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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403화 (403/424)

403화

제78장 귀국(3)

지하 1층 카페는 사람들로 붐볐다. 빈 테이블이 없었다. 입구에 들어섰다가 돌아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은은한 피아노 연주곡이 카페에 흘렀고 그 속에 사람들의 시끄러운 말소리가 섞였다.

그마저도 연주에 포함된 것 같았다.

지이이잉.

준후와 데빈이 앉아 있던 자리에 진동벨이 울렸다.

“제가 갔다 오겠습니다.”

데빈이 진동벨을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술방에서 툴툴 거리던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

상급자를 대하는 듯한 깍듯한 모습이었다.

데빈이 계산대로 이동했다.

2잔의 커피가 담긴 쟁반을 손에 쥐고 자리로 돌아갔다.

‘몬스터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네. 헛소리인 줄 알았는데.’

데빈의 눈길이 준후에게 머물렀다.

준후는 신경외과 파트에서 이미 유명 인사였다.

부스트 업 교육을 받는 도중 총 7개의 과목에서 수석을 따내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데빈은 준후의 명성을 의심했다.

아니, 믿지 않았다.

교수님들이 인정했으니 물론 실력이 빼어나기야 하겠지만 ‘소문’만큼의 실력자는 아닐 거라 생각했다.

소문이란 원래 과장되기 마련이었으니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부풀려지기 마련이었으니까.

그래서 다리 접합 수술 초반까지만 해도 데빈의 불신은 여전했다.

어떤 환자든 살릴 수 있다는 마인드는 쇠고집처럼 비춰졌고.

환자의 뼈에 금속판을 삽입하겠다고 말했을 때는 정신이 나간 줄 알았다.

왜 그런 부류인지 않은가.

남들은 못 해도 자기는 해낼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넘치는 부류 말이다.

데빈이 백기를 든 시점은…….

준후가 건 봉합술을 시작한 시점과 일치했다.

봉합사가 2-0이라고는 해도.

봉합사가 두껍다고는 해도.

크락코우(Krackow) 봉합술은 만만하지 않았다.

크락코우 봉합술.

이것은 봉합사를 중간에 자르지 않는 연속 봉합법에 일종인데.

봉합이 하도 복잡해서 봉합사가 중간에 꼬이기 일쑤였다. 거기에 서전의 손도 꼬이게 만드는 악마의 봉합법이었다.

교수인 데빈도 크락코우 봉합술에 자주 곤욕을 치렀다.

오죽하면 크락코우 봉합술의 별명이 ‘시간 잡아먹는 하마’겠는가.

그런데 웬걸?

준후는 땅에서 헤엄치듯 빠르고 정교하게 봉합술을 끝장내 버렸다.

봉합사나 손이 꼬이는 대신 준후의 봉합을 쫓아가는 데빈의 눈이 꼬일 지경이었다.

그때서야 데빈은 떠올렸다.

어나더 레벨이라는 단어를.

실력 차이가 적당히 나면 덤벼보기라도 할 텐데 준후에게는 개길 수도 없다는 사실을.

늑대라면 그나마 호랑이에게 덤벼보겠지만, 토끼라면 호랑이와 싸울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건 봉합술이 끝난 후 동맥과 정맥 문합, 신경 문합도 무난하게 종료되었다.

수술은 고작 5시간 만에 끝났다.

수술 난이도를 감안하면 기가 막힌 속도였다.

아마 학과장님도 준후처럼 정확하고 신속하게 수술을 끝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탁!

상념을 마친 데빈이 테이블에 쟁반을 내려놓았다.

자리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향긋한 커피 냄새가 콧속과 입안에 맴돌았다.

“수술 중에 투덜거려서 미안했습니다. 준후가 이렇게 잘할 줄은 꿈에도 몰랐죠.”

“익숙합니다. 이런 취급 받는 거.”

“그래요? 나만 이런 게 아닙니까?”

데빈의 고개가 옆으로 기울었다.

“부스트 업 프로그램을 못 미더워하는 사람이 꽤 많거든요. 어떻게 펠로우 과정을 1년 만에 끝내냐고. 대충 가르치는 거 아니냐고.”

준후가 쓰게 웃으며 커피잔에 입을 댔다.

