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8화
제79장 뜻밖의 행선지(3)
3번 수술방.
신경외과 뇌혈관 파트 조교수 경수가 집도를 맡고 있었다.
환자의 이름은 서정민.
나이는 23세.
자동차로 카페에 돌진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라고 했다.
경수는 방금 막 환자의 두개골을 연 상태였다.
환자의 측두부 두개골이 반듯한 직사각형 형태로 절제 되어 있었다.
우유 지방층 같은 하얀막.
그것이 절제된 구멍의 표면 바깥을 감싸고 있었다.
뇌를 감싸는 세 개의 막인 경막, 지주막, 연막 중 최전선에 위치한 경막이었다.
“현철아. 한자 뇌압 좀 측정해 봐.”
“네. 교수님.”
경수의 지시에 제1어시스트 현철이 긴 바늘 같은 것을 뇌 안으로 밀어 넣었다.
“6mmHg입니다.”
“확실해? 제대로 본 거 맞아?”
“네. 뒤구르기를 하면서 봐도 6mmHg일 것 같습니다.”
현철의 노티에 경수가 눈살을 찌푸렸다.
콧잔등에 주름이 잡혔고.
입술이 입 안쪽으로 말려 들어갔다.
왜냐하면 뇌압이 정상 범위였기 때문이었다.
미세 현미경으로 환자의 뇌막을 살피던 경수가 미세 현미경에서 눈을 뗐다.
구식 라디오 기계를 닮은 뇌압 감시 장치를 응시했다.
정면에 있는 계기판 눈금이 정말 8을 가리키고 있었다.
“허……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경수가 혼잣말을 했다.
거기에 힘 빠진 한숨이 섞여 들어갔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측두부 골절이 일어날 만큼 환자는 머리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어떻게 뇌압이 정상일 수 있을까.
“환자 뇌압이 정상이면 좋은 거 아닙니까?”
현철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연히 좋은 일이지. 하지만 도통 이유를 모르겠단 말이야.”
“뇌출혈이 자연적으로 멎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교재에서 본 것 같습니다.”
“그건 미세 혈관이 터진 경우에만 일어나는 경우고. 이 환자는 그런 케이스에 해당이 안 돼.”
경수의 목소리가 단호했다.
출혈이 일어난 환자의 뇌혈관은 뇌동맥과 매우 가까웠다.
그만큼 두꺼웠으며.
혈류의 흐름이 빠르고 거셌다.
자연 지혈을 기대할 만한 뇌혈관이 아니었다.
만약 이만한 혈관이 터졌을 때 자연 지혈이 된다면 신경외과의 뇌혈관 응급 수술 빈도는 지금보다 50퍼센트는 줄어들 것이다.
‘논문이라도 써봐야 하나?’
경수가 잔뜩 구겼던 얼굴을 풀었다.
미세 현미경에 다시 눈을 가까이 했다.
지혈된 이유를 찾은 건 어디까지나 나중의 문제였다.
중요한 건 수술부터 깔끔하게 완료하는 것이었다.
“알곤 메스(전기 메스).”
치이이익.
메스에 닿은 경막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조직이 타면서 달고나를 만들 때 나는, 달짝지근한 냄새가 주변으로 번져 나갔다.
경수는 경막과 지주막의 일부를 파죽지세로 절제했다.
그 와중에 뇌막에 분포한 미세혈관의 출혈은 귀신같이 피했다.
메스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았다.
손목이 춤을 추듯 유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레지던트 면허증을 취득한 것도 벌써 7년 전의 일이었다.
까마득한 옛날 일이었다.
그동안 경수는 펠로우 과정을 마치고.
수십 편의 논문을 작성하고.
외래 진료 및 수술을 통해 실력을 갈고닦았다.
지금의 경수와 7년 전의 경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40여 분간의 사투 끝에.
경수는 수술 부위까지 도달하는데 성공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연 지혈된 혈관 앞에 새끼손톱만 한 크기의 검붉은 덩어리가 붙어 있었다.
혈종(hematoma)이었다.
혈종은 뇌압을 높인다.
잘못하면 혈류를 타고 이동 중에 혈관을 콱 막아버리는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조금 더 집중. 거의 다 끝났다!”
경수는 스태프들을 다독이며 수술의 피날레로 향했다.
