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5화
제78장 귀국(5)
드르르륵.
잘생긴 청년이 캐리어를 끌고 인천 국제공항 입국 게이트를 통과하고 있었다.
청년은 신기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청년이 가장 반가웠던 것은 한글이었다.
청년은 한국 사람이지만 근 7년 동안 한글을 제대로 구경도 못해 봤다.
그래서일까.
국제선 탑승, 주차장. 공항 철도, 함께 투어 등등.
청년은 표지판이나 간판에 적힌 한글조차 반갑게 느끼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청년의 이름은 바로 서준후.
부스트 업 프로그램을 수석으로 수료하고 모처럼 한국 땅을 밟은 신경외과 서전이었다.
‘진짜 오랜만이네.’
메이유에서 수련하는 동안.
준후는 단 한 번도 한국에 돌아오지 않았다.
중간 중간 휴가 기간이 있어도.
꿋꿋하게 클리블랜드의 지박령으로 살아왔다.
한국에 잠깐이라도 돌아온 순간.
마음이 약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식사부터 하셔야죠.”
준후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부모님이 준후보다 조금 쳐진 채 걷고 있었다.
귀향이 반가워 자신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진 모양이었다.
준후는 그제야 부모님과 걷는 속도를 맞췄다.
“뭐 먹고 싶니?”
“김치찌개요.”
준후의 대답에 망설임이 없었다.
“미국에서 김치찌개 못 먹었니?”
어머니가 딱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아뇨. 한 식당이 있어서 먹을 순 있어요. 근데 우리나라에서 먹던 맛하고는 살짝 다르더라고요.”
적어도 준후가 먹은 김치찌개는 김치국과 같은 느낌이었다.
김치 맛도 옅었던 데다가.
허옇고 맹탕이었다.
“그럼 차라리 집에서 먹을까? 엄마가 밥 차려줄게.”
“괜찮아요. 나온 김에 여기서 먹고 가죠.”
“그러자꾸나. 마침 저기 식당이 있네.”
아버지가 검지로 가까운 한식집을 가리켰다.
준후는 식당을 찾아 부모님과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밥도 맛있었고 김치도 맛있었다.
배가 부른데 음식이 계속 들어갔다.
이래서 ‘소울 푸드’라는 표현이 생겼는지도 모른다고 준후는 생각했다.
“당연히 당분간은 쉬는 거겠지?”
아버지가 준후에게 물었다.
“아마 그렇게 될 겁니다.”
“잘 생각했다. 사람이 쉴 줄도 알아야 해. 쉬어야 의욕도 충전되고 에너지도 충전된단 말이지.”
“조금 의외네. 엄마는 준후 네가 바로 일을 할 줄 알았거든.”
“쉬고 싶다기보다는 쉴 수밖에 없다는 표현이 더 맞을 거예요.”
준후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본래 계획이라면 신원대 병원 신경외과에 복귀해서 교수 자리를 꿰차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갈고닦은 솜씨를 한국 환자들에게 돌려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동안.
생각이 바뀌었다.
아니, 바뀔 수밖에 없었다.
공부에 열중하다보니 가장 중요한 업무를 간과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 일’부터 처리하는 게 급선무였다.
“쉴 수밖에 없다니 그게 무슨 뜻이니?”
어머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는 길에 말씀드릴게요. 다 드셨으면 일어날까요?”
준후는 음식 값을 계산하고 식당을 나왔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왈! 왈! 왈!”
아파트 현관에 들어서자 반려견 똘똘이가 미간을 찌푸린 채 짖어댔다.
녀석은 꼬리를 세운 채.
준후를 경계하다가 이내 준후의 위아래를 훑었다.
꼬리를 프로펠러처럼 돌리며 준후의 발목에 마구 몸을 비벼댔다.
준후가 허리를 숙여 똘똘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이제야 좀 집에 돌아온 실감이 났다.
* * *
집에 돌아온 준후는 지인에게 연락부터 돌렸다. 드디어 한국에 돌아왔음을 알렸다.
답장을 받는데 평균 1시간이 걸렸다.
다들 근무 중이라 바쁜 탓이었다.
준후가 7년 간 부스트 업 프로그램을 받는 동안.
지인과 동료들도 성장했다.
