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1화
제78장 귀국(1)
“교수님. 저 데빈입니다.”
침상에서 20미터 떨어진 장소에서 데빈이 에이튼에게 전화를 걸었다.
에이튼은 의외로 금방 전화를 받았다.
-용건만 말하고 빨리 끊어. 곧 있으면 세미나 시작한다.
“교수님. 다리 절단 환자 말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아무리 봐도 수술이 불가능해 보입니다.”
-…….
“절단하고 의족을 달아야 할 것 같은데 준후가 수술을 고집해서요. 교수님이 한 번 환자를 봐주시면 안 됩니까?”
-대체 환자가 얼마나 심각하길래 그래?
“노티 드리는 것보다 EMR로 확인하는 편이 더 빠를 겁니다.”
데빈의 시선이 준후를 향했다.
준후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무언가 말을 하고 있었다.
거리가 멀어서 잘 안 들렸지만 무슨 말을 하고 있을지 짐작은 갔다.
분명 거짓 희망을 전파하고 있을 것이다.
수술은 성공할 수 있다.
다리를 되찾을 수 있다.
중요한 건 수술에 대한 믿음과 각오다 등등.
‘어림도 없는 소리지.’
데빈의 입가에 경멸의 미소가 떠올랐다.
데빈이라고 해서 왜 환자의 다리를 절단하고 싶겠는가.
왜 불편한 의족을 권하겠는가.
다리를 지키는 일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까 그런 것이었다.
물론 다리는 소중하다.
하지만 다리가 목숨보다 소중할까?
예스라고 대답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팔’ 접합 수술과 달리 ‘다리’ 접합 수술은 더 어렵고 고됐다.
주요 동맥이 많이 지나가고 교차해서 출혈의 위험이 컸다.
탁. 탁. 탁.
에이튼의 결정을 기다리는 동안, 데빈은 초조하게 다리를 떨었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았다.
절단을 하든지.
접합 수술을 하든지.
한시라도 빨리 환자를 수술방에 보내야 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시네……. 세미나가 시작했나?’
데빈이 귓가에 대고 있던 휴대폰을 떼고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에이튼은 통화를 연결한 채 휴대폰으로 환자의 차트, 각종 검사 결과지를 살피고 있을 것이다.
요즘은 컴퓨터가 아닌 휴대폰으로도 환자의 기록과 영상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병원과 의사 전용 어플이 있기 때문이다.
-하…… 이거 만만치 않은데?
에이튼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괜히 전화 드린 게 아닙니다. 준후의 선택이 누가 봐도 무모해서 연락을 드린 겁니다.”
데빈의 목소리가 자신만만했다.
“그럼 과장님도 저와 뜻이 같은 줄 알고 준후에게 그리 전하겠습니다.”
-잠깐만 있어봐.
“이게 고민하실 일입니까?”
-으음…… 위험 부담이 큰 수술이지만 접합이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는군.
에이튼이 준후의 편을 드는 것 같아서 데빈이 눈살을 찌푸렸다.
콧잔등에 주름이 지고, 입술은 입안으로 말려 들어갔다.
뭐지, 이 황당한 전개는?
“위험 부담이 있으면 피해야죠. 환자 목숨이 달린 일인데.”
-…….
“혹시 과장님이 직접 수술하신다면 백 번 이해하겠지만 준후에 대체 어디를 믿어야 합니까?”
데빈이 따지듯이 쏘아붙였다.
-자네가 최근 임용돼서 뭘 모르나본데. 준후의 솜씨가 나보다 나아.
“네? 그럴 리가요? 준후는 고작 수부외과에서 1년 수련한 게 전부 아닌가요?”
데빈이 기겁하며 되물었다.
에이튼이 자신을 놀리는 건 아닐까 의심이 될 정도였다.
과장은 수부외과에서 20년 동안 수련한 접합 수술의 달인이었다.
오죽하면 사람 몸에 젓가락도 접합할 수 있다는 과장 섞인 칭찬도 듣는 사람이다.
그런 과장보다 준후가 한 수 위라고?
-내 생각에…… 준후라면 충분히 접합 수술이 가능할 것 같군. 그대로 진행해.
“아니. 교수님. 제 말 좀…….”
뭐라고 덧붙일 틈도 없이 에이튼이 전화를 끊었다.
데빈은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뭔가 일이 꼬여도 단단히 꼬였다.
* * *
저벅. 저벅. 저벅.
