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공 쓰는 외과 의사-398화 (398/424)

398화

제77장 남아 있는 것(3)

“허…….”

미칼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 나왔다.

모니터에 고정된 눈동자는 영혼이 빠져나간 듯했다.

정수리가 붙어 있었던 쌍둥이의 머리가 떨어지고 있었다.

둘 다 죽거나.

둘 중에 한 명은 죽을 확률이 높았으므로.

다시는 서로 마주 볼 수 없을 것처럼 생각했던 쌍둥이의 머리가 떨어지고 있었다.

“와! 해냈어요! 수술에 성공했습니다.”

“역시 오스틴 교수님은 뭐가 달라도 다른 것 같습니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았어요.”

“이런 대수술이 가능한 거였군요…… 오늘 또 배우고 갑니다.”

참관 중이던 소아 신경외과 서전들이 너도 나도 한마디씩 했다.

다들 오스틴을 영웅으로 떠받들었다.

급기야 누군가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그 박수는 유행처럼 방에 번져 나갔다.

짝. 짝. 짝. 짝.

참관용 수술방은 어느새 공연장처럼 떠들썩한 분위기를 풍겼다.

샴페인이 있었다면.

샴페인을 터뜨리면서 서로 축하주를 나눌 기세였다.

모두가 들뜬 가운데.

오스틴의 라이벌인 미칼 혼자서만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입꼬리가 경직되어서 그는 웃을 수가 없었다.

박수도 치는 시늉만 했다.

‘이렇게 또 격차가 벌어지는 건가…… 저놈은 또 달아나는 건가?’

미칼은 모니터 속 오스틴을 노려보았다.

정수리가 붙은 샴쌍둥이를 오스틴은 과연 어떻게 수술할까.

다른 서전들이 그런 호기심에 참관을 왔다면.

미칼의 의도는 정반대였다.

오스틴이 어떻게 망할지가 궁금해서 참관하러 왔다.

머저리 같은 다른 서전들은 몰랐다.

수술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저 오스틴이 현 시점 넘버원 서전이니까 어떻게든 수술에 성공할 거라고 낙관했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미칼은 알았다.

이번 수술의 성공률이 10퍼센트도 안 된다는 것을.

그런데 오스틴과 스태프들은 그 10퍼센트의 확률을 뚫어내는 데 성공했다.

미칼은 갑자기 배가 아팠다.

음식을 잘못 먹은 것도 아니었고 배가 고픈 것도 아니었다.

분명 오스틴을 시기하는 감정에서 찾아온 복통이리라.

“보호자나 다른 서전들이 괜히 오스틴 교수님, 오스틴 교수님 하는 게 아니네요.”

곁에 앉은 지미가 감탄하는 말투로 말했다.

지미는 미칼과 같은 클리블랜드 클리닉 소속으로 미칼의 제자 중 한 명이었다.

그런 녀석이 까맣게 타는 미칼의 속도 모르고 오스틴을 칭찬 중이었다.

“자네도 수술 보는 눈이 한참 멀었군.”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번 수술에 1등 공신이 정말 오스틴이라고 생각하나?”

“뇌막 절제 때를 제외하면 오스틴 교수의 집도는 완벽하지 않았습니까?”

지미가 뭐가 잘못 됐냐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중간 중간 구원자가 있었어. 녀석이 없었으면 이번 수술은 진작 망했다.”

“퍼스트 어시스트를 서고 있는 동양인 말씀인가요?”

“그래.”

고개를 끄덕이는 미칼.

그의 시선이 다시 참관용 모니터로 향했다.

오스틴이 아닌 준후에게 고정되었다.

쌍둥이의 머리가 분리 되었으므로 수술대를 공유할 필요가 없었다.

이제 쌍둥이들은 각자의 수술대를 사용했다.

한 아이를 오스틴이 맡았고.

다른 아이는 준후가 맡았다.

두 사람은 나란히 옆으로 놓인 수술대에서 각각 아이들의 뇌막을 복원해 주고 있었다.

바이탈과 산소 포화도.

심전도나 뇌전도 결과는 별 이상이 없어 보였다.

수술은 순항하면서 해피엔딩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저 녀석만 없었으면…….’

준후를 바라보는 미칼의 두 눈이 실처럼 가늘었다. 눈썹은 찌푸려졌으며 콧잔등에는 불쾌한 주름이 잡혔다.

이번 수술에는 총 2번의 위기가 있었다.

뇌막 절제술을 펼칠 때와 공유하고 있던 중대뇌동맥을 분리하고 봉합할 때.

그런데 그때마다 헥터가 아닌 준후가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특히 봉합 솜씨가 환상적이었다.

