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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402화 (402/424)

402화

제78장 귀국(2)

치이이익.

금속 호스에서 저압의 생리식염수가 뿜어졌다.

생리 식염수가 굳은 피딱지, 뼈 조각, 각종 이물질을 씻어 내렸다.

데빈이 절단 난 상처를 세척하는 동안.

준후는 환자의 너덜거리는 다리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응급실에서 질리도록 보고, 무림에서는 더 끔찍한 장면도 봤지만.

그래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전기톱으로 인한 절단선은 삐뚤삐뚤한 대각선이었다.

종아리 옆면부터 시작한 상처는 발목 바로 윗부분에서 끝났다.

상처의 깊이도 깊었다.

다리 깊이의 3분의 2 정도 되는 부분까지 톱날이 파고들었다.

약간의 충격만 가해도 다리가 툭 하고 분리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상처가 큰 동맥은 아슬아슬하게 피해갔다는 점이었다.

수부외과에서 수련할 때도, 수부외과 논문에서도 이런 케이스를 본 적이 없어 준후는 당황했었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환자가 자해를 한 건가.

아니면 범죄 조직에 속해 있는 환자가 윗선에 밉보여서 처벌을 당한 건가.

잠깐이나마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최종 진단은 ‘사고’였다.

상처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판단할 근거가 많지 않았다.

다리를 되찾고 싶어 하는 환자의 태도.

응급실에 입고 온 옷에 묻어 있던 나무 파편. (환자는 목공 중에 다쳤다고 했다.)

다소 조잡해 보이는 상처 등등.

준후는 머릿속으로 환자가 다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환자는 나무 합판을 발로 고정한 채 전기톱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다가 딴 생각을 했는지, 아니면 힘이 모자랐는지 전기톱이 손에서 헛돈다.

톱날이 다리를 잘라내기 시작한다.

무시무시한 톱날이 순식간에 다리를 베어내는 탓에 통증은 뒤늦게 찾아온다.

뒤늦게 비명이 터지고.

환자는 황급히 전기톱을 던지고 바닥에 주저앉는다.

“준후, 이리게이션 끝났습니다.”

데빈의 말에 준후가 퍼뜩 현실로 돌아왔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웬만한 오물은 다 씻겨 내려갔다.

환자 다리 밑에 받쳐둔 곡반에 지저분해진 식염수가 한가득 차 있었다.

레지던트가 곡반을 치웠다.

“A타입으로 갈 겁니까? B타입으로 갈 겁니까?”

“A타입이 좋겠네요.”

“B타입이 낫지 않겠어요? 아예 처음부터 손을 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데빈이 B타입을 주장했다.

상처가 절단 직전까지 내몰린 환자를 수술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우선 A타입.

이것은 남은 조직을 살려서 수술을 하는 방법이었다.

B타입은 남은 조직까지 절단한 뒤 서전이 상처를 아예 새로 접합하는 방법이었다.

“이 정도면 변연 절제술로 일부 오염 부위만 제거하고 복원할 수 있어요. 굳이 절단할 필요 없습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전 불안해 보이는데요.”

“어떤 면에서요?”

“변연 절제술로 날려 먹는 부위가 상당할 겁니다. 면적을 보면 복원술도 쉽지 않을 거고.”

데빈은 쉽사리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물론 준후도 그의 의견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데빈의 의견은 정석이었다.

안전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서전은 안전만 추구해서는 안 됐다.

환자의 목숨 또는 환자의 삶의 질을 위해서 과감한 결단을 내릴 줄도 알아야 했다.

“번거롭더라도 신체 조직을 살리는 게 경과에 더 좋습니다.”

“하…… 준후는 어려운 길만 골라서 가는군요. 고생을 사서 하는 부류입니까?”

데빈이 혀를 차며 물었다.

“그런 이야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요. 근데 뭐 어쩌겠어요, 성격이 원래 저돌적인걸.”

“좋습니다. 준후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보세요.”

데빈의 말 속에 담긴 뉘앙스가 미묘했다.

널 믿는다.

널 포기했다.

관점에서 따라서는 양쪽으로 다 해석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보여준 태도라면 후자일 확률이 지극히 높았지만.

