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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409화 (409/424)

409화

제79장 뜻밖의 행선지(4)

“아드님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아까 통성명을 나눴던 집도의 경수가 현숙에게 물었다.

“선생님 왜 그런 말씀을……?”

농담으로 치부하려던 현숙의 표정이 바위처럼 딱딱해졌다.

자신을 향한 경수의 눈빛이 매서웠다. 농담이나 신변잡기를 하겠다는 말투도 아니었다.

현숙은 무언가가 예상과 다르게 돌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아들이 무사히 살아남았다는 기쁨이 조금씩 옅어지기 시작했다.

“중요한 질문인가 보죠?”

“네.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우리 정민이는요. 똑똑하고 성실한 아이에요. S대 경영학과를 다니고 있고요. 학점도 4점이 넘어요.”

“알고 계신 건 그게 다입니까?”

“그거 말고 뭘 더 알아야 하죠?”

현숙의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학벌을 갖춘 아들이었다.

현숙은 아들이 자랑스러웠다.

“아직 제 아들이 카페에 돌진한 이유를 말씀 안 해주셨어요. 어차피 자동차에 문제가 있을 게 분명하겠지만요.”

“자동차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사실 문제는 아드님께 있습니다.”

“증거가 있나요?”

현숙이 팔짱을 낀 채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 똑똑한 아이들이 무턱 대고 차 사고를 일으킬 리가 없었다.

그런데 왜일까.

아까부터 예감이 안 좋은 것은.

“아드님이 마약을 했습니다.”

대답은 옆에 있는 잘 생긴 청년이 했다.

갑작스럽게 껴 든 청년의 말에 현숙이 이맛살을 구겼다.

“그쪽은 누군데 중요한 이야기에 껴들어요?”

“저랑 아까 통화하셨잖아요.”

“제가 왜 당신하고 통화를 해요? 방금 처음 본 사람인데?”

“아드님을 병원으로 후송한 게 저입니다.”

청년의 말에 현숙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몇 시간 전에.

아들 휴대폰으로 현숙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런데 목소리는 아들이 아니라 처음 듣는 남자의 목소리였다.

남자는 아들에게 차 사고가 났으니 최대한 빨리 병원에 와달라고 부탁했다.

병원 직원에게 은인을 찾아 보상을 하고 싶다고 했지만 은인은 이미 자리를 떠났다고 했다.

그 은인을 하필 이 자리에서 마주칠 줄이야.

그것도 자신이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게 될 줄이야.

“어머, 죄송해요. 방금은 제가 너무 흥분했나 봐요.”

현숙이 멋쩍게 웃으며 청년과 통성명을 나눴다.

청년의 이름은 준후였다. 집도의의 친구이자 신경외과 의사라고 했다.

“이거 받으세요.”

현숙이 준후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럭셔리 몰 대표, 김현숙]

현숙은 30-50대 여성들을 상대로 한 온라인 의류 쇼핑몰을 운영 중이었다.

옷을 보는 눈.

유행에 민감한 감각.

이 두 가지 재능으로 운영하는 쇼핑몰은 나날이 번창 중이었다. 몇 년 전부터 솟은 콧대는 내려갈 줄 몰랐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갈까요? 내가 보호자께 말씀드려도 되지?”

“그래. 네가 결자해지해라.”

“보호자분은 아드님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준후가 훈계하듯 말했다.

“그럴지도 몰라요. 하지만 선생님보다는 잘 알겠죠.”

“근데 왜 마약을 하고 있다는 건 모르셨습니까?”

“없는 사실을 지어내지 마세요. 아까부터 왜 자꾸 성민이가 마약을 했다는 거예요?”

현숙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났다.

마약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돌이라도 얹힌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아드님 응급처치 할 때 마약 냄새를 맡았습니다. 팔뚝에 주사바늘 자국도 확인했고요.”

“잘못 보셨겠죠. 성민이는 그럴 아이가 아니에요. 걔가 뭐가 부족한 게 있어서 마약을 해요?”

“부족한 게 없어서 마약을 했을 수도 있죠.”

“그런…….”

“오늘 중으로 아드님께 마약 검사를 따로 진행할 겁니다. 검사 결과가 나오면 알게 되겠죠.”

“당신들이 경찰이에요? 왜 마음대로 검사를 하겠다고 그래요?”

말을 마친 현숙이 이를 딱딱딱 부딪쳤다.

의사가 확신하는 것을 듣고 보니.

의심 가는 점이 몇 가지 있었다.

아들이 근래에 식사를 걸러서 홀쭉하게 말랐고 이상하게 호흡이 거칠어지고 멍 때릴 때가 많았다는 것을.