중간에 봉합이 풀어졌는데도 침착하게 오스틴을 따라 잡는 모습이 환상적이었다.

현란한 손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적어도 봉합 솜씨만 놓고 보면 준후가 오스틴보다 한 수 위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괴물 같은 녀석.

아직 교수도 아니면서 그만한 실력이라니…….

“그 동양인 친구는 봉합을 엉터리로 해서 다시 풀지 않았습니까?”

지미가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제가 봤을 때는 영 아닌 것 같던데요? 분명 나중에 두개골 성형술 할 때 오스틴 교수님이 그걸 풀고 다시 봉합하지 않겠습니까?”

“멍청하기는. 오스틴이 그런 번거로운 짓을 할 것 같아?”

미칼이 빈정거렸다.

“그럼 계속 저대로 간다는 뜻입니까?”

“물론이다. 애초에 봉합을 푼 것도 봉합이 잘못되어서가 아니야 봉합사가 불량이라서 그런 거지.”

“네? 봉합사 불량이요?”

지미가 금시초문이라는 눈빛으로 물었다.

주변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일부 서전들도 ‘봉합사 불량’이라는 말에 크게 놀랐다.

동요할 정도로 어깨를 들썩거렸다.

쯧쯧쯧.

저렇게 보는 눈이 없어서야, 원.

“오스틴의 실력은 익히 알고 있어서 나는 준후의 봉합만 지켜봤다.”

“그래서요?”

“봉합 도중 매듭이나 장력 전달, 혈액 누수 같은 문제는 없었어. 손에 문제가 없었다면 봉합사에 문제가 있었다는 뜻이지.”

“하지만 봉합사가 불량인 케이스는 극히 드물지 않습니까?”

지미가 곧장 반박했다.

“저조차 지금까지 그런 경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 준후라는 친구가 더 대단하다는 거다.”

미칼이 팔짱을 낀 채 준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현 시점에서 이만한 솜씨를 갖췄다면.

앞으로 1년, 2년, 3년, 아니, 부스트 업 프로그램이 끝나는 7년째가 되면 준후는 얼마나 더 성장할까.

그때의 준후의 실력을 미칼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어쩌면 진짜 라이벌은 오스틴이 아니라 준후가 될 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미.”

“……아. 네 교수님.”

지미의 대답이 한 박자 늦었다.

준후의 활약상을 뒤늦게 깨닫고 넋이 나갔던 모양이었다.

“세계에 수배해서 머리가 붙은 샴쌍둥이 환자를 찾아봐라.”

“그 말씀은…….”

“우리도 질 수 없지. 곧바로 반격한다.”

* * *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스태프들이 서로를 격려하기 시작했다.

20시간의 대장정 끝에 샴쌍둥이 분리 수술의 막이 내렸다.

준후는 흐뭇한 표정으로 소피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엠마와 분리되면서 소피아의 정수리 쪽 머리 부분이 움푹 패어 있었다.

하지만 문제될 것은 없었다.

나중에 두개골 성형술을 하면서 머리 형태를 교정해 줄 테니까.

미국 대륙이 주목했던 아이들은 몇 년 후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누구도 이 시절의 쌍둥이를 기억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심지어 쌍둥이 본인들조차.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아이들과 보호자, 준후가 바라던 삶이었다.

준후는 생리식염수로 적신 거즈를 소피아의 머리에 여려 겹으로 덮어주었다.

뇌막은 복원했지만 두개골은 아직 복원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혹시라도 아이들의 뇌압이 갑자기 상승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였다.

“준후, 소피아의 바이탈은?”

바로 옆 수술대에 있던 오스틴이 준후에게 물었다.

“문제없습니다. 다 정상입니다.”

“이쪽도 마찬가지야. 다들 고생했어.”

오스틴이 앞장서서 수술방을 나갔고 그 뒤를 스태프들이 뒤따랐다.

수술실로 나온 준후는 마스크와 수술모, 장갑, 가운 등을 허물 벗듯이 벗었다.

수술 소모품에 땀이 찐득하게 배어 있었다.

땀 냄새도 물씬 풍겼다.

험난하고 고됐던 사투의 증표들이었다.

“막판에 또 네 덕을 봤구나.”

오스틴이 웃으며 준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제 덕이라면……?”

“마사지 말이야, 마사지. 덕분에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저도 동감입니다.”

“저도요.”

헥터와 레이먼드도 오스틴에게 동조했다.

준후는 멋쩍게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사소하면서도 중요한 이번 수술의 고비.

그것은 스태프들의 체력이었다.