다만 준후는 후자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사건건 시비를 걸 일은 없어질 테니까.

‘결정적으로 수술을 하다 보면 날 믿을 수밖에 없을 테지.’

기술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준후는 데빈의 머리 꼭대기에 있었다.

그리고 그 격차를 데빈만 모르고 있었다.

“접착제.”

준후의 오더에 레지던트가 접착제와 주걱 같은 수술도구를 동시에 내밀었다.

준후는 의료용 주걱에 접착제를 펴 바른 뒤 환자의 갈라진 뼈에 골고루 발랐다.

“와이어.”

이어서 철사를 이용해 환자의 뼈 테두리를 감쌌다.

뼈를 고정해 주는 작업이었다.

보통 접합 수술이라고 하면 미세한 부분부터 시작해서 큰 구조물 순서로 진행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은 정반대였다.

수술의 첫 단추는 뼈 고정이었다.

준후는 철사로 뼈 테두리를 세 번 감은 뒤 고정시켰다.

포셉으로 뼈를 툭툭 쳐보았다.

접합면이 미세하게 떨렸다.

위 뼈와 아래 뼈의 축이 미묘하게 어긋났다.

톱날 때문인가.

상처가 울퉁불퉁하고 불규칙적이라서 잘 안 맞는군.

억지로 맞출 수는 있겠지만 환자가 나중에 거동을 시작하면 후유증이 올 수도 있겠어.

뼈를 내려다보는 준후의 눈이 가느다래졌다.

이마에 깊은 주름이 패었다.

수술을 시작하자 벽에 부딪칠 줄은 몰랐다.

고개를 든 준후가 문득 데빈과 눈이 맞았다.

데빈이 입 대신 눈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접합 수술 말고 절단 수술을 하자고 했잖아.

“금속판 하고 나사, 드릴 좀 가져다주세요.”

“그건 어디다 쓰시게요?”

“듣는 것보다 보는 게 빠를 겁니다.”

준후의 오더에 레지던트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창고로 이동했다.

데빈과 소독 간호사도 준후의 돌발 행동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수술이 재개되었다.

지이이잉.

요란한 드릴 소리가 수술방에 퍼졌다.

드릴이 정강이뼈를 파고들 때마다 슬러시 같이 뼈 조각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준후는 환자의 절단 난 상처 위아래에 각각 3개의 구멍을 뚫었다.

그 위에 금속판을 대고 의료용 나사를 박아 넣었다.

다시 뼈를 건드려보았다.

뼈는 천 년된 소나무 뿌리처럼 단단하게 고정되었다.

준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 * *

“이래도 되는 겁니까?”

처치가 끝난 후 데빈이 놀란 부엉이 눈으로 물었다.

“접합 수술에 금속판 고정술을 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는데요?”

“당연히 없겠죠. 제가 처음 하는 거니까.”

“콜록. 콜록.”

데빈은 급기야 사례에 들려 기침을 해댔다.

오늘 준후 때문에 몇 번이나 심장이 내려앉았는지 차마 그 숫자를 세기 힘들 정도였다.

‘웬만하면 가만히 있으려고 했는데 이건 선 넘었지.’

데빈의 가슴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뼈 고정이 안 된다고 금속판을 쓰면 어쩌자는 겁니까?”

데빈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따지기 시작했다.

수술방 분위기가 급속도로 냉동되었다. 레지던트와 소독 간호사가 어쩔 줄 몰라 했다.

뻔뻔하도록 침착한 사람은 대형 사고를 친 준후뿐이었다.

“서전들이 괜히 와이어를 쓰는 게 아닙니다. 이러면 환자 다리가 굳어버린다고요.”

“…….”

“제대로 못 걷는다면 의족을 다는 거랑 환자의 다리랑 무슨 차이가 있죠?”

“금속판은 6개월 뒤에 제거하면 됩니다. 평생 달고 있을 게 아니에요.”

“환자 보고 또 수술을 받으라는 겁니까?”

“의족을 다는 것보다야 백 배 낫죠.”

준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봐요. 데빈.”

“뭡니까?”

“척추 고정술 집도해 봤어요?”

데빈이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그럴 일이 없었다.

