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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404화 (404/424)

404화

제78장 귀국(4)

병원 인근의 어느 식당.

준후는 맞은편에 앉은 두 사람을 감격스러운 눈동자로 쳐다보고 있었다.

부모님이 사전에 연락도 없이.

준후를 깜짝 놀라게 해주겠다며 클리브랜드까지 비행기를 타고 왔던 것이다.

아마 진짜 방문 목적이라면 내일 있을 수료식에 직접 참석해 준후를 축하해 주기 위함일 것이다.

“뭔가 현실감이 잘 안 느껴지네요. 꿈만 같아요.”

준후가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무려 7년 만의 재회였다.

그동안 최소 일주일에 한 번씩 부모님과 연락하고 영상 통화도 자주했다.

하지만 연락을 주고받는 것과 얼굴을 직접 보는 것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격차가 있었다.

“많이 놀랐을 거다. 설마 말도 없이 무작정 올 줄은 몰랐을 테니까.”

“아버지 작품인가요?”

“암. 그렇고 말고. 너희 엄마는 미리 연락하자고 그랬거든.”

아버지가 팔짱을 낀 채 턱을 치켜들었다.

몰래 카메라 같은 방문이 성공해서 뿌듯해하는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간혹 개구쟁이처럼 굴 때가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아버지.”

“그래. 준후야.”

부자간의 애틋한 눈빛이 교차하는 가운데 준후가 분위기를 깨뜨리는 말을 꺼냈다.

“살이 좀 찌셨네요. 턱 선이 안 보이는데요?”

“흠흠. 요새 디저트에 눈을 떠서 말이야.”

무안했는지 아버지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확실히 날카로웠던 턱 선이 둥글게 완만해졌다.

“말도 마렴. 요새는 밥 먹고 나서 휘낭시에인가 뭔가를 꼭 하나씩 챙겨 먹지, 뭐니?”

잠자코 있던 어머니가 나섰다.

철없는 아들의 등을 찰싹 두드리듯 아버지의 등을 두들겼다.

“당신도 먹으면서 왜 나한테만 그래?”

“나야 절반만 먹잖아요. 일부러 밥도 줄이고.”

“살이야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뺄 수 있어. 마음을 안 먹어서 그렇지.”

“그러니까 내 말이 그 말이에요. 디저트 좀 그만 잡수고 마음을 잡수라고요.”

티격태격 하는 부모님의 모습에.

준후의 입가에 드리운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부모님의 콩트를 미국 땅에서 보게 될 줄이야.

어쨌거나 두 분은 7년 전 기억 속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얼굴에 주름이 늘어나고 머리카락에 새치가 늘어난 점을 제외하면 말이다.

준후가 알기로 두 분은 매년에 한 번 신원대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건강 검진에서 특별한 이상 진단을 받은 적도 없다고 했다.

중한 병이 있는데 숨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최악의 경우라면 건강 검진에 오류가 있는 경우인데…… 간혹 이런 참사가 벌어지는 일이 있었다.

예를 들면 검진에서 촬영한 폐 CT에 상에서는 폐가 멀쩡하다고 나왔는데.

4개월 뒤 흉통과 호흡곤란을 호소해서 다시 폐 CT를 찍었더니 4기 폐암 판정을 받는다던가 하는 비극 말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동명이인으로 인한 검사 실수, 영상진단학과의 잘못된 영상 판독 등의 이유가 있었다.

의사인 준후가 병원을 못 믿어서야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의료진도 인간이며 실수를 한다는 점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이따가 숙소를 잡아서 확인해 보면 되겠지.’

부모님과 잡담을 나누는 사이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음식은 최고급 스테이크와 샐러드였다. 어렵고 큰 수술을 마칠 때마다 동료들과 자주 먹었던 메뉴였다.

“식기 전에 드세요. 입에서 살살 녹을 거예요.”

“그래. 준후 너도 많이 먹으렴.”

“잘 먹으마.”

부모님은 칼질이 서툴렀다.

손이 자주 미끄러졌고, 나이프가 지나간 고기의 결도 삐뚤빼뚤했다.

정통 양식을 자주 먹지 않아서 그런 듯했다.

하긴 준후의 기억에도 부모님과 함께 식당에서 칼질을 한 기억이 거의 없었다.

잘라봐야 돈가스가 전부였다.

“제가 잘라드릴게요. 가만히 계세요.”