* * *
같은 시각.
준후는 참관용 수술방에서 경수의 집도를 지켜보고 있었다.
경수는 준후의 하나밖에 없는 레지던트 동기였다.
처음에는 성격이 사포만큼 까칠한 녀석이었지만 준후와 함께 지내면서 성격이 부드러워졌다.
‘제법이잖아?’
모니터를 바라보는 준후의 입가에 아빠 미소가 떠올랐다.
지난 7년 간 성장한 것은 준후만이 아니었다.
경수도 마찬가지였다.
메이유에서 부스트 업 프로그램을 수료했던 동기들과 비교해도 경수는 실오라기만큼도 뒤떨어지지 않았다.
적어도 뇌혈관 수술에 있어서는.
사실 따지고 보면 한국 서전들의 솜씨가 미국 서전들에게 밀리는 건 아니었다.
밀리는 건 최첨단 수술 환경뿐이었다.
실제로 미국 서전들이 수술 참관을 위해 한국까지 날아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럼 누군가는 준후에게 이렇게 물어볼지도 모르겠다.
메이유에는 굳이 왜 갔어요?
한국에서 심화 수련을 받으면 그만인데?
준후가 메이유 행을 결심한 이유는 미국 서전들이 한국 서전들보다 잘나서가 아니었다.
부스트 업 프로그램.
그러니까 신경외과 관련 세부 전공 학습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출하기 위해서였다.
한국에서 각 세부 전공 펠로우를 따려면 18년은 걸렸다.
수련을 마쳤을 때 준후 나이가 50살이 된다는 뜻이었다.
부스트 업 덕분에 준후는 거의 10년을 아낄 수 있었다.
짝. 짝. 짝.
경수의 집도가 끝난 후.
참관용 수술실에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관객이 준후뿐이었으므로.
박수 소리도 하나뿐이었다.
경수의 혈종 제거술과 혈관 봉합술은 완벽했다.
만약 경수를 증오하는 서전이 있더라도.
경수의 수술만큼은 꼬투리를 잡지 못할 정도로 깔끔한 집도였다.
준후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참관용 수술방을 떠났다.
보호자에게 수술 경과를 설명한 경수가 복도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네가 여기는 웬일이야?”
경수가 준후를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준후가 귀국했다는 건 알았지만.
신원대 병원에 있을 거라고는 꿈도 못 꿨던 경수였다.
“그 환자, 응급처치하고 병원으로 후송한 게 나거든.”
“7년이 지나도 환타 기질은 변한 게 없구나? 어쨌거나 반갑다, 자식아.”
“나도.”
두 사람은 활짝 웃으며 악수를 주고받았다.
“나 보려고 병원 근처에 있었던 건 아닐 테고. 아영이 보러 왔냐?”
“빙고.”
준후의 손가락이 경쾌하게 튕겨졌다.
서연과 인터뷰를 마친 후.
아영과 재회하는 게 오늘 스케줄이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오후 외래 진료가 끝나면서 아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궁금한 게 있는데 뭐 하나만 묻자.”
“뭔데?”
“메이유에서 수련할 때 뇌출혈이 저절로 멎은 케이스 경험해 봤어? 미세혈관 말고.”
경수의 설명이 이어졌다.
방금 수술한 환자의 뇌출혈이 자연적으로 지혈되었는데 도통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준후가 내공으로 환자의 찢어진 혈관을 틀어막았으니까.
다만 준후의 능력은 공개할 수도, 공개해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입이 간질간질할 때가 자주 있었지만 참는 것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글쎄…… 메이유에서도 그런 케이스는 없었던 것 같은데?”
“그치? 나만 이상하게 느낀 거 아니지?”
“하늘이 도왔나 보다.”
“뭐, 종교는 없지만 그렇게밖에 설명이 안 되네. 그건 그렇고 환자 나한테 꽂은 게 너냐?”
경수가 팔짱을 낀 채 물었다.
의대 동기이자 응급의학의인 현우가 2시간 전 연락을 해왔다.
환자 한 명을 급하게 수술해달라고.
이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응급의학과가 집도의를 콕 찍는 경우는 가뭄에 콩 나듯 했다.
응급의학과는 환자를 과목에 연결해 줄 뿐.
집도의까지 연결해 주지는 않았다.