그게 다 마약의 신호였던 건가.

“난 허락 못 하니까 내 아들 몸에 손대지 말아요!”

현숙이 버럭 소리를 지르듯 외쳤다.

애지중지 키운 아들.

자신의 못난 학벌 콤플렉스를 해결해준 아들.

그 아들이 무너지는 꼴을 눈 뜨고 무기력하게 지켜 볼 수는 없었다.

억지라도 부리고 봐야했다.

“저는 그나마 좋게좋게 해결하려고 미리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좋게좋게? 지금 협박하는 거나 다름없잖아요.”

“어차피 마약사범은 경찰에 신고하면 조사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어머님이 버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요.”

“으으으…….”

“그리고 아드님을 감쌀 때가 아니에요. 아드님 때문에 사람이 죽을 뻔 했습니다. 저 역시 그중 한 명이었고요.”

준후의 언성이 차차 올라갔다.

반면 눈빛은 차차 날카로워져 살갗을 베어낼 듯 했다.

이러다가 아들이 정말 마약 사범으로 조사받고 감옥에 가는 건 아닐까?

두려움이 성난 파도가 되어 현숙을 덮쳤다.

현숙이 초조하게 다리를 떨었다.

위급할수록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아들의 미래가 그녀의 어깨에 달려 있었다.

현숙은 천장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던 중 이쪽을 비추고 있는 CCTV가 눈에 들어왔다.

CCTV야말로 현숙의 구세주였다.

“이쯤 되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네요. 다 제 불찰이에요. 아들을 잘못 키운 제 잘못이에요.”

현숙이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가 폈다.

“하지만 한 번만 기회를 주실 수 없을까요? 아직 어린 아이라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래요.”

“…….”

“친구의 꼬임에 넘어가서 실수를 했을 수도 있잖아요.”

현숙은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책임질게요. 그리고 이건 약소하지만 저희 아들을 구해주신 보답입니다.”

현숙이 명품 지갑에서 두 장의 수표를 꺼냈다.

1억 원짜리 수표 두 장이었다.

잘난 체를 하려고 넣어둔 수표를 이렇게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타이밍이 좋았다.

“이…… 일억 원?”

경수가 지폐의 금액을 확인하고 눈을 부릅떴다.

반면 준후의 눈은 오히려 가늘어졌다.

“지금 아드님의 죄를 돈으로 덮겠다는 겁니까?”

“아니요. 천만에요. 두 분이 제 아들을 살려주셨으니 보답을 하는 것뿐이에요.”

“…….”

“제게는 큰돈이 아니니까 사양 말고 받아주세요.”

현숙이 유혹하듯 손에 든 지폐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세상에 돈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따지고 보면 의사도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선택하는 직업 아니던가.

아니라면 왜 의사들이 성형외과나 피부과 전공을 못해서 안달을 내겠는가.

흥!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이거야.

현숙은 속으로 경수와 준후를 비웃었다.

현숙이 두 사람에게 거액을 건넨 진짜 이유.

그것은 협박을 위해서였다.

두 사람이 수표를 받는 순간.

그녀는 병원 관리실을 찾아 CCTV 영상을 확보할 것이다.

그 영상으로 두 의사를 협박한다면 어떨까?

그들도 감히 아들에게 마약 검사를 하겠다는 막말은 하지 못할 것이다.

본인들이 지은 죄가 있으니까.

의사는 환자나 보호자에게 금품을 받으면 안 되니까.

즉, 현숙이 흔들고 있는 지폐는 두 사람의 숨통을 옭아맬 미끼였다.

“저기요. 보호자분.”

준후가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현숙을 불렀다.

“네. 선생님.”

“쇼핑몰 연 매출이 어떻게 됩니까?”

“한 30억쯤 되죠.”

현숙이 자랑스럽게 가슴을 펴며 말했다.

“세금이나 부대비용 빼고 순매출은요?”

“5억쯤 되는데. 왜요?”

“공교롭게도 제가 작년에 8억을 벌었네요.”

준후의 발언에 현숙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강남에 성형외과나 피부과를 차린 것도 아닌데 돈을 그렇게 많이 번다고?

한 번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준후 곁에 있던 경수도 현숙만큼이나 놀랐다. 준후가 대놓고 돈 자랑을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

“어떻게 외과 선생님이 그 많은 돈을…….”

“미국에서는 의사 연봉이 높거든요. 저는 200만 구독자를 가진 뉴튜버기도 하고요.”

“아…….”

“어줍지 않게 돈으로 자랑하지 마세요. 보호자 분보다 돈 많이 버는 사람도 널렸고, 저보다 돈 잘 버는 사람도 널렸으니까.”

