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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406화 (406/424)

406화

제79장 뜻밖의 행선지(1)

스포츠카의 습격으로 카페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한쪽 창문이 와장창 깨졌으며 날카로운 조각들이 바닥에 어수선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준후와 서연이 앉아 있던 테이블도 부서진 채 옆으로 넘어져 있었다.

얼마나 빠른 속도로 달려온 걸까.

스포츠카는 카페 계산대를 박살 내고 기어이 외벽까지 들이받은 후에야 멈춰 섰다.

차의 앞 범퍼가 흉물스럽게 찌그러져 있었다.

‘다친 사람은 없는 건가?’

준후는 냉정한 눈빛으로 카페 주변을 살폈다.

당연하게도 차를 먼저 발견한 준후와 서연은 무사했다.

사자후가 섞인 준후의 외침에.

손님들과 카운터에 있던 직원도 무사히 대피한 것으로 보였다.

준후는 일단 카페 바깥으로 나왔다.

“대낮에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차가 카페를 덮쳤네?”

“큰일 날 뻔했다. 나 지금 저기 들어가려고 했는데.”

“119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닌가?”

황당한 사고 탓에 카페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웅성거림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누군가는 휴대폰으로 카페를 촬영하기도 했다.

‘휴, 천만다행이군.’

준후가 걱정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차는 도로를 벗어나기 전 인도로 들어섰는데.

도중에 차가 사람을 치었을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부상자는 운전자만으로 한정 지으면 될 듯 했다.

“손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하마터면 차에 깔려 죽을 뻔했어요.”

바깥으로 나와 있던 카페 직원이 준후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저도 정말 감사합니다.”

“처음에는 왜 그렇게 시끄럽게 소리를 치시나 싶었는데 다 깊은 뜻이 있었네요.”

다른 손님들도 준후에게 감사를 전했다.

준후는 멋쩍게 웃었다.

그리고 스포츠카가 처박힌 카페를 바라보았다.

평소 같았으면 주변 사람들이 무사한 것을 보고 번개처럼 현장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준후는 보통 환자를 만나면.

눈이 돌아가는 열혈 서전이었으니까.

그런데 왜일까.

오늘따라 유독 다리가 무거운 것은.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더니 예상치 못했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리고 싶지 않아.

저 사람은…….

치료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라면 간단했다.

스포츠카를 탈 정도로 부유한 사람.

그런 사람이 대낮에 차로 카페를 습격했다?

자연히 그려지는 그림이 있었다.

바로 마약 운전 또는 음주 운전이었다.

백 번 양보해서 준후가 운전자를 살린다고 하자.

그렇다고 한들 운전자가 반성이나 할까.

절대 그럴 일 없다.

아마 재수가 없어서 사고 났을 뿐이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할 가능성이 컸다.

처벌도 솜방망이일 것이다.

뭐, 거기까지도 좋다.

문제는 이런 사건이 나중에 또 벌어져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당장 오늘만 놓고 보아도.

준후가 현장에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최소한 카페 직원은 현장에서 즉사했을 것이다.

“선생님. 어떻게 할까요? 역시 119에 신고하는 게 낫겠죠?”

준후를 따라 카페에서 나온 서연이 준후 곁에 서서 물었다.

“…….”

준후는 침묵을 지켰다.

119가 도착하는 시간, 구조하는 시간, 치료하는 시간 등을 감안하면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칠 가능성이 높았다.

환자를 살릴 최선의 방법.

그것은 준후가 당장 환자를 구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왜? 굳이?

……라는 의심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정말 사람의 목숨은 똑같은 가치를 가질까.

카페를 들이받은 저 망나니의 목숨과 준후의 목숨이 과연 똑같이 소중한 걸까.

네 멋대로 생명을 평가해선 안 돼. 의사로서 최소한의 본분을 지켜야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잊었어?

내 능력과 판단에 따라,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처방을 따를 뿐.

환자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처방은 절대로 따르지 않겠다는 구절.

기억 안 나?

웅크리고 있던 양심이 제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에 반하는 목소리 역시 만만치 않았다.

목소리는 말했다.