“더군다나 동양인이고요.”

“저도 부정은 못 하겠네요.”

데빈이 미안함을 느끼며 두 눈을 내리깔았다.

흑인의 인권은 조금씩 발전하고 있었지만 동양인은 인권은커녕 동양인을 향한 인식조차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저는 사람들이 왜 그걸 모르는지 모르겠어요.”

“뭘 말입니까?”

“다른 나라에 와서 다른 나라의 언어를 사용하고 직업 활동을 한다는 건 사실 대단한 일이거든요.”

“…….”

“문제 해결 능력, 사회 지능, 통제력이 하나라도 없으면 불가능해요.”

“…….”

“그런데 존중해 주질 못할망정 무시를 하니까요.”

“듣고 보니 그런 면도 있네요.”

데빈이 한 손으로 턱을 쓸어내렸다.

말이 안 통하는 나라에서 취업하고 살아남아봐.

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덜컥 겁부터 날 것 같았다.

“내일이면 부스트 업 프로그램 수료식인데 행선지는 정했습니까?”

“한국으로 돌아가야죠.”

“복귀하면 사정은 좀 나아지겠군요.”

“글쎄요. 장담할 수는 없어요.”

준후가 애매하게 웃었다.

이유가 뭘까.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꽃길이 깔린 것 아닌가?

메이유의 스페셜 프로그램을 이수한 데다가 인종 차별을 받을 일도 없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준후는 입을 다물었다.

그 주제에 대해서는 더 말을 하고 싶지 않은 기색이었다.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걸까.

* * *

데빈과의 대화를 마치고 준후는 건물 바깥으로 나왔다.

가운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메이유 클리닉을 둘러보고 있었다.

메이유에 온 게 엊그제 같거늘 이제는 스쳐가는 풍경이 너무나 익숙하고 친숙했다.

이곳에서 무려 7년을 보냈다.

의대나 신원 대학교에서 보낸 시간보다 메이유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 떠날 때가 되니 아쉬움이 가득했다.

혼자서 느긋하게 걷던 준후가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메이유 클리닉 홈페이지에 접속한 후 명예의 전당 탭을 클릭했다.

명예의 전당.

이는 메이유에서 특별한 업적을 이뤄낸 의사들만이 얼굴을 올릴 수 있는 장소였다.

휘플 수술을 100회 돌파한 위장관 외과 찰스 교수.

소아 심장 이식 수술을 50회 달성한 카이리 교수.

환자에게 장기기증을 하고 세상을 떠난 말기 암 레지던트 등등.

명예의 전당에는 각양각색에 인물이 소개되고 있었다.

개중에는 익숙한 얼굴도 있었다.

소아 신경외과 오스틴 교수였다.

오스틴 교수는 샴쌍둥이 분리 수술로 명예의 전당에 얼굴과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액정을 내리던 준후가 이내 피식 웃고 말았다.

또 한 명의 익숙한 얼굴.

바로 준후 자신의 얼굴이었다.

부스트 업 프로그램 1회 졸업자.

7개 과목에서 수석을 차지한 그랜드 마스터.

라는 설명이 덧붙여져 있었다.

사진 속 준후는 팔짱을 낀 채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었다.

준후가 걸친 가운의 가슴 부근에 7개의 황금 배지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래도 후회는 없어. 원하는 건 다 얻었으니까.’

준후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에서 편하게 지낼 수도 있는데 굳이 왜 메이유에 왔을까.

신경외과에서 뻗어나가는 7개의 전공을 마스터하기 위해서였다.

그것도 최단기간에!

뇌종양.

뇌혈관.

소아 신경.

정위 신경.

경추 및 척추.

수부외과.

외상외과.

부스트 업 프로그램을 통해 준후는 해당하는 모든 세부 전공을 갈고 닦았다.

혼자서 7인분을 감당할 수 있는 위대한 서전으로 거듭난 것이다.

일단 한국에 돌아가서 과장 자리를 꿰찬다.

자리가 안정되면 후학을 양성하고.

한국형 부스트 업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고.

뇌사와 식물인간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신 수술을 개발한다.

더 나아가서는 신경외과 전문 병원을 차린다.

그것이 준후의 크나큰 포부였다.

