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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407화 (407/424)

407화

제79장 뜻밖의 행선지(2)

준후는 눈 깜짝할 사이에 신원대학교 병원 응급실 앞에 도착했다.

준후의 두 팔에 환자가 들려 있었다.

도착하는데 걸린 시간은 단 1분!

애초에 신원대 병원 근처 카페에서 약속을 잡았던 데다가 준후는 화경의 무림인이었다.

정파 무림 기준으로 20위권 안에 들어가는 초고수였다.

작정하고 보법을 밟는다면.

그 속도는 무시무시했다.

심지어 경이로운 속도로 달리면서 유연하게 방향 전환까지 할 수 있었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때마침 근처에서 119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준후에게 안긴 환자를 후송하기 위해 카페로 향하는 구급차일 것이다.

준후가 응급실로 들어갔다.

빈 좌석에 환자를 눕히고 환자의 바지 주머니를 뒤졌다.

앞주머니에 휴대폰이 있었고.

뒷주머니에 유명 명품 브랜드 지갑이 있었다.

일단 지갑부터 꺼내 주민등록증을 확인했다.

서정민.

나이는 23세.

환자는 생각보다 더 어렸다.

하지만 철이 없다고 해서 오늘 저지른 일을 용서할 수는 없었다.

죄의 무게는 나이와 상관없었다.

더 나아가서 준후는 촉법 소년에 게도 엄격한 법의 심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피해자는 평생 고통을 받아야하거늘.

가해자는 왜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여생을 편하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과연 가해자가 반성이나 할까.

무림이 됐든.

현대가 됐든.

자신이 저지른 짓을 뼈저리게 뉘우쳤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준후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벌이라도 강력하게 줘야지.

“어떻게 오셨어요?”

준후가 응급실 접수처로 이동하자 남자 직원이 물었다.

“접수하러 왔습니다. 교통사고고요. 혼자서 카페 창문을 깨고 안쪽 벽을 들이 받았습니다.”

“혼자서요?”

“네. 혼자서요.”

“알겠습니다. 빨리 접수해드릴게요.”

남자 직원의 얼굴에 얼핏 경멸의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타다다닥.

직원이 준후가 내민 주민등록증으로 접수를 시작했다.

접수가 끝난 뒤 준후는 주민등록증을 회수해서 환자 곁으로 돌아왔다.

환자의 상태를 다시 점검했다.

부목과 스카프로 응급처치를 하고 지혈 점혈을 펼친 덕분에 다리에 출혈은 완전히 멎어 있었다.

환자의 목도 이상 없었다.

보법을 펼치며 응급실로 달려오는 동안.

환자의 목이 꺾이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웠기 때문이다.

환자를 이송할 때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환자의 목을 고정시키지 않아 경추 골절이 발생하는 것이었다.

준후가 환자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내공 뇌혈관 조영술’을 다시 한번 펼쳤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단전에서 끌어올린 내공이 손바닥으로, 손바닥에서 환자의 머리로 향했다.

내가 기공술의 이치를 담았기에.

내공은 단단한 두개골을 진동의 형태로 통과했다.

두개골을 지나쳐 뇌막과 뇌를 스캔하듯 훑기 시작했다.

‘여전하구나…….’

좌 중대뇌동맥에서 거센 혈류가 느껴졌다.

출혈이 터졌다는 의미였다.

심각한 수준의 출혈이었지만 준후는 의외로 걱정을 하지 않았다.

머리를 다친 직후에 곧바로 병원에 오지 않았던가.

그만큼 치료가 빠를 테니 호전을 기대할 만했다.

‘한 번 더 간다!’

준후는 내친 김에 치료에도 손을 댔다.

찢어진 혈관에.

내공으로 단단한 벽을 쳐서 출혈을 막아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혈류의 압력은 만만치 않았다.

거친 파도가 되어 내공의 벽을 연신 두들겨댔다.

준후는 더 많은 내공을 흘려보내서 혈관 밖으로 터져 나오려는 혈류를 견뎌냈다.

단전에 내공은 물론이요.

심장에 마나 6서클까지 갖춘 준후였다.

근 몇 년간 내공이 모자라서 고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내공의 물량 공세에 결국 혈류도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정상적인 흐름을 되찾았다.