데빈은 수부외과 전공이지 경추·요추 전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준후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척추 고정술을 받았다고 해서 허리 관절이 굳어서 허리를 못 움직였다는 환자를 봤어요?”

“아…… 아니요.”

수세에 몰린 데빈이 말을 더듬었다.

준후의 논리에 점점 휘말려 들고 있었다.

팔뚝에 솜털이 쭈뼛쭈뼛 솟았다.

뒷골이 서늘해졌다.

“그럼 우리가 수술 중인 환자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하지만 접합 수술에 금속판 고정술을 한 적은 없단 말입니다. 검증도 안 된 수술을 갑자기 해버리면 어떻게 합니까?”

데빈이 가까스로 반박했다.

“왜 그렇게 됐는지 모르죠?”

“네. 모릅니다. 준후, 당신은 알고 있어요?”

“당연히 알고 있죠.”

준후가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유가 뭡니까? 접합 수술에서 금속판 고정술을 안 쓰는 이유가?”

“그건…… 안 가르쳐줄 겁니다.”

준후의 목소리가 얄미웠다.

아오, 열 받아!

* * *

“2-0 PDS(흡수성 합성사).”

준후는 레지던트가 건넨 봉합사를 니들홀더로 고정했다.

근육과 뼈를 연결하는 건 봉합술을 펼쳤다.

톱날이 지나간 건이 지그재그로 산만하게 찢어져 있었다. 하지만 준후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건을 봉합해 나갔다.

샴쌍둥이 분리 수술을 할 당시 준후가 사용한 봉합사는 11-0였다.

머리카락보다도 몇 배나 가는 봉합사였다.

그에 비하면 2-0 봉합사는 신발 끈이나 다름없었다.

실수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수부외과 서전들이 왜 금속판 고정술을 안 하냐면…… 이유는 간단합니다.”

준후는 봉합 하면서 말을 하는 여유를 선보였다.

“됐습니다. 이젠 하나도 안 궁금해요.”

데빈이 삐진 말투로 대꾸했다.

“듣기 싫으면 귀 닫고 있어요.”

“…….”

“그 이유는 수부외과 서전들이 척추·경추 파트 수술에 경험이 없어서예요. 그게 바로 부스트 업 프로그램에 진면목이고요.”

준후의 설명이 이어졌다.

부스트 업 프로그램에서 교육생들은 신경외과에서 다루는 모든 세부 전공을 배웠다.

그리고 이것은 하이브리드 사고방식을 키웠다.

요리로 따지면 퓨전 요리사가 됐다고 해야 할까.

한식에 양식을 접목시키거나.

한식에 중식을 접목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이번 접합 수술에 준후가 금속판 고정술을 활용한 것도 같은 이치였다.

척추·경추 파트에서 배운 지식을 접합 수술에 써먹은 것이다.

여러 전공을 골고루 익힌 만큼 수술에 접근하는 사고의 지평이 넓어진 것이다.

이건 준후로서도 뜻밖의 수확이었다.

부스트 업 프로그램에서 사고가 확 트일 거라는 기대는 안 하고 있었으니까.

“아직도 금속판 고정술이 못 미덥습니까?”

“아뇨. 생각해 보니까 괜찮을 것 같네요.”

데빈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가 졌습니다. 항복이에요. 준후 선생님이 나보다 훨씬 낫습니다. 과장님이 왜 선생님을 치켜세웠는지 알 것도 같아요.”

데빈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널 믿는다.

널 포기했다.

후자를 선택했다가 전자로 돌아선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준후는 입만 산 서전이 아니라 손도 살아 있는 서전이었다.

수술방 밖에서는 준후를 욕해도.

수술방 안에서 준후를 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준후의 의사 가운에 달린 7개의 마스터 배지가 바로 그 증거였다.

5분쯤 지났을까.

첫 번째 봉합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위기와 절정이 없는 순탄한 봉합이었다.

“가자미근과 정강이뼈를 이어주는 건은 크락코우 봉합술을 할 겁니다.”

“크락코우 봉합술도 할 줄 알아요?”

휘둥그레진 눈으로 묻는 데빈.

준후는 눈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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