무엇 하나 쉽거나 만만하게 볼 것이 없었다.

하지만 메이유에서 쌓은 경험.

내공과 무공의 도움이 있다면 고난을 헤쳐 나가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남들이 갖지 못한 능력을 가졌다면.

남들이 해내지 못할 일을 해내는 것도 일종의 의무라고 볼 수 있었다.

준후는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으로 이번에는 뉴튜브 채널을 검색했다.

채널 구독자가 벌써 200만을 돌파했다.

업로드하는 영상의 길이는 10분에서 20분.

영상 업로드 주기는 일주일에 2회.

영상 평균 조회수는 100만이었다.

서서히 빠지는 한국 구독자의 숫자를 미국 구독자가 채워주었다.

메이유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도서관에서 총기사고가 벌어졌다.

당시 준후가 응급 처치했던 영상이 큰 화제를 몰고 왔다.

이후로 준후의 뉴튜브도 이른 바 떡상을 해버렸다.

현재는 7년이 지난 시점이라 화력이 떨어졌지만 그래도 준후를 꾸준히 사랑해 주는 구독자들이 꽤 많았다.

의사 봉급보다 뉴튜브 수익이 더 큰 지경이니 두 말 하면 입이 아팠다.

돈을 모아 나중에 개원할 욕심이 있었으므로 준후는 번 돈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환자나 보호자를 경제적으로 지원할 때는 빼고 말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메이유를 한 바퀴 다 도는데 걸린 시간은 1시간 30분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뉘엿뉘엿 석양이 지고 있었다.

병원 건물들이 찬란한 오렌지빛으로 물들어갔다.

‘이 풍경도 오늘로 마지막이구나.’

준후의 발걸음이 쓸쓸하게 기숙사로 향했다.

그런데 절반도 채 못 걸었을 때 휴대폰이 몸을 떨어댔다.

또 응급콜인가.

아니면 올리버와 맥스웰이 파티나 하자고 부르는 걸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준후가 휴대폰 번호를 확인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전화라서 눈부터 의심했다. 이 시간에 걸려 올 전화가 아니었던 것이다.

“네.”

-…….

“정말요? 미리 이야기라도 해주시지 그러셨어요.”

-…….

“알겠습니다. 바로 출발할게요.”

준후는 급하게 통화를 끊었다.

보법까지 밟아가며 기숙사로 이동했다. 때마침 기숙사 근처에 있는 농구 코트에서 동료 몇 명이 농구를 하고 있었다.

“누구 차 빌려줄 수 있는 사람 있어?”

“차? 준후, 너도 차 있지 않아?”

레이먼드가 농구를 중지시킨 뒤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얼마 전에 팔았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그럼 내 차 써. 무슨 차인지는 알지? 주차장에 있다.”

레이먼드가 선뜻 바지주머니에서 차키를 꺼내서 내밀었다.

레이먼드와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사이였지만 지금은 꽤 가까운 사이였다.

샴쌍둥이 분리 수술 이후.

준후와 본인의 격차를 인정하고.

준후에게 무엇이든지 배우려고 노력해 왔다.

사람 성격이라는 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뜻은 노력하면 어렵게나마 바꿀 수도 있다는 뜻도 됐다.

“땡큐.”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은데 너무 서두르지 마. 사고 날라. 내일 수료식인데 다치면 억울하잖아?”

준후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 * *

주차장으로 이동해 레이먼드의 차로 메이유 클리닉을 빠져 나갔다.

중요한 만남이 잡혔지만.

곡예운전을 해야 할 만큼 급박한 만남은 아니었다.

준후는 적당한 속도로 도로를 달렸다.

1시간을 운전해 도착한 장소는 클리블랜드 공항이었다. 공항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사람들로 붐볐다.

눈에 치이는 것이 사람과 캐리어였다.

주차장에서 차를 세우고 준후가 공항 안으로 뛰어갔다.

콩나물시루 속에 있는 콩나물 대가리처럼 사람들 머리가 빡빡했다.

하지만 준후는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이들을.

자신이 기다리던 있는 이들을.

이 낯선 땅에서 재회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이들을.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그들을 구별해서 알아본다는 것이었다.

“여기요!”

신기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던 두 사람을 향해 준후가 힘차게 앞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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