“휴우~”

준후는 기진맥진한 표정을 지으며 옷소매로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내공으로 출혈을 막는 작업.

이것은 결코 쉽고 간단하지 않았다.

두개골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내공을 두개골 너머로 통과시키는 작업부터 섬세한 운용이 필요했다.

내공으로 찢어진 혈관을 막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잘못하면 형상화한 내공이 도리어 혈관을 찢어버리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면.

준후도 내공 치료보다 수술을 훨씬 선호했다.

내공 치료를 한다고 해도.

어차피 이미 발생한 출혈이 혈종을 생성하기에 이를 또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혈종도 내공으로 제거 가능했지만.

내공으로 혈종을 제거하는 일은 수술보다 더 위험해서 거의 하지 않았다.

내공으로 혈종을 잘게 쪼개다가 환자의 뇌라도 손상시킨다면 끔찍한 재앙이 발생할 테니까.

가능하다면.

앞으로 내공 치료술의 정확도와 속도를 높여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준후는 환자를 내려다보며 잠시 숨을 골랐다.

내가 이렇게 개고생한 걸.

이 친구가 알기나 할까.

그런 생각이 쓴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인정받기 위해서 의사가 된 건 아니라도 감사할 줄 모르는 환자를 치료하는 일은 달갑지 않았다.

‘그래도 잘한 걸 거야. 아마.’

준후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환자를 치료해야 한다는 양심.

환자를 내버려둬야 한다는 검은 목소리.

후자에 마음이 끌렸지만 준후는 결국 전자를 선택했다.

이유라면 간단했다.

치료를 통해 이득을 얻기 위해서였다.

환자를 살리면 살릴수록 준후의 평판은 올라가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치솟은 평판은 준후의 영향력을 키워줄 것이다.

더군다나 오늘은 곁에 서연이 있었다. 서연이 오늘 준후의 응급처치를 기사로 쓸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녀는 분명 부스트 업 프로그램의 효용성을 대신 증명해 줄 것이다.

준후가 외상외과 교육을 받아서.

당황하지 않고 현장에서 적절한 치료를 했다고 의료계에 선포를 해줄 것이다.

만약 준후가 환자를 119에 맡겼다면 어땠을까.

이런 효과는 기대도 못 했으리라.

나쁜 놈들은 나를 위해서 치료한다고 생각하자.

일단 내 평판이 올라가야.

선한 환자들에게 더 많은 일들을 해줄 수 있을 테니까.

상념을 마친 준후가 환자의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잠금장치가 걸려 있었다.

하지만 문제될 건 없었다.

환자의 엄지 지문으로 잠금을 열었으니까.

“네. 어머님. 많이 당황스러우시겠지만 차분하게 들어주세요. 저는 의사고요.”

-…….

“아드님이 교통사고를 일으켜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지금 병원으로 와주시겠어요?”

준후는 보호자에게 상황을 전달하고 통화를 끊었다.

다음 업무를 위해 응급실로 향했다.

“함부로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응급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가드가 준후의 앞을 가로 막았다.

“여기 의사예요. 저거 안 보여요?”

준후가 피식 웃으며 응급실 천장에 달린 전광판을 가리켰다.

전광판에 신원대 병원 광고가 흐르고 있었는데 마침 광고에 준후 얼굴이 나왔다.

준후가 레지던트 때 촬영한 광고 영상이 아직도 사용되고 있었다.

“아. 네. 들어가세요.”

“수고하세요.”

준후는 손쉽게 가드를 지나쳐 응급실로 들어섰다.

평일 오후임에도 응급실은 분주하고 어수선했다. 스태프들이 바쁘게 비좁은 통로를 오갔다.

진상 환자가 있는지 어디선가 ‘내가 누구인지 알고’로 시작하는 고함이 들려왔다.

응급실 병상도 거의 다 차 있었다.

터벅. 터벅.

준후는 거침없이 스테이션 쪽으로 이동했다.

“야, 서준후! 네가 여기 웬일이야?”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나야 잘 지냈지. 안 그래도 너 귀국했다는 소식 들었는데.”

스테이션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안경을 쓴 사내가 준후를 알아보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강현우.

준후의 의대 동기이자 응급의학의였다.