준후의 지적에 현숙은 수표를 쥐고 있는 손이 무거워졌다.

이런 전개를 바란 건 아니었는데.

뒤통수를 제대로 얻어맞았다.

가진 건 돈밖에 없거늘 돈이 안 먹혔으니 이제 뭘 더할 수 있을지 머리가 새까매졌다.

“보호자분께서 억을 제안하셨으니 저도 억을 드리겠습니다.”

“무슨 억이요?”

“보호자분의 아드님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칠 수 있도록 감옥에서의 추‘억’을 만들어드리겠습니다.”

“…….”

“가자.”

“응?”

“할 말 다했으니까 가자고.”

준후가 한 손으로 경수의 어깨를 툭 쳤다.

경수가 그제야 준후와 걸음을 맞춰 현숙을 피해 자리를 떠났다.

현숙은 멀어지는 준후와 경수를 멍하니 지켜보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이 새끼야! 너 지금 나 놀린 거지?”

* * *

4층 휴게실.

준후와 경수가 소파에 나란히 앉아 캔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7년이 지났건만 휴게실은 변한 게 없었다. 도배지는 누렇게 변색이 되었고 지저분했으며 소파들은 가죽 표면이 뜯겨져 있었다.

대학병원 휴게실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의 환경이었다.

대체 병원장이 누구길래…….

의사들 복지에 이렇게 관심이 없을까.

이 모양 이 꼬라지가 계속 유지 되는 걸까.

병원장에 대해 물어보려는 찰나.

경수가 먼저 질문을 던졌다.

“너 진짜 년에 8억씩 벌어?”

“더 번 적도 있어.”

“미쳤네. 그러니까 1억에도 눈 하나 깜짝 안 했구나.”

“설령 가난했더라도 그 돈은 안 받았어. 돈보다 환자가 처벌받는 게 중요하니까.”

준후가 속사포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보호자 완전 여우였다고.”

“갑자기 웬 여우 타령인데?”

“듣고 기절하지나 마라.”

준후가 피식 웃으며 설명에 나섰다.

보호자가 천장을 올려보며 한숨을 쉬던 순간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 후로 보호자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그 의미는 무엇일까.

준후는 보호자가 바라보았던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 자리에 CCTV가 있었다.

그러니까 보호자는 뇌물을 먹이고 이를 빌미로 두 사람을 협박할 작정이었던 것이다.

“그랬어? 난 그냥 돈으로 무마를 하려고 하는 줄 알았는데.”

“원래 나쁜 놈은 두 번 의심해야 돼. 그래야 뒤탈이 없어.”

무림에서 살던 시절.

정파 무림맹에서 더러운 정치질에 하도 시달렸던 덕분일까.

그때에 얻은 노하우들을 준후는 지금도 잊을 수 없었다.

비록 레지던트 때는 수련이 바빠서 계략을 사용할 일이 적었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다.

교수가 되고 과장이 되면.

또 신경외과 계에서 입지가 커지면 커질수록.

오히려 수술 실력보다 정치질이 중요해질지도 몰랐다.

“어쨌거나 고맙다.”

“뭐가?”

“마약 검사해 주기로 해서. 내 말만 믿고 결정하기는 부담스러웠을 텐데.”

“부스트 업 프로그램 수석이 말하는데 들어야지. 별수 있나?”

준후는 경수와 30분 가까이 잡담을 더 나누었다. 그리고 다음 볼 일을 보기 위해 1층 로비로 향했다.

한편 준후와 헤어진 경수는 곧바로 중환자실을 찾았다.

교통사고 환자.

아니, 이제는 마약 환자가 되어버린 정민의 침상 앞에 섰다.

마약 검사 오더를 내리기 전에.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었다.

킁. 킁. 킁.

경수는 환자의 몸에 얼굴을 가까이 하고 냄새를 맡았는데 준후가 맡았다는 시큼한 냄새는 맡을 수 없었다.

그다음으로 환자가 걸친 환자복의 소매를 걷어보았다.

좁아지는 미간.

오므라드는 입술.

과연 환자의 양쪽 팔뚝이 울긋불긋 했다. 미세한 주사바늘 자국들이 남아 있었다.

보면 볼수록 대단하단 말이지.

카페에서 즉석으로 부목을 대고 응급처치를 하고 환자를 이송한 것도 모자라서.

마약 냄새를 맡고 주사바늘 자국까지 확인하고.

남들은 하나도 소화하기 힘든 일들을 준후는 남김없이 처치했다.

자신도 꽤 성장했다고 자부했는데 준후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 것 같았다.

이 녀석.

설마 우리 병원 말고 다른 곳에 들어가는 건 아니겠지?

경수는 문득 준후의 행선지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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