저놈을 살리면 반드시 똑같은 참사가 반복될 거라고. 차라리 이 기회에 자기 혼자 죽게 내버려두라고.

“선생님. 빨리 결정을 내려주세요!”

서연이 다급한 목소리로 준후를 독촉했다.

고민하던 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가볼게요.”

* * *

타다다닥.

준후가 빠른 걸음으로 카페로 달려갔다. 서연이 두 팔을 휘저으며 그 뒤를 쫓았다.

119에 신고는 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할 필요가 없었다.

서연이 신고를 하려던 찰나에 카페 직원이 먼저 신고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라도 도움이 되겠지.’

서연의 표정이 비장했다.

그녀는 단순히 메디컬 포털 사이트의 직원이 아니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간호사로서 대형 병원에서 근무했다.

준후를 보좌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처참하네요.”

서연이 준후 곁에 서서 숨을 헉헉 거렸다.

앞 범퍼가 찌그러진 차 안에 환자가 쓰러져 있었다. 터진 에어백이 환자의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환자는 안전벨트를 착용한 상태였다.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았다면 현장에서 즉사했을 것이다.

“왜 차로 카페를 들이받았을까요?”

“술을 마셨거나 마약을 했겠죠. 도로에 있을 때부터 핸들이 불안불안 했거든요.”

“그걸 보고 계셨어요?”

“전 시야가 넓거든요.”

준후가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서연은 준후에게 감탄하면서 차에 바짝 다가갔다.

양손으로 운전석 문을 열려고 시도해 봤다.

“끄으으응.”

묵직한 침음성만 흘렀다.

문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들썩거리는 건 서연의 가느다란 몸뚱이 뿐이었다.

사고가 나면 문의 잠금 장치가 자동으로 풀리는 게 아니었나?

“충돌하면서 잠금 장치가 고장 난 것 같아요.”

“창문을 부숴볼까요?”

“그게 차선책이지만 그럼 치료를 할 수가 없어요.”

“그럼 어쩌죠?”

서연이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었다. 어떻게 해서든 환자를 살리고 싶은데 환자를 차에서 빼낼 방법이 없었다.

구조의 첫 단추부터 막혀 버린 것이다.

“옆으로 나와 계세요.”

“뭐하시려고요?”

“문제가 생기면 문제의 원인부터 제거해야죠.”

방금까지 서연이 서 있던 자리에 준후가 섰다.

서연과 마찬가지로 문손잡이를 힘껏 붙잡았다.

“잠금장치가 고장 났으면 힘으로는 안 열리는 거 아닌가요?”

“힘으로는 안 열리겠지만 ‘특별한’ 힘이라면 열 수도 있겠죠.”

준후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서연이 당겼을 때는 꿈쩍도 하지 않았던 운전석 문이 통조림 뚜껑처럼 간단하게 열어버린 것이다.

텅!

준후는 아예 운전석 문짝을 뜯어서 먼 곳으로 던져 버렸다.

두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는, 상상을 초월하는 완력이었다.

문을 열고 난 다음의 처치는 순조로웠다.

준후가 환자의 안전벨트를 풀고 환자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눕혔다.

환자는 20대 초중반으로 보였다.

스포츠카의 오너답게 화려한 명품시계를 손목에 차고 있었다.

다만 환자의 왼쪽 다리가 기묘하게 꺾여 있었다.

차가 찌그러지면서 차체가 환자의 다리를 짓누른 듯 했다.

날카로운 쇠에 찔렸는지 왼쪽 바지가 피로 축축했다.

“저기요. 괜찮습니까?”

준후가 환자의 어깨를 흔들었다.

환자는 침음성만 흘릴 뿐 의식이 없었다.

“선생님. 근처에 의자 하나만 가져다주세요.”

“의자는 어디에 쓰시게요?”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준후의 목소리와 눈빛이 단호했다.

인터뷰를 할 때 보여주었던 부드러운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었다.

지금의 준후는 한 마리의 호랑이와 같았다.

“아, 알겠습니다.”

준후의 지시를 받은 서연이 자리를 벗어나 근처에 있던 나무 의자를 하나 챙겨서 돌아왔다.

그때 준후는 환자의 머리에 손을 얹고 있었다.

‘뭐 하시는 거지?’