“T.A(Traffic Accident, 교통사고) 환자 데리고 왔는데 빨리 좀 봐주라. 빨리 수술 들어가야 할 것 같다.”

“지인이야?”

“아니. 완전 남이지.”

“그럼 119는 어디 다 팔아먹고 네가 직접 왔어?”

현우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하자면 복잡해. 그냥 그런 게 있다고만 알아 둬.”

“환타 기질은 여전하네. 의대 다닐 때 칼싸움에도 엮이더니만. 환자는 어디 있는데?”

“바깥 대기실에 눕혀 놨어. 부목을 댄 20대 남자다.”

“노훈아! 침상 끌고 가서 부목 댄 20대 남자 응급실로 데려와라.”

“네. 교수님.”

현우의 지시에 한 레지던트가 침상을 끌고 환자 대기실 쪽으로 이동했다.

“세월 참 빠르다. 네가 교수도 달고.”

“레지 때는 대단해 보였는데 막상 교수돼 보니까 별거 없더라. 일에 치이는 건 다 똑같아.”

현우가 피식 웃었다.

“검사는 루틴대로 하는데 브레인만 X-ray 말고 CT로 찍어주라.”

“곧바로 CT를? 두개 손상 있는 거 확실해?”

“GCS 테스트랑 동공반사도 해봤어. 뇌압 낮추고 혈종도 제거해야 될 거다.”

“암요. 메이유에서 무려 7년을 수련한 위대한 서전인데 분부대로 따라야죠.”

“네가 뭘 좀 아는구나.”

준후와 현우가 농담을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하게 웃었다.

“근데 현우야.”

“또 왜. 불안하게.”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만 더 하자. 내가 그랬다고는 하지는 말고…….”

준후가 속삭이듯 말을 이었다.

* * *

그날 오후.

서연은 사무실로 돌아와 기사를 작성하고 있었다.

기사 제목은 전설의 귀환.

여기서 전설은 당연히 준후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준후의 나이는 아직 38살로 서전치고는 무척 젊었다.

한창 활동이 왕성할 시기였다.

그래서 전설이라는 칭호를 운운하기에는 다소 일렀다.

실제로 대한민국에서 명의나 전설로 불리는 서전들도 보통 50대에서 60대였으니까.

하지만 준후에게는 전설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았다.

‘진짜 전무후무한 사람이야.’

서연이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준후의 기사를 쓰기 위해.

준후에 대한 이런 저런 기사와 정보를 모아봤는데 준후는 알면 알수록 대단한 인물이었다.

일단 한국에 있을 때부터 이력이 화려했다.

뇌 각성 수술.

소아 뇌종양 수술 등등.

레지던트 때부터 다양한 고난이도 수술에 어시스트에 참가했다.

교수들과 공저한 논문도 30개가 넘었다.

의학 채널로는 유일하게 200만 구독자를 달성한 뉴튜버였으며 매년 꾸준하게 자선 단체에 1억씩 기부금을 전하고 있었다.

하물며 미국에서의 활약은 더 경이로웠다.

도서관에서 총기 사고를 진압하고 응급처치를 했다.

샴쌍둥이 분리 수술에 제1어시스트로 참여하기도 했다.

부스트 업 프로그램의 모든 교육 과정에서 수석을 차지하는 영광도 누렸다.

‘미국 생활이 의외로 조명을 못 받았어…… 이 부분을 잘 살리는 게 좋겠는데?’

서연은 포털 사이트에 준후의 이름을 영문으로 검색해서 더 다양한 자료를 모았다.

그 결과 발견한 놀라운 사실.

준후가 메이유 클리닉 명예의 전당.

그러니까 최고의 의사들만 얼굴을 내밀 수 있다는 페이지에 떡 하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는 동양인 최초의 업적이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명예의 전당에 있는 준후 사진에서 번쩍번쩍 광채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어디 보자…….”

서연은 인터뷰 기사에 새로운 정보들을 추가했다.

오늘 있었던 교통사고는 새로운 기사로 빼냈다.

둘 다 너무 강렬해서.

하나로 엮기에는 아까웠다.

기사를 작성하면서 서연은 또 생각했다.

준후의 복귀로 잠잠했던 신경외과계에 거센 돌풍이 불어올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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