준후는 데빈과 수술실로 향하고 있었다.
준후가 데빈보다 두 걸음 앞서서 걷고 있었는데 뒤통수가 따가웠다.
데빈이 보내는 불신의 눈초리 때문이었다.
하지만 데빈의 그런 심정을 준후가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메이유 바깥에서, 심지어 메이유 안에서도 부스트 업 프로그램을 의심하는 사람은 꽤 있었다.
2, 3년은 걸리는 펠로우 과정을 어떻게 1년 만에 해내냐. 날림으로 가르치는 것 아니냐.
이런 의견이 하나 있었고.
여러 과목을 분산해서 배우다 보면 단 하나에도 집중 못 한다는 의견이 하나 더 있었다.
일리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맞는 말은 아니었다.
그건 다 부스트 업 프로그램 과정을 제대로 몰라서 하는 말이었다.
‘뭐, 그러려니 해야지.’
준후는 홀대 받는 처지를 무심하게 넘겼다.
한국에 돌아가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수도 없이 많이 하게 될 것이다.
미리 백신을 맞는다고 생각하면 편했다.
그리고 사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력이었다.
준후가 수술방에서 자신의 실력을 증명한다면 의심의 눈초리와 입방아 따위는 깡그리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보여줄게.
가슴에 단 마스터 배지는 노름으로 딴 게 아니라는걸.
수술방으로 향하는 동안 준후는 가볍게 손목을 돌렸다.
이번 접합 수술을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 간략한 청사진도 그렸다.
“데빈, 내가 마음에 안 들죠?”
수술실에 입장하고 계수대에서 스크럽(수술 전 소독)을 할 때 준후가 데빈에게 선수를 쳤다.
데빈이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준후를 쳐다보았다.
“아니요. 마음에 안 드는 정도가 아니라 더럽게 마음에 안 듭니다. 이건 미친 짓이에요.”
“혹시 환자 입장에서 생각해 봤어요?”
준후가 화제를 바꿨다.
“환자 입장이라니 무슨 뜻입니까?”
“평생 의족을 달고 살아야 하는 환자의 삶을 생각해 봤냐고요.”
“그야…… 고통스럽겠지만…… 어쩔 수 없는 거 아닙니까? 목숨이 우선인데…….”
“데빈이 환자라도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습니까?”
준후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무림 출신으로서 준후는 팔다리를 잃은 무사를 많이 지켜봤다.
사람의 성향에서 따라서 다르겠지만, 팔다리를 잃은 뒤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사는 무사들이 많았다.
신체의 일부를 영원히 상실한다는 것.
이는 끔찍한 저주가 아닐 수 없었다. 때로는 죽음보다 고통스러울 수 있었다.
팔다리보다 목숨이 중요하다고?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아닐 수도 있었다.
내 사전에 절단 수술은 없다.
나는 무조건 접합 수술만 한다.
수부외과에서 준후는 그런 대원칙을 세웠다.
무림에서 겪은 무기력과 비극을 현대에서도 되풀이하고 싶은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
준후의 매서운 눈길과 목소리에 데빈은 아무 말도 못 했다.
그저 하던 스크럽에 열중할 따름이었다.
“무모해 보일 수 있다는 건 알지만 최선을 다해서 어시스트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데빈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 * *
스크럽을 끝낸 뒤 준후는 수술모, 수술 가운, 수술 마스크를 차례대로 착용했다.
3번 수술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지이이잉.
자동문이 열리고 천장에서 소독 가스가 살포되었다.
준후는 일직선으로 수술대를 향했다. 알싸한 소독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수술 준비는 이미 끝나 있었다.
수술등으로 인해 공연장처럼 밝은 수술대 양옆으로 수술 도구들이 잔뜩 올려 져 있는 드레싱 카트들이 늘어서 있었다.
환자는 수술대에 누워 있었다.
환자감시장치와 중심정맥관, 수액이 환자와 주렁주렁 연결되어 있었다.
삐이이. 삐이이.
환자 감시 장치에서 차가운 기계음이 규칙적으로 들렸다.
환자가 긴장한 탓인지 심전도 그래프가 위아래로 크게 흔들렸다.
환자 곁에는 레지던트와 소독 간호사 1명이 대기 중이었다.
“선생님.”
준후가 수술대에 조금 떨어진 파란 천막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말씀하세요.”
파란 천막 뒤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마취의의 목소리였다.