준후는 양팔을 뻗어 어머니의 고기부터 썰었다.

포크로 고기를 고정하고 나이프로 고기를 잘랐다.

서걱!

잘린 고기의 단면은 매끄러웠다.

분홍빛 속살에서 주르륵 육즙이 흘러내렸다.

준후는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연달아 스테이크를 잘라 먹기 좋게 7등분으로 썰었다.

아버지의 스테이크도 마찬가지로 작업했다.

“누가 외과의사 아니랄까봐 고기도 잘 자르는구나.”

“그러게요. 고기 정말 맛있네. 입에서 살살 녹는다.”

준후는 웃으며 자신의 스테이크도 썰었다.

솔직히 효심이 과하긴 했다.

그냥 잘라도 되는 고기를 검법으로 잘랐으니까 말이다.

사소한 동작이라도.

무공의 이치가 담겼느나 안 담겼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질 수 있었다.

식사가 끝난 후.

준후는 부모님과 함께 식당을 나왔다.

부모님이 묵을 숙박시설을 알아보았다.

숙박시설이라면 당연히 최고급 호텔이었다. 하루 묵는 데 50만원이 넘어가는 5성급 호텔이었다.

부모님은 부담스러워했지만 준후가 밀어붙였다.

부모님이 자신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었던 것처럼 이제는 자신이 부모님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었다.

“그동안 많이 섭섭하셨죠?”

엘리베이터에 오르며 준후가 말했다.

“섭섭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니?”

어머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인데 얼굴 보기가 하늘에 별 따기잖아요. 인턴하고 레지던트 때도 병원에 살다시피 했고, 수련 끝나고 좀 보나 했더니 미국에서 무려 7년을 보냈고요.”

“…….”

“그런 소리 하지 마. 엄마는 준후 네가 네 꿈을 쫒는 모습이 자랑스럽단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따뜻했다.

아버지도 질 새라 한마디를 덧붙였다.

“어렸을 때야 우리가 널 세상으로부터 지켜주는 울타리였을지 몰라도 어른이 된 지금은 아니지.”

“…….”

“지금의 너는 너만의 세계를 개척할 때란다.”

“감사해요.”

부모님의 응원에 준후는 코끝이 찡해졌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믿어주는 사람이 있는 것만큼 든든한 일이 또 있을까.

준후는 지금 느낀 가족애를 서전의 입장에서 한 단계 승화시키기도 했다.

환자 한 명을 살리는 것은.

그 환자의 가족도 함께 살리는 거라고.

가족의 무게를 잊지 말고.

앞으로 그 어떤 수술에서라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원래는 아영이도 같이 오기로 했었어.”

어머니가 화제를 돌렸다.

“아영이가요?”

“그럼. 너 없는 동안에 아영이랑도 가끔 만나고 그랬단다.”

준후에게는 금시초문인 이야기였다.

“아영이가 이야기 안 했니?”

“네. 처음 들어요.”

“난 당연히 했을 줄 알았는데. 네 아빠가 디저트에 빠진 것도 아영이 때문이거든. 아영이가 사온 디저트에 빠져 버렸던 거지.”

듣고 보니 말이 됐다.

아버지가 갑자기 디저트를 좋아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근데 아영이는 왜 부모님을 뵌 걸 이야기 안 했을까.

그 이유가 문득 궁금해졌다.

자세한 건 이따가 통화를 해봐야 알 듯 싶었다.

“약속 다 잡고 공항에서 보려고 했는데 때마침 응급 환자가 들어왔다고 하지 뭐니. 대동맥 박리라나 뭐라나?”

“…….”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우리 둘만 왔어. 너무 서운해 하지 말고.”

“서운하긴요. 아영이 맘은 제가 잘 알아요.”

만약 준후가 아영의 입장이었다고 해도 미국행 비행기 대신 환자를 택했을 것이다.

준후와 아영은 둘 다 환자를 끔찍하게 아낀다는 공통점이 있었고.

전공 과목의 질환으로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아영은 남동생.

준후는 성호 형.

어머니가 아영의 이야기를 꺼낸 탓에 아영을 향한 그리움.

그동안 꼭꼭 억눌러왔던 그리움이 터졌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리움을 참을 이유가 없었다.

곧 한국에 복귀할 테고, 시간만 내면 언제든지 볼 수 있을 테니까.