실로 특이한 행동이었다.

머리에 손을 얹어서 파악할 수 있는 질환이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 체온이라도 재는 건가?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

굳이 체온을 잰다면 정수리가 아니라 이마에 손을 대는 게 맞을 텐데?

“선생님. 의자 가져왔어요.”

준후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한손으로 의자의 등받이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의자 다리를 잡았다.

뽀각!

다시 한번 펼쳐지는 괴력.

준후는 단번에 의자와 의자 다리를 분리시켰다.

그리고서 골절을 입은 환자의 왼쪽 오금에 의자 다리를 갖다 대었다.

아, 그랬구나!

골절을 정복하기 위해서 부목을 대려고 하시는구나.

부목으로 쓸 게 없어서 의자를 가져오라고 하신 거였고.

준후의 참신한 발상에 서연은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선생님, 여기요.”

서연은 센스 있게 자신이 목에 매고 있던 스카프를 준후에게 건넸다.

준후가 눈으로 빙긋 웃었다.

서연에게 받은 스카프를 붕대처럼 사용했다.

스카프로 환자 다리 밑에 대었던 의자 다리를 돌돌 감아서 고정시켰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준후는 검지로 환자의 출혈 부위 주변을 콕콕 찔러댔다.

놀랍게도 그 이후로 환자의 출혈이 급속도로 멎어갔다.

설마 저게 치료는 아니겠고.

미신적인 의식 같은 거겠지?

“임기응변이 대단하세요. 설마 의자 다리를 부목으로 쓰실 줄은 몰랐어요.”

서연이 감탄조로 말했다.

“부스트 업 프로그램에 외상외과 파트도 포함 되었거든요. 현장에 직접 출동해 보면 별의별 일을 다 경험하기 마련입니다.”

“와! 부스트 업 프로그램에 그런 효과도 있었군요.”

“입으로만 떠드는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효과죠.”

준후가 성덕을 은근이 다시 저격했다.

준후의 처치를 눈앞에서 보고 있었기에 서연은 성덕보다 준후에게 더 깊은 신뢰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만약 다른 서전이 이 자리에 있었으면.

준후처럼 능숙하게 환자를 치료할 수 있었을까.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애초에 차문을 뜯어내지 못했을 뿐더러.

의자 다리를 부목으로 쓸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휴우~”

서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당장 할 수 있는 처치는 다한 것 같네요. 다리 골절 빼고 큰 부상은 없는 것 같은데 선생님 생각은 어떠세요?”

“이 환자 심각해요. 한 시라도 빨리 병원으로 옮겨야 해요.”

“골절도 정복하고 출혈도 거의 다 멎었는걸요?”

서연의 고개가 좌측으로 기울어졌다.

충돌이 워낙 심했으니 환자가 아직까지 의식이 없다는 점은 특별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

바닥에 머리를 부딪쳐도 뇌진탕이 오는 경우도 많았으니까.

“여기 보여요?”

준후가 검지로 환자의 좌측 관자놀이를 가리켰다.

“어라? 멍이 있었네요?”

“충돌할 때 유리창에 측두부를 부딪친 것 같아요. GCS(의식평가) 스코어는 4점으로 semi-coma(반 혼수) 상태고. 동공 반사를 확인해 봤는데 동공이 핀 포인트였어요.”

“펜 라이트도 없는데 동공 반사는 어떻게 확인하셨어요?”

“휴대폰 라이트로요. 펜 라이트만큼 정확하지는 않지만 나름 도움이 됩니다.”

준후의 두 번째 임기응변에 서연이 또다시 탄복했다.

환자는 준후를 만난 것을 축복으로 여겨야 했다.

그 어떤 서전이 카페에서 이렇게 정확하게 환자를 치료하고 진단할 수 있단 말인가.

“말씀은 알겠는데 그래도 일단 119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요?”

“제가 직접 응급실에 가는 게 빠를 겁니다. 신원대가 가깝기도 하고 믿을 만한 서전도 알고 있으니까요.”

“혼자서 성인을 병원까지 후송하시겠다고요? 무리예요!”

서연이 기겁했지만 준후의 표정은 담담하기만 했다.

“전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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