“이번 수술은 전신 마취로 가죠.”
“전신 마취요? 부분 마취가 아니고요?”
“네. 수술이 길어질 것 같습니다. 부분 마취로 통증 관리가 안 될 확률이 높아요.”
“…….”
“근육 이완제도 평소보다 강한 걸로 사용해 주세요.”
준후는 평소와 달리 마취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마취는 전적으로 마취의의 영역이긴 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준후처럼 요구 조건을 말할 수도 있었다.
촤르르륵!
커튼이 걷혔다.
마취의가 준후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어디서 주제도 모르고.’
데빈은 속으로 고소함을 즐겼다.
준후는 자기 전공도 아닌데 마취의 영역에 함부로 발을 내디뎠다.
마취의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쁜 게 당연했다.
사과 농사를 짓는 사람이 쌀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 훈수를 둔다면 어떤 기분이겠는가.
준후 곁에선 마취의가 환자를 내려다보고 다시 준후를 쳐다보았다.
“과장님은 비슷한 환자를 수술할 때 부분 마취를 했습니다.”
마취의의 목소리가 굵었다.
“정석대로 가는 편이 좋지 않겠어요? 환자 반응도 살필 겸.”
“선생님이 경험한 케이스와 이번 케이스는 좀 다를 겁니다. 전기 톱날에 신경과 혈관이 갈가리 찢겼어요. 손상 범위도 넓고요.”
“…….”
“전신 마취로 부탁드립니다.”
부탁은 개뿔?
마취의가 아니면 아닌 거지.
그러나 준후를 비웃던 데빈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취의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던 것이다.
이건 또 무슨 그림이래?
“환자의 나이하고 키하고 체중이 얼마였죠?”
“40세에 180센티미터에 110킬로그램입니다.”
“고도 비만이네요. 평소보다 마취에 신경을 좀 써야겠습니다.”
“몬티 선생님이 알아서 잘해주세요.”
몬티라고 불린 마취의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두 사람은 서로 아는 사이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안면을 텄다고 해도 마취의가 집도의의 말에 고분고분 따른다는 것은 의외였다.
그만큼 준후를 신뢰한다는 건가.
그러고 보니 과장도 과장 본인보다 준후를 더 높이 평가했다.
준후에게는 뭔가 특별한 능력이 있는 모양이었다.
데빈만 모르는 무언가가.
잠시 후 준후의 뜻대로 환자에게 전신마취가 실행되었다.
환자의 몸이 인형처럼 힘없이 축 늘어졌다.
“수술은 6시간 정도로 예상합니다. 우선 환자의 뼈부터 고정하고, 건 봉합술, 동맥과 정맥 봉합술, 신경 봉합을 차례대로 진행합니다.”
“…….”
“일반 접합 수술과 다른 부분이 중간 중간 있을 건데 그 부분은 타이밍에 맞춰서 말씀드리죠.”
준후는 스태프들과 일일이 눈을 마주치며 브리핑을 했다.
무림 전장에서는 고수 한 명이 능히 수만 명을 상대할 수 있었지만.
현대에서, 그것도 수술방에서는 같은 이치가 통용되지 않았다.
수술에는 누가 뭐래도 팀워크가 가장 중요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 몇 배는 더 어렵기 때문이었다.
본격적인 수술에 앞서 준후는 의식을 잃은 환자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선생님. 전 외발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제발 다리를 붙여주세요. 여긴 메이유 클리닉이잖아요. 어떻게 방법이 없습니까?
응급실에 있었던 당시.
환자가 절규하며 외쳤던 말들이 준후의 귓가에서 메아리쳤다.
-내 인생은 끝났어……. 난 이제 후기지수도, 화산십일검도 아니고 뭣도 아니야. 난 그냥 다리를 잃은 절름발이에 불과하다고…….
환자의 목소리 위로 준후의 무림맹 동기였던 화산파 직계제자 황윤명의 목소리가 겹쳐졌다.
황윤명은 녹림의 별채를 습격하던 임무를 수행하던 도중 왼쪽 다리를 잃었다.
그리고 1년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과연 이래도 다리보다 목숨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까.
목숨만, 팔다리만 붙이는 건 수부외과 서전이 아니다.
진짜 수부외과 서전은 삶을 향한 환자의 의욕까지 접합하는 것이다.
“샐라인 이리게이션(식염수 세척).”
뜨거운 각오와 달리 준후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