레지던트 생활을 함께한 게 엊그제 같은데 다들 조교수, 나아가서는 부교수가 되었다.
외래 진료를 보고.
신경외과 클리닉의 한 분야를 맡고.
단독으로 집도도 했다.
[야. 축하한다. 시간 괜찮으면 오늘 병원으로 오던가. 오늘 형님이 소고기 쏜다.]
[복귀 일정은 잡았어? 설마 우리 병원 말고 다른 병원 가는 건 아니겠지?]
[안 그래도 네 소식 협회지에 떴더라. 메이유 프로그램 수석으로 수료했다며? 진짜, 대박이다.]
동료들과 메신저를 주고받고 또 통화를 하느라 3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슬슬 시간이 됐구나.’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한 준후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뒤 자동차를 끌고 집을 나섰다.
부모님께는 저녁 먹고 온다고 미리 말을 해두었다.
30여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신원대학교 인근 주차장이었다.
준후는 주차를 하고 가까운 카페를 찾았다.
“선생님. 여기예요!”
창가 쪽에 앉아 있던 여성이 준후를 알아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준후가 해당 테이블로 이동했다.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선생님도 참. 이거 받으세요.”
2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 명함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건넸다.
[메디컬 리포트, 팀장 강서연.]
‘메디컬 리포트’는 국내 No.1 의료 포털 사이트로 의료 관련 이슈와 칼럼 등을 게재했다.
준후의 출국 닷새 전.
메일로 인터뷰 요청이 와서 수락했다.
왜 수락을 했나면…….
지난 7년 간 다소 무지했던 한국 의료계의 현실을 듣고 또 준후 나름대로 할 말도 있어서였다.
“커피는 뭘로 드시겠어요?”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아직 쌀쌀한데 차가운 걸 드시네요. 혹시 얼죽아세요?”
“그런 편이죠.”
“제가 주문하고 올게요. 여기 계세요.”
서연이 주문을 마치고 돌아왔다.
인터뷰 시간은 1시간.
대화를 녹음해도 괜찮냐고 물어왔다.
준후는 그러라고 했다.
“우선 귀국 축하드립니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부스트 업 프로그램에 합격하시고 우수한 성적으로 교육 과정도 마치셨잖아요.”
“…….”
“그 비결이 있을까요?”
“부모님과 연인의 전폭적인 지원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연인이 있으셨나요?”
그건 몰랐다는 듯 서연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준후가 아영과 사귄다는 사실은 가까운 주변 사람만 알았으니까 말이다.
“네. 제 버팀목입니다. 제가 힘들 때마다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고요.”
준후에게 아영은 여러모로 특별했다.
준후가 무림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지구상에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다.
“의외로 로맨티스트시네요. 인터뷰에서 연인을 언급하시고.”
“그만큼 각별한 사람이니까요.”
“항간에는 부스트 업 프로그램에 정말 유용성이 있나 의심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
“단순하게 펠로우 과정을 요약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있고요.”
“…….”
“다양한 전공을 배우는 일이 한 과목에 대한 전문성을 해친다는 의견도 있는데요. 이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벌써 승냥이 떼들이 나를 물어뜯기 시작했구나.
……라고 준후는 생각했다.
업적을 세웠으면 칭찬을 못해줄지언정 입은 다물고 있을 것이지, 벌써부터 협잡질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분 나쁜 일일 뿐.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무림 정파가 그러했듯.
한국 의료계에도 본인 세력을 키우기 위해 남의 평판을 깎는 일이 허다했다.
이럴 때만 보면.
의사도 국회의원들 욕할 처지는 못 되었다.
“혹시 누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까? 출처를 밝혀주실 수 있나요?”
준후가 호기심에 물었다.
“그거야 어렵지 않죠. 공식 석상에서 하신 말씀이라.”
“그게 누굽니까?”
“표성덕 부산 신원대학교 병원장님이요. 지금은 한국 신경외과 협회 부 회장을 맡고 계시기도 하죠.”
“아…… 그렇군요.”
할 말이 많았지만 준후는 짧게 대답하고 말았다.
인터뷰가 녹음 중이었다.
말을 가려서 할 필요가 있었다.
표성덕.
준후도 익히 아는 이름이었다.
아니, 결코 잊을 수 없는 이름이었다.