샴쌍둥이 수술 같은 고난이도 수술은 보통 2-3개의 팀으로 운용된다.

수술 시간이 워낙 길다보니 스태프들의 집중력이나 체력 저하를 막기 위해 팀을 로테이션으로 돌리는 것이다.

사실 거의 모든 고난도 수술이 이런 팀 수술과 로테이션 기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스틴은 예외였다.

그는 완벽주의자였다.

수술의 A부터 Z까지 관여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를 스태프들에게 똑같이 요구했다.

최정예 스태프가 집도를 도맡아야 수술에 일관성이 생긴다.

팀 간에 소통을 하다 보면 오해가 생길 수 있다 등의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체력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지만.

준후가 추궁과혈과 심장 내공술을 펼친 덕분에 스태프들은 체력과 집중력 저하를 겪지 않고 수술을 무사히 성공시킬 수 있었다.

잡담이 끝나고 스태프들이 일제히 수술실을 나왔다.

그 뒤를 두 대의 침상이 뒤따랐다. 병동 보호사가 침상을 끌고 있었다.

아이들은 당분간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를 받게 될 것이다.

“선생님. 저희 아이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대기실에 앉아 있던 보호자들이 벌떡 일어나 허겁지겁 이쪽으로 달려왔다.

보호자들의 얼굴은 스태프들보다 더 초췌했다. 양 볼이 움푹 패고 눈 밑에 까만 그늘이 졌다.

지난 20시간 동안 그들 역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준후도 그 마음을 잘 알았다.

고등학교 시절.

어머니가 뇌혈관 수술을 받았을 때 수술 대기실을 지켜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

어머니의 생존을 바라는 애타는 심정.

그때의 감정은 평생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두 아이 모두 건강합니다. 머리는 성공적으로 분리됐고, 몇 주간 중환자실에서 경과를 지켜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부부는 오스틴에게 고개를 몇 번 조아리다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준후는 차마 보호자들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그랬다간 자신도 눈물바다에 빠져버릴 것 같아서.

* * *

수술 시간이 20시간이었으므로.

오전에 시작했던 수술이 오전에 끝났다.

스태프들은 각자 씻고 잠깐 휴식을 취한 뒤 시내로 나왔다.

어려운 수술을 끝낸 기념으로 오스틴이 브런치를 사기로 한 것이다.

이동 수단은 오스틴의 자동차였다.

오스틴이 운전석에, 헥터가 보조석에, 준후와 레이먼드가 뒷좌석에 탔다.

수술이 성공한 덕분에 대화는 쾌활하고 생기가 넘쳤다. 발랄한 10대처럼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웃음꽃이 피었다.

식사는 맛있었다.

사실상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수술하는 동안 스태프 전원이 쫄쫄 굶었으니까.

길고 고된 수술을 한 만큼.

오늘은 스태프 전원에 휴식이 보장되어 있었다.

식사 후 클리닉으로 복귀한 준후는 레이먼드와 기숙사로 향했다.

“예전에는 내가 미안했다.”

그러던 도중에 레이먼드가 뜬금없이 사과를 했다.

준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뭐가?”

“네가 동양인이라고 깔봤던 거.”

“난 신경 안 썼는데?”

“정말?”

“토끼가 사자를 무시한다고 사자가 눈 하나 깜짝할 것 같아?”

“자식. 비유를 해도 그렇게 하냐.”

레이먼드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너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내가 너한테 심한 열등감이 있었다. 근데 너랑 지내보면서 생각이 좀 바뀌었어.”

“어떤 식으로?”

“세상에 넘을 수 없는 벽도 있구나. 그 벽을 부수려고 괜히 생고생을 할 필요가 없구나 하고.”

레이먼드가 준후를 진지하게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괜히 지어내는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진심인가?

“벽이라는 게 생각해 보면 울타리가 될 수도 있는 거잖아. 앞으로 너한테 많이 배우고 싶다.”

“…….”

“이런 말 한다고 네가 받은 모욕감과 상처가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진심으로 사과할게.”

준후를 향해 고개를 숙이는 레이먼드.

나름 동양의 예법도 공부를 해온 모양이었다.

악연으로 시작됐던 레이먼드와의 인연, 그 인연을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어가면 좋을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인간 세상의 이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였다.

“사과는 받아줄게. 근데 또 헛짓거리하면 그땐 부스트 업 프로그램을 떠나고 싶을 정도로 괴롭힐 거다.”

준후가 멈춰 서서 레이먼드에게 악수를 청했다.

레이먼드가 멋쩍게 웃으며 악수를 받았다.

그로부터 6년 2개월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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