띵동!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준후는 예약한 방으로 들어가 입구에 카드키를 꼽았다. 현관 천장에 달린 등이 환영의 빛을 뿜어냈다.

“먼 길 오느라 피곤하셨죠? 일단 마사지부터 해드릴게요.”

침실에 들어선 준후가 소매를 걷어 올리며 말했다.

사실 마사지는 핑계고 진짜 목적은 ‘전신 내공 조영술’이었다.

부모님의 건강을 검진에만 맡겨둘 수는 없었다.

* * *

다음 날 오전.

메이유 클리닉 별관 5층 프로엘리움 홀.

프로엘리움 홀은 1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소규모 강당이었다.

“뭔가, 사람 기를 죽이는 분위기가 있네.”

가장 앞좌석에 앉은 형석이 강당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강단 천장에 ‘제1회 부스트 업 프로그램 수련생 수료식’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좌석은 이미 만석이었다.

형석 같은 일반인보다 의사 가운을 걸친 의사들이 더 많았다.

“¢●☆∧)”

“∨∽♤◉”

자기들끼리 영어로 중얼거리는데.

형석은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입장하지 못한 사람들은 입구 쪽에서 서성거렸는데 개중에는 카메라를 든 기자들도 많았다.

일반 수료식에 기자가 나타나지는 않는 것은 당연지사.

바꿔 말하면 이번 수료식이 보통 이벤트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수료식은 아들이 받는데 왜 당신이 긴장하고 난리야?”

형석이 익살맞게 아내의 허벅지를 찰싹 때렸다.

아내는 아까부터 허리를 꼿꼿하게 편 채 강당만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느슨하게 있으면 꼬투리라도 잡힐 것 같아서요.”

“잡을 테면 잡아보라고 해.”

“진심이에요?”

“어차피 무슨 말 하는지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뭐.”

형석의 농담을 듣고서야 아내가 굳었던 표정을 풀었다.

“내 아들이지만 준후도 참 대단한 것 같아요. 남의 나라에 와서 남의 나라 말을 하면서 환자도 보고.”

“그만큼 환자에 진심이라는 뜻이겠지.”

“준후가 의사된 게…… 혹시 나 때문에 그런 거 아닐까요?

“뇌출혈 때문에 수술 받았던 일 이야기하는 거지?”

“그래요.”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지. 최소한 신경외과를 택한 이유는 당신 때문일 게 확실할 거고.”

형석은 아직도 잊지 못했다.

아내가 수술 받는 동안.

당시 고등학생 아들이 세상을 다 잃어버린 듯한 눈빛을 하고 있었던 것을.

떠올려보면 그때가 얼마 전 일 같은데 아들은 벌써 건장한 삼십대 중반이 되었다.

아내와 잡담을 나누는 사이 본격적인 수료식이 시작되었다.

비록 영어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형석은 눈치껏 식을 따랐다.

자리에서 일어나 미국 국가를 부르는 척 하고 묵념도 했다.

잠시 후.

안경을 낀, 백발이 성성한 노년의 사내가 단상에 올라서 연설을 시작했다.

느낌상으로 저 사람이 병원장인 것 같았다.

“Let me introduce the best performers.”

사내의 많고 많은 말 중에서.

형석은 ‘베스트’라는 말만 알아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자랑스러운 아들 준후가 단상에 올라섰다.

형석의 눈이 부엉이처럼 휘둥그레졌다.

형석이 알아본 바에 따르면 메이유 클리닉은 최첨단 의료기술을 자랑하는 미국 병원 중에서도 한 손가락으로 꼽히는 곳이었다.

그렇다면 메이유 소속 의사들은 얼마나 잘나고 능력이 좋겠는가.

그런데 그 중에서 준후가 베스트라니……!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싶었다.

“무슨 말인지 몰라서 당황스러우시죠. 대충 제가 여기서 1등이라는 소리입니다.”

단상에 선 준후가 웃으며 한국말로 말했다.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시면서 제가 어디까지 성장하는지 지켜봐주세요. 이제부터는 영어로 말할게요.”

준후가 차분하게 영어로 소감을 말하기 시작했다.

몇 분이 지났을까.

아들의 연설이 끝나자 사방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누군가는 기립까지 했다.

출입구 쪽에서 번쩍번쩍 플래시도 터졌다. 뭔지는 몰라도 명연설을 한 모양이었다.

짝. 짝. 짝.

형석은 그저 준후가 대견해서 물개박수를 치기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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