그건 엄연히 선을 넘는 행동이니까.
“맞아. 내가 그랬어. 네 실력 좀 보려고.”
“그래서 내 실력은 맘에 들었어?”
“뭐, 나쁘지 않더라.”
“이 자식, 나랑 싸우자는 거지? 한 판 붙어볼래?”
준후가 농담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경수가 농담조로 말했다.
오랜만에 만난 경수가 준후는 반가웠다.
7년 만에 재회임에도.
어색함은 단 1그램도 느껴지지 않았다.
레지던트 수련을 하는 4년 동안 지지고 볶으면서 쌓은 정 때문이리라.
“그건 그렇고 경수야. 방금 수술한 환자 말이야.”
“응. 왜?”
“마약 검사 추가로 해봐.”
“뭐? 마약?”
되묻는 경수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복도에 울렸다. 몇몇 보호자들이 이쪽을 응시했다.
준후가 검지를 손가락에 갖다 대었다.
경수가 뒤늦게 실언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보호자나 환자 동의 없이 마약 검사 함부로 진행하면 안 돼. 하물며 경찰이 의뢰한 것도 아니고. 너도 잘 알잖아.”
“알아. 아니까 너한테 부탁하는 거야.”
준후가 빠드득 이를 갈았다.
환자를 살리는 일과 환자를 마약 투여 혐의로 처벌하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이었다.
후자의 관점에서.
준후는 절대 환자를 용서할 수 없었다.
지금도 사건 당시를 생각하면 뒷골이 서늘했다.
준후가 현장에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창가 자리에 앉았을 손님.
계산대에 있던 직원은 비참하게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또한 환자에게 적절한 처벌이 없다면 환자가 똑같은 짓을 반복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만나자마자 부탁 한번 화끈한 게 하네. 날 집도의로 선택한 게 꼭 내 실력을 보려고 했던 것만은 아니구나?”
“반반이지.”
“네 부탁이라 웬만하면 들어주고 싶은데…….”
경수가 곤란하다는 듯 검지로 옆머리를 긁적거렸다.
“증거는 있어? 증거가 없으면 나도 함부로 못 움직여. 보호자가 괴팍하면 소송까지 걸릴 수 있단 말이지.”
“증거 있다. 두 개나.”
“증거가 뭔데?”
준후의 설명이 이어졌다.
증거 중 하나는 준후의 후각이었다.
환자에게 응급 처치하는 동안.
준후는 환자에게서 시큼한 마약 냄새를 맡았다.
헤로인 특유의 냄새였다.
미국에서 마약 후 교통사고를 일으킨 환자를 많이 수술해 봤기에 그 냄새를 모를 수 없었다.
증거는 또 있었다.
환자의 양 팔뚝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주사 바늘 자국이었다.
“마약한 거 맞겠네. 네 말이 사실이라면.”
“당연히 사실이지. 내가 애꿎은 사람 마약사범으로 누명 씌울 사람이냐?”
“그래도 찜찜한데…….”
경수가 고개를 숙인 채 한참을 고민했고 준후는 경수의 결정만을 기다렸다.
침묵이 길어지는 가운데.
누군가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아까 경수에게 수술 경과를 들었던 환자의 보호자였다.
중환자실로 이동한 줄 알았는데.
어쩐 일인지 발걸음을 돌렸다.
환자의 보호자는 50대 중반의 여성이었다.
입고 있는 옷, 악세서리, 가방이 전부 명품이었다. 모든 제품에 로고가 대놓고 박혀 있어서 명품인 걸 모를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 한 가지 흠이 있다면…….
그녀의 아들만큼은 결코 명품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선생님. 궁금한 게 생겨서 돌아왔는데요.”
보호자가 경수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 아이가 왜 카페에 돌진을 한 거죠? 자동차 급발진이라도 있었나요?”
그 원인을 경수는 알고 있었다.
방금 막 준후의 입을 통해서 들었으니까.
그렇다면 경수는 보호자에게 뭐라고 대답을 할까.
앞으로 어떤 대처를 할까.
준후는 경수의 판단이 궁금해졌다.
어쨌거나 이번 일에서 준후는 제3자였다. 경수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보호자분.”
이윽고 경수가 결심했다는 듯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보호자와 똑바로 눈을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