없고 뇌압은 20mmHg입니다. 심전도와 뇌전도는 정상입니다.”
“뇌압만 살짝 높구나. 만니톨 추가하고 아이들 머리만 살짝 높여주렴.”
“네. 교수님.”
오스틴이 오더를 내렸고 레이먼드가 이를 따랐다.
처치가 끝나자 수술방이 태풍의 눈처럼 고요해졌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환자의 목숨이 달린 처치는 지금부터라는 걸.
스태프들의 눈빛이 어느새 비장해졌다.
“다들 준비는 됐니?”
“준비됐습니다.”
“준비됐습니다.”
“준비됐습니다.”
“준후, 넌 연습 때처럼은 말고 기왕이면 연습 때보다 조금 더 잘했으면 좋겠구나.”
“네. 맡겨주세요.”
준후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한가득이었다.
이 순간을 위해 준후는 잔뜩 칼을 갈아왔다.
잠도 안 자고 머릿속으로 상상 훈련을 해왔다.
유감없이 실력 발휘 할 자리가 만들어져서 준후는 차라리 기뻤다.
“10번.”
헥터에게 메스를 건네받은 오스틴이 메스로, 쌍둥이가 공유하고 있는 중대뇌동맥을 툭 끊었다.
피바다가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