준후가 신원대 병원 레지던트로 근무하던 당시.
신경외과 과장이었으니까.
교수들의 승진 욕구를 자극해 본인 욕심을 채웠던 뱀처럼 간사한 인간으로.
준후는 성덕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병원장이 되고 협회 부회장까지 됐다라…….
자기 이익만 챙기는 얍삽한 인간들이 성공하는 세태는 여전한 듯싶었다.
“남의 업적을 입으로 깎아내리는 건 쉬운 일이죠. 비난을 하고 싶으면 최소한 부스트 업 프로그램에 합격해서 1년은 수련을 하고 나서 비난을 했으면 좋겠네요.”
“…….”
“팀장님. 방금 한 말은 ‘반드시’ 기사에 추가해 주세요.”
준후가 반드시를 강조했다.
“괜찮으시겠어요? 이거…… 노골적으로 부회장님을 저격하는 발언인데요…….”
준후보다 서연이 더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먼저 저격한 건 그쪽이니까요.”
“그래도 선생님이 너그럽게 받아주시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원수로 삼아서 좋을 게 없는 분인데요.”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볼 양반입니다. 그리고 서전은 자신의 환자에게 최선을 다했으면 누구 눈치 볼도 필요가 없어요.”
“당당하시네요.”
“부끄러울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럼 성덕님을 향한 저격성 발언은 메인 기사로 다룰게요.”
“바라던 바입니다.”
준후의 목소리가 호기로웠다.
신경외과 서전으로서의 자질은 물론이요.
정치질로도 성덕에게 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준후였다.
정치질이라면 이가 갈릴 만큼 더러운 무림맹 정파에서 10년을 버티지 않았던가.
잔꾀와 계략이라면 어디 가서 꿀릴 이유가 없었다.
적일도에 대한 복수심만 없었다면 아마 차기 무림맹주는 준후의 차지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요즘 소아과 의사가 부족하다는 이슈가 한참 뜨거운데 이 점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서연이 화제를 돌렸다.
“근본적으로는 힘들고 돈이 안 돼서 생기는 문제죠. 외과에서 터진 문제가 소아과로 옮겨졌을 뿐이에요.”
“선생님은 의사 정원을 늘리는데 동의하시나요?”
“동의는 하지만 그게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유는요?”
“외과나 소아과에 진료 수가를 올려야합니다. 언제까지 의사들의 헌신에만 기댈 수는 없어요.”
“…….”
“물질적 보상도 어느 정도는 따라와야죠.”
준후는 미국을 예로 들었다.
미국은 서전들이 돈을 많이 벌어서 외과 지원률이 높았다.
그런데 이 부분을 단순히 속물이라고 욕할 수 있을까.
보통 사람들도 연봉이 높은 대기업 직장을 선호하는데 말이다.
직업윤리, 책임감, 소명 의식.
다 좋지만 실제 이런 가치들을 중요하게 여겨 취직하는 사람은 가뭄에 콩 나듯이 했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을 인정하고.
해결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수가가 올라가면 건강보험료의 인상은 피할 수 없을 텐데요?”
서연이 비판적인 질문을 던졌다.
“네. 당연히 올려야죠.”
준후의 대답이 거침없었다.
“건강보험료를 더 내더라도 내 아이가 진료를 받거나 내가 수술을 받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요?”
“…….”
“애써 병원에 갔는데 해당 과목 의사가 없어서 아무것도 못 해준다고 하면 기분이 어떨까요?”
준후의 역질문에 서연이 애매하게 웃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기색이었다.
대화가 잠시 끊긴 사이.
준후는 종업원이 놓고 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가만히 창밖을 응시했다.
그런데 느낌이 좋지 않았다.
도로를 지그재그로 달리던 자동차 한 대가 어쩐지 이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 같았다.
불길한 예감에 준후는 단전에 있던 내공을 끌어올려 몸을 감쌌다.
검은색 스포츠카가 기어이 도로를 벗어났다.
인도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준후가 앉은 창가 쪽이었다.
“다들 피하세요!”
준후는 사자후의 이치를 담아 크게 외쳤다.
그리고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넋이 나간 서연의 팔을 붙들고 자리를 피했다.
쨍그랑! 콰과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